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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인정하기 전 스스로를 ‘전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실력으로 자신이 전설임을 입증했다. ‘번개’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는 12일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끝난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자메이카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2개 대회 연속 3관왕(남자 100m, 200m, 400m 계주)에 올랐다. 우승기록은 36초84. 지난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볼트를 포함한 자메이카 대표팀이 우승하면서 수립한 종전 세계기록(37초04)을 0.2초나 앞당긴 신기록이었다. 볼트의 인기는 런던에서도 가히 폭발적이다. 볼트가 출전한 경기엔 8만 명의 관중이 가득 찼다. 시내의 술집들도 볼트가 출전하기 전 일순 조용해졌다가 그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함성과 박수갈채로 시끌벅적해졌다. 영국 언론들은 볼트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하게 보도한다. 최근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는 볼트에 관한 경기장 안팎의 얘기들을 숫자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1=볼트는 일 년에 단 한 번 자신의 침실 청소를 한다. 또 한 명의 전속 요리사가 볼트의 식단을 책임진다. 요리사는 영양과 균형을 신경 쓰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치킨 너겟과 같은 패스트푸드도 즐겨 먹는다. ▽3=6일 남자 100m를 2연패한 뒤 볼트는 3명의 스웨덴 여자 핸드볼 선수와 침실에서 축하 파티를 했다. 그는 “400m 계주를 끝내면 화려한 파티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12일 밤도 후끈 달아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6=두 번의 올림픽에서 그가 목에 건 금메달 개수다. 파보 누르미(핀란드)와 칼 루이스(각각 9개)에 이어 역대 육상에서 세 번째로 많이 딴 금메달이다. 그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도 모두 6대다. 하나같이 검은색이다. 그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기업 역시 6개다. ▽900만=최대 스폰서인 푸마는 연간 900만 달러(약 102억 원)를 그에게 지불한다. 나머지 기업들의 후원금과 광고 수입 등을 합쳐 지난해 그는 2030만 달러(약 229억 원·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추산)를 벌어 들였다. ▽5:30=천재성만으로 그가 최고 스타가 된 건 아니다. 볼트는 요즘도 오전 5시 30분이면 항상 눈을 뜬다. 훈련장에 나타나는 건 정확히 오전 6시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일본 기자가 묻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는 게 군대 때문이냐”고. 브라질 기자도 묻습니다. “경기에 지면 곧바로 군대에 끌려간다는 게 사실이냐.” 예전 야구 국제대회를 취재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다른 나라 기자들은 기량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질문은 군대와 연결됩니다.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런던 올림픽 축구 한일전도 그렇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뛰면서 분위기를 압도했습니다. 거친 태클과 강력한 항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경기 내내 지치지도 않습니다. 지난해 일본에 0-3으로 완패했던 한국 성인 대표팀과는 극과 극입니다. ‘군대로이드(군대와 스테로이드의 합성어)’는 시키지 않아도 죽어라 뛰게 만드는 힘이 있나 봅니다. 따지고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프로 선수들에게는 더욱더 시간이 돈입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를 통해 병역특례를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합니다. 해외 진출에도 걸림돌이 없어지지요.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야구, 축구 선수인 박찬호(39·한화)와 박지성(31·퀸스파크 레인저스)도 그랬습니다. 수많은 영광의 순간이 있었겠지만 박찬호가 가장 환한 웃음을 지었던 건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확정지은 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병역 혜택을 받은 박찬호는 그 후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하며 통산 124승을 거둬 국위선양과 함께 국민에게 즐거움을 함께 줬습니다. 돈도 1000억 원 가까이 벌었습니다. 축구 선수 박지성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으로 병역특례를 받은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병역 특례가 아니었다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동메달을 확정지은 후 “개인적으로도 기쁘지만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처럼 이 선수들도 더 발전해서 한국 축구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 선수가 불쑥 떠오릅니다. 후반 45분 교체 투입돼 단 4분을 뛰고 극적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수비수 김기희(대구)입니다. 그는 “축구 인생이 끝날 때까지 절대 잊지 못할 4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4분이 앞으로 그의 축구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유심히 살펴봐야겠습니다.이헌재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최선을 다한 모습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열심히 응원했어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사복 차림의 장미란(29·고양시청)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았다. 8일(이하 현지 시간)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내셔널갤러리. 9일 출국을 앞둔 장미란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싶다며 김순희 여자 대표팀 코치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를 알아본 팬들이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사인 요청을 하자 장미란은 정성 들여 사인을 해주거나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6일 런던 올림픽 역도 여자 최중량급에서 ‘아름다운 4위’를 한 장미란을 만났다.○ 노메달보다 더한 아쉬움은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선수단에는 “장미란이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몸이 안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장미란은 지난달 26일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정상적인 훈련을 못할 만큼 왼쪽 어깨가 아팠다. 본격적으로 바벨을 들기 시작한 건 런던 도착 이후다. 대회가 열린 6일까지 꼬박 열흘간 집중적인 훈련을 했다. 평소 자신의 기록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었어요. 근데 아쉬움이 하나 남는데 뭔지 아세요? 메달을 못 딴 게 아니에요. 승부가 미리 결정 났다면 솔직히 마지막 용상 3차에선 제가 갖고 있는 세계 기록(187kg)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 무게를 들 몸 상태는 전혀 아니었지만 마지막 올림픽이었기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어요”라고 털어놨다. ○ “3위 선수를 꼭 안아줬어요”하지만 경기는 박빙으로 흘렀고 그는 용상 3차 시기에서 170kg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동메달은 아르메니아의 신예 흐립시메 후르슈디안(25)에게 돌아갔다.바벨을 목 뒤로 떨어뜨린 뒤 장미란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 뒤 바벨을 향해 손 키스를 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평소 좀처럼 볼 수 없던 행동이었다. “의식적인 건 아니었어요. 다만 역기와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뚱뚱하고 못생긴 제가 많은 분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역도라는 종목을 통해서였잖아요. 그런 마음에서 저절로 그런 행동이 나온 거 같아요.” 무대에선 웃었지만 퇴장 후 그는 진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 와중에도 장미란은 동메달을 다퉜던 후르슈디안에게 다가가 “축하한다”며 꼭 안아줬다. 후르슈디안은 장미란의 포옹에 오히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장미란은 “올림픽 메달은 실력뿐 아니라 하늘이 도와줘야 받을 수 있어요. 아쉬웠지만 그 선수에게는 정말 축하해 주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 50대엔 베푸는 삶을나이와 기량으로 볼 때 장미란은 선수 생활의 막바지에 와 있다. 이제 아름다운 마무리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일단 전국체전을 치러야 해요. 이후 가족 및 도와주신 많은 분과 상의해 은퇴 여부나 시기를 결정할 생각이에요.” 그렇지만 인생의 큰 그림은 이미 그려놓았다고 했다. “은퇴 후 30대에는 그동안 못 했던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40대엔 많은 돈을 벌고 싶고요. 50대가 되어선 그 돈을 어렵고 힘든 분들과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60대 이후엔 마음대로 놀아 보려고요.” 금메달을 땄을 때나 4위를 했을 때나 한결같은 장미란이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동영상=장미란, 메달 도전, 최선 다한 4위 -다시보기}

금 3개와 은 2개. 한국 사격은 런던 올림픽에서 경사가 났다. 6일로 모든 일정을 끝낸 사격 대표팀은 7일 귀국을 앞두고 성대한 뒤풀이라도 할 만했다. 그런데 조촐한 모임도 없었다. 평소처럼 밥 먹고 쉬다 짐을 쌌다. 8일 한국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에서 짐을 맡겨 둔 진천선수촌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뿔뿔이 헤어진다. 변경수 사격 총감독(사진)의 뜻에 따른 것이다. “들뜰 게 뭐 있어. 올림픽 후광은 한 달이면 끝난다. 사격 선수는 들떠서는 안 돼.” 한국 사격의 부흥을 이끈 변 감독으로부터 올림픽 뒷얘기를 들어봤다. ○ 김장미의 금메달 지키기변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들을 언론으로부터 차단했다. 런던 선수촌에서는 휴대전화까지 빼앗았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조치는 어린 김장미(20·부산시청)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4월 프레올림픽 여자 25m 권총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김장미는 깜짝 스타가 됐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한 우유업체는 CF를 제안했다. 변 감독은 “장미가 한마디로 붕∼ 떴다. 근데 사격이란 게 그렇다. 붕 뜨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면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가면 쏠 점수도 못 쏜다”고 했다. 변 감독은 김장미를 불러 눈물을 쏙 빼놓았다. “네가 잘난 게 뭐냐. 올림픽 메달을 땄냐, 아시아경기 메달을 땄냐. 넌 아무것도 아니다. 네 위치를 알아야 한다.” 김장미는 지난달 29일 열린 공기권총 10m에선 본선 13위에 그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날 김장미는 변 감독 앞에서 2시간가량 눈물을 흘렸다. 변 감독은 “그때 장미가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차분해졌다. 됐다 싶었다. 25m 권총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표적에만 집중하더라”고 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5일 열린 남자 권총 50m에서 진종오(33·KT)는 금메달을, 최영래(30·경기도청)는 은메달을 땄다. 마지막 한 발에서 메달 색깔이 바뀐 그 경기에서 변 감독은 과연 마음속으론 누굴 응원했을까. 그는 “똑같은 내 자식들인데 누구를 응원했겠어. 집에 가면 딸이 있지만 대표팀에 오면 전부 내 아들, 딸들이야. 잘하면 칭찬하고, 잘 못하면 사정없이 야단치는 것뿐이야. 다들 예쁜 새끼들이니까 똑같이 대하지”라고 했다. 변 감독은 “종오는 누구보다 끈기와 집중력이 좋고, 영래는 차분한 게 장점이야. 장미는 성격이 과감해. 남자 소총 50m 3자세에서 은메달을 딴 김종현이는 인내심이 강해. 저마다의 장점이 있으니까 좋은 성적을 거둔 거지”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휴가는 짧다. 변 감독은 대표팀 선수들을 16일 전남 나주로 소집했다. 9월 1일부터 시작되는 내년 대표선발전 겸 봉황기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명색이 올림픽에 나가 메달까지 딴 애들인데 망신당하면 안 되잖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번에는 체육회든 어디든 아무리 붙잡아도 도망쳐서라도 돌아가고 싶어요. 미리 비행기표도 예약해 놨어요.” 이토록 간절히 조기 귀국을 원했던 ‘마린보이’ 박태환(23·SK텔레콤)의 희망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7일 한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지만 대한체육회의 귀국 연기 요청에 다시 발목이 잡혔다. 체육회는 2012 런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귀국 일정을 늦춰달라는 공문을 5일 각 산하 단체에 일제히 발송했다. 김용 체육회 홍보실장은 “메달리스트들이 일찍 귀국해 상업 광고 등에 출연할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위배돼 메달이 박탈될 수 있다. 또 정치권 등 각종 행사에 불려 다니며 구설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자유로운 귀국을 왜 막느냐는 비난 여론이 일자 체육회는 입장을 바꿨다. 9일 런던 세인트폴 성당의 6·25 참전용사 기념비를 참배한 뒤 10일부터 선수 자유의사에 따라 귀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양궁 대표팀 등은 10일 런던을 떠나 11일 한국에 도착한다. 체육회의 우왕좌왕 행정에 각 종목 선수단도 큰 혼란을 겪었다. 이 와중에 올림픽 2연패를 이룬 진종오를 비롯한 13명의 사격 대표팀 선수들만은 예정대로 7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이유는 바로 총기 때문이다. 대회 운영위원회 측은 6일 경기를 끝낸 한국 사격 선수들의 총을 모두 모아 따로 봉인을 해 뒀다. 영국 이민국 관계자는 이 총들에 대해 7일 출국하는 걸로 검인까지 확정했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영국에서도 총기를 들고 나갈 때는 엄정한 검사를 한다. 총 따로 사람 따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를 대자 체육회도 할 말이 없었다. 7일 ‘런던 탈출’에 성공한 사격 선수들은 타 종목 선수들보다 며칠 앞서 그리운 가족과 상봉할 수 있게 됐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6일 영국 런던 왕립 포병대 기지 사격장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선. 김종현(27·창원시청)은 경기 중반부터 미국의 간판 소총 선수 매슈 에먼스(31)와 치열한 2위 경쟁을 펼쳤다.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점수는 에먼스의 1.6점 차 우위. 권총에 비해 이변이 적은 소총에선 뒤집기가 쉽지 않은 점수였다. 그런데 먼저 격발한 에먼스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7.6점을 쐈다. 김종현은 10.4점을 명중시켰다. 1.2점 차의 극적인 역전이었다. 에먼스는 2004년 아테네 대회 때 같은 종목에서 9발째까지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발에 남의 표적을 쏴 꼴찌로 추락한 아픈 경험이 있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때도 마지막 발에 4.4점을 쏴 메달을 놓쳤다.본선에서 1171점으로 5위로 결선에 오른 김종현은 결선에서 101.5점을 기록하며 합계 1272.5점으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공기소총에서 은메달을 딴 강초현(한화갤러리아) 이후 12년 만의 소총 메달이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란 좌우명을 갖고 있는 그는 국제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으나 첫 올림픽 출전에서 은메달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 “광저우 아시아경기 때 은메달을 따고 기자회견장엘 갔는데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은 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던 그는 이날 은메달을 딴 뒤 취재진의 집중적인 인터뷰 세례를 받았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장미란(29·고양시청)이 웁니다. 펑펑 웁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울음은 아닙니다. 아쉬움과 감사, 그간의 회한을 가슴에 꾹꾹 눌러서 웁니다. 울고 있는 장미란을 본 건 6일 영국 런던의 엑셀 역도 경기장 내 믹스트존에서였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방송 카메라에 등을 돌린 채 벽을 보고 눈물을 쏟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마음이 다소 진정됐는지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립니다. 그런데 이런. 활짝 웃습니다. 아니 웃으려 합니다. 얼굴은 눈물범벅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카메라에 대해 배려를 합니다. 기자의 눈에도 핑∼ 눈물이 돕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터지려는 울음보를 꾹 억누릅니다. 방송 인터뷰가 끝나고 신문 기자들을 위한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장미란은 갑자기 다시 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또 한참을 웁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러워요.” 이날 장미란은 인상 125kg, 용상 164kg으로 합계 289kg을 들었습니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던 2008 베이징 올림픽(326kg) 때보다 턱없이 낮은 무게였습니다. 만약 용상 3차 시기에서 170kg을 들어 올렸다면 동메달은 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쉽게 들어올리던 170kg도 각종 부상에 시달리던 장미란에겐 어느덧 버거운 무게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이었을까요. 3차 시기에 실패한 뒤 장미란은 고개를 숙이더니 바벨을 향해 손 키스를 했습니다. 그리고선 두 손을 꼭 모으고 무릎을 꿇은 뒤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만 하던 기도였지요. 처음부터 힘든 싸움이 예상됐습니다. 장미란의 몸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왼쪽 어깨, 허리, 무릎, 팔꿈치…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부상 회복이 더뎌지자 부상을 안고 훈련을 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하루에 수천 kg의 쇳덩이를 들었다 놨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향한 세상의 기대는 얼마나 컸던가요. 그는 “사실 정말 올림픽 전부터 인터뷰하기가 쑥스럽고 싫었어요”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금메달을 바라고 희망했기에 그는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부담을 안고 “올림픽 2연패를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야만 했던 그의 심경이 어땠을까요. 아쉽더라도 동메달이라도 땄더라면 그나마 괜찮은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미란의 말처럼 역도는 정직한 운동이었습니다. 연습 때 안 되던 무게가 실전에서 될 순 없었습니다. 그는 “오늘 연습 때 한 것만큼 딱 한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선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과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듭 표현했습니다. 이제 장미란이 선수로 다시 최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은 기량을 유지하기 힘든데 경쟁자들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불쑥 커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미란이 국민에게 선사했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는 2005년부터 4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5년 넘게 세계 여자 역도를 지배했습니다. 그는 아직 용상 세계 타이기록(187kg)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건, 아니면 제2의 인생을 살건 그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대는 제 마음속의 영원한 챔피언입니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장미란(29·고양시청)이 웁니다. 펑펑 웁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울음은 아닙니다. 아쉬움과 감사, 그간의 회환을 가슴에 꾹꾹 눌러서 웁니다. 울고 있는 장미란을 본 건 6일 영국 런던 엑셀 역도 경기장 내 믹스트 존에서였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방송 카메라에 등을 돌린 채 벽을 보고 눈물을 쏟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마음이 다소 진정됐는지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립니다. 그런데 이런. 활짝 웃습니다. 아니 웃으려 합니다. 얼굴은 눈물범벅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카메라에 대해 배려를 합니다. 기자의 눈에도 핑~ 눈물이 돕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터지려는 눈물 보를 꾹 억누릅니다. 방송 인터뷰가 끝나고 신문 기자들을 위한 인터뷰가 시작됩니다. 장미란은 갑자기 다시 벽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또 한참을 웁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러워요." 이날 장미란은 인상 125kg, 용상 164kg으로 합계 289kg을 들었습니다.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던 2008 베이징 올림픽(326kg) 때 보다 턱없이 낮은 무게였습니다. 만약 용상 3차 시기에서 170kg을 들어 올렸다면 동메달은 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으면 쉽게 들어올리던 170kg도 각종 부상에 시달리던 장미란에겐 어느덧 버거운 무게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이었을까요. 3차시기에 실패한 뒤 장미란은 고개를 숙이더니 바벨을 향해 손 키스를 했습니다. 그리고선 두 손을 꼭 모으고 무릎을 꿇은 뒤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만 하던 기도였지요. 처음부터 힘든 싸움이 예상됐습니다. 장미란의 몸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왼쪽 어깨, 허리, 무릎, 팔꿈치…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부상 회복이 더디자 부상을 안고 훈련을 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하루에 수 천kg의 쇳덩이를 들었다 놨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향한 세상의 기대는 얼마나 컸던가요. 그는 "사실 정말 올림픽 전부터 인터뷰하기가 쑥스럽고 싫었어요"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금메달을 바라고 희망했기에 그는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부담을 안고 "올림픽 2연패를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야만 했던 그의 심경이 어땠을까요. 아쉽더라도 동메달이라도 땄더라면 그나마 괜찮을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미란의 말처럼 역도는 정직한 운동이었습니다. 연습 때 안 되던 무게가 실전에서 될 순 없었습니다. 그는 "오늘 연습 때 한 것만큼 딱 한 거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선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과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듭 표현했습니다. 이제 장미란이 선수로 다시 최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은 기량을 유지하기 힘든데 경쟁자들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불쑥 커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미란이 국민들에게 선사했던 기쁨과 감격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는 2005년부터 4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5년 넘게 세계 여자 역도를 지배했습니다. 그는 아직 용상 세계타이기록(187kg)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선수 생활을 계속하건, 아니면 제2의 인생을 살건 그의 앞길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대는 제 마음 속의 영원한 챔피언입니다.런던=이헌재기자 uni@donga.com}
4일 런던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올림픽 메달리스트 기자회견. 인기 개그맨 김준현과 99%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오진혁(31·현대제철)이 김준현의 유행어 “고뤠∼”를 외쳤다. 가수 채연을 닮은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옆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런던 올림픽에서 양궁 사상 첫 남녀 올림픽 개인전을 석권한 ‘금(金)-금(金) 커플’의 모습은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역대 최강 ‘신궁(神弓) 커플’이 탄생했다는 보도가 나간 뒤 두 사람은 주위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그동안 둘에게 가장 익숙한 데이트 장소는 태릉선수촌이었다. 오진혁은 “토요일 오후까지 훈련하다가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고 차 한 잔 마신 게 데이트의 전부였다. 그러다 다시 활을 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기보배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오진혁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배려심이 좋았다”고 했다. 기보배는 오진혁에 대해 “생긴 것과 달리 다정하다”고 말했다. 결혼에 대한 질문에는 “좋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냥 보통 연인들처럼 자연스럽게 봐 달라. 지금처럼 좋은 관계가 잘 유지된다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오진혁과 기보배를 앞세워 금 3, 동 1개의 호성적을 낸 양궁 대표 선수들은 이틀 동안 런던 시내 관광을 즐긴 뒤 선수촌에 재입촌해 다른 종목 한국 선수 응원 등의 일정을 소화하다 한국 선수단 본진과 14일 귀국할 계획이다. 둘의 열애 소식은 해외 언론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로이터통신은 4일 “오진혁이 한국이 그토록 기다리던 남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이 여자친구 기보배에게 자랑할 정도는 못 됐다”고 전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동영상=‘기보배의 남자’ 오진혁, 男 개인전 금메달 다시보기}

한국 양궁은 우아하게 호수 위를 떠다니는 백조를 닮았다. 겉으로는 더없이 평온하지만 수면 밑의 다리는 죽을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여자는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하는 등 ‘양궁 세계 최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우승하는 순간도 극적이었지만 그 메달을 따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숨 가빴다. 한국 양궁의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내분으로 자멸할 뻔했던 여자팀최현주-이성진-기보배로 구성된 여자대표팀은 올림픽 단체전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누구도 금메달을 의심치 않았지만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맏언니 최현주의 극심한 부진이 발단이었다. 최현주의 자신감 상실은 팀 전체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최현주 때문에 금메달을 날리게 생겼다”는 분위기가 싹트면서 여자대표팀엔 대화가 사라졌다. 특히 8년 만에 금메달에 도전하는 이성진은 최현주와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지난달 30일 열린 단체전 때 최현주는 “오늘 못 쏘면 여기서 죽어버리겠다”며 대회장에 들어섰다. 이 절실함은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중국과의 결승에서 8발 중 5발을 10점 과녁에 명중시키며 금메달을 이끈 것이다. 쓰러질 뻔한 한국 여자 양궁을 최현주가 살렸다. 그날 저녁 최현주와 이성진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들의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 ○ 코칭스태프는 초죽음이런 상황에서 감독 코치들의 맘이 편했을 리 없다. “최현주를 교체하라”는 압력에 버티면서 선수들을 다독여야 했으니 그 맘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장영술 양궁 총감독은 요즘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잔다. 마음은 괴롭지만 선수들 앞에서는 여유 있는 듯 웃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30일 단체전 금메달을 땄을 때 장 감독이 울음을 터뜨린 것도 이런 이유였다. 장 감독은 “꼭 누가 와서 금메달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금메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한 잠도 못 잤다”고 털어놨다. 백웅기 여자감독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오른 위쪽 어금니가 저절로 빠져 버렸다. ○ 7만 원짜리 도시락 먹고 힘낸 선수들한국 양궁이 쾌거를 이룬 요인 중 하나는 대한양궁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선수촌에서 양궁장인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까지는 버스로 약 한 시간이 걸린다. 선수들이 지칠까 봐 협회는 양궁장 근처의 특급호텔을 잡아 선수들이 묵도록 했다. 입맛을 잃을까 봐 매끼 한국 식당에서 도시락을 시켰는데 개당 40파운드(약 7만 원)짜리였다. 선수들이 “중국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자 온 동네를 수소문해 곧바로 자장면을 대령한 일도 있었다. 또 응원에서 뒤질세라 대회 기간에 3514장의 티켓을 구입해 한인회와 유학생들에게 나눠줬다. 표값만 무려 3억 원가량 들었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아예 열흘간 회사를 비웠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쓸 정도로 바쁜 대기업 오너지만 대회 개막 3일 전인 25일 런던에 와 3일 남자 개인전까지 내내 경기장을 지켰다. 2일 여자 개인전 8강전에서 이성진이 탈락하자 직접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30일 단체전 금메달을 딴 후 여자선수들은 정 회장에게 달려가 차례로 포옹을 했는데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최현주는 “말과 행동에 진심이 담겨 있는 걸 선수들이 느낀다. 회장님은 우리와 같이 밥 먹고 맥주 마시고 얘기를 들어주는 분”이라고 했다. 이성진은 “회장님이라기보다는 아빠 같은 존재”라고 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세계 최강 한국 양궁에 사상 첫 개인전 ‘금(金)-금(金) 커플’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3일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양궁 사상 첫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딴 대표팀의 맏형 오진혁(31·현대제철)과 이번 대회 2관왕(개인전, 단체전)에 오른 여자 대표팀의 막내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다. 한국 양궁에는 ‘신궁(神弓) 커플’이 꽤 많은 편이지만 올림픽 개인전에서 동반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양궁계에서는 이미 공인된 커플이다.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는 물론이고 정의선 협회장(현대자동차 부회장)도 이들의 교제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올림픽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진혁은 “보배와 결혼을 전제로 지난해 초부터 진지하게 만났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는 큰 목표를 이룬 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를 진행하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2년전 생일파티로 인연… 슬럼프 함께 이긴 ‘오기 커플’ ▼둘이 커플로 맺어진 것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나란히 대표로 선발된 뒤부터다. 처음 대표에 선발된 기보배는 낯선 태릉선수촌 생활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후배들을 살갑게 챙기는 오진혁이 기보배의 고민상담사를 자처하면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그해 8월 15일 오진혁의 생일이었다. 때마침 일요일이라 다른 선수들은 모두 외박을 나갔고 오진혁만 태릉선수촌을 지키고 있었다. 오진혁이 안쓰러웠던 기보배는 이날 경기 안산의 집에 갔다가 태릉선수촌으로 돌아오면서 케이크를 하나 사 왔다. 이날 이후 기보배는 오진혁에게 ‘후배’가 아닌 ‘여자’가 됐다. 오진혁은 “평소 단 음식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보배가 사온 블루베리 케이크는 생애 최고의 맛이었다. 룸메이트인 (임)동현이와 함께 남김없이 다 먹어버렸다”고 했다.둘의 교제 사실이 알려진 뒤 대표팀은 걱정이 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커플이 된 박경모와 박성현이 그해 올림픽 개인전에서 각각 은메달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둘은 달랐다. “연애하느라 운동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활시위를 당겼다. 당연히 성적이 좋아졌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올렸다. 대표선발전도 함께 1위로 통과했고 두 선수 모두 에이스 자리인 3번 사수를 꿰찼다. 협회 관계자는 “둘이 연인이 된 뒤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 힘들 때마다 서로 이끌어주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갔다”고 전했다. 대표팀에 합류한 뒤 승승장구한 기보배와 달리 오진혁은 굴곡 많은 선수 인생을 보냈다. 충남체육고 3학년 때인 1999년 깜짝 국가대표로 발탁됐지만 이후 몇 년간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그는 “이유 없이 활이 맞지 않았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술도 많이 먹고 다음 날 아침엔 콜라를 많이 마셨다”고 했다. 몸에 안 좋은 것만 골라 하고 성적도 안 좋은 그를 반겨줄 팀은 없었다. 소속팀 현대제철은 2006년 그를 방출했다. 오진혁은 “그때가 선수 생명의 위기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대회를 나가고 그만두자’고 결심하고 어떤 대회를 나갔는데 그때 의외로 좋은 성적을 올려 선수 생명을 이어가게 됐다”고 했다. 이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자 현대제철은 지난해 다시 그를 팀원으로 받아들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건 기보배와 만나기 시작한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요즘엔 그렇게 좋아하던 콜라도 잘 마시지 않는다. 이 역시 ‘보배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둘은 이미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종종 왕래도 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정식 상견례도 가질 예정이다. 오진혁은 “정식으로 청혼한 것은 아니지만 보배와 결혼 얘기는 서로 했다. 늦어도 내년에는 결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전영희 스포츠동아 기자 setupman@donga.com ▲동영상=‘기보배의 남자’ 오진혁, 男 개인전 금메달 다시보기}
한국은 올림픽에서 활의 나라로 유명하다.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한국 양궁은 금 16개를 포함해 30개의 메달을 땄다. 런던에서도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7연패의 쾌거를 이뤘다. ‘효자 종목’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최근에는 효자가 더 늘었다. 총을 사용하는 사격과 칼을 쓰는 펜싱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부터 그랬다. 당시 한국 사격은 13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으며 펜싱은 12개 종목 가운데 7개 종목을 석권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사격과 펜싱은 한국의 새로운 메달밭으로 떠올랐다. 사격은 남자 10m 공기권총의 진종오와 여자 25m 권총의 김장미가 2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진종오는 5일 주 종목인 권총 50m에서 대회 2관왕에 도전한다. 50m 소총 복사의 한진섭과 김학만, 50m 소총 3자세의 김종현, 여자 트랩의 강지은 등도 평소 기록대로만 쏘면 모두 메달권이다. 변경수 사격 총감독은 “금메달 2개를 땄지만 이제 시작이다. 메달이 몇 개는 더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펜싱의 활약도 눈부시다. 김지연은 2일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우승하며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같은 날 남자 정진선은 남자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고, 하루 전엔 ‘맏형’ 최병철이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에페의 신아람이 ‘1초 사건’에 휘말려 결승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메달을 더 늘어났을 것이다. 펜싱 대표팀은 남은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도 메달을 바라보고 있다. 두 종목의 약진에는 한화와 SK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변 감독은 “한화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특히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서 전지훈련을 한 게 결정적”이라고 했다. 변 감독은 “사격은 추운 날씨에선 기록이 나오질 않는다. 여자 25m에서 금메달을 딴 김장미만 해도 작년 10월 대표가 된 뒤 두 차례나 태국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이때 올라온 기록이 런던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펜싱 역시 2009년 SK가 회장사가 된 뒤 대표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지연은 “1년에 절반가량은 유럽에 머물며 훈련을 한다. 유럽의 굵직한 대회에 출전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했다. 양궁은 20여 년 전부터 현대·기아차가 후원을 하고 있다.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기업들의 통 큰 후원이 합쳐지면서 활, 총, 칼 등 무기를 쓰는 세 종목은 한국의 ‘효자 삼총사’가 됐다. 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밤에 공동묘지 가기, 휴전선 철책 경계 서기, 한라산 야간 산행, 야구장 소음 훈련…. 세계 최강 한국 양궁 대표팀은 자신감과 담력을 키우기 위해 기상천외한 훈련을 실시했다. 선수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건 번지점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그리스를 찾은 한국 선수단은 아테네 코린트 운하에 있는 번지 점프대에서 차례로 몸을 날렸다. “누가 먼저 뛸래”라고 물었을 때 1번으로 나선 건 여자 대표팀의 박성현이었다. 이성진이 두 번째, 세 번째는 윤미진이었다. 남자 선수들은 여자 선수들이 한 뒤에 번지점프를 했다. 공교롭게도 뛰어내린 순서대로 성적이 나왔다. 가장 먼저 뛴 박성현은 여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두 번째로 뛴 이성진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윤미진과 남자 선수들은 개인전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박성현은 “보기만 해도 무서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먼저 뛰어내렸는데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했다. 그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 같았던 번지점프 훈련은 올해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부활했다. 런던으로 출발하기 열흘 전인 지난달 9일.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와 이성진(27·전북도청), 최현주(28·창원시청) 등 여자 대표팀 3명은 경기 가평의 한 번지점프대를 찾았다.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던 맏언니 최현주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최현주가 가장 먼저 뛰었고 이성진이 뒤를 따랐다. 막내 기보배의 차례가 됐다. 하지만 기보배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금의 좋은 컨디션에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가 이유였다. 코칭스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기보배는 컨디션이 좋았다. 지난달 30일 열린 여자 단체전에서 기보배는 에이스의 자리인 3번 사수를 맡았고 중국과의 결승전 마지막 발에 9점을 쏘며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곱상한 얼굴의 기보배는 겉보기와 달리 이처럼 강단 있는 선수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빼어난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번번이 대표 선발전에서는 탈락했던 그는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 대표로 선발된 뒤 꾸준히 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결은 바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과 꾸준한 연습이다.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양궁 선수로서 더없이 훌륭한 강점이다. 기보배는 첫 발에 6점이나 7점을 쏜 뒤 그 다음 발에 곧바로 10점을 쏘는 선수다. 어떤 상황에서건 밝은 쪽으로 세상을 본다”고 했다. 기보배는 또 지독한 연습벌레이기도 하다. 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3, 4월은 날씨가 추워 대부분의 선수들이 실내에서 활을 쏜다. 하지만 기보배는 외부 환경과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언 손가락을 호호 불어 가며 바깥에서 연습을 했다. 황도하 협회 부회장은 “한국 선수들만큼 연습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는데 그중에서도 기보배의 훈련량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했다. 그 같은 맹훈련을 통해 기보배는 교과서적인 자세를 갖게 됐다. 양궁인들은 “예전 박경모의 자세가 교과서였다면 요즘은 기보배가 그렇다”고 입을 모은다. 불굴의 노력으로 올림픽 단체전과 개인전을 모두 석권한 기보배는 명실상부한 한국 양궁의 ‘보배’가 됐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동영상=양궁 기보배 금메달, 결승 다시보기}

“머리 모양을 다듬고 싶어요.” 응? 이건 뭐지? 난생 처음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그래서 소감을 물었더니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미용실엘 가고 싶단다. “예쁜 머리로 시상대에 오르고 싶어 전날 선수촌 내 미용실을 예약했는데 시간이 늦어 못 갔다”는 거다. 1일 런던 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에서 한국 여자 권총 사상 첫 금메달을 딴 김장미(20·부산시청) 얘기다. 그는 언제나 명랑하고 유쾌한 ‘4차원 소녀’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호랑이로 유명한 변경수 사격 총감독이건 처음 본 사람이건 만나기만 하면 그 자리엔 웃음꽃이 핀다. 김장미는 마치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를 지녔다. 그동안 기자를 빵∼터지게 한 김장미의 ‘어록’을 모아봤다. ▽“권총은 복장이 편하잖아요. 총도 짧아서 덜렁덜렁 갖고 다니기 좋아요.”(김장미는 원래 소총선수였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권총으로 전향했다. 왼쪽 덧니 때문에 소총을 쏠 때 불편함을 느껴 권총을 잡았다.) ▽이름이 장미인데 장미꽃 주는 사람이 없어요. 저 장미 좀 주세요.(올림픽 전에 했던 말이지만 변 감독은 김장미에게 사귄 지 381일이 된 남자친구가 있다고 폭로했다. 장미 대신 다른 꽃을 줬나?)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땄잖아요. 이젠 사격 계속 해야죠.”(김장미의 꿈은 군인이나 경호원, 경찰특공대였다. 최근까지도 군인이 너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금메달로 이제부턴 사격만 생각할 거란다). ▽“나이가 어리잖아요.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만이에요. 다들 나보다 나이 많겠죠, 뭐.”(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전혀 떨리는 기색이 없었다. ‘강심장’인 그가 그래도 가장 긴장했던 건 최종 대표선발전이었다고). ▽어이구, 들어오기만 하면 감사합니다.(4월 런던 프레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자 한 우유회사로부터 CF 제의가 들어왔다. 변 감독은 올림픽에 집중하라며 이를 못하게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김장미는 CF에 나서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김장미는 “저희 엄마가 저보다 말을 더 잘해요”라고 했다. 대화를 해 보니 ‘역시나’다. 어머니 정향진 씨의 ‘어록’을 추가한다. ▽“출국 전 전화로 런던에서 올 때 명품 가방 하나 사와∼ 했더니 ‘바쁘다’며 빨리 끊더라고요.(정 씨는 명품 가방보다 더 값진 선물을 받았다. 금메달 획득 직후 김장미가 전화를 했을 때 정 씨는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원숭이한테 치마 입힌 거 같은 느낌이랄까요.”(김장미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아예 치마를 입지 않았다. 정 씨는 자기가 보기에도 정말 안 어울렸다고 한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머리 자르고 싶어요." 응? 이건 뭐지? 난생 처음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그래서 소감을 물었더니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미장원엘 가고 싶단다. "예쁜 머리로 시상대에 오르고 싶어 전날 선수촌 내 미장원을 예약했는데 시간이 늦어 못 갔다"는 거다. 1일 런던 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에서 한국 여자 권총 사상 첫 금메달을 딴 김장미(20·부산광역시청) 얘기다. 그는 언제나 명랑하고 유쾌한 '4차원 소녀'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쾌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호랑이로 유명한 변경수 사격 총 감독이건 처음 본 사람이건 만나기만 하면 그 자리엔 웃음꽃이 핀다. 김장미는 마치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를 지녔다. 그 동안 기자를 빵~터지게 한 김장미의 '어록'을 모아봤다. ▽"권총은 복장이 편하잖아요. 총도 짧아서 덜렁덜렁 갖고 다니기 좋아요."(김장미는 원래 소총 선수였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권총으로 전향했다. 왼쪽 덧니 때문에 소총을 쏠 때 불편함을 느껴 권총을 잡았다.) ▽이름이 장미인데 장미꽃 주는 사람이 없어요. 저 장미 좀 주세요.(올림픽 전에 했던 말이지만 변 감독은 김장미에게 사귄 지 381일이 된 남자친구가 있다고 폭로했다. 장미 대신 다른 꽃을 줬나?)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땄잖아요. 이젠 사격 계속 해야죠."(김장미의 꿈은 군인이나 경호원, 경찰 특공대였다. 최근까지도 군인이 너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금메달로 이제부턴 사격만 생각할 거란다). ▽"나이가 어리잖아요.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만이에요. 다들 나보다 나이 많겠죠, 뭐"(올림픽을 앞두고 그는 전혀 떨리는 기색이 없었다. '강심장'인 그가 그래도 가장 긴장했던 건 최종 대표선발전이었다고). ▽어이구, 들어오기만 하면 감사합니다.(4월 런던 프레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자 한 우유회사로부터 CF 제의가 들어왔다. 변 감독은 올림픽에 집중하라며 이를 못하게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김장미는 CF에 나서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김장미는 "저희 엄마가 저보다 말을 더 잘해요"라고 했다. 대화를 해 보니 '역시나'다. 어머니 정향진 씨의 '어록'을 추가한다. ▽"출국 전 전화로 런던에서 올 때 명품 가방 하나 사와~ 했더니 '바쁘다'며 빨리 끊더라구요.(정 씨는 명품 가방보다 더 값진 선물을 받았다. 금메달 획득 직후 김장미가 전화를 했을 때 정 씨는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원숭이한테 치마 입힌 거 같은 느낌이랄까요."(김장미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아예 치마를 입지 않았다. 정 씨는 자기가 보기에도 정말 안 어울렸다고 한다).런던=이헌재기자 uni@donga.com}
▲동영상=사격 김장미 결승 다시보기“코치님, 우리 족구 한 판 해요.”어느새 옆구리에 축구공을 끼고 나타났다. 얼굴은 생글생글 미소 가득이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인데도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다. 런던 올림픽선수촌이 제 집인 양 언제나처럼 웃고 떠든다. 천하태평, 여유만만.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하면서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 그게 바로 ‘명랑 권총 소녀’ 김장미(20·부산시청)의 모습이니까. 김장미는 올해 혜성처럼 사격계에 이름을 알렸다. 원래 소총 선수였다가 중학교 3학년 때 권총으로 전향했고 올해 처음 성인 무대에 출전했는데 바로 ‘사고’를 쳤다. 1월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10m 공기권총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3개월 뒤인 4월 열린 런던 프레올림픽 25m 권총에서는 세계신기록(796.9점)을 쏘며 우승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 금메달은 ‘깜짝 우승’이라기보다는 ‘예고된 우승’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그는 운동신경을 타고났다. 어머니 정향진 씨는 “장미가 여섯 살쯤이었을 때였어요. 달리기를 하는데 키도 작은 애가 얼마나 빠른지 깜짝 놀랐어요”라고 했다. 초등학교 땐 육상 선수로 대회에 나가 메달도 몇 개 땄다.어머니는 딸을 보통 여자아이처럼 예쁘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엘 보냈는데 오래가질 않았다. 김장미는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길 싫어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치마를 거부하더니 5학년 때부터는 합기도를 배웠다. 사격은 인천 부광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교의 사격 코치는 부상을 우려해 합기도를 못하게 했는데 그는 거짓말을 하고 합기도장을 다녔다. 합기도 선수로 대회에 나가서도 메달을 여러 개 땄다.중고교 시절 여자 친구보다는 남자들과 놀기를 좋아했다. 여자 친구들이 피구를 하는 동안 그는 남자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다. 정 씨는 “그렇게 몸을 가만두지 않는 애가 정적인 운동인 사격에 한번 심취하자 온몸과 마음을 바쳐 열심히 하더라”고 했다. 유일하게 사격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연습하라고 안 보내줘서”라는 게 이유였다.김장미는 지난달 30일 열린 런던 올림픽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는 뼈아픈 실패를 맛봤다. 시리즈당 10발씩 4시리즈를 쏘는 이 종목에서 3시리즈까지 순항하다 4번째 시리즈에서 부진하며 상위 8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충격이 클 만도 했건만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튿날부터 다시 ‘명랑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중학생 때부터 김장미의 꿈은 활동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거였다. 경호원, 경찰 특공대, 군인, 강력계 형사 등등이다. 그랬던 ‘왈가닥 소녀’는 첫 올림픽 출전에서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값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무 살 김장미의 사격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야, 원희야. 너 정말 존경스럽다. 그런데 다른 놈들이 바보냐, 아니면 네가 뛰어난 거냐.”농담처럼 말했지만 마음 한쪽은 울컥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한국 국가대표팀 주치의였던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장은 남자 유도 73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이원희(용인대 교수)를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로 기억한다.그때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원희의 몸은 경기를 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상태였다. 박 박사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다 나갔다. 흔한 말로 불구였다. 그런데 외발로 금메달을 따내더라. 많은 운동선수를 봐 왔지만 원희에게 존경심과 경외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원희는 그 금메달로 한국 유도 사상 첫 그랜드슬램(올림픽, 아시아경기,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 런던 올림픽에도 한국 대표팀 주치의로 동행한 박 박사는 1일 또 한 명의 ‘이원희’를 봤다. 이날 런던 올림픽 남자 유도 81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재범(27·한국마사회)이다. 김재범은 금메달을 딴 직후 믹스트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몸의 왼쪽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왼쪽 어깨는 물론이고 팔꿈치와 손가락, 무릎까지 아팠다. 어제까지 제대로 뛰지도 못할 정도여서 진통제를 맞아가며 훈련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박 박사는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았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관절이 동시에 안 좋았기 때문에 왼쪽 몸을 못 쓸 정도였다고 봐도 된다”고 했다. 공동 주치의 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은 “일반인 같으면 그 통증을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깨와 무릎, 팔꿈치 등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두 주치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탈골된 김재범의 어깨는 물렁뼈가 찢어져 버렸다. 그래서 어깨를 움직일 수 있는 각도와 범위가 제한된다. 연골판이 찢어진 왼쪽 무릎은 통증이 너무 심해 연골주사를 거의 매일 맞아야 했다. 왼 팔꿈치는 심각한 관절염 증세를 보이고, 양쪽 10개 손가락은 힘줄이 늘어나 완전히 펴지지도 않는다. 허리 통증도 고질적이지만 다른 부상 부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란다. 서 원장은 “한마디로 모든 관절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재범이는 관절이 펴지는 한에서 최대한 움직일 수 있게 주변 근력을 키웠다.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면서 만들어낸 근육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했다. 그는 또 “제대로 검사를 한다면 어깨와 팔꿈치만으로도 최저 장애 등급인 6등급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바로 그 장애의 몸으로 김재범은 금메달을 땄다. 6년 전 이원희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이날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야, 원희야. 너 정말 존경스럽다. 그런데 다른 놈들이 바보냐, 아니면 네가 뛰어 난 거냐." 농담처럼 말했지만 마음 한 쪽은 울컥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한국 국가대표팀 주치의였던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장은 남자 유도 73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이원희(용인대 교수)를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로 기억한다. 그 때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원희의 몸은 경기를 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상태였다. 박 박사는 "왼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다 나갔다. 흔한 말로 불구였다. 그런데 외발로 금메달을 따내더라. 많은 운동선수를 봐 왔지만 원희에게 존경심과 경외심을 느꼈다"고 했다. 이원희는 그 금메달로 한국 유도 사상 첫 그랜드슬램(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의 주인공이 됐다. 올해 런던 올림픽에도 한국 대표팀 주치의로 동행한 박 박사는 1일 또 한 명의 '이원희'를 봤다. 이날 런던올림픽 남자 유도 81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재범(27·한국마사회)이다. 김재범은 금메달을 딴 직후 믹스트존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 몸의 왼쪽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왼쪽 어깨는 물론 팔꿈치와 손가락, 무릎까지 아팠다. 어제까지 제대로 뛰지도 못할 정도여서 진통제를 맞아가며 훈련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박 박사는 "생각보다 많이 안 좋았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관절이 동시에 안 좋았기 때문에 왼쪽 몸을 못 쓸 정도였다고 봐도 된다"고 했다. 공동 주치의 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은 "일반인 같으면 그 통증을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깨와 무릎, 팔꿈치 등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두 주치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탈골된 김재범의 어깨는 물렁뼈가 찢어져 버렸다. 그래서 어깨를 움직일 수 있는 각도와 범위가 제한된다. 연골판이 찢어진 왼쪽 무릎은 통증이 너무 심해 연골주사를 거의 매일 맞아야 했다. 왼 팔꿈치는 심각한 관절염 증세를 보이고, 양쪽 10개 손가락은 힘줄이 늘어나 완전히 펴지지도 않는다. 허리통증도 고질적이지만 다른 부상 부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란다. 서 원장은 "한마디로 모든 관절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재범이는 관절이 펴지는 한에서 최대한 움직일 수 있게 주변 근력을 키웠다.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면서 만들어낸 근육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했다. 그는 또 "제대로 검사를 한다면 어깨와 팔꿈치만으로도 최저 장애 등급인 6등급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바로 그 장애의 몸으로 김재범은 금메달을 땄다. 6년 전 이원희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이날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런던=이헌재기자 uni@donga.com}

이 남자,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헤어스타일은 일명 ‘깍두기’다. 소속은 밝히지 않았지만 군인이란다. 인사도 거수 경례다. 처음 나선 올림픽 무대인데도 긴장은커녕 여유가 넘친다. 관중석을 두루 살피며 언뜻 미소까지 띤다. 31일 런던 올림픽 남자 역도 62kg급 경기가 열린 엑셀 역도경기장에서 그는 단연 최고 스타였다. 실력이면 실력, 쇼맨십이면 쇼맨십, 모든 걸 갖췄다. 6000여 명의 만원 관중은 유쾌, 상쾌, 발랄한 이 북한 청년에게 매료됐다. 그는 이날 합계 327kg을 들어올리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북한에 3번째 금메달을 안긴 김은국(24)이다. 8명의 출전 선수 중 가장 무거운 무게인 145kg을 신청한 인상 1차 시기. 플랫폼에 들어서면서 그는 “으∼아” 하는 괴성을 지른다. 관중들이 박수로 환호한다. 번∼쩍. 눈 깜빡할 사이에 145kg을 들었다. 관중들이 박수를 보내자 그는 관중석을 향해 오른 주먹을 내지르며 화답한다.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올 법한 ‘앗∼싸라비아’다. 150kg에 도전한 2차 시기. 또 다시 번쩍 들었다. 그는 다시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지른다. 그런데 이번엔 두 손을 사용한 ‘2단 주먹지르기’다. 관중들의 함성은 더욱 커진다. 3차 시기는 세계 기록 타이이자 올림픽 기록인 153kg 도전이다. 관중석은 이미 열광의 도가니다. 또 어떤 세리머니를 보여줄지 잔뜩 기대한다. 역시 번∼쩍이다. 이번엔 두 팔을 벌린 뒤 방방 뛰며 좋아한다. 관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낸다. 김은국이 조용했던 건 용상 2차 시기에서 174kg에 실패했을 때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는 관중석을 향해 팔을 흔들었고 관중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174kg에 재도전한 용상 3차. 여기서 성공하면 금메달이 유력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신기록까지 세운다. 기합소리와 함께 플랫폼에 들어선 김은국이 용을 쓰니 174kg의 쇳덩이가 공중에 붕 뜬다. 성공이다. 합계 327kg으로 쉬쥐용(중국)이 2008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326kg을 갈아 치웠다. 2위권과는 10kg 이상 차이가 난다. 이번엔 두 팔과 두 다리를 쫙 벌리더니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관중들도 같이 발로 바닥을 굴러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경기장 전체가 흔들린다. 대부분의 북한 선수가 한국 취재진을 피하지만 김은국은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본보와 연합뉴스 기자를 만나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세리머니가 화려하더라”는 말에 “조선의 기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세계 기록을 의식했느냐”고 묻자 “신심(信心)을 가지고 전투장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단 하나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여느 북한 선수와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빛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가 힘과 용기를 안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 말을 반복했다. 북한 역도의 괴력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루 전 남자 역도 56kg급의 엄윤철(21)은 293kg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29일 여자 48kg급의 양춘화(21)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벌써 역도에서만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경량급 역도에서 강세를 보여 왔다. 그런데 이번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8명의 선수 가운데 엄윤철을 포함해 5명은 1990년 이후에 태어난 20대 초반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있던 선수들이기에 세계 역도계에 던지는 충격은 더욱 컸다. 세대교체에 성공한 북한 역도는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최현주로는 안 돼.”런던 올림픽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둔 6월 중순. 대한양궁협회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표팀 맏언니 최현주(28·창원시청) 때문이었다.‘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한 최현주가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극심한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연습 때 10점 만점에 5점이나 6점을 쏘는 일이 빈발했다. 컨디션이 좋을 땐 곧잘 쏘다가도 안 좋을 땐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난조를 겪었다. 롤러코스터 같은 최현주 때문에 대표팀 전체 분위기가 널뛰기를 했다.그에겐 ‘폭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당시 한 관계자는 “명색이 대표팀 선수인데 어떨 때는 중학교 3학년보다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활을 쏜다”고 푸념을 했다.○ 사상 첫 퇴출 선수 될 뻔최현주를 대표팀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우세해졌다.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자 대한양궁협회가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대표 선발 원칙을 스스로 깨는 일이었다.양궁의 대표선발전은 치열하고 공정하기로 유명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니 금메달리스트 할아버지라도 특별한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는다. 철저하게 평가전 성적으로만 대표를 선발한다. 그렇게 뽑은 선수들이 지금까지 모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왔다. 그 원칙을 협회가 스스로 깨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 여자 양궁의 빛나는 전통인 올림픽 단체전 7연패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거였다.협회는 장영술 총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 “최현주를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단호했다. 최현주를 안고 가겠다는 거였다. 코칭스태프는 장시간 회의 끝에 “남은 한 달간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최현주를 제 컨디션에 올려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최현주는 런던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런던의 기적양궁 대표팀은 19일 런던으로 출국했다. 그런데 직전까지도 최현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3일 강원 원주시 제1군수지원사령부에서 열린 실업팀 현대백화점과의 연습 경기에서 최현주는 3엔드와 4엔드에 각각 5점짜리와 6점짜리를 연달아 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코칭스태프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모든 국민이 금메달을 의심치 않고 있는데 최현주가 포함된 여자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였기 때문이다.런던 올림픽 양궁 랭킹라운드가 열리기 하루 전인 26일.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다. 최현주가 잃었던 감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연습이 끝나기 1시간 반 정도 전의 일이었다. 박채순 여자 대표팀 코치는 “어느 순간 현주가 급격히 좋아지더라. 그래서 현주를 불러 ‘그래,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현주가 ‘저는 포기 안 한다고 했잖아요’라고 답하더라. 이제 됐다 싶었다”고 했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30일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 중국과의 결승전. 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갑자기 해가 뜨더니 운동장 저편에 무지개가 걸렸다. 어쩌면 한국의 우승을 예고하는 길조였는지도 모른다.믿었던 이성진(27·전북도청)과 기보배(24·광주시청)는 평소답지 않았다. 1엔드부터 이성진은 7점을, 기보배는 6점을 쏘는 등 시종 불안했다. 위기에 빠진 한국 양궁을 살린 건 최현주였다. 2번 사수였던 최현주는 8차례 활시위를 당겨 5번이나 10점 과녁을 꿰뚫었다. ‘폭탄’이라는 이유로 2번 사수에 배치된 최현주가 실질적인 에이스로 팀을 이끈 것이다. 201-209에서 마지막 사수 기보배의 한 발이 남았다. 기보배는 여기서 9점을 쐈고 한국은 210-209 한 점 차로 극적인 금메달을 획득했다. 여자 단체전이 시작된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7개 대회 연속 우승이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단연 최현주였다. 그는 “그동안 너무 부진해 성진이와 보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오늘 활약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최현주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장 감독은 눈물을 터뜨렸다.○ 늦깎이의 반란은 이제 시작코칭스태프가 말하는 최현주는 ‘노력형’ 선수다. 다른 올림픽 메달리스트와는 달리 최현주는 20대 후반에야 처음 태극마크를 단 늦깎이다. 그 흔한 유소년이나 상비군, 주니어 대표도 한 번 못 해 봤다. 국제대회 경력은 올해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두 차례 출전한 월드컵이 전부다.대표 선발 과정부터 드라마틱했다. 3차례에 걸친 평가전과 1차 월드컵까지 그는 4위였다. 하지만 5월 초 터키에서 열린 2차 월드컵에서 막판 뒤집기로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활을 잘 못 쏠 때도 다른 애들보다 느릴 뿐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게 빛을 본 거 같다”고 말했다. 랭킹라운드 21위로 개인전에 출전하는 그는 “단체전이 모두를 위한 경기였다면 개인전에서는 나 ‘최현주’만을 위한 후회 없는 경기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최현주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현주의 끊임없는 노력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런던=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