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교통안전 홍보대사 이경규씨…양심운전 전도사

  • 입력 2001년 12월 27일 18시 34분


“당신도 음주운전 하신 적 있나요?”

기자의 도발적인 질문에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의외의 대답.

“예, 저도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저만한 모범운전자도 없을 겁니다.”

96년부터 2년여 동안 MBC프로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인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우리사회의 무질서한 교통문화에 대해 경종을 울렸던 개그맨 이경규씨(41). 국무총리실에서 위촉한 교통안전홍보대사로 선정됐다. 올해로 18년째 무사고 경력의 이씨지만 양심운전자는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서울시내에서 법대로 운전하려면 힘들잖아요. 횡단보도에서 신호 지킨다고 출발 안하면 경적부터 울려대기 십상이고요.”

그런 이씨가 양심운전의 전도사가 된 계기는 ‘이경규가…’의 첫방송 촬영 때였다고 한다.

“신호등을 지키는 차가 있는지 밤새워 지켜봤는데 딱 한 대가 있었어요. 너무 기뻐 달려가 보니 장애인 부부더라고요.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법을 지키고 사는 그분들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저도 느리게 가더라도 바르게 운전하자고 마음을 먹게 됐지요.”

이씨는 요즘 매주 월요일이면 강남의 양재천에서 밤을 새운다. 도시 속 야생동물을 찾아 다니는 ‘환경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를 녹화하기 위해서다. 환경과 교통은 얼핏 동떨어진 관심사같지만 이씨는 생명사랑은 똑같다고 말한다.

“도심 한복판에도 너구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서울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강의 오염도 점차 치유돼 가고 있듯이 교통사고 왕국의 오명도 벗을 날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과속이나 음주운전은 엄두를 못내게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통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의 조명과 관심도 필요하고요.”

이씨가 진행하는 프로는 대개 1년 이상의 장수프로가 많다. 어린이들을 통해 어른들을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전파견문록’도 예외는 아니다. 초등생 딸을 둔 이씨가 이 프로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조기교육의 중요성이라고 한다.“운전은 습관입니다. 음주 단속한다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음주운전자는 여전히 음주운전을 합니다. 웃음도 강요해서는 나오지 않듯이 처벌위주의 단속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에요. 외국의 경우처럼 운전에 관한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초등학교에 도입해야 합니다. 운전문화를 바꾸기 위한 백년대계를 세워야지요. 어릴 때 한마디 가르치는 것이 어른들에게 백마디 가르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이씨는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이씨는 차에 외동딸 예림이가 타면 엄한 아버지가 된다고 한다. 안전벨트는 꼭 스스로 매게 한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응수기자>e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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