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 (11)

  • 입력 1998년 11월 1일 19시 09분


교유 ④

저쪽 패거리 중 하나가 소희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팔목을 붙잡았다. 왜 이래요? 소희가 앙칼지게 저항했다. 그럭저럭 뭉개보려 했던 조국과 승주는 하는 수 없이 그 쪽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조국은 두환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싸움법을 떠올리려 해보았다. 힘이 달리면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라. 사타구니를 걷어차거나 젖꼭지를 물어뜯는 것이다. 귀를 잡고 물어뜯는 것도 괜찮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세차게 맞고 걷어차였다.

그때 분식센터에 손님이 하나 들어왔다. 두환이었다. 두환은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누구를 찾는 눈치였다. 그러는 척하면서 소희 얼굴을 가까이 보려 했다는 소수의 주장도 있다. 어쨌든 코앞에 가서야 멱살을 잡힌 채 대롱거리는 조국과 승주를 발견하고 두환은 여러 가지로 놀라는 눈치였다. 상대가 세 명이나 되는 데에 당황했던 게 틀림없다.

뜻밖의 우정출연에 승주와 조국도 놀랐다. 시비를 걸던 덩치 셋은 다른 이유로 더욱 크게 놀랐다. 두환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보았기 때문이다. 두환의 옷은 찢어졌고 흙투성이였다. 두환이 한 발 앞으로 다가가자 덩치들은 승주와 조국을 내려놓은 다음, 단지 깨끗한 제 옷에 뭔가 묻을까봐 불안해서 그런다는 듯 어깨를 몇 번 털더니 황급히 도망가버렸다.

두환은 텅 빈 분식센터 안을 휙 둘러보았다. 18동인 중 살아남은 자들의 2차 집결지가 바로 그 분식센터였던 것이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자 한순간 두환은 그렇다면 산 놈이 나뿐이란 말이냐, 하는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분식센터의 유리문을 열어젖히고는 묵묵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소희는 그 어둠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더라고 한다.

두환네 18동인은 형편없이 깨졌다. 말이 18동인이지 실제로 대결장소에 나온 것은 여덟 명밖에 되지 않았다. 또 자전거 체인이니 손도끼니 각목이니를 어떻게 구해서 손에 들기는 했지만 쓰는 법을 알 턱이 없었다. 한 명이 맨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다가 적이 다가오려고 하면 병을 깨서 자해를 한다, 마구 피를 몸에 처바른다, 그러면 이미 이긴 싸움이다, 하는 지략도 나왔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실패로 돌아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그 일로 두환네는 중앙조직과 산하조직이 다 와해될 위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두환은 다시 한가하게 통로에 다리를 내놓고 떨어댔다.

가을을 그냥 지나쳐보낼 수 없는 승주와 조국은 소희네 펜팔부와의 야유회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두환도 낄 모양이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미리 만나서 일정을 상의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은 머릿속이 산란하고 조금 우울했다. 며칠째 소희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소희는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내 방문을 열곤 했다. 고통스러운 것은 몸의 윤곽이 잘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잠이 깬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마다 내 속옷은 젖어 있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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