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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칼럼97%
문학/출판3%
  • [송평인 칼럼]윤석열의 정치적 소명의식

    윤석열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후 야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더 키우고 있다. 그가 정치하겠다고 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안 하겠다고 한 적도 없다. 그의 경우는 부정하지 않는다는 게 긍정으로 읽히는 경우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에 의존해 사는 직업정치가와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가, 즉 소명(召命)의식을 가진 정치가를 구별한다. 정치권 밖의 한 분야에서 확고하게 자기 입지를 굳힌 사람이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정치권에 들어오는 경우는 베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 직업정치가와 달리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가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리스마는 본래 신의 은사(恩賜)라는 뜻이다. 정치적 카리스마는 본인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대중의 지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 지지는 은사적이다. 본인이 거기서 시대의 정신을 읽고, 시대의 정신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면 그때의 정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소명으로서의 정치가 된다. 윤석열의 검찰총장 사퇴는 잘했다고 보면서 그의 대권 도전은 부적절하다고 보는 이가 많다는 한 여론조사는 기만적이다. 윤석열을 내쫓고 싶은 문재인 지지 응답자들에 의해 왜곡이 빚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 밖의 인물이 정치에 뛰어드는 데 대한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정치는 직업정치가가 해야 한다는, 그럴듯하지만 근거 없는 사고에 기인하고 있다. 이상적인 정치는 소명의식을 가진 지도자가 직업정치가들을 이끄는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직업적인 정치가들인 운동권 출신에 의해 장악된 정당이다. 이들은 국회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을 장악하고, 전통적으로 전문직이 수행하는 장관직까지 진출해 국회와 정부의 분립 기반을 무너뜨리고, 공기업 임원과 공공기관 단체장직을 약탈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정권 연장에 필사적인 것은 대부분 한 번도 정치 이외의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그래서 정치를 계속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직업정치가들이기 때문이다. 베버는 정치 기자를 현대적 대중 정당에 속한 직업정치가가 생기기 전부터 활동한 최초의 직업정치가라고 봤고, 변호사를 다른 전문직과 달리 정치를 겸할 수 있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정치에 몸담을 수 있는 제1의 직업정치가 예비군으로 봤다. 노무현 정동영 문재인 이낙연 등 민주당 쪽에서 내세운 역대 대선 후보(혹은 예비주자)는 예외 없이 변호사 출신이거나 정치 기자 출신이다. 보수 정당의 위기는 박근혜 탄핵으로부터가 아니라 박근혜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정치 외의 어떤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노련한 직업정치가도 아니었다. 좋은 정당은 정치권 밖으로부터의 충원에 의해 활력을 얻는 법인데 보수 정당은 법관 출신에 대쪽 감사원장으로 통했던 이회창과 기업가 출신으로 성공적인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같은 외부 충원이 박근혜를 기점으로 사라짐으로써 위기를 맞았다. 10년 전 안철수가 별의 시간을 맞았고 지금 윤석열이 별의 시간을 맞고 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고 윤석열도 정치를 한다면 그의 인적 네트워크의 스펙트럼이 좌우로 널리 퍼져 있어 국민의힘과 일정한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간격으로 별의 시간을 맞은 두 사람이 다 국민의힘과 거리를 둔다는 사실이 보수 정당의 진짜 위기를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안철수, 윤석열과의 연대를 통해 유연하게 변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그동안 분명한 소명의식을 보여줬다. 그가 내년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현실적 면이 없지 않지만 ‘야권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전초전부터 승기를 잡아야 한다’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면도 분명히 있음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윤석열에게 소명의식이 있느냐는 것이다. 소명의식이란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를 향해 거듭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갈 힘이다.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일어설 목표가 있어야 소명의식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반기문은 그런 소명의식 없이 거품 같은 인기에 의존해 나왔다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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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박범계를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운 이유

    박범계 법무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동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박 장관이 다닌 고교에 가지 않으면 내가 다닌 고교에 가도록 배정이 됐으니 학교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교 1학년 때 반에 밴드부원이 있었다. 어느 날 자율학습 시간에 하도 떠들어서 내가 조용히 좀 하라고 제지하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그가 교실 거울을 깨 조각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나서 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일단 중단됐다. 휴식 시간에 3학년 밴드부 주장이 밴드부실로 날 불렀다. 학생들은 음악 시간에 음악실에 가다가 음악실 옆 밴드부실로 끌려가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곳에서 혼자 밴드부 주장과 마주했다. 그가 겁을 주다가 “혹시 서클에 가입돼 있느냐”고 물었다. YMCA에 있다고 하자 그냥 가라고 했다. YMCA는 박 장관이 가입한 ‘갈매기 조너선’류의 음성서클 약자가 아니라 국사책에 나오는 황성기독교청년회를 말한다. 하지만 제(祭)보다 젯밥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그중에는 우리 학년 ‘짱’도 있었다. 여학생과 빵집에서 빵만 먹어도 바리캉으로 머리가 깎이던 시절 서울 종로 YMCA회관이나 야외에서 여고 YMCA와 연합집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랑 시비가 붙었던 밴드부 녀석은 3학년 때 반 친구를 칼로 찔러 퇴학을 당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듯 1980년을 전후한 당시는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에 폭력이 만연했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학생을 퇴학까지 시키지는 않았다. 서클 친구가 다른 서클 친구에게 맞고 와 패싸움을 벌였다가 학교에서 나오게 됐다는 박 장관의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최근 거론되는 연예인 체육인 학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심각한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의원님 살려주십쇼’ 한 번만 해보세요.” 박 장관이 국회의원 때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삭감된 대법원 예산을 복원시켜 주겠다며 한 말이다. 일반인은 호의를 베풀 때도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학교 양아치가 친구를 잡아놓고 괴롭히다가 ‘보내줄 테니 살려주세요 한번 해봐’ 하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그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이 얼마나 분노했던지 요구한 예산을 철회해버렸다. 가정이 불우해서 양아치가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개과천선했다는데도 양아치 근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검사들은 아무리 터프해도 범생이들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9수 끝에 사시에 합격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좌충우돌 끝에 정상에 올라 지금은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고 다니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신현수 민정수석 역시 검사 출신답지 않게 술 한잔 들어가면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로맨티시스트이지만 기본적으로 범생이다. 그 범생이들의 구역에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들어와 발생한 것이 최근 검사 인사 사태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해버렸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인데 별거냐 할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그 패싱을 해명할 논리를 찾지 못해 얼버무릴 정도로 이질적인 사건이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을 패싱하면서 그에게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범생이들은 억지 논지로라도 왜 옳은가를 먼저 내세운다. 그래서 범생이이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된다. 양아치들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만을 따지고 우리 편이 아닌 상대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패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은 잘생긴 외모에 예의도 깍듯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위선적인 삶을 살았는지, 지지하는 사람은 믿기 싫고 비판하는 사람은 궁금할 따름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유신 말기에도 홀로 입신양명을 위해 고시 공부에 몰두한 학생이었고 장관으로서 완장질을 할 때도 범생이 티가 역력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박 장관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푸틴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대통령 페트로프가 등장한다. 만찬에서 페트로프의 불편한 행각을 함께 지켜본 뒤 미국 대통령에게 영부인이 이런 말을 한다. “페트로프는 똑똑해. 그러나 양아치(thug)야. 양아치 앞에선 움츠려선 안 돼(Don‘t cower to him).”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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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마지막 프랑스어 독일어 수업이 온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올 2월 현재 서울시 공립고교에 프랑스어 정교사는 6명 남았다. 그나마 4명은 올해 중 정년퇴직하고 나머지 2명은 내년과 후년 각각 정년퇴직한다. 독일어 정교사는 2명 남았다. 둘 다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심각한 정도를 넘어 전멸 위기다. 학생들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우기 싫어해서, 혹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이렇게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해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조사한 ‘교육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쟁점’이란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제2외국어 중에서 학생들의 수업 요구에 비해 교사 수가 적은 불균형이 가장 심한 과목에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속한다. 학생들의 수업 요구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가장 많다. 그러나 프랑스어나 독일어에 대한 수업 요구도 그다음으로는 많다. 과거에는 고교 제2외국어 교육이 프랑스어 독일어로 편향돼 있었다면 오늘날은 중국어 일본어로 편향돼 있다. 그러나 프랑스어는 여전히 제2외국어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르치는 언어이고 독일어는 인문학 분야의 중요한 언어다. 동서양 언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과 비즈니스만 생각하면 영어만 배워도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교역이 많은 나라이므로 영어 외에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알면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언어로서 간체(簡體) 한자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용한 언어가 되기 힘들고 오히려 배울수록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문화의 언어로서 일본어는 어느 정도는 유용하지만 우리의 프랑스어 독일어 능력이 떨어지면 프랑스어 독일어 문헌을 다시 일본어 번역을 통해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고교에서 제2외국어를 배워봐야 얼마나 많이 배우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는 익숙함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영어로 대화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지만 영어는 오래 접해 친밀하게 느끼고 그 친밀감을 바탕으로 사람에 따라서는 더 깊이 공부하기도 한다. 고교 때 접해본 제2외국어는 평생 친밀하고, 접해보지 않은 제2외국어는 평생 낯설다. 낯설어지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어에서 명사 형용사의 성(性)·수(數)·격(格)에 따른 변화(declension)와 동사의 인칭·시제(時制)·태(態)·법(法)에 따른 변화(conjugation)는 영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배우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 때문에 프랑스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남유럽 언어를, 독일어를 배워본 학생들은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 북유럽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고 나아가 서양의 한자(漢字)나 다름없는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제2외국어 과목이 다양해지고 상대적으로 프랑스어와 독일어 수업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한 고교에 한 명의 프랑스어 교사나 독일어 교사를 두기 어려워진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약 5년 전부터는 한 학교 소속의 교사가 교육청 소속의 순회교사로 전환돼 인근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몇 명의 교사마저 퇴임해버리면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 임용고시를 통해 프랑스어와 독일어 교사를 뽑지 않은 지가 20년이 지났다. 대학 사범대에는 불어교육학과와 독어교육학과가 남아 있지만 20년이 넘도록 국공립 교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순회교사 제도라도 유지하려면 올해부터라도 임용고시를 통해 교사를 충원해야 한다. 기간제 교사나 시간강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완에 불과하지 근본적 대책이 되지 않는다. 공립고교보다 훨씬 많은 사립고교의 상황은 더 어렵다. 사립고교에 남아있는 정교사들도 5년 내로 거의 다 정년퇴임한다. 사립학교는 교사 임용권이 교육청이 아니라 각 학교에 있어 순회교사 제도를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청이 지역별로 거점학교를 지정해서라도 교사 채용을 위한 별도의 지원을 하지 않으면 사립고교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교육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 한번 끊어진 맥은 다시 잇기 어렵다.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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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정치권 밖의 정치적 히어로

    안철수가 2012년 문재인을 밀어내고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됐으면 어땠을까.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지고 말았지만 안철수였다면 박근혜를 이겼을까. 안철수가 박근혜를 이겨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탄핵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아니라 누가 됐더라도 박근혜와 문재인보다는 잘했으리라는 회한은 생생한 현실이다. 2012년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파(派)만이 아니라 보수 진영도 안철수를 애송이로 폄하하며 공격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집권 이후 진보 진영은 86세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었다. 안철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 중에서 그런 재편에 거부감을 가진 세력을 대변한다. 보수 진영이 넓게 멀리 내다보았다면 어땠을까. 86세대 운동권은 서구식으로 분류하자면 극좌파에 해당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할 때의 그 좌파가 아니다. 문재인 시대에 들어와 만천하에 드러난 86세대 운동권의 반(反)민주성을 86세대 학생 대중들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정치권력 앞에서 취약하게 조직된’, 그러나 한상진 교수에 따르면 ‘진보적인 중민(中民)’이 바로 학생 대중이었고 안철수는 그 학생 대중의 하나였다 당시 문파와 보수 진영이 안철수를 협공하면서 쓴 ‘애송이’란 말은 직업 정치권의, 정치의 근본이 일상임을 모르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직업 정치권 바깥의 정치적 히어로(hero)에 대해 직업 정치권이 이 정도의 폐쇄성을 드러낸 사례가 없다. 그런 폐쇄성은 어쩌면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실패의 불길한 전조였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세기 중반 이후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 정치가들의 등장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1919년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유명한 글을 썼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관이 전형적인 직업 정치인이겠지만 베버는 기자를 최초의 직업 정치가로 봤고, 전문직 중에서는 변호사를 정치에 반쯤 발을 걸친 직업으로 봤다. 베버의 관점이 훨씬 더 풍부하게 직업화하는 정치의 현실을 잡아내고 있다. 진보 정당으로 갈수록 정치는 직업 정치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진보 정당의 출현이 역사적으로 직업 정치가의 등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 정치는 정치를 직업 정치의 폐쇄회로에 가두지 않고 일상에 토대를 두려는 경향이 강해 직업 정치권 밖에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첫 당선 이래 민주당에 5차례 선거에서 진 공화당이 정권을 되찾아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통해서다. 리처드 닉슨 탄핵 이후 위기에 처한 공화당에 신보수주의로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한국에서도 보수 정치는 군인 박정희와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을 통해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와 달리 이명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한국의 고질적 부동산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 뉴타운 정책만으로도 그는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뛰어나다. 반면 진보 진영의 노무현과 문재인이나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 출신이다. 정치권 밖의 정치적 히어로의 등장은 직업 정치가 아니라 일상에 뿌리를 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안철수만이 아니라 윤석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개념(예를 들어 경제민주화) 사용도 똑바로 못 하는 학자 출신으로 유신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몸담았던 김종인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앉아 노련한 직업 정치인 행세를 하며 정치권 밖에서 다가온 정치적 히어로에게 증오감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실패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 번은 변변한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한 일종의 정치 건달인 유신 공주를 도와 대통령으로 만들고, 한 번은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로서 세상을 바라본 게 고작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해 지난 9년의 한국 정치를 망친 장본인이 그가 아닌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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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분노하라! 자영업자들이여

    일본은 도쿄 등 수도권 일대에 이달 8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휴업보상금으로 하루 6만 엔(약 6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긴급사태 선언 때의 4만 엔(약 40만 원)을 6만 엔으로 올렸다. 이번 긴급사태 예정 기간은 한 달이므로 영업일수를 따져 최대 180만 엔(약 1800만 원)까지 지급한다. 휴업이라고 해도 종일 휴업도 아니고 오후 8시 이후의 휴업이다. 강제도 아니다. 오후 8시 이후 영업을 하는 곳의 명단을 공개해 간접적 압박을 가하면서 오후 8시 이후 영업을 하지 않는 식당 주점 카페 등에 대해서는 휴업보상금으로 휴업을 유도한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라 할지라도 휴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독일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12월 16일부터 부분 봉쇄에 들어가면서 아예 영업을 하지 못하거나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떨어진 업체에 대해 전년도 같은 기간 매출액의 75%까지 보상하는 조치를 취했다. 올 1월부터는 보상 방식이 바뀌었다. 임차료 이자료 등 고정비를 기준으로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0∼50%가 줄면 고정비의 40%, 50∼70%가 줄면 60%, 70% 이상 줄면 90% 지원한다. 지원상한선은 문을 닫은 업체는 월 50만 유로(약 6억 원)이고 매출이 떨어진 업체는 월 20만 유로(약 2억6000만 원)이다. 상한선이 높은 것은 자영업자만이 아니라 중소기업까지 지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서 지난해 11월 24일부터 2단계, 12월 8일부터 2.5단계, 12월 18일부터 2.5단계+α로 방역조치를 강화했다. 정부가 K방역 홍보에 흠이 갈까 봐 긴급사태니 봉쇄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뿐 일본의 긴급사태 조치보다 더 강력하고, 이동의 자유 제한을 빼고 영업의 자유 제한만 놓고 보면 독일의 부분 봉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11월 24일 이후 강화된 방역 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은 일본과 독일에 비해 쥐꼬리만 한 수준이다. 11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3차 재난지원금이 그 보상인데 헬스장 노래방 학원 등 집합금지 업종에는 300만 원, 식당과 카페 PC방 독서실 등 영업제한 업종엔 200만 원이 지급된다. 국회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인천의 한 헬스장 사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임차료가 월 800만 원이라고 한다. 인건비를 빼고도 관리비 렌털비 등 고정비 지출이 월 1200만 원이다. 두 달 가까이 문을 못 열고 있으니 반발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질의했다. 그 헬스장 사장님은 3차 재난지원금으로 300만 원을 받는다. 300만 원은 일본의 닷새 치 휴업보상금에 불과하다. 한 달 고정비가 1200만 원이므로 두 달이면 2400만 원이다. 재난지원금 300만 원을 뺀 2100만 원을 손해 보는 셈이다. 독일의 보상 기준을 그 사장님에게 적용하면 고정비의 90%인 월 1080만 원의 두 달 치인 2160만 원을 보상받는다. 이런 간단한 비교로도 K방역의 성과는 자영업자의 엄청난 희생 위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1차 재난지원금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을 약속한 뒤 총선 후에 지급했다. 예산 14조 원이 들어간 단군 이래 최대 금권선거였다. 김종인 씨가 한 축이 돼 이끌었던 국민의힘도 전 국민 지원에 부화뇌동하는 바람에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향해 금권선거라는 비판도 할 수 없게 됐다. 그 돈은 사실 코로나로 타격받은 자영업자나 실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었다.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도 올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시 전 국민 지급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정치권이 미쳐 돌아간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감염병예방관리법’도 일본과 독일처럼 전염병으로 인한 영업 중단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돼 있다.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구상권 행사로 국민을 협박하는 데만 이 법을 이용하고 있다. 정 총리가 배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총리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가슴만 뜨거워져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라 본인이 자영업자가 된 심정으로 실질적인 보상책을 내놓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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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질 판인 K방역

    미국과 서유럽 등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인간은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대체로 패배했다. 반면 자유와 인권을 완벽히 억압한 중국은 최초의 코로나 창궐국이면서도 성공적으로 코로나를 저지했다. 국가가 억압적일수록 코로나에 잘 대응한다는 법칙에서 K방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감염병예방관리법’은 메르스 사태 이후인 2015년 개정 때 방역독재의 법으로 바뀌었다. 동선(動線)추적권이 도입됐다. 미국과 서유럽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가졌으니 우리가 더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동선추적권만 놓고 방역독재라고 경솔히 말하는 건 아니다. 방역 조사 때 거짓말을 하면 처벌하는 조항도 함께 도입됐다. 범죄자도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는데 범죄자도 아닌 감염 환자나 감염 의심자가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받게 됐다. 방역조사를 받다 보면 누구나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한 학원 강사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면 학원에서 쫓겨나 먹고살 수 없게 될 듯해 거짓말을 했는데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사람마다 숨겨야 할 수백, 수천 가지 다른 종류의 비밀이 있다. 그런 거짓말을 뚫고 나갈 책임은 방역당국에 있다. 동선추적권을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 거짓말을 한다고 처벌하니 그야말로 안보불고지죄에 버금가는 방역불고지죄다. 행정명령으로 손쉽게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도 2015년 신설됐는데 이로 인해 집회·시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권도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대만은 방역 실적이 우리보다 훨씬 좋은 나라다. 그런 대만에서조차 지난달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에 반대해 5만 명이 모인 집회가 열렸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재인산성을 쌓아 쥐 한 마리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학교 문을 닫지 않는 한 교회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교회 문을 카페 문 닫듯이 닫았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영업점에 들어갈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거부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리를 걸을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가 과태료를 물까 걱정해야 한다. 중국에서 식당에 들어갈 때 QR코드를 찍는다고 사생활 침해 운운하던 보도는 우리가 QR코드를 사용하자 싹 사라졌다. 사실 자세히 알면 자랑할 만한 비결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라도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여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라고 아우성이지만 하루 사망자가 수백 명인 비슷한 인구의 나라도 있다. 다만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는 확진자가 증가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증가하는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더 누르면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겠지만 중국처럼 계속 누를 수 없는 이상 다시 풀 수밖에 없고 그러면 전보다 더 튀어 오른다. 지금 돌아보면 확진자가 100명을 넘었다고 야단일 때가 낯설게 느껴진다. 확진자가 수천 명이 되면 1000명을 넘었다고 야단인 지금이 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코로나와의 싸움은 아무리 잘 싸워도 인간이 조금씩 후퇴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외신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후퇴를 거듭하다 드디어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무기를 개발해 코로나와의 싸움에 나섰다. 우리만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육탄전으로 싸우면서 잘 싸웠다고 자아도취에 빠졌다가 낭패에 직면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 ‘실무자는 잘했으나 지도자가 못했다’는 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문재인 대통령도 백신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백신업계의 수준도 따져보지 않고 시간 고려 없이 백신 개발을 강조하며 백신 확보는 뒷전이었다. 그 결과 백신 개발도 못 한 채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을 닭 쫓던 개처럼 쳐다만 보는 꼴이 됐다. 백신 접종이 늦어지면 집단면역이 되는 시기도 늦어지면서 일찍 집단면역이 된 국가와 비교할 때 경제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 외교도 안보도 경제도 제 처지를 모르고 야랑자대(夜郞自大)하다 망쳤다. 방역도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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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공수처는 ‘2021년 체제’의 시작이다

    잡지 ‘창작과 비평’의 평생 독자다. 대학에 다닐 때는 창비가 폐간당해 나오지 않을 때이지만 없는 돈에도 창간호부터의 영인본을 구입해 읽었다. 복간된 후에도 창비를 쭉 봤다. 창비가 선호하는 리얼리즘 문학작품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별로 읽지 못했지만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창비에서 평을 보고 사서 읽었다. 창비의 설립자인 백낙청 씨는 문학평론만이 아니라 사회변혁론도 펼쳐왔다. 백 씨의 변혁론에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변혁론이 진보 진영의 가장 정교한 변혁론이라고는 생각한다. 백 씨는 처음에는 계급모순론에 대항해 분단모순론을 펼쳤고 나중에 북한 세습체제가 문제가 되자 남한의 변혁 과정을 통해 북한의 변혁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과제론을 펼쳤다. 이중과제론은 북한의 변혁 추구 부분이 약하고 그래서 남로당이 북로당에 잡아먹혔듯이 남한의 변혁 세력이 북한을 변혁하기는커녕 북한에 변혁당할 우려가 크다는 게 나의 비판이다. 창비는 문학 중심의 잡지였으나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정치평론을 크게 늘렸다. 과거 창비는 선동적이라기보다는 비판적이었는데 사실 중시의 비판 정신마저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많이 사라졌다. 창비에 광우병과 천안함에 대한 선동적인 글이 대거 실렸다. 그것은 창비의 편집책임이 백 씨 이후 세대로 넘어간 것과도 무관치 않다. 백 씨 자신은 나중에 천안함 선동 등에 대해 자성하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창비가 ‘○○○○년 체제론’을 들고나온 것은 2007년 무렵부터다. 백 씨의 제자 세대들이 1987년 체제를 넘어 남북연합을 목표로 한 체제를 만들자는 의미로 ‘○○○○년 체제론’을 펼쳤다. 백 씨 자신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3년 체제론이란 책을 썼다. ‘내가 보수 신문사 사주라면 잠이 안 올 것’이라는 점잖지 못한 말까지 하고 다녔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으로 꿈은 깨졌다. 그러다 2016년 박 대통령 탄핵 정국이 도래했다. ‘2017년 체제론’이 또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년 체제론’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를 정말로 칠 기회가 왔다고 여겼을 때는 말부터 하지 않는다. 몽둥이를 뒤에 숨긴 채 조용히 접근한다. 그들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적폐청산은 단순히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두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작업이다. 그리하여 김대중과 노무현에서 문재인으로 직접 이어지는 자신들의 역사 발전 궤도를 복원하고 이 궤도를 이승만 집권 이전 해방 전후사의 좌파나 중도 좌파와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배후에 원로 원탁회의라는 게 있었다. 원탁회의의 세 중심 원로가 백낙청 이해찬 함세웅이다. 함 신부는 정치적인 일에 종교인을 동원하는 것 외에 큰 의미는 없다. 백 씨와 이 전 의원이 핵심이다. 백 씨는 이론의 대부이고 이 전 의원은 정치의 대부다. 이 전 의원이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리에 도전했을 때 그의 출마는 의원 선수(選數)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진보 진영 전체가 체제 변혁을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씨는 전당대회 때부터 20년 집권론을 펼쳤다. 그의 말에 따르면 1800년 정조 사후 220년간 지속된 수구 세력의 편향을 극복하려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남북연합이 가능한 체제를 만들려면 최소한 20년의 집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20년을 집권하는 데 꼭 필요한 기구가 공수처다. 이 정권이 왜 온갖 억지와 추태를 부리면서까지, 심지어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공수처 설립과 검찰 파괴에 집착했는지는 높은 역사의 고지에서 봐야 보인다. 공수처는 ‘2021년 체제’의 시작이다. 공수처는 국가의 틀인 형사사법체제의 중대한 변경으로서 헌법 개정을 통하지 않은, 헌법 개정 수준의 변경이다. 문재인 정권은 공수처를 최대한 활용해 2022년 재집권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재집권에 성공하면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를 만든 기반을 향후 20년간 하나씩 파괴해갈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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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추시보 총편집인 후시진 ‘프리스비 후’로 불리는 까닭[횡설수설/송평인]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人民)일보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주로 정기 구독자에게 배달로 전달된다. 반면 런민일보 자회사에서 만드는 환추시보는 가판대에서 주로 팔린다. 대외 문제에 관해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기사로 판매량을 크게 늘려 런민일보 그룹의 수익에 기여한 사람이 환추시보 총편집인(편집국장 격)인 후시진이다. ▷후시진은 외국에서는 악명이 높아 ‘프리스비 후(Frisbee Hu)’로 불린다. 주인이 프리스비 원반을 던지면 개가 달려가 물어오듯이 중국 공산당이 의제를 던지면 가장 앞장서 그 의제를 채택해 애국주의적으로 이슈화하는 데서 그런 별명이 나왔다. 한국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독설을 퍼붓는다. 사설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적극 지지하는 한국의 보수파를 향해 “김치를 먹더니 어리석어졌나”라며 비하하더니 돌연 중국 김치가 국제 표준이라는 황당한 기사를 싣기도 한다. ▷그를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成都)에서 만난 적이 있다. 런민일보가 주최한 한중일+10개국 미디어포럼이라는 자리에서였다. 지난해 8월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시진핑이 후시진의 선전 방식을 칭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언변에도 능했다. 그러나 그 언변으로 한일(韓日) 언론의 홍콩 사태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등 분위기를 고약하게 이끌어갔다. ▷후시진은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0세다. 그는 1989년 베이징외국어대에서 러시아문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런민일보에 입사했다. 입사 직후 소련에 특파돼 소련 해체를 목격했고 1993∼1996년 유고슬라비아 주재 기자로 파견돼 보스니아전쟁을 취재하면서 강력한 공산당 지배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돌아온 해 환추시보 부편집인이 되고 2005년 총편집인으로 승진해 1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후시진이 불륜과 혼외자 문제로 중국 당국에 고발됐다고 대만 언론이 3일 보도했다. 고발한 사람은 여성인 돤징타오(段靜濤) 환추시보 부편집인이다. 후시진이 전·현직 직원 2명과 불륜을 맺어 각각과 혼외자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다. 바로 아랫사람의 고발이라 심상치 않다. 그의 SNS 게시물은 외국 언론에도 종종 보도되고 그가 틱톡 등에서 올린 수익이 엄청나다는 소문도 있다. 중국 관영 매체의 언론인은 다 공산당 소속이다. 이 기민한 ‘프리스비의 개’도 16년을 장기 집권하더니 결국 권력투쟁에 휘말린 모양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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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문재인 정권 하는 짓, 레닌 때와 닮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유사한 드문 선례가 레닌의 체카다. 체카는 ‘전(全) 러시아 특별위원회’의 이니셜인 ‘ChK’를 러시아어로 읽은 것이다. 레닌이 기존의 형사사법체제에서 벗어나 만든 수사기관으로 기소와 재판까지 좌지우지했다. 이후 모든 공산권 국가가 모델로 삼았다. 체카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전 러시아 특별위원회’ 앞에 ‘반(反)혁명과 사보타주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반혁명과 나란히 사보타주가 있다. 레닌이 정권을 장악하고 직면한 곤란한 상황 중 하나가 공무원의 반발이었다. 사보타주는 태업(怠業) 파괴 등의 작업 방해공작을 말한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일부러 느릿느릿 업무를 처리하거나 철로를 끊어 열차가 못 다니게 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보타주다. 체카의 눈에는 레닌의 혁명적 공약을 공무원이 상식이나 적법성을 따지면서 회피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도 사보타주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월성 원전 1호기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담당 부처 공무원이 폐쇄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면 사보타주가 된다. 담당 부처 공무원이 장관의 “너 죽을래”라는 말에 엉터리 근거를 만들었는데 그 사실을 감사원이 밝혀내면 사보타주가 된다.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그것은 엄청난 사보타주가 된다. ‘반혁명과 사보타주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는 다시 ‘반혁명과 사보타주와 투기 분쇄를 위한’이란 수식어로 바뀌었다. 투기란 말은 레닌이 반(反)시장적 정책을 펴다 곡물값이 오르자 쿨라크(Kulak·부농)가 곡물을 숨겨놓았다고 보고(실은 그렇지 않았다) 곡물을 뜯어내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됐다. 시대가 달라도 같은 생각에서는 같은 행동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잘못해 부동산 대란이 일어나자 투기세력을 잡겠다며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의 진정한 혁명은 1917년 2월 혁명이었다. 2월 혁명으로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레닌은 그해 10월 쿠데타로 임시정부를 전복한 후에도 임시정부가 예정한 11월 총선은 치르기로 했다. 레닌을 지지한 러시아 인민들은 볼셰비키만이 총선과 제헌의회를 보장할 세력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레닌은 언론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4분의 1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자 이듬해 1월 제헌의회가 소집된 날 회의장을 청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의장을 쫓아낸 후 의회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렸다. 그날 4만 명의 시민과 공무원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레닌 정권에 의한 첫 유혈진압이 이뤄졌다. 최근 영국의 양자물리학 천재 폴 디랙의 삶을 다룬 과학책을 보다가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디랙과 가까운 이고리 탐이란 소련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대학을 가기 전부터 마르크스주의자로 과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볼셰비키를 위한 시간제 활동가로 일했다. 그러나 제헌의회가 폐쇄되고 그해 여름 다른 모든 정당이 불법화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끼고 과학에만 몰두했다. 적지 않은 러시아인들이 혁명의 배반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배반을 당한 것이다. 한국의 민족해방(NL) 자주파 세력은 러시아 중국 북한의 혁명사를 깊이 연구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현실에 맞는 자신들의 집권 도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공수처’다. 문 대통령은 그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와 징계청구 철회를 요구하는 검사 대부분의 의견을 우회적으로 ‘집단이익’으로 매도했다. 최소한의 상식적인 법무행정과 수사와 감찰의 적법한 절차에 대한 요구를 사실상 사보타주라고 폄하한 것이다. 집권 초 특활비에서 나온 ‘100만 원 돈봉투’를 트집 잡아 서울중앙지검장을 몰아냈다. 지금은 대리인인 추미애 법무장관을 통해 ‘사찰 같지도 않은 것’을 사찰로 몰아 검찰총장을 쫓아내려 한다. 이유라도 이유 같으면 그나마 봐주겠으나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체카가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사소한 트집 잡기로 공무원을 몰아내고 가두는 것이었다. 현 사태는 공수처가 설치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금태섭 전 의원은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촛불혁명을 말하는 모양이다.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영원히 배반당하기 전에 막을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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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의 신 마라도나[횡설수설/송평인]

    펠레와 마라도나 중 누가 더 뛰어날까. 답하기 어렵다. 다만 펠레는 TV 축구중계가 활발하지 않던 시대에, 마라도나는 활발해진 시대에 살았다는 차이가 있다. 펠레의 뛰어남은 당대의 선수나 관중의 전언을 통해 주로 알려질 뿐이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전 세계의 축구팬들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술을 직접 보여줬다. ▷1986년 월드컵의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8강전, 후반 6분경 마라도나는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어 골을 넣었다. 심판이 반칙을 알아차리지 못해 득점으로 인정됐다. 야유가 쏟아졌으나 마라도나는 3분 뒤 이를 깨끗이 잠재우는 골을 넣었다. 중앙선 부근에서 시작한 단독 드리블로 잉글랜드 골키퍼까지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은 것이다. 2 대 1 승리로 경기가 끝난 뒤 마라도나는 핸드볼 반칙 골은 신의 손이 약간 작용해 만들어낸 골이라고 말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반영(反英) 감정을 갖고 있는 아르헨티나인 중에서는 마라도나가 신들린 듯한 발로 넣은 골을 본지라 신의 손이 작용한 것처럼 느낀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경기가 열린 6월 22일은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사이비종교인 마라도나교의 오순절이 되기도 했다. ▷축구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마라도나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였다. 마라도나가 1984년 이탈리아 SSC 나폴리로 이적했을 때 그 팀은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에서 강등권에 있었다. 이런 팀을 이끌고 그는 리그 정상을 차지한 데 이어 유럽 프로축구팀의 월드컵인 유럽축구연맹(UEFA)컵까지 차지했다. ▷사람은 성공한 바로 그것으로 망하기도 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가 하필 나폴리에서 맞붙었다. 나폴리에서 신처럼 추앙받던 마라도나는 “나폴리 주민은 나와 아르헨티나를 응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라도나가 지역 갈등을 이용해 이탈리아 국민을 이간질했다는 비판이 득세하면서 사법당국이 그의 마약 복용과 매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마라도나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아르헨티나로 쫓겨났다. 그 후 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한 에필로그였다. ▷마라도나가 볼을 잡으면 서너 명의 선수가 그에게 달려든다. 압박축구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그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전술이다. 키도 크지 않은 그가 황소 같은 힘과 발레리나보다 정교한 발재간으로 압박을 뚫고 나가는 장면은 일리아드나 삼국지의 영웅들이 적진을 뚫고 가는 것 같다. 마라도나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라시아스 디에고! 그는 떠났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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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평도 도발 10년[횡설수설/송평인]

    10년 전 오늘 아침 신문에는 전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섬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장면을 인근 여객선에서 찍은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사망했다. 주민 중에서도 2명이 죽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6·25전쟁 이후 민간인이 북한으로부터의 직접 공격을 받아 사상한 첫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의 회고록 ‘임무(The Duty)’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전투기를 동원한 보복을 계획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만류로 대응수위를 낮췄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자신의 회고록에 “연평도 상공까지 출격했던 F-15 전투기 2대를 활용해 보복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군 관계자들이 ‘미군과 협의할 사안’이라며 행동을 주저했다”고 썼다. 출격한 F-15 전투기에는 공대지(空對地) 미사일도 달려 있지 않아 즉각 보복은 불가능했다. ▷이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북한이 200발을 쐈다는데 우리는 왜 80발만 쐈느냐”고 질책했다. 그러자 김 장관은 “200발은 추정 수치이고 실제 육지에 떨어진 포탄은 70∼80발 정도로 추정돼 교전수칙에 따라 80발을 쐈다”고 답했다. 교전수칙이 예상하지 않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1 대 1 대응만 내세웠으니 답답한 국방장관이라 하겠다. 이후 대응사격은 3∼5배로 늘었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가 된 후 그해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등을 일으켰다. 김정일이 쇠약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잇따랐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감행한 도발로 전문가들은 본다. 김정은은 이듬해 집권한 후에는 주로 핵실험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김일성이 1960년대 후반 김신조 침투 등 미국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 부를 정도의 잇단 도발을 일으키다 1970년대 들어 7·4 남북공동성명을 전후로 땅굴 파기로 전환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과 비슷하다. ▷서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씨(60)는 10주기를 맞아 아들에게 쓴 편지에 “너를 생각하면 매일같이 마음이 아팠고 억울했고 그리웠다”며 “북한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받아내지 못했는데 벌써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도발이 잊혀질 때가 위험한 때다. 북한이 핵전력을 갖춘 후의 도발은 한층 더 대담할 수 있다. 평화를 외치다 평화를 믿어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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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측은지심마저 정치적인 대통령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보면 미술평론가 최열의 ‘옛 그림으로 보는 서울’이 눈에 잘 띄게 진열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다’며 이 책을 소개했다. 지금은 사라진 옛 서울의 모습을 조선시대 회화를 통해 찾아본 책이다. 문 대통령은 “그림과 해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노라면 읽고 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부동산정책은 수습 불가 상태로 가고 있어 집 없는 자들의 분통을 자아내고 추미애의 목불인견(目不忍見) 추태는 끝날 기약 없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실종된 서해 어업지도원에 대한 북한군의 잔혹한 사살까지 겹쳐 나라가 뒤숭숭했는데 대통령만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한가한 책 추천이었다. 그 책은 최 씨가 8년 전 펴낸 ‘옛 그림 따라 걷는 서울길’을 확대·보완한 것으로 완전히 새로운 책이라 할 수 없다. 혼자만의 감상이면 모르되 추천으로서는 철 지나도 한참 지난 소리를 한 셈이다. 북한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에 대해 어업지도원의 아들이 문 대통령에게 진상 규명을 호소하는 편지가 공개된 것이 지난달 5일이다. 문 대통령은 열흘쯤 뒤인 14일 답장을 보냈다. 답장은 손글씨로 쓴 것이 아니라 타이핑한 글에 전자서명한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미국 대통령도 위로의 편지는 손글씨로 쓴다. 비서진이 써준 걸 옮겨 적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예의다. 손편지 하나 쓸 여유가 없었던 대통령이 자신이 사는 청와대와 그 주변이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호기심이 컸던지 대통령이 스스로 표현한 대로 ‘읽고 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도’ 그렇게 한 모양이다. 실은 손편지를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손편지를 쓸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 문 대통령은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된 뒤 암 투병 중인 MBC 이용마 기자를 직접 병문안했다. 2012년 MBC 파업을 의미 있게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고 그 의미마저도 논란이 있다. 그런 일로 대통령이 한 개인을 공개적으로 병문안하는 일은 흔치 않다. 이 기자를 향한 대통령의 각별한 배려를 높이 평가할수록 어업지도원의 아들에게 손편지 한 장 쓰지 않은 몰인정함과의 차이는 더 극명해진다. 사람이 누군가를 딱하게 여기는 감정은 정치적 입장과는 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측은지심이 동(動)하는 데 있어서조차 정치적인 면이 크게 작용하는 유형인 듯하다. 그는 대선 후보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자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방명록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글을 썼다.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들어 구조를 기다리다 죽어간 착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자기 아이가 아니라도 가슴이 찢어진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고맙다는 말은 어딘지 이상하다.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지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 인지상정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취임한 해 5·18기념식에서 ‘유족의 편지’를 읽고 자리로 돌아가는 한 유족에게 불쑥 다가가 위로하듯 안아준 것으로 따뜻한 감동을 줬다. 그러나 예정에 없는 듯이 연출된 상황이 아니라 돌발 상황에서 인간의 본심이 드러나는 법이다. 올 3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천안함 폭침 전사자의 어머니가 분향하려는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지 말씀 좀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어머니를 쏘아보던 눈빛은 차가웠다. 2017년 러시아 혁명 100년에 맞춰 나온 ‘Lenin: The Man, The Dictator, the Master of Terror(레닌: 인간, 독재자, 테러의 대가)’란 책을 읽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서평까지 쓴 레닌 전기로 ‘인간 레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91년 레닌이 변호사이던 때 그의 고향인 볼가강 유역에 극심한 기근이 닥쳤다. 40만 명 이상이 죽어갔다. 톨스토이 체호프 같은 작가들이 국제 구호 캠페인에 나섰다. 그러나 레닌은 왜 차르 체제를 돕는 일을 하느냐며 일체의 구호활동을 거부했다. 그런 레닌에게 그의 누이들은 소름이 끼쳤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측은지심마저 정치적인 사람의 싹수가 어땠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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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편측광장[횡설수설/송평인]

    서울 세종로에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보면 오른쪽으로 뻗어가는 등선에 정자가 하나 보인다. 청운대다. 광화문 일대가 가장 잘 보이는 북악산 능선의 지점이다. 한양도성길을 따라 청운대에 올라 내려다보면 경복궁 축선과 세종로 축선이 일치하지 않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세종로 축선이 경복궁 축선에서 5.6도 동쪽으로 꺾여 있다. 일본이 신작로를 만들 때 한국의 기를 꺾으려고 일부러 꺾어 놓았다고 한다. ▷일부 복원주의자들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면 그 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복궁 축선과 일치하게 세종로를 서쪽으로 꺾으면 세종문화회관에서부터 벌써 세종로 서쪽이 건물에 닿을 듯이 지나간다. 따라서 축선을 바로잡으려면 서쪽에 자리 잡은 건물은 경복궁에서 멀수록 누진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반대편 건물은 누진적으로 앞으로 나와야 한다. 불가능한 주장인데 아직도 그런 주장을 하는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없지 않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광화문광장 변경 계획은 복원주의자들에 호응해 광화문 앞 월대(月臺)를 조선 때처럼 복원하고자 남쪽으로 세종로사거리까지 세종로 도로 구간을 아예 없애고, 광화문 앞을 동서로 잇는 사직로도 정부서울청사 쪽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쪽을 잇는 왕복 2차로 지하도로를 확대해 우회시킴으로써 광화문 일대 전체를 공원화한다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이 발상은 행정안전부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사직로는 유지하되 세종로는 교보 쪽으로만 남겨두는 편측광장 계획이 나왔다. 서울시는 시공사와 5일 계약을 끝냈고 곧 공사에 들어간다. ▷광화문 편측광장 계획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만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의 광장이 좌우대칭이 아닌 편측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주는 불안감 탓이다. 광장 자체만 생각하면 양쪽으로 차가 달리는 것보다는 한쪽으로만 차가 달리는 것이 더 사람 중심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계에서 나라의 중심 공간이 편측으로 이뤄진 곳은 거의 없다. ▷편측광장이 되면 이순신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 위치에서 벗어난다. 박 전 시장은 이순신 동상까지 옮기려 했으나 여론의 반대가 커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조각가 김세중이 만든 이순신 동상은 작품 자체가 뛰어날 뿐 아니라 청와대와 옛 궁궐 앞에 나라를 지키듯이 서 있는 위치 때문에 사랑받는 작품이다.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 경비처럼 한편에 서 있는 모양새는 곤란하다. 편측광장화로 차도가 줄어 그렇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에 심한 교통체증이 더 늘 것이 확실하다. 현재 상태로 큰 불편이 없다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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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가부 장관의 궤변[횡설수설/송평인]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5일 국회에서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의 성범죄로 치러지는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 838억 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큰 예산이 소요되는 사건을 통해 역으로 국민 전체가 성인지(性認知)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기회가 된다”고 답했다. 이 장관 자신이 성인지 감수성 이전에 일반적인 인지적 감수성이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궤변이다. ▷이 장관의 답변이 알려지자 오 전 시장 성범죄 피해자는 “내가 학습교재냐”며 “역겨워 먹은 음식까지 다 토했다”고 절규했다. “성범죄는 자기들이 저질러놓고 성인지 학습은 국민한테 받으라고 한다”며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보궐선거에 성인지 학습을 갖다 붙인 견강부회를 받아들이자면 보궐선거에 전적인 책임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확실한 성인지 학습 방법도 없다. ▷이 장관은 올 8월 국회에서는 “박원순 오거돈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냐”는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에 죄명을 규정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다른 부처의 장관이라면 몰라도 여가부 장관만은 그렇게 답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가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나 다름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대답을 회피해놓고 지금 와선 ‘성인지 학습 기회’ 운운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이 장관은 지난해 8월 장관으로 내정됐다.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로 여성평화외교포럼이란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지만 교수로도 시민단체 대표로도 눈에 띄는 활동으로 주목받은 적이 없는 인물이어서 그의 임명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올 6월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이 불거졌을 때 이 장관은 국회에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청와대 눈 밖에 안 나게 알아서 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가부 내 소통도 안 돼 이 장관과 떳떳이 자료 제출을 해야 한다는 일부 간부들의 의견이 대립하다 12일이나 지나서 일부 자료 제출로 타협했다. 올 7월 박 시장 사건이 터졌을 때는 여가부의 입장문을 내야 한다는 의견을 이 장관이 틀어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부가 한 해 쓰는 돈이 약 1조2000억 원이다. 여성을 내세워 막대한 돈을 쓰면서 반(反)여성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성인지 학습 기회’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여가부는 왜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이 장관 취임 이후 한때 여가부 폐지 청원이 10만 명을 넘었다. 여가부는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부서로 국민의 특별한 신뢰가 없으면 존재하기 힘들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답은 나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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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개혁 아니라 혁명, 그것도 사악한 혁명

    도널드 트럼프가 4년 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미국인이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가 파시즘이었다. 3일(현지 시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할 위기에 처한 트럼프는 극우 무장 세력에게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대선 개표가 연장되는 경우 ‘물리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조차 이런 대통령이 나와 적지 않은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정치에서 사악한 권력 의지를 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때에 민주화가 뜻하는 바로 그 정치적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혹자는 친문 세력의 행태를 연성 파시즘이라고 부르며 우려한다. 그러나 그 행태는 미국과 달리 우파 파시즘보다는 좌파 레닌주의(Leninism)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연성 레닌주의라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옛 소련이 선전했듯 대중이 봉기한 ‘영광스러운 혁명’이 아니라 볼셰비키의 군사 쿠데타였다. 레닌은 쿠데타 전만 하더라도 검열을 비판하고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가 쿠데타 이튿날 첫 번째로 내린 조치는 1위 신문인 ‘볼랴 나로다’ 폐쇄였다. 친구인 막심 고리키의 신문과 그가 쓰는 ‘반시대적 생각’이란 칼럼만은 한동안 허용됐지만 그마저도 이듬해 여름 없애버렸다. 언론장악만큼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독재로 가는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형사사법체제의 장악이었다. 12월 레닌은 비밀포고령으로 체카를 설립했다. KGB의 전신인 체카(Cheka)는 검찰과 경찰에서 벗어난 특별 수사·기소 기관이었다. 체카의 자의적 수사와 기소로 반혁명분자로 지목된 자들은 사소한 트집을 잡혀 감옥에 가고 볼셰비키들은 죄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계급으로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공수처는 공산권 국가를 빼고는 유례를 찾기 힘든 수사·기소기관이다. 지금 공수처 추진과 함께 검찰의 기능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검찰총장과 그 측근들만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평검사들마저 반발하고 나왔다. 평검사 전체의 15%가량이 자기 이름을 걸고 반발할 정도이면 나머지 침묵하는 검사 대부분도 반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반발하는 검사의 수가 얼마가 되든 다 잘라버리면 그만이라는 집권세력의 발상은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검찰을 혁명하겠다는 것이다. 친문 세력에게 이 혁명이란 용어가 특별히 거부감을 갖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것을 꼭 해야 할 혁명으로 여길 수 있다. 정작 한심한 쪽은 공수처를 단지 비판의 여지가 있는 입법의 하나로 보는 흐리멍덩한 보수세력이다. 공수처 추진과 검찰에 대한 공격은 대한민국의 대체로 성공한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폄훼한 세력이 이제 역사를 넘어 구체적 제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그 자체로 위험한 조직이지만 야당이 공수처장 추천에 비토권을 갖고 있는 지금은 아직 그 위험성이 현실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야가 공수처장 추천에 대한 합의에 실패하고 집권세력이 법을 바꿔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버리고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하는 순간 그것은 한국판 체카가 될 것이 분명하다. 대법원이 법치의 최후 보루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나마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은 법치의 최후 보루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얼마 전 대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판결은 취소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별게 아니다. 그러나 취소 판결에 이르는 논리가 헌법과 법률이 허용한 범위를 넘어섰다. 막연한 정의감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었다. 파슈카니스 등 소련 법학자들이 주장하던 ‘혁명적 정의’를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판결이다. 러시아 인민들에게 볼셰비키 혁명은 일으킨 게 아니라 당한 것이다. 그들이 당한 줄도 모르게 당한 혁명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지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혁명을 당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혁명인 줄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그건 개혁이 아니라 사악한 혁명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후퇴할 수 있다. 미국도 한국도 방심하지 않고 깨어서 행동하는 국민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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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독재 모습 드러낸 문재인 검찰개혁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닷새가 지난 2017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에 수상한 기사가 하나 보도됐다.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안태근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과 밥을 먹고 각자 상대편 후배들에게 100만 원씩 돈 봉투를 줬다는 기사였다. 처음부터 죄가 되는지조차 의문이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감찰을 지시하며 큰 잘못이 있는 양 떠들었다. 이영렬과 안태근은 즉각 자리에서 쫓겨났다. 청와대는 법무장관도 검찰총장도 없는 사이 누구와의 협의도 없이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이영렬과 안태근에 대한 면직 처분은 나중에 법원에서 취소됐다. 건(件)도 안 되는 걸 건인 양 취급해 공작하는 것은 운동권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방식이다.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앉힐 때도 그랬고 검찰총장에까지 승진시킨 윤석열을 쫓아내려는 지금도 그렇다. 올 3월 17일 MBC에서 채널A 기자가 수감 중인 이철이란 사람의 대리인 지모 씨에게 접근해 윤석열의 최측근 검사장이었던 한동훈과 통화한 내용을 들려주며 유시민의 비위를 털어놓으면 검찰의 선처 약속을 받아주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권력 주변의 비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기자의 임무다. 그러나 검사에게 말해 선처의 약속을 받아주거나 가중의 처벌을 가하게 할 기자는 없다. 그런 일은 사기꾼이 되기 힘든 평균 이하 지능인의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회유나 압박이다. 기껏해야 사기꾼의 함정에 빠져 취재윤리를 어긴 사안에 여권은 검언(檢言)유착이라는 어마어마한 프레임을 덮어씌우고 추미애 법무장관은 수사지휘권까지 행사했다. 검언유착은 없었다.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까지 행사했는데도 성과 없이 수사가 끝났으면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거나 대통령이 그 장관을 해임하는 것이 법치국가의 관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해임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지했다. 이것으로 법무(法務)의 정상적 운용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추 장관의 사퇴와 문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 위한 집회와 시위를 방역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되자 새로운 공세가 시작됐다. 라임펀드 사기 사건의 주범 김봉현 전 대표가 옥중 입장문을 공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공개 전에 문 대통령은 강기정 전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줬다는 김 전 대표의 법정증언에도 불구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는데 이전의 처신에 비해 전혀 뜻밖이었다. 김 전 대표는 문 대통령의 ‘성역 없는 수사’ 지시 이후 화살을 야당 정치인과 검사들로 돌렸다. 실은 ‘성역 없는 수사’ 지시가 김 전 대표의 옥중 입장문에 대해 미리 전해 듣고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사기꾼의 말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라고 해도 ‘성역 없는 수사’를 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성역 없는 수사를 하자면서도 특검에는 반대다. 그렇다면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추 장관은 다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총장을 라임 수사 지휘에서 배제했다. 성역은 야권과 팔다리 잘린 검찰총장이었던 것이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성역이란 말을 이렇게 맹랑하게 사용한 적이 없다. 이런 의미의 ‘성역 없는 수사’는 공수처가 할 일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대법원을 거치고 나니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거짓말을 한 이재명 경기지사와 조직폭력배에게 차량과 운전기사를 빌린 은수미 성남시장이 살아남았다. 대법원은 이미 정권에 장악됐고 남은 건 검찰이다. 추 장관이 검찰총장과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2차례 인사를 통해 검찰의 요직 대부분을 정권의 총애를 받고자 하는 애완 검사들과 정권의 눈 밖에 날 것이 두려운 초식 검사들로 채웠다. 그러나 정점(頂點)의 윤석열 총장과 그를 따르는 좌천된 검사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들마저 제거해야 ‘죄 지어도 처벌받지 않은 계급’의 등장이 가능해진다. 조국 전 법무장관 때까지는 그 정도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은 탈영 혐의가 명백한데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죄 지어도 처벌받지 않은 계급’의 등장에 더 가까워졌다. 공수처가 출범해서 법원과 검찰에 남아 있는 삼별초 같은 저항세력을 수사하고 기소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들의 입장에서 형사사법체제의 장악이 완성되는 것이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법치가 파괴되고 독재가 시작되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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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조선 제일 뻔뻔녀

    국민은 지난해 10월 3일 100여만 명이 모인 광화문 집회로 조국 당시 법무장관의 사퇴를 이끌어냈다. 사퇴 후의 상황은 어처구니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선 제일 위선남을 몰아냈더니 조선 제일 뻔뻔녀가 왔다. 여우나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라는 옛 표현은 이 판국에는 불필요하게 구수하다. 그냥 쓰레기차 치웠더니 똥차 온 격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지난달 1일 국회에서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이 전화해서 휴가 연장에 대해 물었다는 보도가 맞느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런 사실이 없다”가 아니라 “그런 사실이 있지 않다”는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지금 돌아보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화법이었다. 추 장관은 박 의원이 다시 확인하듯 “당시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지시했느냐”고 묻자 “뭣 하러 그런 사적인 일을 지시하겠느냐”고 답했다. 굳이 질문에도 없는 사적인 일이란 말을 꺼낸 것은 앞선 대답의 단호하지 못함을 깨닫고 보상하려는 심리였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박 의원이 “만약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전화하라고) 지시했다면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자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되는데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추 장관 아들과 보좌관이 형 아우 하는 친밀한 사이여서 부탁한다면 직접 부탁했을 것이라고 방어막을 쳤다. 검찰 수사 결과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준 사실이 드러났다. 본인이 인정한 대로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추 장관은 추석 연휴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한마디 사과도 없이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측에 책임을 묻겠다고 썼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표현으로는 격화소양(隔靴搔양)의 느낌이 없지 않다. ‘똥 싼 게 성내는’ 꼴이었다. 추 장관은 추석 연휴에 페이스북에 두 번째 글을 올렸다. 이번엔 드디어 ‘보좌관에게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준 사실’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아들에게서 전달받은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전달한 것을 보좌관에 대한 ‘지시’라고 볼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당연해서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는 자유심증(自由心證)의 사실이 있다. 과연 지원장교의 전화번호를 최초에 아들에게서 전달받았는지 의문이지만 누구에게서 전달받았든 그 번호를 보좌관에게 준 것은 전화를 하라고 지시하기 위함이다. 그 인과관계는 입증할 필요도 없는 것이며 당연시된 인과관계를 깨려면 깨려는 측이 반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해명도 안 되는 해명을 늘어놓는 것은 궁지에 몰린 추 장관의 궁핍한 처지만 드러냈을 뿐이다. 1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어느 장관의 사퇴를 요구할 때는 그 요구가 합당하든 아니든 경질을 고려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등 민주화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잠시 고집을 부렸겠지만 결국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경질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조 전 장관이 마지못해 사퇴를 했을 때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후속 인사를 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에 속는 원숭이 취급하는 후속 인사를 했다. 더 이상 쓰레기차나 똥차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하다. 쓰레기차를 배차하고 똥차를 배차하는 운영자의 문제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사퇴 이후 그를 향해 ‘마음의 빚’ 운운한 데 이어 추 장관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회의에 웃으며 나란히 입장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국민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검찰 수사로 추 장관의 거짓말이 드러난 후에도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거짓말을 했던가요”라며 의뭉스러운 딴소리를 했다. 여권에서 가장 합리적인 축에 속한다는 사람의 반응이 이렇다. 말로 하는 정치를 위해 여야가 공유해야 할 ‘최소한의 사실’마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언론의 비판도 통하지 않을 때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지만 현명한 국민들은 방역을 망친다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분노를 삭이며 올 10월 3일 광화문 집회를 보류했다. 그러나 집권세력의 머릿속에서는 1년 전과 같은 광화문 집회가 열려 사퇴와 하야 요구가 하늘을 찌르는 상상이 펼쳐졌다. 그러니까 경찰차벽으로 ‘재인산성’을 쌓은 것 아니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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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의 民本 사상이 동서양 넘어 근대화 이끌었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3)는 공자 사상의 서천(西遷)을 다룬 대작을 완성했다. 서구 근대화의 요체인 관용과 민주주의가 서양 내부에서 싹튼 것이 아니라 공자 사상에서 유래했다는 논증을 위해 약 3500쪽을 채울 원고를 썼다. 이 방대한 원고를 2015년 서론격인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와 올해 ‘근대 프랑스의 공자 열광과 계몽철학’ ‘17∼18세기 영국의 공자 숭배와 모럴리스트들 상·하’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 ‘공자와 미국의 건국 상·하’ 등 모두 7권으로 나눠 출간했다. 최근 중국 런민일보 출판부에서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孔夫子與歐洲思想啓蒙(공자와 유럽사상 계몽)”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한 학자가 단일 주제로 쓴, 이렇게 큰 스케일의 책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서양인은 흔히 고대 그리스·로마문화와 기독교문화가 결합해 서양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여긴다. 민주주의도 거기서 나왔다고 여긴다.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가 전형적으로 그런 학자다. 마르크스는 좌익의 모든 근대 이론을 지배하고, 베버는 우익의 모든 근대 이론을 지배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서양 중심주의가 자리 잡았다. 이런 사고가 날조임을 밝히고 싶었다.” ―유교가 어떻게 서양의 관용과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나. “영국의 존 밀턴이나 존 로크, 프랑스의 볼테르보다 훨씬 이전인 서양 계몽주의 초기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피에르 벨이나 영국의 조지 뷰캐넌 같은 학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위그노 교도였던 벨은 중국 사정을 전하는 예수회 신부의 책을 읽고 중국의 종교적 관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 궁정이 무신론에 지배됐다면 차라리 위그노 학살 같은 잔혹한 행위는 없었을 것으로 여겨 일찍이 관용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영국에서는 뷰캐넌이 밀턴에 앞서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 때 군주를 몰아내는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을 전개했다. 뷰캐넌은 스코틀랜드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대학을 다니고 가르치면서 역시 예수회 선교사들의 글에 영향을 받았다.”서양중심주의에 날린 강펀치―유교가 무신론적이었지만 관용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나. “공자가 한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해롭다(攻乎異端 斯害也已)’는 말은 조선 정조와 고종도 종종 인용한 말이다. 정조는 천주교 박해를 요구하는 상소에 이 말을 인용해 “성현의 뜻이 이렇거늘 왜 나보고 진시황이 되라 하느냐”라며 버텼다. 고종도 위정척사파가 독립협회 윤치호를 효수하라는 빗발치는 상소문을 올릴 때 “나보고 이단을 공격하란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제대로 된 유교는 관용적이다.” ―관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만큼은 서양에서 싹튼 게 아닌가. “고대 그리스 아네테에 2만 명의 성인 남성이 있었다면 30만 명이 노예였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노예를 거느린 자들의 민주주의다. 서양은 유교의 민본(民本)사상이 전해지기 전까지 백성의 자유와 평등을 논한 적이 없다. 언제나 노예주의 자유와 노예주끼리의 평등, 귀족의 자유와 귀족끼리의 평등이었을 뿐이다.” ―유교에 민본사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제도로 발전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나. “우리나라를 예로 들겠다. 조선시대 모든 지방은 사실상 향약질서로 다스려지는 자치였다.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은 사실상 고문에 불과했다. 향약질서에는 처음에 양반만 포함됐으나 가짜 양반도 끼어들고 나중에는 평민 부자도 참여하고 결국에는 일반 평민도 들어가면서 민회(民會)로 발전했다. 영정조 이래로는 국왕은 민국(民國)의 이념을 추구했다. 대한민국의 민국이 멀리 거기서 나왔다. 상층에서는 민국을 추구하고, 하층에서는 향촌자치를 민회로 발전시키면서 호응해 가는 가운데 불행히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당했다.” ―유교 정치사상의 무엇이 민주주의의 모태가 됐나. “유교만이 통치자의 덕성을 강조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강조했다. 그러나 유교에서 지혜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의 말석을 차지할 뿐이다. 플라톤의 사덕(四德)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다. 이 안에 사랑, 즉 인의가 없다. 기독교의 십계명에도 인의가 없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만 있다. 예수에 와서 사랑이란 개념이 도입됐지만 개신교의 실제는 중세 십자군전쟁에서 17,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까지 불관용적이었다.”仁民 넘어 愛物로 나아간 유교 ―유교는 앞으로도 민주주의적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나. “개신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있지만 동식물에 대한 사랑은 없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로 귀결되고 말았다. 힌두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은 있으나 식물에 대한 사랑은 없다. 공자에게는 다 있었다. 그는 ‘자라나는 새싹을 밟지 않았다’ ‘한창 자라는 나무는 베지 않았다’고 말했다. 맹자는 동물과 식물을 아끼는 것을 애물(愛物)이라고 해서 부모나 친척을 사랑하는 친애(親愛), 백성을 사랑하는 인민(仁民)과 더불어 똑같이 중시했다.” ―유교가 서구 계몽주의를 이끌었다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서양 학자들과의 논전(論戰)을 통해 검증되고 확립될 필요가 있지 않나. “서양 학자들과의 논전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더 다가올 필요가 있다. 그들이 한문을 더 잘 읽고 공맹사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나로서는 중국에 공자를 제대로 알리는 데 더 관심을 쏟을 생각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유교적인 문화를 쓸어버린 뒤 최근에 와서야 공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수교 이후 대체로 겸손했으나 얼마 전부터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오만하고 위협적인 중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공자사상의 핵심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유교와 근대화’를 다룬 책도 곧 낸다고 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유교의 영향을 받아들인 만큼 근대화했다. 서유럽의 극서(極西)국가 11개국과 아시아의 극동(極東)국가 3개국만 높은 수준의 근대화에 도달했다. 중국은 이미 송나라 때 낮은 수준의 근대화에 돌입했고 청나라와 조선은 낮은 수준의 근대화의 최고 단계에 있었다. 다만 높은 수준의 근대화에는 서양이 먼저 진입했다. 그래서 동아시아가 서양에 잠시 뒤지게 됐지만 20세기에 서양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슬람 국가는 극동국가보다 먼저 서유럽과 접했지만 근대화하지 못했다. 태국 등 불교국가는 오랫동안 서유럽과 접했지만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하다.” 황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독일 괴테대에서 헤겔과 마르크스를 다룬 ‘지배와 노동’이란 제목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이후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양사상의 한계를 동양사상으로 극복하고자 말 그대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책을 섭렵했다. 그 결과 한편으로 중국과 조선의 유교적 근대화에 대한 재평가에, 다른 한편으로 공자철학의 서천(西遷)이라는 웅대한 주장에 이르렀다. “학문에는 치명적 성실성 필요” ―이런 방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비결은…. “하루 17시간씩 안 자고 앉아 있으면 된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천재는 ‘치명적인 성실성’이 필요하다. 얼추 성실해서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할 수 없다. 아직 사회과학자나 철학자 중에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흔히 그것을 물리학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 중요한 철학적 경험들이 같은 시대 로크의 것보다 더 평이하고 간략하게 정리돼 있다.” ―그 정도로 읽으려면 언어 장벽이 많을 듯하다. “그래서 치명적인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자연과학은 천재적인 사람들이 20대에 다 업적을 이룬다. 아인슈타인만 봐도 30대 들어가서는 아무런 테제를 내지 못한다. 인문사회과학은 계속 남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즉, 남의 책을 봐야 한다.” 황 교수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문 희랍어 라틴어 등 6개 언어로 책을 읽는다. 그의 대학 연구실에는 한구석에 그리스어 알파벳을 쓴 종이가 붙어있길래 뭐냐고 물었다. “55세부터 희랍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5년 공부하니까 희랍어가 읽히더라. 플라톤의 글은 영어 번역이나 독일어 번역을 보면 대충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대한 대목에서 차이 나는 번역이 많아 결국 원본을 찾아봐야 한다.” ―서양사상을 공부하다가 왜 공자로 돌아섰나.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서양을 이상화하는 책을 읽고 배웠다. 독일 가서 마르크스의 책을 안 읽은 것 없이 다 읽었는데 마르크스 자신도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나는 폭력과 관련한 이론이다. 그는 폭력을 공리주의적으로 사용한다. 폭력을 써서 권력을 얻기에 유효하다면 폭력을 쓰고 폭력을 써서 지탄을 받고 표를 잃을 것 같으면 폭력을 안 쓴다. 폭력을 정당방위 외에는 절대로 써서 안 된다는 법학의 규범적 이론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니까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또 하나는 계급투쟁의 역사와 관련돼 있다. 계급투쟁은 본래 기술적인(descriptive) 설명이지 주장이 아니었는데 나중에는 주장이 돼버렸다. 그럼으로써 수단이나 방법이 부도덕한 정치사상이 됐다. 공자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돼 있다. 공자는 현실적인 평화주의자다. 그러나 ‘군자는 싸우지 않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君子有不戰 戰則必勝)’ ‘준비를 하면 걱정이 없다(有備無患)’고 말했다. 공격적인 전쟁은 하지 않지만 방어적인 전쟁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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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 방화’ 산불[횡설수설/송평인]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살 만한 행성을 찾아 성간(星間)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은 지구가 건조해져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사는 미국 중서부에는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분다. 창문을 틀어막아도 집 안 곳곳이 먼지투성이다. 식사에는 가뭄에 강한 구황작물인 옥수수로 만든 음식만이 올라온다. 밖에서는 가뭄으로 극성을 부리는 병충해를 막느라 옥수수 밭에 불을 지른다. ▷‘인터스텔라’가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우려한, 극단적으로 건조한 기후의 전조 같은 것이 거세지는 산불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 등 서부에서 올 7월 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산불은 우리나라의 20%에 해당하는 면적을 태우고 아직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9월부터 올 5월까지 9개월간 이어진 호주 남동부 산불은 최근 10년간 발생한 전 세계 산불 중 최악이었다. 우리나라 면적의 63%를 태웠다. ▷극지방에서도 산불이 거세다. 지난해 7월에서 9월까지 발생한 시베리아 산불은 우리나라 면적의 30%를 태웠다. 올해도 러시아와 캐나다의 북극 가까운 지방에서 큰 산불이 이어졌다. 극지방의 산불은 한 해 전의 불씨가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 토탄 속에 겨우내 은신하다 봄에 기온이 올라 축축하던 땅이 건조해지면 지면으로 올라와 부활하는 까닭에 ‘좀비 화재’로 불린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이 더워지면서 좀비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열대지방부터 극지방까지 곳곳이 불타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남미의 아마존이나 동남아 열대림에서는 팜유와 목재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숲을 불태운다. 불은 숲이 품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대량 방출함으로써 온난화를 재촉한다. 온난화가 온대지방에서는 산불의 위력을 키우고 산불이 다시 온난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극지방의 산불은 숲이 없는 벌판에서도 활활 타오르는데 땅의 토탄을 태우면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산불의 불똥이 미국 대선에도 튀었다.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산불을 민주당 주지사들의 산림관리 책임으로 몰아가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를 ‘기후 방화범(climate arsonist)’이라고 몰아세웠다. 2007년 유엔 기후회의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고치를 찍게 한 뒤 2050년까지 반 이하로 감축하는 긴급계획을 짰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 지도자들의 비협조로 올해 최고치를 찍는 목표는 오래전 물 건너갔다. 방치하다 인류가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을까 걱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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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미션 임파서블 ‘서 일병 구하기’

    대학으로는 나와 같은 학번인 셈인 육사 43기 친구와 통화했다. 사병의 휴가 관리가 내가 군 복무하던 3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나 궁금했는데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는 휴가 복귀 당일 미귀(未歸) 보고를 집에서 하는 휴가자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늦게 되면 귀대하면서 여기가 어디인데 여차여차한 이유로 늦는다고 보고를 한다. 게다가 요새 군대는 친절해져서 지휘관이 하루 이틀 전 전화를 걸어 복귀 여부를 확인한다. 예정에 없는 미복귀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사후에 휴가명령서가 작성되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병이 불가피하게 전화로 휴가 연장을 신청한다 해도 사전에 해야 하고 사전에 휴가명령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었는데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중요한 걸 한 가지 잊었다며 전화로 휴가를 연장할 경우 사유가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지휘관이 반드시 그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고 했다. 혹시 카투사는 다른 걸까. 미국 국적으로 주한미군에서 장성급으로 일했던 지인과 통화했다. 그는 미군과 카투사의 관계를 미군이 카투사를 한국군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관계로 설명했다. 카투사 사병은 작전에서만 미군에 배속돼 미군의 지휘를 받을 뿐 인사 관리는 한국군의 지휘를 받는다는 말이다. 카투사에 복무해 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어서 새삼 거론한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마침 조카가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모 씨와 상당 기간 겹쳐서 같은 카투사 지역대(Area 1)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와도 통화했다. 서 씨는 2017년 6월 23일 금요일이 2차 병가로부터 복귀하도록 예정된 날이었으나 복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미귀 사실은 6월 25일 일요일 저녁 점호 때 가서야 당직사병에 의해 발견됐다. 일부에서는 카투사 사병들이 대부분 외박을 나가는 금·토요일의 점호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으나 조카의 말은 다르다. 카투사 사병들이 한 숙소(barrack)에 9명 정도가 묵는다면 6, 7명 정도는 금요일 근무가 끝난 후 패스(외박허가)를 얻어 외박을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 점호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2, 3명은 주말에도 남아있고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인원 확인이 이뤄진다. 조카가 중요한 말을 하나 했다. 당직사병은 육군 인트라넷으로 전날 보고된 인원 상황을 확인하고 당일 점호 후의 인원 상황을 육군본부에 보고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처리된 휴가인데도 당직사병이 모르는 휴가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육본 컴퓨터의 기록을 뒤져보면 금·토요일에 이미 서 씨 휴가가 연장 처리됐는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았으니 일요일 당직사병이 미귀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카투사에서 지원반을 부사관이 맡을 때는 지원반장이라고 부르고 장교가 맡을 때는 지원대장이라고 부른다. 서 씨가 속한 지원반은 상사가 관리하지만 병가 중이어서 다른 지원반을 맡은 대위가 대신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월 25일 당직사병이 서 씨의 미귀를 발견했을 때 뒤늦게 나타나 휴가 처리를 지시한 사람은 지원반장도 지원대장도 아니고 지역대 본부와 육본을 연결하는 업무를 담당한 김모 대위였다. 서 씨 측은 6월 21일 2차 병가 관련 진단서를 이메일로 제출하면서 휴가 연장을 문의했다고 주장한다. 그때도 김 대위와 보좌관이 통화했다. 보좌관은 김 대위의 ‘개인 연가를 쓰라’는 말을 구두 승인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휴가 승인은 지원반장(혹은 지원대장)-지역대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참모인 김 대위의 승인이 아니라 부대장의 승인이 있었는지는 휴가명령서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부대장의 승인이 있었다면 6월 21일에서 23일 사이 휴가명령서가 만들어질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휴가명령서는 당직사병이 서 씨의 미귀 사실을 발견한 후에야 부랴부랴 만들어졌다. 부대장이 승인하지 않고 미적댔다는 뜻이다. 조카가 복무할 때 이미 서 씨 엄마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서 씨 구하기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는 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 엄마만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듯하다. 서 씨 구하기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멋진 액션 드라마가 아니라 역겨운 정치 드라마가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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