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아들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80년 5.18 당시 군용레커차를 타고 오다 계엄군에 쫓겨 하천으로 추락해 숨진 고 黃聖述(황성술·당시19세)군의 아버지 奉柱(봉주·68·해남군 옥천면)씨는 지난 12일 기막힌 꼴을 당했다.
황씨는 광주 광산구 하산동 공동묘지에 묻어놨던 아들의 시신을 5.18신묘역으로 옮기기 위해 묘를 파보았으나 관은 고사하고 유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큰아들이 나무 막대기에 이름을 적은 푯말을 묘에 꽂아놓았는데…』
황씨는 『아들을 묻으면서 차고 있던 시계까지 함께 넣었다』며 『어떻게 이런 변고가 있을 수 있느냐』면서 넋을 잃었다.
성술군은 80년 5월22일 시민군 3명과 함께 군용레커차를 타고 나주 쪽에서 광주로 들어오다 계엄군과 맞닥뜨려 도망가던중 레커차가 6m 언덕 아래로 추락, 혼자 숨졌다.
가족들은 하천변에 버려져 있던 성술군을 숨진 지 5일만에 하산동 공동묘지에 묻었고 매장 16일만에 묘를 다시 파헤쳐 검찰의 검시를 받았었다. 추석때면 성술군 묘를 찾아 성묘해왔던 유가족들은 지난 89년 정부로부터 7천여만원의 보상금을 받기도 했다.
『매장된 유골이 지하수때문에 유실됐을 수도 있다며 주위사람들이 위로하지만 생전에 아들의 뼛가루만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황씨는 아들의 묘에서 가져온 한줌의 흙과 한복 한벌을 아들의 유해를 대신해 5.18묘역에 묻으며 또한번 한맺힌 5월을 맞았다.
〈광주〓정승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