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86)

  • 입력 1997년 5월 18일 08시 53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39〉 동료의 참담한 죽음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있었던 우리 두 사람의 생존자는 구렁이가 사라진 뒤에야 슬퍼하기도 하고 우리들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건 정말 설상가상이로군. 검둥이 식인 거인의 손에서 벗어나 물귀신이 되지 않은 걸 기뻐했건만, 이번엔 더 끔찍한 꼴을 당하게 생겼어. 이제 어떻게 하면 그 끔찍한 독사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까?』 그러나 아무런 뾰족한 수도 없었습니다. 이튿날 우리 두 사람은 섬을 돌아다니며 나무 열매와 개울물로 일단 배를 채웠습니다. 황혼녘이 되자 우리는 뱀의 습격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제 그 뱀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기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숨어 있는 나무를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거침없이 나무를 기어오르는 뱀을 보자 정말이지 우리는 불가항력을 느꼈습니다. 뱀은 기어이 내 동료를 덥석 삼켜버렸습니다. 내가 그 동료보다 좀더 높은 곳에 숨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뱀은 필시 나를 삼켜버렸을 것입니다. 내 동료를 통째로 삼켜버린 뱀은 제 몸뚱어리를 나무 둥치에 친친 감고는 나무를 죄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뱀의 뱃속에 들어간 나의 동료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내 동료를 먹어치운 뒤에야 뱀은 스르르 나무를 내려갔습니다. 날이 밝자 나는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만, 공포와 불면 그리고 마음의 고통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불안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바다에 몸을 던져 뜬세상 시름을 깨끗이 끊어버릴까 하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목숨이 아까웠던지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날 나는 해변에 흩어져 있는 널빤지 여섯 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폭이 넓고 길이가 길었습니다. 나는 그 중 가장 폭이 넓고 길이가 긴 넉 장으로는 몸의 앞뒤 좌우에, 길이가 짧은 다른 두 장은 발바닥과 머리에다 댄 채 밧줄로 몸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는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워보니 나는 흡사 관 속에 누워 있는 것 같은 형국이 되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그 구렁이는 다시 나에게로 기어왔습니다. 그러나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널빤지 때문에 놈은 나를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뱀은 몹시 약이 오르는지 온몸을 꿈틀거리며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무섭고 징그러워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소리쳤습니다. 『이 저주받을 놈의 구렁이야! 삼킬 테면 삼켜봐라! 만약 날 삼킨다면 나는 네놈의 배때기 속을 난도질해 놓을 것이다』 구렁이는 수없이 내 주변을 맴돌다가는 스르르 미끄러져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속지 않았습니다. 놈은 어딘가에 숨어서 내가 널빤지를 벗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은 옳았습니다. 그 간사한 구렁이는 잠시 후 다시 나타나 몇번이고 나를 삼키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길고 넓은 널빤지에 싸여 있어서 놈은 끝내 나를 삼킬 수 없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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