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승부사 리디아 고, 프로 언니 울리고 골프史 바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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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최연소 정상-43년만에 아마 우승

숙모는 호주에 있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다섯 살 조카에게 골프채를 선물했다. 어린이용 7번 아이언과 퍼터로 구성된 골프 클럽 세트였다. 그 작은 선물은 ‘천재 골프 소녀’가 탄생한 계기가 됐다.

그 소녀는 10년 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역사를 새로 썼다. 주인공은 LPGA 투어 캐나디안 오픈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고보경·15). 아마추어 선수인 그는 27일 캐나다 밴쿠버 골프장(파72·6427야드)에서 열린 캐나디안 여자오픈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의 맹타를 휘둘러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했다.

○ 최연소 기록의 대명사

리디아 고는 올해 1월 호주 시드니의 오클랜즈 골프장에서 열린 호주여자골프대회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서 쟁쟁한 프로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2위 베키 모건(웨일스)을 4타 차로 제친 압도적인 우승이었다.

14세 9개월의 나이에 차지한 프로 대회 첫 우승으로 일본의 이시카와 료(21)가 갖고 있던 세계 최연소 프로대회 우승 기록(15세 8개월)을 갈아 치웠다. 또 양희영이 보유하고 있던 여자 최연소 우승 기록(16세 6개월)도 깨뜨렸다.

15세 4개월 2일째에 LPGA 대회마저 제패한 리디아 고는 지난해 9월 나비스타 클래식에서 16세의 나이로 정상에 오른 알렉시스 톰프슨(미국)의 LPGA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까지 새로 썼다.

아마추어 선수로서는 다섯 번째이자 1969년 조앤 카너 이후 43년 만의 우승이다. 아마추어는 상금을 받을 수 없어 우승상금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는 3타 차 2위에 오른 박인비(24)의 차지가 됐지만 리디아 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명예를 얻었다. 박인비는 단숨에 상금 랭킹 1위(141만9000달러·약 16억1000만 원)에 올랐다.

○ 될성부른 떡잎

리디아 고는 다섯 살 때 선물 받은 골프채로 집과 가까운 서울 동작구 대방동 근처의 실내연습장을 다녔다. 그는 “나는 공을 치는 게 좋았고, 어른들은 내가 공을 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는 여섯 살 때인 2003년 뉴질랜드로 골프 이민을 갔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지역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11세 때 뉴질랜드 여자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에서 최연소 우승하는 등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호주 아마추어 우승에 이어 US 아마추어챔피언십 스트로크 부문 공동 1위에 올랐다. 현재 세계 여자 아마추어 골프랭킹 1위인 그는 올해 US여자아마골프대회에서도 우승했다.

○ 여자 골프계의 타이거 우즈 탄생(?)

리디아 고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붉은색 계열의 셔츠와 검정 바지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다. 비슷한 옷을 입고 최종 라운드에 나서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닮았다는 것이다. 그는 “우즈를 의식한 건 아니었다. 오늘 아침 엄마가 ‘빨간색을 입을래?’라고 물어봐 ‘좋다’고 대답한 것뿐이다. 사실 어제 회색 계통의 셔츠를 입었는데 숙모가 ‘너무 어두워 보이더라’고 전화를 하긴 했다”며 웃었다.

불과 몇 년 후 LPGA에는 ‘여성 타이거 우즈’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리디아 고 “프로 전향은 나중에… 미셸 위 선배처럼 스탠퍼드大 갈래요”▼

필드에선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코스를 벗어나자 영락없는 15세 소녀였다. 배우 소지섭의 열혈 팬이라는 그는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소지섭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LPGA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는데….

“1월 프로 대회 최연소 기록에 이어 또 하나의 신기록을 작성해 기쁘다. 앞으로 프로가 됐을 때 활약하고 싶은 곳이 LPGA 투어인데 이곳에서 우승해 더욱 값지다.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쳤다.”

―오늘 우승이 프로 전향에 어떤 영향을 줄까.

“당장 프로로 전향할 생각은 없다.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미셸 위처럼 미국 스탠퍼드대에 진학하는 게 꿈이다.”

―11월 챔피언들끼리 겨루는 CME 타이틀홀더스에 출전할 생각인가.

“잘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 즈음이 시험 기간이라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시험에 통과하고 싶고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LPGA#골프#리디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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