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문명대/울산 암각화를 살리자

  • 입력 2001년 10월 31일 18시 51분


세계의 유명한 암각화를 조사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 암각화들이 산 좋고 물 좋은 절경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호숫가나 아무르 강안 절벽, 노르웨이나 스웨덴 바닷가 절경의 바위면 등에 선사인들의 각인이 어김없이 남아 있다. 선사인들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젖줄인 사냥감을 점지해 줄 제의 장소는 신비스러운 절경이 제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발 눈앞…유적 파괴 불보듯▼

우리나라의 암각화를 대표하는 울산의 암각화는 세계 어느 나라 암각화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절경에 자리잡고 있다. 산 속 골짜기를 아홉 굽이나 돈다는 구랑(九浪)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어서 신라시대에는 화랑의 수련장소였고 고려시대에는 정몽주의 유배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문인묵객들의 시회 장소로 애용되어 천재화가 겸재 정선의 명승첩에도 나타나는 명승지다.

이처럼 우리 선사인들의 제의 장소였고 역사적 명승지였던 이 세계적인 암각화가 오늘날 중병을 앓고 있다. 신비스러운 제의 장소를 관광객들의 물결로 뒤덮이게 할 요량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무리하게 개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뜻 있는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울산시가 암각화 일대를 최소한으로 정비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자연친화적으로 절경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정비한다면 적극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좁디좁은 골짜기에 수십 대 혹은 수백 대의 버스와 승용차들이 몰려들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신비의 아홉 굽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는 개발을 서두른다면 이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문화파괴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암각화는 아름다운 절경의 신비스러운 비의(秘儀) 장소가 손상을 입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위 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보존하는 것만이 울산 암각화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울산시는 암각화의 이런 성격을 제대로 파악해서 학계나 시민단체의 의견을 과감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암각화는 우리 선사인들이 그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암벽에 새겨 놓은 대서사시다. 고래나 사슴, 멧돼지나 철새들, 그리고 이들을 사냥하거나 잡는 사냥꾼이나 어부들을 10m 절벽에 여러 겹으로 덧새긴 대곡리 암각화, 사슴과 물고기 등 각종 동물상과 마름모, 동심원 등 여러 가지 그림문자 같은 기하학 무늬 등을 10m 절벽에 가득 새긴 천전리 암각화 등 두 암각화가 절경의 반구대를 중심으로 상 하류 각 1㎞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절벽의 바위 면에 수백 가지의 그림을 중첩해서 빽빽하게 새긴 경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른바 역사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 학계에서도 우리의 이 두 암각화를 특히 주목하고 있으며, 국가적으로도 국보로 최고의 대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국에서 대대적인 개발정비계획을 취소하고 다음과 같은 보존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울산 암각화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경승지로 지정해 보존해야▼

첫째, 암각화가 있는 반구대의 구랑 골짜기에는 자연적인 마을과 오솔길, 원효대사 유적지인 반고사와 재실 및 사당, 한두 곳의 자연스러운 상점과 최소한의 주차시설만 허용하고 그 외 모든 지역은 신비스러운 절경의 비의 장소로 가꾸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둘째, 천전리 암각화는 홍수나 풍화작용을 막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부터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대곡리 암각화는 수위를 낮추거나 차단막을 설치해 물과 동해(冬害)를 막고 언제나 관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재청도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울산시의 개발정비를 적극 저지하고 암각화 일대를 경승지나 유적지로 지정해 유적지의 보존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문명대(동국대 교수·불교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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