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노다리 시모니야/부시의 ‘북한 목죄기’

  • 입력 2001년 12월 12일 18시 07분


국제관계에서 때때로 현실과 거리가 먼 강력한 ‘신화(神話)’가 등장해 오랫동안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세계대전의 고전적인 법칙에 대한 신화가 지배적이었다. 8년전 쯤 미국 하버드대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세계 3차 대전은 ‘문명간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9월11일 미 테러 참사 후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테러’ 뒤 압박정책 지속▼

11월 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모든 세계대전은 전체주의에 대한 전쟁이었다”며 ‘수정안’을 내놓았다. 2차 대전은 나치주의에 대한 전쟁, 냉전은 공산주의에 대항한 전쟁이었고, 이제 시작된 3차 대전은 앞의 두 전쟁과 달리 ‘종교적 전체주의’에 대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세계 언론은 새로운 신화를 만들고 있다. 많은 언론매체가 9·11 이후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쓰고 있다. 물론 변한 것도 있겠지만 많은 부분은 달라진 점이 없다. 강대국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그대로 남아 있고 몇 가지 전술적인 변화만 있었다. 이는 국제 테러리즘에 의해 가장 큰 피해를 본 미국에도 해당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가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전략적 의도를 더욱 넓히려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 오래 걸릴 것이며 탈레반 공격은 첫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 정부는 다음 공격 대상을 논의하고 있다. 이라크 예멘 수단 북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테러리즘과 ‘테러와의 전쟁’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자들이 테러리스트이며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가 테러국가”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부시 대통령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계속 개발 중인 동맹국 파키스탄이나 인도 이스라엘도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좋은 테러리스트’와 ‘나쁜 테러리스트’를 구분하는 이중적인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나는 부시 행정부가 9·11 참사 후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압박정책을 계속하고 미국 언론이 냉정하게도 북한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보도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 한해 남북한이 관계 진전의 계기를 만들 때마다 미국은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이러한 평화 정착 과정을 봉쇄하곤 했다.

미국은 ‘선결조건 없는 북한과의 대화’ 시작에 동의해 놓고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문제 논의 등 기존 현안 외에 갑자기 재래식 무기에 대한 논의를 추가로 요구했다. 그러자 북한은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다시 보여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맞섰다.

미국은 번번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후 “북한이 양보하지 않으며 북한은 예측할 수 없다”고 비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북한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웠던 낡은 정책을 연상시킨다. 미국 대참사 이후 주한미군이 전투 태세를 강화하고 11월 25일 뉴욕타임스가 “북한이 미국의 다음 공격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北 공격 가능성’ 보도 우려▼

부시 대통령은 감정적이고 한 가지에 너무 몰두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따금 ‘오버’한다. 대외정책과 관련해 지나친 발언을 해 참모나 실무진들이 이를 해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과거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실언을 하고 다음날 크렘린 참모들이 쩔쩔매면서 사태를 진화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부시 대통령이 테러리즘에 대한 ‘해석’을 내놓은 뒤 백악관과 미 국무부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 발언이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다른 의미에서 이 말은 맞다. 미 행정부는 올해 대북 포용정책을 뒷받침하는 어떤 긍정적인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다리 시모니야(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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