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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지음·도서출판길)=독일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독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번역자가 3년여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번역본. 풍부한 주해와 책 말미의 해제가 이해를 돕는다. 후반에 실린 논문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은 국내 처음 소개. 4만 원. ◆칸트와 헤겔의 철학(백종현 지음·아카넷)=칸트의 3대 비판서를 완역했고 한국칸트학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저자가 칸트와 헤겔 철학을 문화사 관점에서 재조명. 칸트와 헤겔의 핵심 사상을 추리고 칸트의 세계평화론, 헤겔의 변증법과 역사철학 등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까지 함께 엮었다. 3만8000원.○ 문학·예술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아리엘 도르프만 지음·창비)=주인공은 친환경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경쟁기업에 밀리고 이혼위기까지 겪으면서 정신과 의사를 찾자 의사는 한 가족의 삶을 마음대로 조종해보는 독특한 방식의 심리치료를 제안한다. 기업과 자본주의 세계, 이와 함께 변화하는 인간 내면을 파헤쳤다. 1만1000원.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크레이그 실비 지음·양철북)=편견과 부조리를 겪으며 성장해가는 소년들의 이야기. 호주의 한 탄광촌. 이곳에서 원주민 혼혈 소년 재스퍼 존스와 베트남 소년 제프리 루는 ‘왕따’다. 역시 지나치게 똑똑해 왕따인 소년 찰리는 한 소녀의 살인사건을 계기로 재스퍼 존스와 우정을 쌓아나가며 한편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1만4000원. ◆반지의 제왕 1, 2, 3(J R R 톨킨 지음·씨앗을뿌리는사람)=‘반지의 제왕’ 양장 일러스트판. 영문학자인 번역자들이 톨킨의 ‘요정어’와 고유명사 등을 발음과 번역 원칙에 충실하도록 새로 수정했다. 3권 세트 9만9000원. ◆잘린 머리처럼 불안한 것(미쓰다 신조 지음·비채)=전쟁 직후 일본의 외딴 마을. 대대로 가문을 이을 맏아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 죽고 마는 곳이다. 장손 조주로가 무사히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의식을 치르는 날 밤, 쌍둥이 여동생 히메코가 빠져 죽은 채 발견되자 마을은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다. 1만4000원.○ 인문·교양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손영옥 지음·글항아리)=죽은 파리도 왕희지 때 것이라면 비싼 값에 사들였던 18∼19세기 선비 이조묵, 서양화 일본화까지 수집했던 18세기 의관 김광국, 도화서 교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하다 ‘호란을 잊었느냐’는 비판을 들었던 인조…. 조선시대 수집벽(癖)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만9800원. ◆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랜덤하우스)=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방법, 예루살렘이 세 종교의 성지가 된 이유, 트럼프 카드 속 신분제 사상 등 세계사 속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밝혔다. 통사(通史)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세계사를 이해할 수 있다. 1만2800원. ◆파리는 깊다(고형욱 지음·사월의책)=‘예술의 도시 파리’의 진면목을 파헤친 책. 1부에서는 오르세와 오랑주리, 로댕과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 등 미술관과 전시회를 둘러보고 2부에서는 파리를 직접 걸으며 그 속에 숨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또 다른 예술의 도시 피렌체 이야기를 담은 ‘피렌체, 시간에 담기다’도 함께 나왔다. 1만6000원.○ 실용·기타 ◆선배들이 물려준 MBA 비밀노트(김현정 외 11명 지음·북넷)=연세대 경영대 마케팅연구회 출신의 저자들이 미국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준비하고 시험을 통과해 수료했던 경험을 담았다. 한국에서 MBA를 딸 수 있는 방법도 엮었다. 1만3000원. ◆스페인 이미지와 기억(전기순 지음·지식을만드는지식)=스페인에서 유학하고 대학에서 스페인문학을 강의하는 저자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페인 읽기를 시도했다. 알타미라 벽화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스페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1만5000원. ◆우리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레오 마스부르크 지음·민음인)=마더 데레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나온 전기. 마더 데레사 곁에서 고해성사 신부이자 통역을 지냈던 신부가 직접 썼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도 화장실 청소를 할 정도로 근면했고,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고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마더 데레사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1만2000원.}

고전문학 ‘옹고집전’과 복제인간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일랜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답은 바로 ‘자아정체성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두 작품 모두 ‘가짜 나’와 ‘진짜 나’가 등장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등장한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나다움’, 혹은 ‘나만의 무엇’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자아 동일성 논의’라고 부른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두 저자는 고전문학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성찰 지점을 찾아내 현대 대중문화와 연결시킨다. 현재와 접점이 없어 보였던 고전문학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피상적으로 느꼈던 대중문화 작품을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심청전’ ‘이생규장전’ ‘유충렬전’ 등 고전문학 12편을 다뤘다. 진짜 옹고집과 가짜 옹고집은 신체 특징, 기억까지 똑같고, 가짜 옹고집 역시 진심으로 자신이 진짜라고 믿는다. 옹고집은 결국 스스로 진짜임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 채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냈던 학대사의 도술로 겨우 진짜라고 인정받는다.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여주인공 조던2델타가 복제를 의뢰한 본체 톰 링컨과 복제인간 링컨6에코를 구분할 수 있었던 근거는 링컨6에코가 가진 진솔한 사랑의 눈빛이라는 주관적 기준뿐이었다. 저자는 “‘옹고집전’은 나와 나의 복제인간을 구분하는 확실한 근거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시하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시습의 한문소설 ‘이생규장전’과 영화 ‘원스’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음(知音)’이다. ‘이생규장전’에서 선비 이생은 최랑이라는 여인과 시를 나누며 사랑에 빠진다. ‘원스’는 길거리 가수와 이민자 여성이 음악으로 교감한다는 내용이다. 시와 음악으로 소재는 다르지만 모두 ‘나를 알아주는 짝’을 만나 사랑을 맺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이야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비극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최랑은 홍건적의 난 때 도적의 손에 죽는다. ‘원스’에서는 런던으로 함께 떠나자는 남자의 청을 여자가 거절한다. 저자는 이런 결말이 필연이라고 파악한다.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진 것은 상대가 재능은 뛰어나지만 고독했던 나를 제대로 알아줬기 때문이다. 나의 뛰어남을 알아줬고, 동시에 상대 또한 나와 통할 만큼 뛰어나다고 믿기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결국 이 사랑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현실에서 사라지도록 하고 완벽했던 한때만을 남겨야 한다. 그 사람이 없을 때에만 유지되는 사랑, ‘원스’와 ‘이생규장전’ 속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진짜 모습이다. 저자들의 손을 거쳐 심청은 공동체 유지를 위한 희생양이 돼 외계인을 몸에 품은 채 용광로로 뛰어드는 여전사 리플리(영화 ‘에일리언’)와 만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선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운 채 결혼제도에 종속됐다 다시 탈출하는 여성으로 희곡 ‘인형의 집’ 속 노라와 겹친다. 이 같은 저자들의 시도는 고전문학을 읽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 준다. “이야기의 메시지가 교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현실을 반추할 수 있기에 의미 있는 것이다. 옛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와 사람들의 욕망과 갈등의 생생한 모습을 포착해야 한다. 그것이 선한 것이든, 추잡하고 비겁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포천 쿠키 위에 쓰디쓴 초콜릿을 입히고 그 안에 온갖 악담을 적은 메시지를 넣어둔 이른바 ‘미스포천 쿠키(불행과자)’. 주인공 소피가 운영하는 초콜릿 가게의 최고 히트 상품이다. 소피는 아홉 살 생일에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소원이 이뤄지리라’라는 메시지를 담은 포천 쿠키를 가족들과의 외식 자리에서 받은 뒤였다. 그 후 소피에게 인생은 불행의 연속일 뿐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주인공이 돌아온 옛 연인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비토리오 미소니 미소니그룹 회장,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 씨,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드레스를 디자인했던 터키 디자이너 제밀 이펙지 씨 등 세계 각국의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C20(Culture 20)’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둔 9월 8∼10일 서울에서 열린다. 이 행사에는 영화감독, 요리사, 건축 디자이너, 방송인 등 각국 주한 대사관에서 추천한 인물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서울 창덕궁, 북촌한옥마을,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본 뒤 10일 열리는 대토론회에 참석한다. 소르망 씨는 한국의 문화 경쟁력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펙지 씨는 터키 전통복장과 한복을 결합한 의상 디자인을 논의한다. 영화와 요리에 관한 토론도 각각 진행된다. C20을 주최하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은 행사에 앞서 한국문화 스토리텔링 공모전 ‘C20, 한국 문화를 세계로’와 칵테일 공모전 ‘Sip C20 for G20’을 연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한식, 한복, 한옥, 한글, 한지, 한국음악 등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서술 형식이나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16일 접수를 마감하며 대상 수상자는 상금 500만 원과 10일 열리는 C20 폐막 행사 참여 자격을 얻는다. 칵테일 공모전은 소주나 막걸리를 주조로 해야 하며 20일 조리법(레시피) 접수를 마감한다. 최종 선정된 10개 칵테일은 C20 참가자들이 직접 심사해 폐막 행사에서 대상을 발표한다. www.coreaimage.org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최근 국가유공자 인구구성 특징은 ‘고령화’로 요약할 수 있다. 2006년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국가유공자 노인요양시설 건립계획에 따르면 2004년 전체의 24.4%였던 65세 이상 국가유공자는 2009년 29.0%, 2014년 31.8%(예상치)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6·25전쟁 이후 60년 이상이 흐르면서 국가유공자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이들에게는 현금 지원을 넘어선 체계적인 복지 서비스가 절실하다. 한국사회서비스연구원이 2009년 10월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상이군경과 가족을 위한 종합복지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독립유공자나 6·25 참전용사를 중심으로 한 고령 국가유공자 중 가정봉사원의 도움과 장기요양시설 입소를 희망하는 비율이 각각 42%로 나타났다. 특히 60세 이상 국가유공자 중에는 1∼5급에 해당하는 중상 비율이 75%에 이른다. 현재 국가유공자 지원 제도를 보면 다른 분야보다 현금 지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주거보장서비스 부문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노인복지서비스의 경우 노인복지주택, 영구임대주택, 양로시설 및 노인공동생활가정, 주거환경개선사업, 주거급여 등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 국가보훈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주택대부, 즉 현금 지원과 영구임대주택 두 가지뿐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광복회 성남시지회장 이용위 씨(65)는 다른 지역 회원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보훈단체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신경 쓰인다. “지역별로 회관이 없는 곳이 많아서 나이 들어가는 회원들이 모이기 쉽지 않아요.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어려움도 나눌 수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보훈 정책을 수립할 때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이 씨는 또 “보훈 대상자들은 연세 많은 어르신이 대부분인데 후손들의 교육 지원 정책도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보훈 대상자 차영조 씨(66)는 “고궁 무료 관람이나 버스 승차 등 장애인에게는 많이 제공되는 부분이 보훈 대상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여러 나라가 자활, 의료 등에 방점을 둔 체계적 보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는 1944년 제대군인부를 창설해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제대군인을 대상으로 전시 제대군인수당법, 군인정착법 등 지원법제를 마련했다. 캐나다가 보훈제도 중 중점을 두는 분야가 퇴역군인의 고령화 대책이다. 요양원 등 양로시설 운영보다는 재가자활지원사업(Veterans Independence Program)에 중점을 두고 퇴역자가 집에 머무르며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재가자활지원사업은 잔디 깎기, 눈 치우기, 세탁 청소, 장보기 돕기 등 세심한 배려까지 포함한다. 미국은 2600만 명에 이르는 제대군인을 위해 1989년 제대군인처(The Veterans Administration)를 제대군인부(The 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로 승격시켜 위상을 강화했다. 제대군인부의 공무원은 21만여 명으로 정부 부처 중 3번째 규모이며 예산도 국방, 재무, 보건사회 등에 이어 8번째다. 부처가 운영하는 보훈병원은 173개, 의료 및 보건시설이 1000여 개에 이른다. 호주는 유공자들에게 찾아가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방청 직속 사무소(VAN·Veteran Affairs Network) 30여 곳을 활동 거점으로 삼아 매월 공무원들이 원거리나 오지의 보훈대상자를 찾아가 정부시책을 설명하고 보훈대상자의 자립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김진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복지시스템을 보훈 대상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국가를 지켰다’는 보훈 대상자들의 자부심까지 배려할 수 있는 체계적인 보훈서비스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항일하면 삼대가 망했다는데…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줘야죠”▼ ‘장군의 손녀’ 김을동 의원, 유공자 후손 범위확대 법안 발의“항일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이런 인식이 얼마나 국민의 단합과 결속을 해칩니까. 독립유공자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5일 오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나라당 김을동 의원(65·사진)의 눈빛에 힘이 실렸다. 그는 일제에 맞서 청산리대첩을 이끈 김좌진 장군의 손녀로 독립유공자다. 올해는 청산리대첩 90주년이 되는 해다. 김 의원은 올해 1월 독립유공자의 범위를 현행 ‘최대 손자녀까지’에서 ‘유공자의 후손 2대까지’로 확대하는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즉 유공자 3대에서 4대까지로 혜택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그는 “독립유공자는 시간이 많이 흘러 증빙기록이 부족하고 후손들이 이미 사망한 경우도 많다”고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국가보훈처가 파악하는 보훈 대상은 1만2000여 명인데 본인이나 후손들이 신청해 등록한 유공자는 7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는 유공자 후손들이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희 아버지(김두한 전 의원)도 그런 경우죠.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보니 후대 교육을 제대로 못 시켰어요. 독립유공자 모임인 광복회에 가보면 국회의원인 제가 제일 출세한 사람이라고들 말씀하십니다.” 그는 해외의 유공자 후손에게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등에도 유공자가 많아요. 증빙 자료가 부족하고 현지 국적이어서 지원이 어렵지만 모국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생각을 확고히 갖게 해야 합니다.” 그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이린(海林)에 한중우의공원을 세워 항일운동의 뜻을 기리고 10년째 청산리 역사대장정을 열어 동포와 대학생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미국은 우리의 국가보훈처에 해당하는 ‘제대군인부’가 있고 그 수장은 장관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원칙이 살아있어요. 내가 전투에서 사망한다고 해도 국가가 내 자녀를 책임진다고 하면 국가관이 투철해지겠죠.” 최근 역사교육이 미진하다는 지적도 그는 빼놓지 않았다. “심지어 각종 국가시험을 보면 국사 과목이 필수 과목에서 빠져 있습니다. 역사교육의 붕괴는 국가정체성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현충일, 영국인 가슴엔 양귀비가 핀다▼전쟁터에 핀 양귀비꽃서 영감…조화로 유공자-가족 기금 마련정해진 가격 없이 자발적 헌금영국에서 11월이 되면 수많은 시민이 가슴에 양귀비꽃 모양의 조화(造花)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스 캐스터도, 신인 가수를 뽑는 리얼리티쇼 출연자들까지도 가슴에 양귀비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 의미를 묻는 외국인들에게 영국인들은 “전쟁유공자와 가족들을 돕는 우리의 전통”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영국에서 현충일은 11월 11일이다. 1918년 프랑스 콩피에뉴 숲에서 연합국 측과 동맹국 측 간 종전 협정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수많은 영국인은 이날을 ‘포피(Poppy·양귀비)데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제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한 벌판에서 유래한다. 영연방 소속 캐나다군 군의관이었던 존 매크레이 소령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무수히 돋아난 붉은 양귀비꽃을 보고 영감을 얻어 ‘플랑드르 벌판에서’라는 시를 썼다. 이 시가 잡지에 게재돼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여기에 감명을 받은 영연방 국민들은 붉은 양귀비 조화를 사서 생긴 기금으로 참전제대군인들을 돕는 전통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영국 캐나다 등 모든 영연방 국가에서는 포피데이를 전 국민의 현충일 행사로 기념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재향군인회가 양귀비 조화 생산 공장을 운영하면서 기금모금 사업을 한다. 11월이 되면 거리마다 양귀비 조화를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자발적 헌금 형식이어서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략 1, 2파운드(약 1800∼3700원)에 가슴에 다는 양귀비꽃을 사며 화환 등의 주문 판매도 한다. 런던 시내 국회의사당 부근에는 현충일 참배를 위한 추모공원도 있다. 포피데이 즈음에는 참배객들이 헌화한 양귀비꽃을 단 나무십자가가 붉은 물결로 장관을 이룬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해 포피데이 행사에 참석한 한 2차대전 참전 퇴역군인은 영국 BBC TV 행사 중계에서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지만 다함께 국가유공자들을 기리는 전통이 영국과 과거의 영연방까지를 하나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해외 발레 스타와 국내 유망주들이 한 무대에 오르고, 영상과 강연으로도 발레를 만난다. 한국무용협회 30주년을 맞아 20∼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10 서울국제발레페스티벌’이 열린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수진, 미국 아메리카발레시어터의 서희,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김세연, 독일 뒤셀도르프발레단의 김소연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2010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이다.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에서는 ‘돈키호테’ ‘지젤’ ‘해적’ ‘로미오와 줄리엣’ 등 고전 발레와 예술감독 허용순 씨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등 모던 발레가 함께 공연된다. 이 초청공연은 이번 페스티벌과는 별도로 27일 울산, 28일 경북 포항시에서도 공연된다. 26, 27일에는 ‘돈키호테’ 전막 공연이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다. 올해 세계 최고(最古)의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한 박세은 김기민, 마린스키발레단의 주역무용수인 아나스타샤 마트비엔코, 데니스 마트비엔코가 각각 주역으로 출연한다. 영상과 클래식음악, 발레가 결합한 크로스오버 발레도 있다. 22, 2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물거울’(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임혜경 씨가 참여한 수중촬영 영상과 제주도 우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유니버설발레단 공연, 그리고 무반주 미사곡이 어우러진다. 26일 오후 3시에는 예술의전당 문화사랑방 대회의실에서 ‘고전발레의 복원과 재해석’을 주제로 유리 부를라카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의 강연이 있다. 20∼25일에는 음악 칼럼니스트 장일범, 국립발레단 김주원, 무용평론가 문애령, 유니버설발레단 임혜경 씨 등이 강사로 나서 ‘호두까기 인형’부터 ‘백조의 호수’까지 러시아 5대 발레의 영상을 소개하는 영상감상회도 열린다. 02-538-0505, www.koreaballet.co.kr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재사(才士) 지사(志士)들의 집결지이자 배출구였다. 펜으로 뜻을 펼쳐낼 분출구가 많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동아일보는 뜻과 재능을 갖춘 지식인들의 둥지 역할을 했다. ‘조선 3대 천재’로 불린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은 모두 동아일보의 주요 필진으로 활약했다.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 ‘무정’을 집필한 춘원은 1923년 5월 16일 촉탁기자(객원기자)로 발령받은 뒤 중간에 사직했던 1년 3개월을 빼고 1933년 8월 29일까지 9년간 재직하며 사설과 횡설수설, 소설(13편), 시, 시조, 동화, 수필, 평론, 서평, 기행문, 번역물 등 하루 원고지 70장 이상을 지면에 쏟아냈다.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낸 김동인은 1935년 잡지 ‘삼천리’에 쓴 ‘춘원연구’에서 춘원에 대해 “가장 세력 있는 신문 지상에 가장 많이 쓰기 때문에 가장 넓게 알려졌다”고 평했다. 최초의 대하역사소설로 꼽히는 ‘임꺽정’을 지은 벽초는 1924년 춘원이 ‘민족적 경륜’이란 사설로 필화를 겪으며 동아일보를 떠나 있을 때 주필이자 편집국장으로 동아일보에 입성했다. 1년이 못 되는 재직기간에도 벽초는 동아일보 지면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해 10월 ‘지식은 권력’이라는 모토 아래 학예란이란 칼럼을 신설했다. 1925년 1월부터 ‘학창산화(學窓散話)’라는 제목을 갖게 된 이 코너는 접순(接脣·키스)의 유래, 호열자균의 번식력, 탱고의 역사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박학다식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1924년 12월엔 춘향전 소설 개작에 2000원이란 당시 최대 액수를 건 현상공모를 실시했고 1925년 1월엔 신춘문예작품 공모를 민간언론 최초로 도입했다.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쓴 육당은 1925년 8월∼1928년 10월 동아일보 촉탁기자로서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수많은 기사와 칼럼, 탐방기를 집필했다. 동아, 조선과 함께 3대 민간지로 꼽히던 시대일보 사장을 그만둔 뒤였다. 1926년 3∼7월 77회를 연재한 ‘단군론’, 그해 7월∼1927년 1월 89회를 연재한 ‘백두산 근참기’, 1928년 6월 10회에 걸쳐 연재한 ‘조선유람가’ 등이 대표적이다. 육당은 당시 동아일보가 주최한 수많은 민족사 강연회에서 인기 강사로 활약했으며 동아일보를 사직한 뒤에도 역사교양기사를 장기 연재했다. 1928년 8∼12월 72회 연재한 ‘단군과 상황오제’와 1930년 1∼3월 52회 연재한 ‘조선역사강설’이 대표적이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문인이 동아일보를 거쳐 갔다.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지은 송아 주요한은 기자를 거쳐 학예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냈고 소설 ‘운수 좋은 날’로 유명한 빙허 현진건은 사회부장과 학예부장을 거쳤다.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유명한 횡보 염상섭은 동아일보 창간기자였다.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를 발표한 시인 안서 김억, 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훈, ‘국경의 밤’의 시인 파인 김동환, ‘레디메이드 인생’의 백릉 채만식도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최초의 서양화가로 꼽히는 춘곡 고희동과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청전 이상범은 동아일보 미술기자였다. 창간기자였던 춘곡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사신도에서 영감을 얻어 동아일보 창간호 1면의 웅비하는 용틀임 도안을 그린 주인공이다. 청전은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이었다. 미술사가이자 복식사연구가였던 이여성도 1930년대 기자와 조사부장으로 근무하다 ‘일장기 말소사건’에 연루돼 사직했다. 한국 언론 사상 최초의 순직기자인 추송 장덕준은 동아일보 창간 주역이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민간신문 허용 소식을 입수해 동아일보 창간의 산파 역할을 했던 추송은 1920년 11월 중국특파원으로 만주 일대의 조선족 학살 현장을 취재 중 의문사했다. 동아-조선을 옮겨가며 손대는 신문을 최고 부수에 올려놔 근대 신문업계 최대 풍운아로 꼽힌 하몽 이상협은 동아일보 초대 편집국장으로 1923년 9월 간토(關東)대지진이 일어나자 직접 현지로 달려가 르포기사를 연재했다. 소학교도 못 나왔지만 숱한 특종으로 이름을 날리며 3대 민간지에서 네 차례나 사회부장을 지낸 종석 유광렬, 신극운동에 불을 붙인 ‘토월회’의 창단멤버이자 ‘홍도야 우지마라’로 유명한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극작가인 고범 이서구도 동아일보 창간기자였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도 동아일보에서 활동했다. 창간 당시 논설반 소속이었던 송산 김명식과 박일병은 당시 명망 있는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웅변가였다. 송산이 1921년 6월 3일∼8월 31일 61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니콜라이 레닌은 어떠한 사람인가’는 조선에 처음 공개적으로 소개된 레닌 일대기였다.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로 활동한 박헌영도 1924년 동아일보에서 판매부 서기와 지방부 기자로 활동했다.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조선 첫 女의사 허영숙, 東亞 학예부장 활약 ▼춘원의 부인… ‘남녀평등’ 설파 “지금까지 남자는 여자에게 대하여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왓다.…그러면 남자는 여자에 대한 우월감을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인가 단연히 내어버릴 것인가.” 동아일보 1926년 1월 1일자 기사 ‘부인문제(婦人問題)의 일면(一面), 남자할 일 여자할 일’ 제1회의 한 구절이다. 기사는 “남자나 여자나 지아비나 안해나 딸이나 누이나 오래비나 누구를 불문하고 사람으로 꼭 평등이다,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 그것이 진리이기 때믄에”라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남녀는 유별하다’는 유교 관습이 여전히 남아있던 조선사회에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주장을 직접 제기한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은 허영숙(사진). 조선 최초의 여자 의사였던 그는 1925년 동아일보 학예부장으로 임명된, 조선 최초의 신문사 여성 부장이기도 했다. 허영숙은 춘원 이광수의 부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장안의 화제였다. 이광수는 부인 백혜선과 이혼한 뒤 허영숙과 중국 베이징으로 사랑의 도피를 했고, 두 사람은 이광수가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다 풀려난 뒤인 1921년 5월 결혼했다. 그러나 허영숙은 일찌감치 ‘신여성’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진명소학교, 경기여중을 거쳐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던 허영숙은 1918년 10월 조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의사시험에 합격했다. 베이징 도피생활 중에도 의사로서 생계를 유지했던 허영숙은 1920년 5월 서울 서대문 인근에서 ‘영혜의원’을 개업했다. 그해 동아일보 5월 10일자에 허영숙은 ‘화류병자(花柳病者)의 혼인(婚姻)을 금(禁)할 일’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화류병, 즉 성병에 걸린 사람은 국가가 법으로 정해 혼인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혼인을 각 집안의 사적인 일로 보고 성(性) 문제 거론을 금기시하던 당시 조선사회에 보기 드문 일이었다. 사회적 반향을 반영하듯 약 2주 뒤인 26일에는 허영숙의 의견을 비판하는 긴 기고문이 동아일보에 실리기도 했다. 1927년까지 학예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허영숙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살려 의학에 관한 기사를 주로 썼다. 1926년 3월 1∼6일 6회에 걸쳐 연재한 ‘가정위생’에서는 ‘어린아이 울 때 어머니의 주의’부터 ‘월경긔에 잇는 따님을 둔 어머니의 주의하실 몃가지’ ‘해산과 위험’ 등 가정에서 필요한 건강상식 전반을 다뤘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90년된 고정란 ‘횡설수설’ ‘휴지통’ 첫 회부터 일제탄압-세태 맹공격 ▼ ‘한국 신문사상 최고(最古)의 칼럼난’. 만 90세의 나이로 동아일보 오피니언면을 지키고 있는 ‘횡설수설(橫說竪說)’이다. 창간 100호를 기념해 1920년 7월 25일 첫선을 보인 횡설수설은 첫 회부터 일제의 언론탄압에 대한 가시 돋친 도전으로 시작했다. “정리(正理) 직론(直論)이라고 자신해도 신문지를 경찰서로 실어가 언론자유가 잔해도 없이 참혹하게 유린되는 판인데 (…) 횡설수설이 도리어 이러한 곳에 그 가치가 없으라는 법도 없지.” 1926년 가수 윤심덕과 젊은 문사 김우진이 연락선에서 투신자살하자 횡설수설은 ‘그들의 심경도 동정할 점이 없지 않다’고 한 뒤 ‘하지만 삶의 의의와 가치가 결코 연애만이 아니거늘, 중대한 책임을 지닌 조선 청년으로서!’라고 나무랐다. 1940년 8월 11일 폐간호에서는 사뭇 감상적인 문구로 고별사를 대신했다. “벌여놓은 것 거둬들이고, 시작한 것 끝맺는 때라 수심 중에 희망도 오락가락.” 당대의 해학적 사회상이나 서민들의 애환을 전해온 ‘휴지통’은 창간 직후인 1920년 4월 10일 탄생했다. 첫 회에서는 총독부 정무총감이 조선어를 배우고 있다며 “요보(여보)라는 개소리는 행여나 배우지 말았으면…. 만세라는 말이 어떠한 말인지 궁리하는 것이 제일 긴급한 일이 아닐른지”라고 꼬집었다. 일제 관리들이 조선인들을 안하무인격으로 대하는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휴지통은 탄생 17일 만에 발매금지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1920년 4월 27일자 휴지통은 조선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수작을 할 때 ‘긴(金)상’이니 ‘사이(崔)상’이니 할 때가 있다며 “우리 고유한 국어, 즉 조선말을 사용치 아니하고 구차히 외국말을 혼용하려 함은 내 집에 육미봉탕 팔진미를 두고 남의 우거지국이 좋다고 빌어먹으려 하는 것과 일반이다”라고 썼다. 일본어를 ‘남의 우거지국’으로 표현하고 조선어를 ‘국어’로 못 박은 데 대해 일제 당국이 발끈해 발매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다. 휴지통은 1940년 8월 동아일보 강제폐간과 함께 독자와 작별한 뒤 1945년 12월 1일 복간호와 함께 부활했지만 횡설수설은 1955년 1월 1일에야 다시 등장했다. 부활을 알리는 첫 칼럼부터 예전의 기개는 여전했다. 금력 권력이 판치는 세태에 격분해 한 청년이 손가락을 자른 사건을 언급하며 횡설수설은 “옛날 중국에서 사어(司魚)라는 이가 혼미한 임금을 깨우치기 위해 제 시체까지 내세워 간(諫)했다고 해서 시간(屍諫)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 혼탁세태와 사악한 현실이 통골(痛骨)할 노릇”이라고 질타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정선 장터에 시인들이 나타났다. 7일 오후 5시 강원 정선군 장터. 병풍처럼 산이 둘러싼 이곳에 김남조 이근배 이건청 이영춘 문인수 씨 등 시인 40여 명이 도착했다. ‘아라리 나물집’과 ‘아라리 황기찐빵’, 더덕과 찐 옥수수를 파는 노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시장 골목 한편에 설치된 무대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김남조-이근배 씨 등 40여명 주민-관광객과 어우러져 낭송 낡은 자전거를 끌고 온 할아버지,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든 아이들, 노인정 친구들과 함께 온 할머니…. 통나무 벤치와 무대를 둘러싼 평상을 정선 주민과 관광객 150여 명이 꽉 채웠다. 한국시인협회가 이날 처음 주최한 찾아가는 시운동 ‘길 위의 시인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시인들은 주민과 관광객 사이사이를 채워 앉았다. 살풀이춤 공연과 장구 공연이 한바탕 끝난 뒤, 팔순을 넘긴 김남조 시인이 문정희 시인의 손을 붙잡고 무대 위로 올라와 짧은 축사를 했다. “시인은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 감춰둔 미소, 그것들을 잘 거둬서 다듬어서 다시 공손히 두 손으로 드리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번에 정선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많은 시를 쓰려고 합니다.”한 수 읊고나면 막걸리잔 돌고… “방방곡곡 찾아 詩心일깨울 것” 이어 이근배 시인이 무대에 올랐다. “아리랑을 낳은 고장인 정선은 시의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인사말을 한 이 씨는 자신의 시 ‘정선 아라리’를 낭송했다. 사람들은 낭송할 시가 적혀 있는 책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때로는 무대를 쳐다보고 때로는 책자를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시를 감상했다. 한 편 한 편 낭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옥수수 생막걸리와 감자부침, 수수부꾸미가 관객들 사이를 돌았다. 시인들도 직접 나서서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슬픔은 어디서나 자라고 있다/곱슬곱슬한 고사리의 머리털 같은 슬픔/백이숙제도 먹지 않았다는 서글픈 나물의 이름 같은/해묵은 핏발이 풀리지 않고 새록새록 피어난다/완장을 찬 역무원이 씩씩하게 깃발을 올리자/질긴 슬픔 몇 덩이가 꾸물거리며 출발한다…”(박세현, ‘별어곡’) 관객이 시를 읽는 순서도 마련됐다. ‘별어곡(別於曲)’을 읽은 홍정임 씨(49)는 차로 1시간 떨어진 영월에서 행사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홍 씨는 “박세현 시인의 시가 이 고장 정서를 깊이 알아주는 듯해서 평소 좋아했다. 소외당하고 어려워하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시인들이 시로 잘 챙겨주는 것 같다. 영월에서도 이런 행사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tvN ‘롤러코스터’의 ‘여자’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서혜정 씨도 시낭송 음반을 냈던 인연으로 이날 행사를 찾아 이근배 시인의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수국에 와서’를 낭송했다. 시집 ‘동강의 높은 새’를 내는 등 평소 정선에 관한 시를 자주 발표해온 문인수 시인은 ‘오지 않는 절망’을 낭송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문 씨는 “정선에 오면 늘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시 낭송은 약 2시간이 지난 뒤 어스름이 내릴 무렵 마무리됐다. 행사장 건너편에서 메밀차와 찐옥수수를 팔던 최혜원 씨(42)는 “장사에도 신경을 쓰느라 낭송되는 시를 꼼꼼히 듣지는 못했지만 우리네 정서랑 딱 맞는 시들을 읽으신 것 같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길 위의 시인들’ 행사는 앞으로도 장소와 소재를 달리해 계속 개최될 예정이다. 이건청 한국시인협회장은 “시인들이 직접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시를 낭독하고 시민들과 어우러지며 현대에 결핍된 감성과 직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자는 취지다. 오늘 행사에 참여한 시인들은 앞으로 정선에 관한 시를 써서 책자로 묶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6일 열리는 다음 행사에서는 시인 30여 명이 경기 양평군에서 소외계층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한 뒤 집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를 짓고 낭송한다.정선=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조선인은 여타 식민지의 야만하고 반(半) 개화한 민족과 달리 독서문화의 문명인이 많고, 고래(古來)로 사서(史書)가 많아 독립국의 옛 꿈을 추상(追想)하는 폐단이 있으며….” 조선총독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사’ 편찬기관이었던 조선사편수회 사업 개요에서 밝힌 조선사 편찬 목적이다. 입맛에 맞는 조선사 서술을 통해 조선인의 독립의지를 꺾고 통치를 수월하게 하고자 했던 일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1925년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확대 개편한 총독부 직할 조선사편수회는 1938년 ‘조선사’를 완간했다.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는 한국사의 시작을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로 설정하고 고조선은 위만과 기자에서 시작한 나라로 서술해 중국사의 일부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등 한국사를 왜곡했다. 일제는 일본과 조선의 조상이 같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조선의 국운은 늘 외부가 결정해 왔다는 타율성론 등 이른바 식민사관도 이 시기에 확산시켰다. 광복 이후 한국 사학계는 이 같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 3월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공식적으로 부정한 것은 그 대표적 성과 중 하나다. 그러나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광복 이후 임나일본부설이나 일선동조론 등 개별 학설의 왜곡을 밝히는 연구는 다양하게 이뤄져 왔지만, 일제의 ‘조선사’ 서술 전체를 분석하고 그 사관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7월 22, 23일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한 ‘식민주의적 한국고대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논문 ‘식민사관에 의한 가야사 연구와 그 극복’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남 교수는 “광복 이후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의 커다란 쟁점이 임나일본부였으며, 이것은 우리 학계로 하여금 가야사 연구를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나일본부설이 왜곡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 연구를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가야사 전반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라는 표현 자체가 일제 잔재라는 지적도 있다. 가야를 일본의 속국으로 설정하기 위해 삼국만 강조하면서 가야의 중요성을 일부러 축소했다는 것이다. 가야는 실제 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국가로 철기 생산의 중심지이자 일본과 교류도 활발했다. 신라와 대립할 정도의 국력과 높은 문화수준을 가진 나라였다. 그런데도 중고교 국사 교과서 가야사 서술은 2, 3쪽뿐이며 여전히 가야는 일반인들에게 ‘신비의 나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남긴 인종차별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우리의 내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준식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식민지 파시즘의 유산과 극복의 과제’에 실은 논문 ‘식민지 파시즘의 유산과 극복의 과제-인종주의를 중심으로’에서 “아시아 여러 민족의 해방을 기치로 내세운 일제는 조선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아시아 내 위계를 세우고 서열화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1942년 제국의회 연설에서 도조 히데키 당시 일본 총리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내부적 중핵(일본, 조선, 만주, 중국, 태국, 베트남), 일본의 직할령(홍콩, 말레이반도), 독립 예정 지역(필리핀, 미얀마) 등으로 구분해 위계를 설정했다. 이처럼 일제는 전쟁을 준비하며 식민지 종주국과 식민지의 일체화를 내세웠고, 이에 따라 일부 조선인 사이에 아시아의 다른 인종, 다른 민족에 대해 우월 의식을 갖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민족 간 순위를 강조하면서 우리도 다른 민족을 열등하게 대하고 배척하는 차별 의식을 갖게 됐다. 우리도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이상 이 차별의식을 없애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하게 제국주의의 흔적을 지웠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일제강점기의 흔적은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일본어에서 사용하는 한자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다. ‘승부’ ‘취입’ ‘특히’ ‘관행’ ‘입장’ ‘역할’ ‘의의’ ‘가시화’ 등이 이 같은 사례다. ‘승부’는 ‘승패’ ‘결판’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취입’은 ‘녹음’으로 고쳐야 한다. ‘…에 의하여’ ‘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의’ ‘…에 비해’ 등도 우리가 여전히 자주 사용하는 일본식 어법이다. 마을 구성원이 함께 하는 민속놀이도 일제는 민족정신 고양을 우려해 억눌렀다. 대신 화투 같은 일본 여가문화를 보급한 결과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건너온 화투를 명절에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벌을 형성하는 정치문화와 주입식 교육, 권위주의적 관료문화 역시 ‘일제 잔재’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일면들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일본해 표기 100년 지나도록 위력… 바로잡을 일 태산이죠” ▼‘동해’ 표기 활동 펼치는 반크 박기태 단장 “워싱턴의 홀로코스트박물관 등 주요 기관과 단체에 있는 지구본과 지도에도 여전히 ‘일본해’라고만 표기한 게 보이더군요. 한일강제병합 즈음 슬그머니 등장한 일본해라는 표기가 100년이 지나도록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겁니다.” 미국 정부 초청으로 워싱턴에서 연수 중인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VANK) 박기태 단장(36)은 최근 통화에서 “일본에 의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크가 사이버외교사절단 회원들과 함께 중점적으로 벌여온 사업이 바로 동해 표기 바로잡기. 박 단장은 “일제가 우리 외교권을 박탈했던 100여 년 전 즈음 동해 표기도 함께 없앴다는 측면에서 이는 한일강제병합에 따른 대표적인 상흔”이라고 말했다. ‘일본해’ 표기나 독도 영유권 표기 등은 일본 교과서에 실린 것이 외국 교과서나 책에 인용되는 과정을 통해 확산된다. 이에 따라 외국의 웹사이트에도 이 같은 표기가 퍼져나간다. 그나마 반크 회원들의 활동으로 ‘동해’ 표기를 함께 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동해를 함께 표시하는 주요 웹사이트 비율이 약 3%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24%로 늘었다. 2002년 세계적인 지도제작회사 ‘월드아틀라스’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倂記)하기 시작했고, 2004년에는 세계 최대 교과출판사인 ‘돌링카인더슬리’가 반크 회원인 여고생의 지속적인 동해 병기 요청을 받아들였다. 최근에도 반크 홈페이지에는 미국 MSNBC 방송국 웹사이트에 동해 단독 표기를 성사시켰다는 등 회원들의 활약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일제강점기 왜곡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 단장은 “미국 정부의 초청을 받은 여러 나라 연수생들과 얘기를 해보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여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되었기 때문에 선진화와 근대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고 알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1999년 설립된 반크는 현재 유료회원 1만8000여 명과 무료 회원 2만 명, 외국인 회원 1만 명이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한국을 알리고 한국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시정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지워진 아픈 과거 : 남산 신궁-총독부 건물▼ 교훈으로 남은 역사 : 서울역-시청-조선은행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남산 공원, 8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광화문. 일제강점기 ‘조선을 일제 치하에 둔다’는 상징성을 띤 건축물들이 들어섰던 곳이다. 일제는 1925년 조선의 수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남산에 조선 신궁을 세웠다. 광복 때 1141개에 이르렀던 일본 신사(神社)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광화문을 헐고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훼손하면서 들어섰다. 1925년 서울 한가운데 세워진 서울역은 쌀 등 물자를 일본으로 실어가는 통로였다. 광복 이후 일제가 세운 건물 중 상당수는 전쟁으로 파손되거나 과거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졌다. 조선신궁은 1945년 광복 직후 총독부가 신궁에 신물(神物)로 두었던 어영대(御影代·거울)를 일본으로 옮기고 그해 10월까지 건물을 해체하면서 사라졌다. 총독부 건물은 광복 후에도 정부 청사와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다 1995년 광복절에 철거됐다. 중앙 돔 위 돌 첨탑은 남겨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 옮겨 전시했다. 명동 입구에 있던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인 경성우체국은 6·25전쟁 때 파손돼 사라졌다.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다른 용도로 사용하거나 건물 자체를 근대 역사의 흔적으로 남겨 교훈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2008년부터 리모델링 중인 서울시청은 일제가 1926년 경성부청사로 지은 부분을 일부 보존하기로 했다. 청사 본관동의 중앙홀, 돔과 시장 집무실은 보존하고 앞면(파사드)과 태평홀은 보강공사 후 복원하기로 했다. KTX 서울역사가 생기면서 사용이 중단된 옛 서울역사도 1925년 신축 당시의 모습을 복원한다. 서울역의 80년 역사를 모두 담기 위해 건물 뒤쪽 외벽의 6·25전쟁 때 총탄 자국도 그대로 남긴다. 옛 서울역사는 공연이나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그 외 아직 남아있는 건축물로는 광복 후 국회의사당으로 쓰다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쓰고 있는 부민관(1935년 건립),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조선은행 본점(1912년 건립) 등이 있다. 1914년 조선철도국이 설립한 조선호텔은 개축해 호텔로 운영하고 있다.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6일 오전 한 독자(@freevill_age)가 열린책들 트위터(@openbooks21)에 사진과 함께 트윗을 띄웠다. “책 첫 장에 ‘95.1.17 안양문고에서 내가 직접 샀음’이라고 써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저 때는 인터넷이고 뭐고 상상도 못하는 시절이었네요^^” 사진에는 손때 묻고 표지가 해어진 ‘좀머 씨 이야기’가 찍혀 있었다. 곧바로 편집자의 답이 떴다. “95년도 안양문고라…^^ 너무 반갑네요. 이 사진, 이벤트에 참여하시면 대박(?)일 듯해요!” 링크를 클릭하자 열린책들 홈페이지 새 단장 기념 이벤트를 소개하는 글이 나왔다. 27일까지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도서의 ‘인증 샷’을 올리거나 사진을 올리면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다. 트위터에서 이벤트를 진행하는 출판사들이 많다. 트위터에 가장 맞춤한 이벤트는 김영사가 여는 ‘140자 백일장’. 해시태그 ‘#서당_’을 쓰고 훈장이 발표하는 주제에 맞춰 140자로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하면 된다. “A는 e메일로 편지를 보낸다. B는 메신저로 안부를 묻는다. C는 싸이월드에서 자신을 보여준다. D는 블로그에서 새 소식을 전한다. E는 트위터에서 재잘거린다. F는 컴맹이다. 범람하는 도구들의 疏通不可(소통불가).”(@Serene_fish) ‘소통’을 주제로 열린 제3회 백일장 장원 트윗이다. 작가와의 대화나 강연회 공지도 자주 올라온다. 작가들도 출판사들의 트윗을 리트윗하며 홍보에 나서기도 한다. 5일 오후 창작과비평 트위터(@changbi_books)에는 “부산에서 ‘강남몽’ 황석영 작가와 치맥(치킨과 맥주)을! 8/7(토) 부산교보문고 센텀시티점 오후 4시 사인회 후. 함께 하고픈 독자분들 10분 모시겠습니다. RT로 신청해주세요”라는 글이 떴다. 황석영 씨(@Hsokyong)가 리트윗한 이 글을 보고 한 독자(@caffeinmandrake)가 “부산이라니 부산이라니 절망이네요 ㅠㅠ”라고 답하자 황 씨의 위로 겸 공지가 뒤따른다. “뭘요, 종로와 강남 사인회를 다음 주말부터 차례로 재개한다는군요. 그리고 수리 중이던 광화문 교보 오픈식을 28일 저의 사인회와 더불어∼.” 최근 소설집을 발표한 김영하 씨는 5일 문학동네가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연 작가와의 대화에 다녀온 뒤 짧은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오늘 ‘기적의 순간’을 함께하셨던 분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 이제 귀가해서 혼자 맥주 한잔하는 중입니다. 다음 인연까지 모두 안녕히.”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이 냄새다. 밭에 뿌려놓은 분뇨나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는 오수 냄새, 풀숲 건너에서 짐승의 사체가 부패하며 내는 냄새, 단맛이 들어가는 과일향 사이사이로 내 후각은 대번에 이 냄새를 가려냈다.” 이야기는 오래된 시멘트 공장, 신신양회에서 시작한다. 한때는 공장 굴뚝에서 쉴 새 없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공장에 딸린 식당에서는 음식 하는 여자들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던 곳. 하지만 지금 그곳에서는 폐허의 냄새만이 풍긴다. 공장이 문을 닫은 건 단지 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장에서 살며 아이를 키우던 여자들, 그 여자들을 거두었던, 공장 대표이자 ‘어머니’로 불렸던 인물, 그리고 공장장들과 삼촌까지 한날 한시 공장 다락방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경찰은 조사 끝에 공장이 일종의 신흥종교집단이었으며 삼촌이 다른 사람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맨 집단 자살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공장이 위태롭던 참이었다. 소설은 1987년 8월 경기 용인시의 공예품 공장인 오대양에서 대표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시신으로 발견된 이른바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사건의 원인을 밝혀나간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가 10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로 계간 ‘자음과모음’에 2008년 가을호부터 2010년 봄호까지 연재됐다. 주인공 ‘나’는 그날 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은 목격자 아닌 목격자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어릴 적 종양으로 시력을 잃은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날 자신의 목을 휘감았던 축축하고 기분 나쁜 손길을 기억한 채 ‘나’는 삶을 이어간다. 몇 년이 지나 신신양회가 42주년을 맞은 해, 주인공의 이복언니 서정인이 신문에 그때 죽은 여자들의 아이를 찾는 광고를 낸다. 형제자매처럼 함께 나고 자랐지만 사건 이후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유일한 남자아이였던 태영, 언제나 아이들을 이끄는 입장이었던 은영, 그리고 ‘나’까지 어른이 된 아이들은 모두 예전을 그리워하며 공장에 모인다. 함께 모인 뒤 ‘나’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를 꺼내놓는다. 남자 없이도 아이를 낳아 키우던 예전 공장처럼 남자들과 접촉해 새로운 아이를 낳자는 것이다. 공장은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태영의 공격적인 경영으로 번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공장이 똑같은 몰락의 길을 밟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예전의 신신양회 역시 순식간에 성장했지만, 동시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금세 몰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해지는 정인과 태영, 은영, 그리고 그들과 대립하는 ‘나’의 모습, 이들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독자는 과거의 죽음이 결코 신흥종교집단의 광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훨씬 더 ‘사회적인’ 죽음이었다. 치밀한 묘사와 호흡, 빠른 전개가 ‘이것이 사건의 진실이었다’라고 믿게 하는 설득력을 발휘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몸 푸는 법부터 둘은 달랐다. 쉴 새 없이 떠들며 바닥을 뒹굴고 뛰어다니더니 나중엔 비닐봉투를 신발처럼 신고 연습실을 질주하며 장난을 치는 쪽과, 커다란 헤드폰을 쓴 채 말없이 안무를 반복하는 쪽. 힙합댄서와 현대무용수라는 차이를 떠올리지 않아도 한눈에 보기에 너무 다른 두 사람, 팝핀현준 씨(본명 남현준·31)와 류장현 씨(27)를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4∼7일 강원 춘천에서 열리는 제9회 춘천아트페스티벌 ‘춘천어람(春川於藍)’에서 안무가 김윤정 씨의 작품 ‘독백’으로 함께 무대에 선다. 춘천호를 배경으로 건축가 김수근 씨가 설계한 춘천시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이다. ‘독백’은 7일 오후 공연된다. 두 사람이 함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팝핀현준 씨는 영화 ‘플라이 대디’, 비보이를 다룬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 출연했고 조PD, 슈퍼주니어 등 유명 가수들의 안무를 맡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예술전문학교 공연예술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각종 비보이대회 심사위원을 맡는 등 한국의 대표적 힙합 댄서로 꼽힌다. 류 씨도 2006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하고 2010년 ‘평론가가 선정한 젊은 무용가’로 선정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현대무용수다. “연습복도 달라요. 우리는 저런 옷 안 입거든요.” 류 씨가 헐렁한 청바지에 셔츠 차림의 팝핀현준 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류 씨 자신은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팝핀현준 씨는 어깨를 으쓱하며 “어때서? 이 옷 편해”라고 응수했다. 20여 분간 몸을 푼 뒤 둘은 음악에 맞춰 ‘독백’의 안무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서로 연결지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안무가 김윤정 씨 덕분. 김 씨의 다른 작품에 각각 출연했던 게 공통분모이자 인연이었다. 김 씨는 “‘독백’은 소리가 나지 않는 마이크를 오브제로 해서 펼쳐지는 2인무이지만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 힘들어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춤은 호흡부터 달라요. 그렇지만 둘 다 자기 영역이 넓고 열려 있는 무용수라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아요.” 빠른 박자에 맞춰 마이크를 빼앗기고 뺏는 동작이 반복됐다. 음악이 느려지자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 “시선 맞추고, 동작을 동시에 해야지”라는 김 씨의 지시가 따라붙었다. 두 사람의 춤은 거울을 보는 듯 닮아 있었다. 둘에게 “어려운 점은 없냐”고 묻자 “재미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힙합은 했던 거 똑같이 하거든요. 아주 쉬운 거죠. 좀 더 깊이 있는 걸 원하다 보니 현대무용 쪽에 관심이 갔어요. 같은 음악도 다르게 들어요. 힙합은 무조건 쿵, 짝! 4분의 4박자로 쪼개서 듣는데 현대무용은 훨씬 복잡하게 듣거든요.” “이런 이야기 자체가 신기해요. 현대무용 쪽에서만 작업하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죠.” 팝핀현준 씨와 류 씨는 올해 10월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마이클 잭슨을 모티브로 김 씨가 안무한 ‘문워크’에도 함께 출연한다. 류 씨는 “셋 다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다. 마이클 잭슨에 관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는데 운명적으로 만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둘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김 씨와 안무의 동선과 세세한 동작을 확인하는 두 사람은 진지했다. 밤늦게까지 연습을 할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낯선 작업에 땀 흘리는 이유를 류 씨가 한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현대무용 정신 자체가 늘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걸 찾는 거잖아요. 춤이 좋고 음악을 사랑하고, 도전하고…. 그런 사람들이 만난 거죠.”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도시와 시골의 인공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종종 자기가 살고 있는 행성의 진정한 본질과 그 긴 역사에 대한 안목을 잊어버린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감각은… 물과 바다만 존재하는 이 세계에 홀로 서서 우주에서 자기가 사는 행성의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육지에서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사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물의 세계이며, 대륙은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수면 위로 잠시 솟아 있는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땅 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레이첼 카슨이 쓴 바다 이야기다. 1951년 미국에서 출간돼 86주 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바다의 생성부터 해양생물, 해저지형 등 바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시적인 문장으로 담았다. 1961년 개정판을 번역했다. “바다 전체를 통틀어 표층수만큼 생물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곳도 없다. 배 갑판 위에서 내려다보면, 부드럽게 고동치는 종처럼 어른거리는 해파리가 바다 표면을 덮고 있을 것이다.” 대양의 표면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서도 분명히 구역이 나뉜다. 물의 온도, 맑기, 함유된 성분 등에 따라 그 물에서 사는 생물도 자연스럽게 나뉜다. 색깔로도 구분이 가능하다. 넓은 대양은 보통 짙은 파란색을 띠고 연안 바다는 녹색을 띤다. 물 분자는 햇빛 중 빨간색과 노란색은 흡수하고 파란색 입자만을 반사한다. 연안 바다가 녹색이나 노란색, 갈색 등 다양한 색을 띤다는 것은 그만큼 물에 조류나 미생물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연안 바다의 초록빛깔은 생명의 신호인 셈이다. 온대기후의 바다라면 육지와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있다. 긴 겨울 동안 표층수가 냉기를 흡수하면 이 무거운 물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아래에 있던 더 따뜻한 층을 밀어낸다. 이 과정에서 대륙붕 바닥의 풍부한 무기물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봄을 맞이한 바다 식물과 생물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에 적당한 영양소들이 공급되는 것이다. 규조류와 식물 플랑크톤이 엄청나게 번식한 뒤에는 곧 동물 플랑크톤이 급속하게 증가한다. 화살벌레와 새우 같은 작은 동물들이 그 뒤를 잇는다. 물고기들은 바다와 바다를 이동하며 번식하고 알을 낳는다. 이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쇠오리나 갈매기 같은 새들도 함께 이동한다. 지각운동은 해저 산맥이나 구릉 같은 다양한 지형을 만들어낸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섬’, 곧 물을 벗어나와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드러난 대지일 것이다.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은 대부분 화산에서 기원한다. 이런 섬의 환경은 상당히 일정하다. 방향이 변하지 않는 해류와 바람의 영향을 받고, 기후 역시 1년 내내 유사하다. 천적이 없기 때문에 생존경쟁도 드물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손길이 닿는 순간, 쥐나 염소 같은 인간이 옮겨온 동물이 섬에 살기 시작하는 순간, 섬의 생태계는 파괴된다. 인간은 바다에 둘러싸여 살지만 바다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50년대까지 바다는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활용됐고 지금도 바다 위의 거대한 쓰레기섬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카슨은 담담한 문체로 바다의 신비를 보여줌으로써 바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생명이 처음 태어난 바다가 생명 중 한 종(種)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기묘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는 비록 나쁜 방향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계속 존재하겠지만, 정작 위험에 빠지는 쪽은 생명 그 자체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같은 작품이지만 달랐다. 30, 31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안성수픽업그룹의 ‘시점-NOW’는 2001년 공연한 ‘시점’의 리메이크작이다. 안무가 안성수 씨가 미국에서 돌아온 뒤 처음 선보였던 개인공연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것이다. 설정과 모티브는 그대로이지만 안무와 조명, 연출 등을 모두 새롭게 바꿔 신작이라고 할 만한 무대였다. 18세기 유럽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위험한 관계’가 원작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옮겨오지는 않았다. 그 대신 악몽의 방, 미로의 방, 휴식의 방, 결투의 방 등 등장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다섯 개의 방으로 작품을 구성했다. 자신의 대표작 ‘Life, 볼레로 2005’의 안무를 가져온 두 번째 ‘미로의 방’ 장면에서는 리메이크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원작의 ‘볼레로’는 밝은 조명 아래 무용수들의 기하학적인 움직임이 이어지는 ‘차가운’ 작품이다. 그러나 무대 바닥 색깔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조명이 흰색에서 어두운 노란빛으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원형을 그리며 서서히 상승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미로처럼 뒤엉킨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형상화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대를 깊이 있게 사용해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내면과 화려한 무도회 장면을 함께 표현한 첫 번째 ‘악몽의 방’과 ‘무도회의 방’ 역시 조명과 연출이 맞춤하게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줬다. 그러나 치밀하고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던 전작들과 달리 작품 초반 빠른 동작이 이어질 때 무용수들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게 눈에 띄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마지막 ‘결투의 방’에서 작품 전체를 축약해 이야기하는 변사의 출연이 안무의 흐름을 끊었다는 점이다. 의자에 앉은 채 움직임만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전달해낸 변사(안현숙)의 연기 자체는 탁월했지만 장면 안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30일 공연에서는 작품이 끝난 것을 관객들이 알아차리지 못해 바로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무용은 예술이죠. 하지만 모든 무용작품이 예술은 아닙니다. '무용은 예술'이라는 인식에 무임승차를 하면 더 이상 생명력이 없죠. '무용이 이래서 예술이구나'라는 걸 일반 관객들에게 계속 확인시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28일 선임된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48)에겐 '파격' '반골'같은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시작부터 그랬다. 1982년 경희대 섬유공학과 재학 중 무용을 시작해 약 2년 만에 제 14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했다. 현대무용수지만 1990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3년간 활동했다. 1993년에는 대학교와 관계없는 순수 민간 현대무용단으로 최초였던 '댄스시어터온'을 창단했다. 2일 오전 찾은 서울 광진구 능동 댄스시어터온 연습실에서는 그 동안 작품에서 사용됐던 소품을 담은 박스를 쌓아둔 채 이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직과 민간단체 대표를 겸직할 수 없기 때문에 20여년간 이어온 댄스시어터온은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 홍 감독은 "벽재, 바닥, 공간구성 모두 내가 직접 한 것이라 차라리 내 손으로 부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학연을 벗어난 인사라고들 얘기한다. "예술계, 특히 공연예술계 쪽에 '학연에 얽힌 폐단이 많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나왔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학연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후배들이 이미 많았다. 현대무용, 자유로운 창작을 기반으로 하는 분야다 보니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진취적으로 나가고 있었다고 본다." -2004년에 '올해의 예술상' 수상을 거부한 적도 있고, '반골'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 편인데…. "나 스스로는 자신이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공대 다니다 무용을 시작했고, 1993년 최초로 민간무용단인 댄스시어터온을 창단했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주목을 받게 됐다. 그 동안 중심을 잡으려고 많이 노력해왔다. 어느 쪽을 자꾸 부정하기보다는 원래 있던 흐름에서 새로운 지류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학연 단체가 있는 것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 단체가 무용 저변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그 위에서 프로 무용가로서 일반 관객과의 소통을 중심에 둔 작품들도 나올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상주단원을 두지 않고 각 프로젝트마다 오디션을 보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문화관광부에서 먼저 그런 밑그림을 그렸지만 내가 갖고 있는 방향과도 90% 이상 일치한다. 무용, 특히 현대무용처럼 계속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창조해내야 하는 분야에서 상주단원이 돼 안주하면 그 순간 무용수로서 수명이 반은 깎인 거다. 무용 기능인이 아니라 무용 예술가를 원한다. 프로로서 자기 작품에 책임을 지고 그냥 춤을 추는게 아니라 자기 철학을 넣을 줄 알아야 한다. 직장인으로서의 무용수는 재미없다."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프로젝트 식으로 한다고 하니 프로젝트 하나 하고 끝난 뒤에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하고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만 실은 아니다. 여러 프로젝트가 오버랩 될 거다. 내가 하는 일이 이제는 '프로젝트 디자이너'가 아닌가 싶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서 필요한 안무자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인거다. 현대무용에 대한 간접지원의 통로가 되는 식물의 생장점 역할을 하고 싶다. 그래서 몇 년 뒤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무용수가, 시즌별로 많을 때는 200명 혹은 그 이상의 숫자가 전국 곳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다만 후배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아직 많은 현대 무용수들이 굉장히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프로로서 자기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체득이 안 된 경우가 있다는 거다. 그런 부분에서 본인이 빨리 바뀌지 않는다면 탈락하게 될 거다." -어떤 점을 바꿔야 한다는 건가. "기본적인 것들이다. 연습시간 지키는 것, 무용수로서 자기 몸 관리하는 것 등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 프로젝트 팀원들에 대한 책임을 지키라는 거다. 규정은 최소한으로 하되 강하게 지켜갈 생각이다." -민간무용단을 20년 가까이 이끌어왔는데 이제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앞만 보고 가는 건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건지 단원들은 훨씬 더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데 나는 오히려 다음 단계만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매달 350만 원씩 내면서 이 공간을 유지해왔다. 첫 민간무용단이었기 때문에 후배들한테 쉽게 고꾸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 숙제라고 생각했다. 예술감독을 맡고 보니 '이렇게 되려고 그 동안 고비를 넘기며 고생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82년 경희대 섬유공학과에 다니던 중 무용을 시작했는데. "원래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그걸 내가 직접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수능 성적에 맞춰 남들 다 가는 공대에 갔다. 그런데 대학교 2학년이 되니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무용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이걸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확신을 하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그 동안 식음을 전폐해서 몸무게가 50kg까지 빠질 정도였다.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무용과로 찾아갔다." -현대 무용수이면서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는데. "연습을 하다 보니 현대무용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걸 다 해낼 수 없겠더라. 뭔가 비어있다는 느낌이었다. 발레단에 들어가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발레 레슨을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에 들어간 건 당시 발레단이 외국 무용수를 많이 데려오면서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용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걸 꿈꾼다면 실제 무용단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봤고, 실력은 없었지만 남자라서 합격한 것 같다." -어렵게 시작해서인지 무용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진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맡다보니 '그런 공직은 거부하고 작품만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주제넘게 자꾸 후배 걱정이 된다. 무용계가 일반 시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야 무용계가 선순환이 되는데 아직은 아니지 않나. 국립현대무용단의 제일 첫 번째 목표 역시 지속적으로 안무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부딪힐 줄 아는 젊은 안무가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거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해외 진출에 대한 계획은 없나. "당장 지금이라도 치고 나갈 수 있다. 자신 있다. 해외에서 우리를 잘 모르고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에 힘든 거다. 세계 시장에 지금 당장 내놔도 부족함이 없을 작품들이 충분히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에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지역차별을 없애면서 전반적으로 국내 무용 수준을 올려두는 것과, 예술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바로 최고 수준의 무용이다'라고 자신할 만한 작품을 보여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페스티벌을 통해 확인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올해 말, 내년 초에 창립 공연을 하기로 돼 있다. 어떤 작품이 될 예정인가. "지금 당장 신작을 만들기는 어려워서 그 동안 내가 만들어왔던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재구성해보려고 한다. 가능하다면 20분 정도의 짧은 신작도 선보일 예정이다."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 학술 ◆21세기 초 금융위기의 진실(홍익희 지음·지식산업사)=KOTRA에서 30여 년간 일하며 세계 경제현장에서 알게 된 금융자본의 속성과 내부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경제현장에서 유대인의 역할을 살펴본 ‘유대인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인가’도 함께 나왔다. 각 1만8000원, 1만6000원. ◆가지 않은 길2(최의창 지음·레인보우북스)=체육과 운동은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일차적 효능을 넘어 수행으로서 영성수련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담은 책.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운동을 인문적으로 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만5000원. ◆새로 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원용진 지음·한나래)=대중문화의 여러 이론인 대중사회론, 구조주의, 문화주의 문화연구,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우리 대중문화 사례와 연결했다. 2만4000원. ◆아시아 일본-사이(間)에서 근대의 폭력을 생각한다(요네타니 마사후미 지음·그린비)=근대 초 일본이 아시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역설한 담론을 분석했다. 그 담론에는 문명의 전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침략을 정당화하는 근대의 폭력성이 있었음을 고발한다. 1만6900원.○ 문학·예술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필립 로스 지음·새물결)=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라디오 스타였던 아이라 린골드의 일생을 그렸다. 무성영화 스타 이브 프레임과 결혼한 아이라는 질투에 눈먼 아내가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몬 책을 펴내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1만3800원. ◆커다란 잎(이석구 지음·천년의시작)=이석구 시인의 첫 시조집. 긴 시간을 들여 피워내는 꽃과 나무를 노래한 현대시조 70여 편을 실었다. 생명현상의 경이로움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과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겼다. 8000원. ◆달과 소녀(마르틴 모제바흐 지음·창비)=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상류층 여성 이나와 신혼의 단란한 가정을 꿈꾸는 젊은 남편 한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신혼의 단꿈이 거친 현실세계 속에서 부서지는 과정이 펼쳐진다. 1만1000원. ◆SOS 원숭이(이사타 코타로 지음·랜덤하우스)=타인의 고통을 느끼면 당장 도우러 달려가는 엔도와 모든 일을 냉정하고 논리적으로 처신하는 이가라시.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서유기’의 원숭이가 두 남자를 기묘한 모험의 세계로 안내한다. 1만2800원.○ 인문 교양 ◆백두대간은 없다(김화섭 지음·두남)=오랜 기간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여행기. 해박한 인문지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산하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1만2000원 ◆정조의 혼 화성을 걷다(김진국, 김준혁 지음·이너스)=정조대왕의 정성이 만들어 낸 화성에 대한 역사와 현장 이야기를 풀어쓴 책이다. 정조대왕이 청나라의 눈을 피해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서 총을 밀수한 사실 등 흥미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1만2000원. ◆재상열전-조선을 이끈 사람들(이성무 지음·청아출판사)=황희 신숙주 채제공 유성룡 이항복 최명길 등 조선시대 재상들의 리더십을 다뤘다. 때론 당쟁으로 정국을 분열시키고 국란 속에서 우왕좌왕하기도 했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조선의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1만6000원.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사람으로읽는한국사기획위원회 펴냄·동녘)=가산을 독립운동에 모두 바친 이회영, 대한제국의 쇠락과 함께 죽어간 선비 황현 등의 삶을 통해 참된 보수주의자의 조건을 소개한다. 모두 자신의 시대에 희망을 갖고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1만3000원.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안승철 지음·궁리)=발달신경생리학자인 저자가 딸을 키우며 얻은 경험을 녹여 쓴 수학 발달 지침서.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수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다는 사실, 그럼에도 수학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나이에 맞는 수학적 발달 단계 등을 담았다. 1만3000원.○ 실용 기타 ◆오바마의 서재(마쓰모토 미치히로 지음·책이있는풍경)=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과 어록을 모은 책. 각 연설의 원문과 해석문, 오바마 대통령이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책을 함께 수록했다. 1만2000원. ◆행복한 슬럼학교(윌 랜달·갈라파고스)=영국 런던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저자가 우연히 인도로 떠나 고아들의 학교 선생님이 됐다. 부유층의 반대로 학교 연극공연이 무산돼도 여전히 도전하는 아이들의 감동적인 실화를 담았다. 1만1000원. ◆조금만 더 하루만 더(지타 아난드 지음·시공사)=세 아이 중 둘째와 셋째 아이가 잇달아 폼페병 진단을 받자 아버지는 직접 바이오테크놀로지 회사를 설립하고 치료제 개발에 나선다. 경영에 문제가 생기고 아이들 병이 악화되는 난관을 극복하고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 1만3500원.}

“오늘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가 대표 저서 ‘존재와 시간’ 서문에서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그는 플라톤 시절부터 등장했음에도 수없이 반복된 탓에 진부하게 여겨졌던 주제, 바로 ‘존재’를 철학의 중심 주제로 다시 불러왔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하이데거의 사상을 파헤친 한국 철학자의 저서 두 권이 함께 나왔다. 이수정 창원대 교수의 ‘하이데거’와 이승종 연세대 교수의 ‘크로스오버 하이데거’다. ‘크로스오버 하이데거’는 영미 분석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대륙철학의 대표주자인 하이데거의 사유를 파고든 책이다. 그런 만큼 하이데거에서 출발해 다시 하이데거로 돌아가는 ‘하이데거’와는 달리 바깥에서부터 하이데거의 사상에 접근한다. 스승이었던 후설, 동시대 사상가였던 비트겐슈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하이데거가 서구 철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저자는 먼저 하이데거가 스승 후설과 어떤 지점에서 차이를 드러내는지 밝힌다. 후설의 개념 ‘지평’은 가공의 문맥에서 제시된 것이지만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는 구체적 인간의 것이다. 후설의 사상에서 우리는 익숙한 인식세계에 머무를 뿐이지만 하이데거의 사상에서 우리는 낯선 영역에 던져진다. 하이데거는 이성중심적 서양 인식론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철학의 대표 사상가. 해석학 전통을 이은 하이데거와는 다른 영역의 철학자이지만 저자는 이들이 결국 공통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 모두 기술시대의 도래, 수리논리학이 인간의 사유를 대체하는 시대를 목도했다. 이들은 수리논리학이 언어를 왜곡하며 이 왜곡의 뿌리는 이 시대 삶의 양식, 서구의 형이상학 전체에서 발견된다고 봤다. 저자는 이처럼 선배, 혹은 동시대 사상가와의 비교를 바탕으로 ‘존재와 시간’에 나타난 도구사용의 현상학,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사유 등 하이데거의 핵심 사상을 탐구한다. 이수정 교수의 ‘하이데거’는 하이데거가 탐구했던 핵심 개념인 ‘존재’를 내세워 하이데거의 현상학 존재론 시대론 문예론 등 그의 사상세계 전반을 꿰뚫는 책. 특히 하이데거 사유의 현재적 의미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 예로 하이데거는 존재를 ‘현존재의 존재’ ‘도구적 존재자의 존재’ ‘사물적 존재자의 존재’로 나눠 생각했다. 저자는 이 사유 안에서 현대 환경문제에 대한 통찰을 찾는다. 인간은 자연을 단순한 사물적 존재자로서, 혹은 도구적 존재자로 인식할 뿐이다. 현존재의 존재로서의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자연을 부품으로 인식하는 이 같은 상황이 ‘인간을 그 본질에서 갉아먹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인간은 본질적으로 세계의 다른 구성요소들과 대화관계에 있는데 자신만의 영역에 칩거해 이 관계를 두절시키는 격”이라고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환경문제뿐 아니라 현대기술과 현대학문 등을 비판하면서 현대사회가 고향 상실, 토착성의 상실, 나아가 성찰의 상실 상태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저자가 “우리 후학들이 그(하이데거)를 충실히 뒤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란, 존재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없는 시대, 즉 존재 망각의 시대’라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사회에도 여전히 일정한 울림을 갖는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29일 폐막한 불가리아 바르나 국제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무용수들이 남녀 시니어와 주니어 등 전 부문 우승을 석권했다. 바르나 콩쿠르는 1964년 시작한 세계 최고(最古)의 발레콩쿠르로 스위스 로잔, 미국 IBC(일명 잭슨), 러시아 모스크바 발레콩쿠르와 함께 세계 4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김명규 씨(22)와 박세은 씨(21)는 시니어 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김기민 군(18) 채지영 양(18)이 주니어 부문 금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이들 4명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재학생이다. 올해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김명규 씨는 2년 전 바르나 콩쿠르에선 1라운드 탈락했다. 김 씨는 “우승 소식에 어머니께서 우시더라”며 “동아무용콩쿠르 우승으로 탄력을 받아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세은 씨는 2006년 로잔콩쿠르 그랑프리와 2007년 잭슨콩쿠르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수상해 4대 발레콩쿠르 중 3곳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박 씨는 “야외 콩쿠르인 이번 대회 기간 내내 비가 와서 슈즈가 젖은 채 춤을 추었지만 ‘이게 최고의 상황’이라고 마음을 다스려 즐겁고 여유 있게 춤을 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와 박 씨는 이번 우승에 따라 모스크바발레단 초청으로 11, 12월 미국 70개 도시를 돌며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다. 김기민 군은 2009년 모스크바 콩쿠르에서 금상 없는 은상과 올해 잭슨콩쿠르에서 은상 수상에 이은 세 번째 도전 끝에 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6월 잭슨콩쿠르 금상을 수상한 채지영 양은 한 달 만에 4대 콩쿠르 중 2개를 석권했다. 이 대회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으로는 2006년 주니어 남자 부문에서 최영규 씨가 은상을, 2008년 시니어 여자 부문에서 한서혜 씨(유니버설발레단)가 은상을 받은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예전에 실내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아이스발레 공연을 관람했는데 이번엔 아이스링크가 아닌 일반 공연장에서 아이스발레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무대를 얼려 빙판을 만드나요?(강주영·26·경기 수원시 영통구)A: 바닥에 단열재 깔고 물 뿌린후 얼려 사용 일반 공연장에서 열리는 아이스발레는 정확히 말하자면 ‘무대를 얼리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얼음을 ‘얹는’ 겁니다. 7월 말∼8월 중순 서울 예술의전당과 경기 군포시문화예술회관 등에서 열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이스발레단 공연에서는 러시아 기술진이 방한해 직접 무대 빙판을 설치합니다. 러시아 기술진이 보유한 이 기술은 ‘얀츠멧’ 공법이라고 불립니다. 아이스링크를 설치하는 과정은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첫 단계로 무대 바닥에 플라스틱 소재로 된 바닥 안전장치를 깝니다. 그 뒤 높이 20cm, 가로 12m, 세로 11m 크기의 나무로 된 아이스링크 틀을 설치하죠. 다음 단계로 무대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을 막아줄 스티로폼을 깐 뒤 플라스틱 시트 세 겹, 그리고 고무매트를 깝니다. 고무매트에는 튜브 관이 엮여 있어 그 안에 물과 부동액을 채울 수 있습니다. 한여름에 사용하는 이른바 ‘쿨매트’나 ‘아이스팩’처럼 늘 차가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죠. 이 고무매트 위에 작은 얼음조각을 깔아 높이를 맞추고 그 위에 약 5분간 물을 뿌리면 물이 얼면서 표면이 어느 정도 평평하게 됩니다. 그 뒤 약 12시간 동안 20분마다 한 번씩 물을 분사해주면 이 물이 살얼음 얼 듯 얇게 얼면서 스케이팅하기에 가장 좋은 빙질이 된다고 합니다. 물을 분사하는 과정이 모두 끝난 뒤 얼음의 두께는 65mm 정도입니다. 링크 틀을 설치하는 데 4시간, 얼음이 모두 언 뒤 링크 표면을 매끄럽게 가는 데 4시간이 드니 총 20시간 이상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공연 뒤에는 스케이트날에 얼음이 갈리기 때문에 물을 분사해 얼리는 작업을 다시 합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고전발레 레퍼토리인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신데렐라’입니다. 악셀이나 살코점프 같은 피겨스케이팅 기술과 발레의 팔동작을 결합해 안무를 짰다고 하네요. 안무와 출연진들의 훈련은 1960, 70년대 주로 활약했던 발레리노로 러시아 공훈예술가이기도 한 콘스탄틴 라사딘이 맡고 있습니다. 본래 아이스쇼 의상은 가볍고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소재를 사용하지만 아이스발레 의상은 벨벳 같은 무거운 소재로 의상을 만들기 때문에 스케이팅을 하다 의상이 젖으면 무게가 10kg까지 나갑니다. 무대장치 역시 바퀴 대신 스케이트날 위에 얹어 움직인다고 합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연극 뮤지컬 무용 클래식 등을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팬텀(phantom@donga.com)에게 e메일을 보내주세요. 친절한 팬텀씨가 대답해 드립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23일 일본 내각부를 방문해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관방장관에게 제출했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위원장 김원웅)는 이날 “일본 시민단체인 일조협회의 주선으로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의궤 81종의 반환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