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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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97%
사설/칼럼3%
  • [송평인 칼럼]누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했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게 불편하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제왕적 통치에서 벗어나라고 했지, 청와대를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가 국민을 들먹이며 스스로 안 들어가겠다고 한 것이지 국민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청와대가 공원이 되지 않아도 그 일대는 충분히 좋다.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청와대 정문 앞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서울 최고의 산책길 중 하나다. 성곽길을 따라 청와대 뒤편 북악산으로 오르는 길도 잘 조성돼 있어 굳이 경복궁역에서 출발해 청와대를 통해 올라갈 필요도 없다. 궁의 뒤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경복궁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자칫 흉흉해질 수 있는 공간에 사람 사는 활력을 불어넣는 곳이 24시간 불 켜진 청와대다. 그곳을 비워 공원으로 만드는 게 좋은 것인지 의문이다. 윤 당선인이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을 때 경호 보안 등의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서 있는 줄 알았다. 전혀 없었는데도 호언장담을 했다. 그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한 이유는 소통이었다. 그러나 그 팀은 이미 청와대에 대통령 집무실이 비서동에 자리 잡고 기자실과도 가깝다는 기본 사실도 몰랐다. 그런 팀이 최초 아이디어 이후 닷새 만에 결정한 용산 시대가 졸속이 아니라고 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여론조사 결과 용산 이전에 58%가 반대를, 33%가 찬성이다. 윤 당선인은 500억 원이면 이전이 완료될 것처럼 말했다. 다음 날 합동참모본부를 남태령으로 옮기는 데 1200억 원이 든다는 발표가 따로 나왔다.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짓는다면 또 큰돈이 들어갈 것이다. 정말 그 돈만 들 것인지도 의문이다. 승효상 유홍준 씨 등 문재인의 친구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청와대 흉지(兇地)론을 들먹였다. 청와대 옛 본관이 있던 수궁 터는 예로부터 길지(吉地)로 꼽힌다. 그래서 일본의 조선총독이 그곳에 관저를 지었다. 대통령들의 불운은 청와대가 흉지여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잘못해서다. 대통령 개인과 달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 길지여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미사일 시대다. 이런 시대에 북한 쪽으로 가파른 북악산이 솟아 있고 양 측면으로 대공 방어망을 구축할 수 있는 산들에 둘러싸인 청와대야말로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입지할 최적의 장소다. 10년 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하고 5년 전 광화문 시대를 추진한 원조는 문 대통령이다. 광화문 시대는 문 대통령도, 윤 당선인도 실패했다. 당초 천혜의 길지를 두고 광화문으로 간다는 구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고 그 잘못된 구상이 다시 용산으로 간다는 더 잘못된 구상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안보 공백을 이유로 윤 당선인의 용산 구상에 제동을 걸었다. 임기 내내 한미 연합훈련을 지휘소 훈련으로 대체하고 연대급 이상 기동훈련을 없앤 대통령이 안보 운운하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고 문-윤 만남을 앞두고 인사 뒷거래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소문도 있지만 안보 공백이라는 빌미를 준 데는 윤 당선인이 책임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특히 안보와 같이 빈틈이 없어야 하는 일에는 시간이 걸려도 순서를 밟아야 한다. 용산 시대를 열려면 남태령의 수방사가 먼저 이전해야 하고, 이전 완료 후 문제가 없음이 확인될 때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전해야 하고, 다시 이전 완료 후 문제가 없음이 확인될 때 국방부가 합참 자리로 들어가고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이 시작돼야 한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의 예비비 지출 결정을 몽니로 여기고만 있지 말고 지나치게 성급히 추진된 용산 시대 구상을 시간을 갖고 숙고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취임 이후 용산 집무실이 완공될 때까지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일하겠다는 무모한 고집은 접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청와대를 잘 알지 못한다. 일단 청와대로 들어가서 경험해보라.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자세로 무슨 실사구시적인 개혁을 하겠는가. 간혹 토리와 함께 경복궁 주변을 산책하고 간혹 광화문에 나와 식사도 하면서 국민과의 소통도 시도해보라. 윤 당선인같이 혼밥을 싫어하는 성격이 해봐도 안 되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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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

    40대 이상은 알랭 들롱을 ‘아랑 드롱’이라고 불렀다. 그레고리 펙이니 리처드 버턴이니 하는 미국 할리우드 미남 배우들의 이름은 몰라도 이 프랑스 배우의 이름은 알았다. 지금 6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를 개봉 영화관이 아니라 TV 영화를 통해 봤을 뿐인데도 그렇다. 한국인에게 미남 배우의 대명사는 알랭 들롱이다. ▷들롱의 첫 히트작은 주제음악으로도 유명한 ‘태양은 가득히’(1960년)다. 자신이 한 거짓말을 사실처럼 믿는 병을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영화에서 들롱이 맡은 리플리 역에서 나왔다. 하지만 들롱 하면 역시 ‘누아르(범죄)’ 영화에서 트렌치코트의 깃을 세우고 중절모를 푹 눌러쓴 냉혹한 범죄자 연기다. 장폴 벨몽도와 같이 나온 ‘볼사리노’(1970년), 장 가뱅과 함께한 ‘암흑가의 두 사람’(1973년)이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있었다. ▷들롱은 젊었을 때 독일 미녀 배우인 로미 슈나이더,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객원 멤버인 니코와 염문을 뿌리고 70대에도 20대 여성 모델과 동거했지만 결혼은 1964∼69년 여배우 나탈리 들롱과 한 것이 유일하다. 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앙토니다. 지난해 나탈리가 췌장암에 걸렸을 때 안락사를 시도했다. 그때 이 아들이 어머니를 끝까지 모셨다. 아들은 19일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죽게 되면 안락사를 택할 텐데 그때 끝까지 곁에 있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그러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들롱은 1999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해 이후 스위스에 살고 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의 이주는 프랑스의 많은 부자들처럼 ‘부유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가긴 갔으나 안락사가 맘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들롱은 나탈리가 죽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누구나 어느 나이가 되면 병원을 거치지 않고 수술 자국 없이 조용히 사라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들롱의 나이 올해 87세다. 그는 2019년 뇌졸중을 겪었지만 아직 건강하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유명인의 안락사 결심이 하나둘 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2016년 일본 인기 TV 드라마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가 한 월간지에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글을 게재해 우리나라에서까지 화제를 모았다. 안락사를 뜻하는 에우타나시아(euthanasia)를 그리스 어원으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란 뜻이다.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름답지 않은 죽음을 피하려는 욕구는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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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샤이 이재명’

    근래 우리나라 여론조사에서는 ‘샤이 보수’보다는 ‘샤이 진보’가 조사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20대 총선(2016년)에서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나뉘어 여당이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압승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결과는 크게 빗나갔다.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122석)에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 ▷이듬해 19대 대선(2017년)은 탄핵 직후의 선거로 ‘샤이 진보’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5년 뒤인 이번 대선에서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실시돼 본투표 직후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적게는 3.1%포인트, 많게는 7.6%포인트까지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투표 결과는 0.73%포인트 차의 신승(辛勝)이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며칠 동안 윤 후보에 대한 여론을 불리한 쪽으로 크게 바꿀 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샤이 진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대선이나 총선 국면에서 수백 번의 여론조사가 이뤄진다. 전국 단위에서 몇몇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대선 여론조사는 많은 지역구의 많은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총선 여론조사보다 정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선 여론조사는 그렇지 못했다. 공표금지 기간 직전 실시된 17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막판 단일화 전 안철수 후보가 포함된 대결임에도 15개에서 이 후보를 앞섰고 그중 4개에서는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섰다. ▷20대 총선에서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이 쟁점이 된 후 21대 총선(2020년)부터는 휴대전화 안심번호의 이용이 가능해졌다. 그 때문에 21대 총선 여론조사는 20대 총선보다 정확해졌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과연 그런지는 더 검토가 필요하다. 당시 여론조사는 어느 지역구에서는 더 정확했고 어느 지역구에서는 더 부정확했다. 전국 단위의 몇몇 후보에게 조사가 집중되는 이번 대선 국면에서 그 정확성이 다시 입증돼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여론조사는 현대 정치 활동의 기초 자료다.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치 토론이 이뤄지고 정부와 정당은 그 결과에 맞춰 정책을 수정하기도 한다. 안심번호가 이용 가능해져 휴대전화 등장 이후 발생한 샘플링의 난점은 어느 정도 극복됐다. 다만 응답을 거부하는 샤이한 유권자가 있으면 샘플링을 잘해도 체계적인 왜곡이 발생한다. 샤이한 유권자의 응답을 끌어내려면 조사비를 많이 쓰는 수밖에 없다. 싸구려로 막 하는 여론조사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다. 여론조사의 질을 높일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민심(民心)의 방향을 잘못 읽는 후진적 정치 활동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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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문재인 정권에서 ‘완장’ 찼던 언론인들

    문재인 정권 들어 KBS에는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 MBC에는 정상화위원회, 연합뉴스에는 혁신위원회, YTN에는 미래발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법원은 진미위의 운영규정이 위법이라는 판단을 현재 2심까지 내린 상태다. 기자들이 스스로 완장을 차고 동료들을 상대로 조사를 한 뒤 회사에 징계를 요구하고 회사는 그 요구대로 징계하는 모습이 언론사에 들이닥친 인민위원회를 보는 듯했다. KBS에서는 문재인 지지 원탁회의 멤버인 김상근 이사장-양승동 사장 체제에서, MBC에서는 최승호 사장-보도국의 실세로 나중에 사장까지 한 박성제 보도국 취재센터장 체제에서, 연합뉴스에서는 노무현재단 상임중앙위원을 지낸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조성부 사장 체제에서, YTN에서는 자사 출신 최남수 사장이 내정자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때 노조 주도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KBS에서는 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가 기존 이사들을 몰아내고 진미위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진미위 위원장을 맡은 정필모 부사장은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직행해 스스로 진미위 활동의 정치성을 드러냈다. MBC에서는 사측 2인, 노측 2인으로 정상화위원회를 만들었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말이 사측이고 노측이지 실은 한통속이었다. 노사 공동조직이었기 때문에 위원회와 독립한 회사의 견제도 없었다. 그 결과 KBS만 해도 해고는 삼갔으나 MBC는 해고의 칼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YTN 최남수 사장 내정자는 결국 내정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TBS 사장 재직 시 ‘김어준의 뉴스공장’ 프로그램을 만든 정찬형 사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미래발전위원회 구성을 주도한 해직 기자 중 한 명인 우장균은 정찬형에 이어 사장을 했다. KBS MBC YTN은 국영이나 다름없는 공영방송사이고 공기업이 대개 그렇듯이 민노총 언론노조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직원들은 보수 정권이 잡으면 곁눈질로, 진보 정권이 잡으면 정면으로 언론노조의 눈치를 본다. 완장질이 가능한 것은 그런 구조이기 때문이다. KBS MBC야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연합뉴스의 변질이다. 과거 연합뉴스는 언론사들로부터 전재료(轉載料)를 받아 운영됐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국영이나 다름없는 공영통신사가 됐다. 언론사들의 공유체제에서 벗어나자 연합뉴스도 주인 없는 공영방송사를 닮아갔다. MBC에서는 19명이 해고됐다. 이명박 정권 때 불법파업으로 해고된 5명보다 훨씬 많다. KBS에서는 17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명박 정권 초 불법파업으로 징계를 받은 7명보다 훨씬 많다. 연합뉴스에서는 전례 없이 1명이 해고되고 3명이 징계를 받았다. YTN에서만 이명박 정권 때 6명이 해고됐지만 6명을 징계하는 선에서 끝났다. 해고와 징계 사유는 ‘파업에 가담하지 않았다’ ‘사조직을 결성해 직장 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등 정상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법인카드의 경미한 오용 등 걸면 걸리는 사유도 있다. 보도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아 해고나 징계를 했으면 보도가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완장들이 설친 후 보도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편향적이 됐다. 이들 언론사에도 상식적인 기자들이 있으니 정권이 바뀌면 자율적으로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지만 수적으로 열세여서 자정(自淨) 기능이 발휘될지 의문이다. 공영방송사 노조가 민노총에 장악된 상태에서 정권이 진보에서 보수로 바뀔 때 MBC 광우병 보도가 터져 나왔다. 가짜뉴스로 혹세무민하면서 나라를 뒤흔드는 보도가 다시 나올 수 있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처럼 조급하게 사태를 바로잡으려 해서는 불법파업-해직-인민위원회식 보복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완장질의 폐해는 감사와 수사 의뢰로 도려내되 멀리 내다보고 공영언론사의 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 MBC 같은 제2의 공영방송은 과잉이다. 연합뉴스와 YTN은 민영화해야 한다. KBS는 보도 기능을 축소하고 단순화해 전쟁과 같은 국가비상사태 시의 보도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이들 공영언론사가 다 없어도 옳은 판단을 하는 데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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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푸틴의 核 위협

    ‘사탄(악마) 2’라고 불리는 러시아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있다. 프랑스 크기 정도의 국가는 한 방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사탄이라는 무시무시한 코드명을 붙였다. 러시아에서는 ‘RS-28 사르마트’라고 불린다. 블라디미르함은 스텔스 전략핵잠수함으로 수중발사 ICBM 20기를 싣고 수심 400m까지 내려가 잠항할 수 있다. 장거리 전략핵폭격기 투폴레프-160은 이륙 중량이 270t으로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항공기이면서 가장 빨리 나는 전폭기로 통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해체 이후 상호 합의로 전략무기를 감축해 왔다. 1991년 최초로 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했다. 2010년에는 신(新)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했고 지난해 5년 재연장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략무기의 수를 줄이는 대신 전략무기를 현대화하는 방식으로 협정을 우회했다. 2018년에도 최신형 전략무기 6종류를 공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사탄 2’이다. 극초음속 미사일로 지상발사용인 아방가르드와 공중발사용인 킨잘도 그때 공개한 전략무기다. ▷‘사탄 2’와 같은 전략핵무기는 실제 사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억지력으로 존재한다. 그나마 사용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 전술핵무기다. 전술핵무기는 보통 20kt 이하의 폭발력을 가진 소형 핵무기를 말한다. 소형이라고 하지만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각각 15kt과 21kt이었으니 전술핵무기라도 위력은 엄청나다. 러시아의 전술핵무기를 실어 나르는 대표적 신형 발사체가 이스칸데르-M 미사일이다. 불규칙 기동이 특징으로 북한도 비슷한 것을 개발했다. ▷소련 해체 이후의 러시아는 체첸이나 조지아를 침공할 때 재래식 군사력으로 싸우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유사한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전술핵무기 사용이 가능한 쪽으로 군사작전계획의 수정을 거듭해왔다.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재래식 군사력만으로 신속한 점령에 난항을 겪자 핵무기 운용 부대에 ‘특별 경계’ 태세 돌입을 명령했다. ▷작계가 어떠하든 푸틴이 말짱한 정신이라면 함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푸틴의 정신상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래 마초적인 데다 20년 넘게 장기집권하면서 권력이 무소불위 수준으로 커지자 자아도취와 과대망상에 빠져 판단력이 떨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참모들이 견제할 수 있으면 다행이나 독재자 곁에는 늘 독재자를 거스르지 않는 참모들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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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어퍼컷 대 하이킥

    MZ세대 사이에 현타라는 말이 쓰인다. ‘현실 자각 타임’의 터무니없는 축약어다. 어쨌든 그 말은 망상에 빠져 있다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뜻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이긴다면 며칠 안에 현타가 찾아올 것이다. 윤 후보는 한순간도 청와대에서 집무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것부터가 더불어민주당의 OK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꾸리려면 현재 입주해 있는 외교·통일·여성가족부 중 일부가 어디론가 옮겨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을 바꿔야 한다. 여가부를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한다. 모두 민주당이 통과시켜 줘야 한다. 법 개정이 어려우니 외교·통일·여가부를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할 수도 있겠다. 대통령에 맞는 경호와 보안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필요하다.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집무실에 방탄유리를 설치하고 긴급 사태에 대비한 지하벙커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왜 집무실을 옮기느냐는 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그래도 윤석열 부부가 강행하려 하면 청와대 터가 나쁘다고 여겨 옮기려는 게 아니냐는 무속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윤 후보는 취임 100일 이내에 대통령 직속 ‘코로나 긴급구조 특별본부’를 설치하고 자영업자 손실보상에 43조 원, 대출 보증기금에 5조 원을 쓰겠다고 공약했다. 재원 조달이 문제인데 그는 국채 발행 없는 세출 구조조정을 언급했지만 현실감 없는 얘기다. 우리나라 예산 규모가 600조 원 정도다. 이 중 반드시 써야 할 고정비를 뺀 재량 사업비는 200조 원 정도다. 재량 사업비도 사회기반시설(SOC) 투자 계획 등에 따라 다 지출이 예정돼 있어 10%를 깎기도 어렵다. 최대 10%를 깎는다고 해봐야 고작 20조 원이다. 병사들에게 월급 200만 원씩 주고, 아이 출산 시 부모에게 월 100만 원씩 1년간 모두 1200만 원을 주고, 노인 기초연금을 월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는 공약은 민주당이 받아서 ‘묻고 더블로’ 가버리면 국민의힘보다 더한 민주당의 포퓰리즘에 이용되는 꼴만 되고 만다. 주식양도세 폐지 같은 법 개정이 필요한 공약은 민주당이 반대하니 될 리가 없다. 윤 후보는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수사권을 재조정하겠다고 했으나 민주당이 반대하기 때문에 공허한 약속이다. 그러고 보면 윤 후보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검찰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비리를 수사하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윤 후보가 박근혜 정권에 적용한 직권남용죄의 기준을 문재인 정권에 적용하면 기소될 자들이 수두룩하다. 사실 박근혜 탄핵에 앞장선 윤 후보를 박근혜 지지자들이 지지해준 데는 그가 박근혜를 수사한 그 기준으로 문재인도 수사해달라는 암묵적 기대가 담겨 있다. 윤 후보가 그 기대를 저버리면 국민의힘 내에서 이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 기대를 충족시키려 하면 민주당과의 동물적 대결이 불가피하다. 윤석열의 어퍼컷과 이재명의 하이킥은 그런 대결의 예고편이다. 민주당은 민노총 등과 연합해 제2의 광우병 사태, 제2의 촛불시위를 일으킬 수 있고 국회 의석을 바탕으로 제2의 탄핵도 추진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탄핵소추와 심판이 엄밀함을 잃어버려 여소야대(與小野大)하의 대통령은 언제든지 탄핵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민주주의는 과반(majority)의 지배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50% 이상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은 정권교체 의지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회의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는 것은 정권교체의 완성이 아니라 정권교체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경우는 정권교체가 정부 권력만이 아니라 국회 권력을 교체해야 완성된다. 야권 전체가 주도면밀하고 단합된 힘으로 헤쳐가야 할 험난한 2년이 남아 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오만불손해진 국민의힘이 야권연대를 차버렸다. 권력에의 의지를 넘어 권력에의 탐욕을 날것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은 80대가 당권을 쥐건 30대가 당권을 쥐건 세대를 넘어서도 변하는 게 없다. 이따위 정당에 정권을 넘겨주려고 국민들이 애썼나 하는 회의가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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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가짜 깃발 작전

    공산당이나 파시스트가 일으키는 전쟁에서는 가짜 깃발 작전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독일이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날 SS대원 7명이 폴란드인을 가장해 국경 인근의 독일 라디오 송신탑을 장악하고 그 사실을 알리는 방송을 내보냈다. 히틀러는 자국 시설이 공격받았다며 폴란드를 침공했다. 같은 해 핀란드와의 국경에 위치한 한 러시아 마을이 포격을 받았다. 소련은 핀란드군이 포격을 한 것이라며 핀란드를 상대로 겨울전쟁을 개시했다. 포격은 실은 소련 보안기관의 자작극이었는데 소련 해체 이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비로소 그 사실을 시인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는 러시아 군복을 입었지만 부대 기장을 달지 않은 사람들이 무장한 채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에 나타났다. 러시아는 그들이 우크라이나의 지배에 반대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군인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번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앞서 가짜 영상을 만들어 뿌리는 작전을 펴고 있다. 영상 속에는 돈바스 지역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탄 공격을 받고 러시아계 주민들이 러시아로 피란하는 모습이 담겼다. ▷가짜 깃발이란 말은 해적들이 상선에 접근하기 위해 그 상선에 우호적인 나라의 깃발을 건 데서 비롯됐다. 가짜 깃발 작전은 나중에 국제해양법에 의해 해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가짜 깃발을 걸고 공격한 직후에는 즉시 진짜 깃발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도 진짜 깃발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둘러싸고 공격 준비를 끝낸 지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해서 얻을 게 없다. 군사력도 러시아에 비해 턱없이 약하다. 세력 관계에 비춰 우크라이나의 선제공격은 날조다. 그러나 러시아의 자작극 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측 도발에 피치 못해 한 대응을 우크라이나의 선제공격인 양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면 보는 이들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2014년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번에는 당하고 있을 수만 없다고 판단했는지 러시아가 제작하는 가짜 영상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공개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스관 폭파 자작극에 이어 화학공장 폭파 자작극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전 세계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을 통해 한쪽에서는 가짜 영상을 뿌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짜임을 폭로하고 있다. 누가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이 미래형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인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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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벽을 뚫고 간’ 황대헌

    중국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1000m 준결선 경기에서 황대헌 선수가 1, 2위로 앞서가던 중국 선수 2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만 애국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님은 생중계하던 미국 NBC 방송의 해설자도 놀라면서 ‘교과서적인 (완벽한) 추월’이라는 찬사를 보낸 데서 드러난다. 그러나 황 선수는 그 장면 때문에 실격됐다. 중국 선수들이 그 덕에 결선에 올라 금·은메달을 따자 ‘이따위 경기는 해서 뭐하나. 차라리 보이콧하고 돌아오라’고 할 정도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누구보다 실의에 빠졌을 사람은 4년간 피땀 흘려 훈련해온 황 선수 자신이다. 그는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나중에 얘기할게요’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의 시간을 그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날 밤 그의 인스타그램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마이클 조던의 말이다. ‘장애물이 너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벽에 부닥쳤을 때 포기하고 돌아서지 마라. 벽을 기어오르든, 벽을 뚫고 가든, 벽을 돌아가든 방법을 찾아라.’ ▷다른 사람 같으면 심판을 탓하고 중국을 탓할 시간에 그는 방법을 찾았다. 이틀 뒤 1500m 경기에서 찾은 답을 보여줬다. 그는 뒤쪽에서 기회를 엿보다 결승선을 9바퀴 남기고 치고 나가 순식간에 선두로 올라섰다. 여기까지는 늘 하던 것이다. 이후 9바퀴를 계속 선두에서 도는 건 체력이 바닥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판정 시비를 초래할 접촉을 아예 피하기 위해 그 방법을 택했다. 마지막 바퀴에서 그는 극한의 질주를 하는 듯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더 이상 체력이 아니라 분노의 힘으로 달리는 듯했다. ▷그가 금메달을 따자 한국 선수들이 늘 반칙으로 메달을 딴다고 우기던 중국은 야단맞은 학생처럼 조용해졌다. 한국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것 봐라’ 할 여유를 갖게 됐다. 그럼에도 황 선수의 실격 사유인 ‘접촉을 일으킨 뒤늦은 추월(late pass causing the contact)’이 과연 있었는지 국제재판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밝혀야 한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내려오는 사다리 같은 건 없다. 조던처럼 부단히 노력해서 실력을 쌓는 사람에게만 벽을 극복할 길이 보인다. 벽이 나타나면 그 벽을 극복하기 위해 실력을 쌓고, 다시 실력을 쌓다보면 새로운 벽이 나타나도 그 벽을 극복할 길이 반드시 생긴다는 사실을 23세의 젊은이가 보여줬다는 점이 장하다. 그런 정신이라면 어느 분야의 어떤 벽도 극복하지 못할 게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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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뫼비우스의 띠에 갇히지 않는 정권교체

    조국 부인 정경심 씨의 자녀 입시 서류 조작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한 번 하고 마는 표절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 번 하고 마는 서류 조작도 없다. 한 번 하면 반드시 다시 하게 돼 있는 게 표절이고 조작이다. 7가지 서류 조작이 최종적으로 확인됐다. 그럼에도 조국 부부만 탈탈 털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조국 지지자들에게는 그게 불만이었다. 조국에게 분노한 사람들에게도 사실 그게 불만이다.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리의 일각이 드러나면 그 밑의 빙산을 파헤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에게 ‘마음의 빚’ 운운하며 막았다.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조국 찬반으로 나뉘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했고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조국 가족의 비리는 좌파에도 우파에서처럼 똘똘 뭉친 권력 집단이 형성됐음을 보여준다는 심장(深長)한 의미를 갖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품앗이 조작이 일부 교수들끼리는, 혹은 일부 법조인들끼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기득권이 아니라 두 기득권을 그려봐야 한다. 두 기득권 사이에서 핑퐁처럼 오가는 정권교체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권교체가 아니다. 조선 영조 때 유수원이란 뛰어난 실학자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본래 천민이 아닌 한 누구나 벼슬아치가 될 수 있는 사회였다. 15세기 건국 초만 해도 시골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에서 명신(名臣)이 나왔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벼슬아치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해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구조를 깨기 힘들어졌다. 조국 사태는 정치적 색깔을 빼고 보면 부모의 권력 네트워크에 의해 자녀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사회적 이동성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해 조선으로 치면 16세기 후반쯤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대선의 정권교체가 기득권 사이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기득권을 타파하는 정권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벌어지는 대선 경쟁이 진짜 대결이 아니다. 진짜 대결은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국민의힘 밖의 야권과 연대해 서울과 부산의 권력을 교체한 뒤 대선을 혼자 차지하려 하면서 시작됐다. 그 오만불손한 시도는 안철수를 향해 ‘건방지다’고 한 김종인에 의해 스핀오프(spin off)됐다. 김종인의 격세(隔世) 제자 이준석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다 당 대표’가 돼서는 국민의힘 밖의 윤석열이라는 태풍을 당내로 끌어들여 가두리에 가둔 후 찻잔 속의 바람으로 소멸시키려 했다. 원희룡과의 통화에서 이준석이 ‘그것 곧 정리된다’고 한 말이 그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남아있는 구태(舊態) 세력의 대표자인 홍준표와 구태 아버지들에 대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가득 찬 쇄신파의 대표자 유승민을 누르고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국민의힘에서 정치 신인이 기성 정치인을 제압한 것은 재·보선에 이은 가치 있는 두 번째 승리였다. 파리 떼들은 윤석열에 붙어서 권력을 장악하려 했지만 왕파리는 윤석열의 머리 꼭대기에서 ‘연기’나 시키려다 쫓겨났다. 그러나 어린 왕파리는 여전히 남아서 끝까지 국민의힘 단독으로 정권을 차지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지금은 윤석열과 어린 왕파리가 휴전한 모양새이지만 국민의힘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으면 윤석열을 포위해 손발을 묶으려 할 것이다. 가치 있는 세 번째 승리는 재·보선의 연대정신을 되살려 정치 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것을 매개로 국민의힘 안팎이 다시 연대해 대선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지 않는 정권교체가 된다. 대의(大義)를 저버리고 소리(小利)에 집착해 안철수를 불러낸 사람들은 최소한 그에게 물러나라고 말해선 안 된다. 안철수 입장에서 계산하는 정치공학으로는 자진 철수든 단일화든 얻을 게 없다. 이 정치공학의 한계를 깨려면 얻을 게 있는 쪽이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준석이 주장하듯이 국민의힘만으로도 승리에 자신이 있다면 4자 대결로 가면 된다. 다만 높이 멀리 내다보는 국민들은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에 절실해야 할 이유가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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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하이브리드 전쟁

    기습공격으로 전면전을 유발하는 것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전쟁을 시작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과 여섯 달 뒤인 12월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습은 소련과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초래한 기습공격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도 북한 김일성의 전격적인 남침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과연 이것이 전쟁의 시작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쟁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2001년 알카에다가 납치한 비행기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충돌했을 때 미국인이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범죄와의 전쟁’처럼 비유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불렸던 것은 실제 전쟁이었다. 미군은 곧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쳐들어가서 최근에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고 이라크에는 아직 남아 있다.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34일간이라는 짧은 기간에 벌인 전쟁이었지만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열었다. 전쟁과 평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경계가 애매모호하고 국적을 뛰어넘어 뒤엉켜 싸운다고 해서 하이브리드다. 제2차 레바논 전쟁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면적 도발보다는 단계가 낮은 로켓포 공격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공군으로 헤즈볼라의 은신처를 공격했으나 계속 로켓포 공격을 받았고 레바논에 진입해서는 친(親)헤즈볼라 의용군을 상대하느라 힘들어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장악한 우크라이나 사태도 하이브리드 전쟁의 양상으로 진행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친(親)러시아 우크라이나인이 반(反)러시아 정부에 항거해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포장했다. 실제로는 군복에서 부대 기장을 떼어낸 러시아 군인들이 러시아로부터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는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반군들과 함께 싸웠다. ▷러시아가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배치해 다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얼마 전 정부 홈페이지가 일제히 해킹 공격을 받아 시스템이 마비됐다. 미국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영토 또는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를 공격하는 가짜 영상을 입수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무력 사용에 앞서 사이버의 위력을 최대한 활용한 정보전과 선전전을 펼쳐 상대방의 싸울 의지 자체를 꺾는 것 역시 하이브리드로 개념화되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수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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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샤머니스트 레이디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가 한 유튜브 채널 직원과 주고받은 무속 관련 발언은 씁쓸히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이 직원이 “아는 도사 중 (한 명이)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을 옮겨야 된다고 하더라”고 하자 김 씨는 그런 생각이 도사들 세계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것인 양 그 도사가 누군지도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도 되묻지 않고 “응. 옮길 거야”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김 씨는 “이 바닥에선 누가 굿 하는지 나한테 다 보고가 들어온다”고 떠벌렸다. 유튜브 채널 직원이 “홍준표도 굿 했어요?” “유승민도?”라고 묻자 김 씨는 “그럼”이라고 답했다. 홍준표 유승민 둘 다 굿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굿의 세계에 참과 거짓의 구별이 중요하겠는가. 그 세계는 효험(effect)만이 중요한 세계다. 그러니 허위 이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적어 넣었을 것이다. 김 씨는 “내가 신(내림)을 받거나 한 건 아닌데 웬만한 사람보다 (점을) 더 잘 본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무당을 많이 만난다는 세간의 소문을 굳이 부정하지 않은 채 “무당이 저를 잘 못 보고 제가 무당을 더 잘 본다”는 말도 했다. 김 씨의 자의식(自意識)은 단순한 무속의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무속인이다. 김 씨는 “남편도 약간 영적인 끼가 있거든. 그래서 나랑 연결된 거야”라고 말했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리고 토론에 나오는 건 영적인 끼가 없으면 어렵겠다. 이미 3명의 도사가 등장했는데 그중 무정은 윤 후보도 진즉 알았던 모양이다. 김 씨는 “무정은 남편을 20대 때 만났다. (남편이) 계속 사법고시에 떨어져 한국은행 취직하려고 하니까 ‘너는 3년 더 해야 한다’고 해서 붙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윤 후보를 만나기 전에 알고 지낸 다른 검사의 어머니는 암자 비슷한 걸 차려놓고 점 보는 사람이었다. 굿 하고 점 보는 것 자체를 욕할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도 불교도도 샤머니즘적인 신자가 적지 않다. 교회나 절에 다니면서 복을 비는 것과 굿이나 점을 보며 복을 비는 것이 뭔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별로 없다.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던 어머니들의 정성을 기복(祈福)신앙이라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굿을 하든 점을 보든, 교회를 다니든 절을 다니든 그런 정성으로 훌륭한 삶을 산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김 씨는 허위 이력을 적은 서류가 적지 않게 드러났다. 그의 어머니는 은행 통장 잔액을 위조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 씨는 주가 조작한 도이치모터스에 돈을 빌려준 데 대해 수사를 받고 있다. 그 집안이 검사 사위를 얻는 데 집착한 이유와 무속을 가까이 한 이유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아슬아슬 살아왔으니 늘 불안했을 것이다. 김 씨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직원이 기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자가 아니니 단순히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 사생활로 보호받아야 할 영역을 침해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속한 곳은 위법수집증거라고 해서 사실에 눈감는 법정이 아니라 이면(裏面)의 진실에 관심이 많은 일반 사회다. ‘엎질러진 물’의 책임은 그와 ‘누나 동생’한 김 씨에게 있다. 김 씨가 샤머니즘에 빠졌다는 사실 이상으로 충격적인 건 통화 공개 이후 ‘원더우먼’ 등 영화 포스터에 김 씨 얼굴을 합성하며 ‘걸크러시’하다고 두둔하는 반응이다. 물질주의와 무속의 결합이 김 씨 같은 서울 강남 졸부들에게 이상한 것이 못 되듯 이준석이나 ‘이대남(이십대 대학생 남자)’에게도 그런 것인가. 국민의힘은 이런 반응을 내세워 윤 후보 자신이 그 일부인 샤머니즘의 문제를 뭉개고 넘어가려 한다. 조선 고종 때 민비는 임오군란으로 쫓겨났다가 환궁하면서 박창렬이라는 무녀를 데리고 들어와 국(國)무당으로 세우고 대소사(大小事)를 의논했다. 민비는 그를 언니라고까지 부르며 가까이 했다고 한다. 무녀에게 놀아난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장희빈에 이어 민비, 그리고…. 샤머니스트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사죄로 퉁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납득할 만한 처리가 있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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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화산 폭발 이후 통가

    남태평양의 외로운 섬나라가 천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위력의 화산 폭발에서 살아남아 첫 소식을 전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통가 정부는 18일 화산 폭발 이후 최대 15m 높이의 거대 쓰나미가 통가를 강타했다고 전했다. 통가는 약 17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고 이 중 36개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 다행히 전체 인구의 70%인 10만여 명이 살고 있는 본섬 통가타푸에는 파고가 80cm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통가 정부가 확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3명이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섬들이 있어 인명 피해는 늘어날 전망이다. ▷쓰나미로 망고 포노이푸아 등 작은 섬들에서는 주택 대부분이 파괴됐다. 위성을 이용한 일부 통신만이 가능하고 해저 케이블이 파손돼 인터넷 연결이 끊겼다. 섬 대부분이 화산재에 덮이면서 빗물이 오염돼 식수 공급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했다. 통가에서 가장 가까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지원 채비를 하고 있으나 통가타푸섬의 국제공항 활주로가 일부는 침수되고 일부는 화산재로 덮여 항공기 착륙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통가인들은 공항의 화산재 청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화산재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 항공기 착륙까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도 변수다. 통가는 코로나 청정국이다. 구호가 이뤄져도 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15일 화산 폭발 당시 위성이 찍은 사진을 보면 폭발로 인한 재와 연기가 반경 약 250km로 퍼져갔다, 250km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 정도다. 화산이 폭발한 곳은 통가타푸섬에서 65km 떨어진 곳으로 1912년경 한 번 폭발했던 곳이다. 무인도인 훙가하아파이섬과 훙가통가섬이 5km 너비의 화산 분화구를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었다. 이번에 화산이 폭발하기 2시간 전 분화구가 바닷속으로 푹 꺼지더니 두 섬이 나뉘었다. 폭발은 수면 밑에서 일어났다. 엄청난 폭발력에 두 섬의 일부까지 날아가 버려 두 섬의 높은 지대만이 조금 남아 바다 위로 보이고 있을 뿐이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의를 벗은 건장한 몸을 과시하며 통가 대표팀 기수 역할을 한 스키 선수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선수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태권도 선수로 출전했다. 통가 피지 사모아 등 폴리네시아 문화권에서는 하카 춤이 유명하다. 보는 것만으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용사들의 춤이다. 그들이 재난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리도 뭔가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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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중국 인구절벽

    중국은 사람이 바다를 이뤄 전쟁하는 나라였다. 6·25전쟁 때 압록강 인근에 매복했던 중국군은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끊임없이 밀고 내려왔다. 인해(人海) 전술에 당황한 국군과 유엔군은 한동안 후퇴를 거듭했다. 중국군은 전쟁 발발 약 4개월이 지나 참전했는데도 공식적으로 밝힌 전사자만 18만 명이다. 300만 명이나 참전했으니 실제 전사자는 더 많을 것이다. 미군 전사자 3만6000명과는 비교도 안 된다. ▷마오쩌둥이 ‘사람이 국력(人多力量大)’이라고 말한 나라가 인구절벽에 직면했다. 중국의 2021년 기준 인구는 전년보다 48만 명 증가한 14억1260만 명이다. 2020년만 해도 204만 명이 증가했는데 그보다 고작 4분의 1 수준으로 증가했다. 마오의 대약진운동 실패에 따른 대기근으로 사상 처음 인구가 감소했던 1961년을 제외하면 최저 수준의 증가다. 추이로 볼 때 올해는 감소가 확실시된다. 대기근 때와는 달리 회복이 어려워 인구가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들어선 전환점으로 기록될 듯하다. ▷중국이 너무 많은 인구 때문에 산아제한을 실시한 것은 1973년부터다. 처음에는 완시사오(晩希少) 정책이라고 해서 남자는 25세, 여자는 23세 이후로 늦게(晩) 결혼해, 최소 4년 이상의 터울을 두고(希), 2명 이하로 적게(少) 낳도록 권장했다. 1980년 덩샤오핑은 더 강력한 ‘한 자녀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권장이 아니라 강제였다. 그 결과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졌으나 인구 감소라는 새 재앙이 자라고 있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중국은 2011년 두 자녀를 허용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세 자녀까지 허용했으나 결국 실기했다. 가족과 사회가 하나만 낳아 아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며 키우는 쪽으로 적응해버려 사교육비 등이 크게 늘면서 이제 둘이나 셋을 낳으라고 해도 낳기 어려워졌다. 중국은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젊은층은 감소하는 반면 고령 인구는 늘어나 성장률 저하를 피할 수 없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7%, 14%, 20%를 넘으면 고령화, 고령, 초고령 사회라고 한다. 중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가 됐고 올해 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970년 고령화, 1995년 고령, 2005년 초고령 사회가 됐다. 고령화로부터 고령 사회가 되기까지의 기간이 일본 25년, 중국 22년이다. 기간이 짧은 중국은 일본이 겪은 이상의 후유증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2000년 고령화, 2017년 고령 사회가 됐다. 그 기간이 17년으로 중국보다 더 짧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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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정용진 ‘좋아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용기 있는 기업인이다. 소셜미디어이니까 희화화해서 어린 시절에 흔히 듣고 쓰던 ‘멸공’이란 표현을 썼을 것이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자들이 아닌 한 그 말이 무엇에 대한 비판인지는 누구라도 즉각 알아차릴 수 있었다. ‘멸공’이란 말로 표현된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철 지난 색깔론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외신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들이다. 냉전 이후 사라졌던 전쟁이 돌아오고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유럽 쪽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고 중국의 시진핑은 동아시아 쪽에서 대만을 위협하고 있다. 두 전쟁 위협 모두 집안 자체가 뼛속 깊이 공산주의자인 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푸틴의 할아버지는 레닌과 스탈린의 개인 요리사였다. 시진핑의 아버지는 부주석까지 지낸 마오쩌둥의 동지였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는 사라졌는지 몰라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독재체제로서의 공산주의는 엄연히 살아 있다. 재조산하(再造山河)는 본래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에서 류성룡이 이순신에게 써준 글이다. 세계가 그 성공을 칭송하는 대한민국을 다시 만든다는 주제 넘는 문재인 판 재조산하는 이승만 격하 운동으로 시작됐다. 이승만이 공산화를 막은 것은 그의 모든 과(過)를 상쇄할 공(功)이다. 그러나 1919년을 시점으로 삼은 억지스러운 건국 100주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의 자리는 없었다. 이승만을 제외하고 공산화를 막는 데 기여한 또 한 사람을 꼽으라면 6·25전쟁과 그 전쟁을 전후해 활약한 백선엽 장군이지만 백 장군의 별세에 대통령의 조문은 없었다. 그 대신 자유시 참변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독립군 학살을 방조한 공으로 레닌의 표창까지 받은 소련 공산당원 홍범도의 유해 앞에서는 몇 시간을 서서 경의를 표했다. 북한 김여정의 ‘삶은 소대가리의 앙천대소(仰天大笑)’ ‘겁먹은 개의 요란한 짖음’ 같은 조롱에 문 대통령이 대응하지 않은 건 제가 받은 욕 제가 참는 것이니까 알아서 할 일이다. 북한이 우리 돈 170억 원을 들여 지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파괴했을 때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했다. 김여정이 ‘대북전단 두고 볼 수 없다’고 하자 민주당은 불벼락을 맞은 듯 기민하게 움직여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방해했다. 이후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겠다는 등의 굴욕적인 삼불(三不) 정책을 중국에 약속했다. ‘내로남불’을 주특기로 삼던 그가 중국의 미세먼지에 대해서는 남 탓 대신 제 탓만 했다. 중국 국빈방문에서 10끼 중 6끼나 ‘혼밥’을 하고도, 또 청와대 출입기자가 중국 측 경호원에게 폭행당했는데도 귀국해서는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할 때는 영락없는 조공(朝貢)국의 수장이었다. 지난해 12월 한중(韓中) 간 전략대화에 참석한 인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중국군 상장 출신의 참석자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 본토의 미군이 오기 전까지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이 대만으로 이동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경고했다고 한다. 북한이 한국과 일본을 향해 단독으로 미사일을 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괜히 허구한 날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겠는가. 완전히 무력해지면 경각심도 사라진다. 세계는 우크라이나를 걱정하는데 정작 우크라이나인들은 평온하다고 한다. 애써봐야 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한국은 평온하다.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쏴도 평온하고 극초음속 미사일을 쏴도 평온하다. 우리도 점점 더 무력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다시 중국(China) 대신 중공(CCP·the Chinese Communist Party)이란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기업인이 나서 회사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멸공’을 말하겠는가. 정치인들이 비굴하게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멸치나 콩을 사서 은근히 지지를 보내는 것으론 부족하다. 멸공이란 표현이 과격하다면 승공(勝共)도 좋다. 정 부회장처럼 기죽지 않고 ‘노빠꾸(no back)’ 하면서 선명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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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팬데믹 창업 러시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지만 팬데믹에서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기회가 됐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발생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죽자 노동력이 부족해졌다.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해서 자유농과 농노의 지위가 높아졌다. 상인들도 장기적으로는 파산한 다른 상인들의 재산을 흡수해 자본 축적을 이룰 수 있었다. ▷코로나 창궐이라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도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자라고 있다. 미국에서 신규 사업을 위해 세금 관련 서류를 신고한 사람이 지난해 1∼11월 사이에만 497만 명이었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55%나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1∼12월 미국 창업기업에는 사상 최대인 930억 달러의 투자 자금이 몰렸다. ▷미국 사례를 들자면 뉴욕 기반의 창업기업 ‘블랭크 스트리트’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커피 체인이다. 푸드트럭 형태로 좌석을 없애 비대면 상황에 적응하면서도 임차 비용을 줄였다. 그 결과 스타벅스 등 대형 체인점에 비해 값은 싸면서도 품질은 괜찮은 커피를 판매할 수 있었다. 20대 청년 2명이 2020년 여름 창업했는데 지난해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3차례나 투자를 유치했다. ▷코로나 시대 인류는 온라인 쇼핑 같은 비대면 산업을 성장시켜 코로나에 위축되지 않고 맞섰다. 우리나라의 온라인 거래액은 2019년 8월만 해도 11조2000억 원이었는데 지난해 8월에는 15조7000억 원이 됐다. 40%가량 증가했다. 온라인 쇼핑과 연결된 배달업에서도 많은 일자리의 기회가 생겼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됐다. ▷회사와 직원들은 코로나 기간 중 굳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업무가 무난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는 재택근무를 통해 근무 옵션을 다양화함에 따라 인재 구하기가 수월해졌고 사무실 임차료 등 비용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투잡’의 기회로 활용하거나 출퇴근 시간을 아껴 재교육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런 점은 창업 회사나 그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는 환경으로 작용한다. ▷코로나로 풀린 돈이 투자의 기회를 찾고 있다. 위기는 기회다. 코로나로 실직하거나 영업을 접게 된 경험은 쓰라리지만 기존의 관성적 태도를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파력이 강력한 오미크론은 병세는 오히려 미약해져 독감처럼 변하면서 팬데믹 종식의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동이 트기 전에 가장 어둡다. 어두울 때 밝은 날이 올 것을 믿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성공하는 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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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문과의 위기 그 자체인 이재명과 윤석열

    우리나라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없을 때 많은 문과생들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전공 공부를 등한시했다. 로스쿨이 생기자 그런 현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도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 후 원하면 로스쿨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과가 과거 법학 천하였다면 지금은 경영학 천하가 됐다. 요새 문과생의 상당수는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다.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렇게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를 함께 공부하다 보니 둘 다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고 졸업한다. 미국 대학의 특징은 순수학문과 직업 교육을 분리한다는 점이다. 낮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칼리지(college)에서, 높은 단계의 직업 교육은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에서 한다. 법학과 경영학은 전문대학원에서만 가르친다. 학부에서 순수학문을 한 후에야 계속해서 석·박사 과정을 하든, 아니면 로스쿨이나 MBA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델라웨어대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한 뒤 나중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다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기 전에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해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982년 중위권 대학 법대에 학비에 더해 생활지원금까지 받는 장학생으로 들어가 그 대학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늘려주기 위해 죽어라고 사법시험 공부만 한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악착같은 생존 본능에 법 지식만 갖춘 사람이 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다닌 서울대 법대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윤 후보는 9수를 했다고 하니 20대 청춘을 온전히 사법시험에 갖다 바쳤다는 얘기다. 9수가 가능했던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한량 특유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만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문과의 위기는 단지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로 표현된 그 분야 교수와 학생만의 위기가 아니다. 젊은 시절 인문사회과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정계 관계 재계로 진출해 지도층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위기다. 우리나라 중산층은 그렇지 않아도 교육비로 허리가 휘고 있는데 고등교육을 4년이 아니라 6, 7년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물론 대학의 개혁은 공교육의 강화, 장학제도의 확대 등이 동반돼야 한다. 다만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사회 지도층의 평균 학력 수준이 우리의 석사 수준이라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 10대학에서 철학으로 DEA(후에 master로 통합), 파리정치대(Sciences Po)에서 공공정책으로 마스터(master)를 받은 뒤 고위직 공무원이 되기 위한 직업학교(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다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6년 과정의 함부르크대 법대를 나왔다. 프랑스 대학에서는 리상스(licence)에 3년, 마스터(master)에 2년이 소요된다. 독일 대학은 학위 구분도 없이 기초과정(Grundstudium)과 본과정(Hauptstudium)으로 나누고 합쳐서 평균 6년이 걸리는 본과정까지를 마쳐야 마기스터(Magister) 같은 최초의 학위를 준다. 중요한 점은 리상스나 기초과정에서 입학생의 절반 정도가 탈락한다는 사실이다. 리상스를 통과하면 대개 마스터 단계까지 간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대학을 다녔다’ 함은 마스터나 본과정을 마쳤음을 의미한다. 이 나라들에서 대졸은 우리의 석사 수준인 셈이다. 문(文)·사(史)·철(哲)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인간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진실 추구의 정신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 점이 직업 교육과 다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은 우리 정치의 부박(浮薄)함은 그런 교육의 부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누구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누구는 거짓 서류를 밥 먹듯이 꾸민 집안과 연을 맺는다. 문과의 위기는 취업난 정도로 봐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선진국 문턱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대학 제도의 결함으로 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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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세기의 양심’ 투투 주교

    전기차 테슬라, 스페이스X를 만든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18세가 된 머스크가 인종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외가 쪽 고향인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떠난 다음 해인 1990년 넬슨 만델라가 백인인 빌렘 데클레르크 대통령에 의해 석방됐다. 만델라와 함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철폐를 이끈 단짝이 남아공 성공회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다. ▷만델라는 1994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뒤 투투 주교에게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 위원장을 맡겼다. 투투 주교는 응징적 정의(punitive justice)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정신으로 TRC를 이끌었다. 그의 원칙은 첫째 인권침해를 저지른 가해자들의 자백, 둘째 그들의 기소를 면제하는 용서, 셋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었다. 자백-용서-배상의 프로세스는 이후 국가적 인권침해와 그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됐다. ▷TRC는 친(親)아파르트헤이트 측의 폭력만이 아니라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측의 폭력도 조사했다. 만델라 지지 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행한 고문 등 각종 인권침해 사례도 드러나 ANC의 이미지에 흠이 갔다. ANC가 TRC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가해 기록을 삭제하려 하자 투투 주교는 분노했다. 그는 ANC에 대해 ‘어제의 피압제자가 쉽게 오늘의 압제자가 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 남아공 정치는 만델라 대통령 퇴임 이후 타보 음베키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을 거치면서 표류했다. 이들의 권력남용 행위가 비일비재했다. 투투 주교는 ANC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그는 ‘세기의 양심’으로 불렸다. ▷투투 주교 생애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TRC에서 가해자의 자백을 듣다가 책상 아래로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던 모습이다. 흥이 나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은 백인 성직자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백인 진보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과격했고 흑인 진보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온건했다. 공산주의에는 늘 반대했다. 위엄과 흥을 동시에 지닌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었기에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로부터의 전환기를 순조롭게 넘어설 수 있었다. ▷만델라는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기여한 공로로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마지막 백인 대통령 데클레르크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달 26일 투투 주교가 선종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ANC의 장기 집권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는 가운데 남아공의 한 시대가 마감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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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지체된 과학 대통령의 시간

    얼마 전 노벨상 시상 시즌이 끝났다. 올해까지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대 한국 수상자는 25 대 0이다. 2015년 20 대 0, 2016년 22 대 0, 2018년 23 대 0, 2019년 24 대 0으로 일본은 한 해나 두 해에 한 번씩 수상자를 내는 데 반해 한국은 0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특허출원 건수에서 독일을 제치고 중국 미국 일본 다음의 4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도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이런 순위만 놓고 보면 과학은 몰라도 기술에서는 한국의 성적이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특허출원 건수로 국가의 기술력을 비교하는 건 맹점이 있다. 특허를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은 특허출원을 많이 해도 그 유지에 드는 비용을 감수하면서 특허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만한 기술은 적다. 핵심 기술은 그런 기술인데 그런 기술은 주로 미국 일본 독일이 갖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봤듯이 mRNA을 이용한 첨단 백신은 미국과 독일의 제약회사만 만들어냈다. 특허출원 1위인 중국은 노력했으나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지 못했다. 한국의 기술도 원천 기술이라기보다 주로 파생 기술이다. 원천 기술은 과학이 뒷받침될 때 나온다. 한국은 문화에서는 많은 자랑거리를 갖게 됐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BTS’에 이어 블랙핑크 에스파 등이 빌보드 순위에 오르면서 비틀스 시대의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을 연상케 하는 ‘한국 침공(Korean Invasion)’이 이뤄지고 있다. OTT가 상영관을 대체하는 흐름 속에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더니 ‘지옥’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문화가 발전하는 시기는 대개 과학·기술도 발전하는 시기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기는 그렇지 않았다. 문화의 발전에 반해 과학·기술 분야는 뒤처지거나 오히려 후퇴했다. 빌 게이츠도 주장했듯이 탈(脫)원전 정책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을 방해한다. 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원전이냐 탈원전이냐는 이항(二項) 대립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연은 연속적이고 과학적 사고도 연속적이다. ‘A 아니면 B’라는 사고 속에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보다 안전한 원전’을 위한 자리가 있을 수 없다. 수소차는 원(遠)미래의 차일지언정 근(近)미래의 차는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그린 수소’를 값싸게 얻으려면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수소차를 전기차와 비슷한 근미래의 차로 아는 체하다 결국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대통령은 과학을 몰라도 참모가 과학을 알면 될 것 같지만 문 대통령의 사례는 대통령이 과학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과학에 대해 올바른 조언을 하는 참모를 두지도 못하고, 참모가 올바른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19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나라는 이미 정치 이외에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 필요했다. 경제를 알기는커녕 경제에 대한 감각도 없는 대통령을 뒀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를 맞았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란 말로 대체되고 있다. 산업화와 정보화를 결합시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현상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201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본격화됐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은 과학까지 아는 대통령을 뽑았어야 하는 선거였으나 그러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앞으로의 전쟁은 핵무기가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술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봤다. 미중(美中) 대립의 시대에 한국이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도 과학이다. 이미 두 번의 지체가 있었다. 더 늦기 전에 과학을 아는 대통령, 아니 과학은 잘 몰라도 과학에 대한 감각이 있는 대통령, 아니 과학을 잘 모르고 과학에 대한 감각도 없으면 최소한 괜히 아는 체하면서 간섭하는 것만큼은 삼갈 줄 아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문화가 뭘 해줘서 발전한 게 아니라 놔둬서 발전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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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부다페스트 메모랜덤

    1994년 12월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미국 러시아 영국 대표가 모였다. 이들은 옛 소련의 핵무기를 분산해 갖고 있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세 나라를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시키기 위한 문서에 서명했다. NPT 가입의 대가로 이 나라들이 무력침공을 받을 경우 안보를 보장한다는 약속이 들어갔다. 서명 직후 유엔에 제출된 이 문서가 바로 부다페스트 메모랜덤(memorandum)이다.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미국 소련 다음으로 핵무기를 많이 보유한 나라였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갖고만 있었을 뿐 핵무기 발사를 위한 코드 등은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었으니 온전한 의미에서의 핵무기 보유국은 아니었다. 이런 이유도 있고 해서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을 믿고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겼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할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가 10만 명에 가까운 군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집결시켰다. 러시아가 내년 초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경고했지만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병하는 데는 선을 그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했을 때에 이어 다시 한번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이 종잇조각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메모랜덤의 약자가 흔히 말하는 메모다. 물론 외교적 메모랜덤은 메모이긴 해도 개인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쓰는 메모와는 다르다. 거기에는 서명한 국가들의 약속이 들어있다. 다만 메모랜덤은 의회의 비준을 필요로 하는 조약(treaty)이나 협정(agreement)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을 피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형식이다.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양해각서)처럼 조약이나 협정으로 가기 위한 전(前) 단계로서 작성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관련된 주요 메모랜덤으로는 구한말의 가쓰라-태프트 메모랜덤이 있다.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은 당사국의 의회가 비준했기 때문에 조약이나 협정의 불이행은 의회의 의사를 존중하는 국내 세력에 의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메모랜덤은 그런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메모랜덤은 약속을 불이행하는 국가가 불이익을 받게 할 만한 지렛대가 있을 때는 실효성을 갖는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넘겨주는 순간 그 지렛대를 잃어버렸다. 따져보면 조약이나 협정조차도 그것을 강제할 기관이 없는 국제사회에서는 무시될 리스크를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곤경은 국제 질서의 냉엄한 현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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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진주만 공습 80년

    7일은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80년째가 된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군이 평화로운 일요일을 맞아 휴식을 취하는 사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국 측 함정 16척과 항공기 177대가 파괴됐다. 당시 수장된 애리조나호를 그대로 놔둔 채 그 위에 설치한 기념관에서는 여전히 솟아오르는 기름을 볼 수 있다. 미국은 기습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을 모아 하와이에서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후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세계열강의 하나로 인정받기까지 36년이 걸렸다. 다시 러일전쟁 이후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을 공격하기까지 37년이 걸렸다. 그 사이 1910년 한국, 1931년 만주를 차례로 점령하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과 인도차이나로 진출했다. 이에 미국이 일본을 향한 석유와 철강의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1940년 독일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체결한 뒤 진주만 기습을 강행했다. ▷진주만 기습은 이후 4년간 이어진 태평양전쟁의 시작이다. 미국은 항공모함 3척이 바다에 나가 있어 피해를 면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고 일본은 미 해군 수리시설과 유류 저장소를 미처 파괴하지 않고 돌아간 것이 실수였다. 미국은 남은 전력을 바탕으로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4척과 경항공모함 3척을 격침시켜 반격의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인은 진주만 기습을 미드웨이 해전과 연결시켜 시련을 극복한 승리의 역사로 기념한다. ▷태평양전쟁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끝난다. 일본의 항복은 한국의 광복으로 이어졌으니 진주만 기습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없지 않다. 특히 진주만 기습 80년을 맞는 올해는 중국이 미국과 대결적 자세를 취하며 동아시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란 일본몽(日本夢)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는 마오쩌둥 이래의 중국몽(中國夢)이 대신 들어섰다. ▷중국이 1978년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개방 정책으로 돌아서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시진핑은 미군을 중국 연안의 열도에서 몰아내는 군사몽(軍事夢)을 실현할 해로 올해로부터 29년 뒤인 2050년을 잡고 있다. 중국 연안의 열도에는 일본까지 포함된다. 시진핑은 지난해 홍콩을 사실상 본토로 편입하고 올해는 대만해협에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항공모함에 탑재한 항공기의 기습을 대신해 둥펑(東風) 미사일이 하늘을 나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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