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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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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브랜드들은 어떻게 이름을 지었을까. 최고 경영자의 번뜩이는 착상에서 나온 이름도 있고 엉뚱한 곳에서 착안한 상표도 있다. 상품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상표를 둘러싼 뒷이야기.
▽최고 경영자의 ‘기지’〓스낵의 황제 농심 새우깡은 ‘깡보리밥’에서 나왔다. ‘깡’이 지닌 순박한 이미지는 대중적이라는 인식을 준다는 게 농심의 설명이다. 이 이름은 71년 개발 당시 농심 신춘호(辛春浩) 회장의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 아리깡”이라 부르는 데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농심 신 회장은 또 하나의 히트작을 남겼는데 바로 라면의 황제인 ‘신(辛)라면’이다. 라면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이 제품은 86년 시판 당시 파격적으로 이름에 한자로 ‘매울 신(辛)’자를 집어넣어 매운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했다.하지만 한편으론 신 회장의 성과 같아 신 회장 자신의 라면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농심에는 신회장의 가운데 이름인 봄 춘(春)자를 딴 ‘춘면’도 있어 이 소문을 더욱 부추기기도 했다.
자양강장제의 대명사인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강신호(姜信浩) 회장이 이름을 지었다. 50년대 서독에서 유학한 강 회장은 우연히 방문한 함부르크 시청 지하 홀 입구에서 술과 추수의 신 ‘바커스’(희랍신화의 디오니소스) 석고상을 본 뒤 귀국해 박카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간을 보호하는 효과로 주당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는 바커스 신을 우리말 어감에 맞게 바꾼 게 박카스라고.
▽상표 싸움〓동양제과의 ‘오리온 초코파이’는 초코파이 전쟁이라는 희한한 싸움을 만들어 냈다. 74년 ‘오리온 초코파이’를 상표로 등록한 뒤 국민적 인기를 얻었으나 79년 롯데제과가 ‘롯데 초코파이’를 내놓으면서 초코파이 생산에 가세했고 크라운제과 해태제과 등도 잇따라 생산에 들어갔다.
결국 동양제과는 97년 ‘초코파이’는 고유 상표라고 소송을 냈으나 4년여의 분쟁 끝에 대법원은 ‘초코파이’는 특정 상표라기보다 ‘보통명사’로 어느 회사도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제품을 만들 당시 초콜릿으로 만든 파이라는 뜻으로 정직하게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쓴 게 제품이 잘 팔리면서 보통명사 이상의 가치를 얻게 된 것. 동양제과로서는 돈으로 따져 최소 수백억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71년 한국 최초의 유산균 음료 요구르트를 만든 한국 야쿠르트도 지난해 분쟁을 치러야 했다. 발효유 제품 ‘요플레’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디알 인터내셔널사가 “한국인은 ‘요구르트’와 ‘야쿠르트’를 혼용해 쓰기 때문에 ‘야쿠르트’라는 브랜드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특허청에 이의를 제기한 것. 그러나 이의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야쿠르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배보다 커진 배꼽〓브랜드 파워가 커지면서 상표로 회사 이름을 바꾼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93년 시장에 나온 하이트맥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조선맥주는 98년 아예 회사 이름을 하이트맥주로 변경했다. ‘햇살이 가득 찬 들녘’을 뜻하는 해찬들도 브랜드 때문에 회사 이름을 바꾼 경우. 당초 삼원식품이었으나 해찬들이란 브랜드가 잘 나가자 2000년 회사 이름을 바꿨다.
대웅제약도 78년 간장약 우루사를 팔기 위해 회사명을 바꿨다. 대한비타민의 간판을 내리고 대웅제약으로 개명해 ‘곰-웅담-우루사’의 이미지 통합을 이뤄낸 것. 웅담의 간장 해독성분인 우루소데속시콜린산에서 나온 상표를 듣자마자 어느덧 곰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배경에는 숨은 노력이 있었던 셈이다.
▽기발한 이름들〓94년 만들어진 롯데제과의 크래커 ‘제크’는 ‘제대로 만든 크래커’의 약자다. 브랜드 이름을 짓는 업계에서 ‘제크’는 엽기 발랄한 상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종합조미료 시장을 연 제일제당의 다시다는 직원 공모 브랜드. 75년 한 여공이 ‘입맛을 다시다’에서 다시다란 상표를 떠올렸고 순 우리말인데다 조미료의 원료인 ‘다시마’의 청정 이미지를 연상시켜 히트한 상표다.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브랜드 메이저 서상희 이사는 “장수상품은 품질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수십 년 지속적으로 관리해 와 이름 자체가 갖는 가치가 대단히 크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