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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03-21~2024-04-20
칼럼97%
문학/출판3%
  • [송평인 칼럼]고발 없는 ‘고발 사주’에 관한 몇 가지 시비

    이른바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되던 날 뉴스버스라는 인터넷 매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 생소한 매체가 쓴 기사를 어떻게 바로 알았는지 그날 오후 더불어민주당 쪽 사람들이 벌 떼처럼 윤석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윤석열 고발 사주’는 도대체 무슨 죄가 되는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당시 최강욱 공직선거법 위반 고발 건은 거론되지 않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밝혔듯이 그 고발 건은 김 의원이 먼저 문제로 의식하고 고발장인지 초안인지 메모인지를 작성했다고 하니까 일단 사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제쳐 두자. ‘윤석열 고발 사주’에 관련된 의혹은 부인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측근의 이른바 ‘검언(檢言) 유착’ 의혹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윤석열과 부인, 윤석열과 측근의 명예가 훼손된다. 고소할 권리가 윤석열에게 있다. 자신이 고소할 권리를 갖고 있는 사안을 다른 누구로 하여금 고발하게 하는 건 그 자체로는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이 일개 검사였다면 스스로 고소하면 된다. 문제는 그가 검찰총장이라는 데 있었다. 검찰총장은 모든 사건 수사를 지휘한다. 자신이 고소한 사건도 지휘해야 하는 구조다. 그래서 고소가 어색하다. 그러나 아내와 측근까지 걸린 명예훼손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누구로 하여금 대신 고발하게 했는가 하는 것이 ‘윤석열 고발 사주’ 의혹의 출발이다. 윤석열이 당시 부하인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을 시켜 고발하게 했다면 검찰총장 권한의 사유화(私有化), 즉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처신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된 후 직권남용죄로 고발됐지만 그의 고발 사주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권한 밖의 일을 시킨 것이기 때문에 국정농단 심판에서 확실해진 대법원 논리에 따르면 ‘권한 내의 일에서 권한을 남용하는’ 직권남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윤석열이 적절하지 않은 처신을 했는지조차도 사실관계가 밝혀지고 나서 판단할 일이다. ‘손준성 보냄’이라고 적힌 파일 사진들이 공개됐다. 뉴스버스에의 제보자로 지목된 사람이 국민의힘에 있다가 다른 당 후보의 캠프로 간 데다 과거 조작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조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김 의원이 손 검사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달한 적이 있다고 하니 그 사진들을 일단은 믿지 않을 수 없다. 사진에 담긴 자료가 수사정보 등 기밀을 유출한 것이라면 그 부분에 대해 윤석열이나 손 검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자료를 보낸 것이 김 의원의 요청에 따른 것인지 손 검사가 부탁한 것인지가 ‘윤석열 고발 사주’를 따지는 데 중요하다. 김 의원은 최강욱 고발과 관련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딸려와 전달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 말을 믿는다 하더라도 손 검사의 능동적 부탁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만사 큰 틀을 먼저 본 뒤 세세한 것을 따져야 한다. 당시 국민의힘에 의한 고발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윤석열에게 고소할 정당한 권리가 있는 사안을 고발로 대신하는 것에 ‘사주’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지나치지만 그런 프레임마저도 최소한 고발이 실제 이뤄졌을 때나 씌울 수 있다. 윤석열이 정말 고발을 사주해 수사할 의지가 있었다면 고발 미수가 되도록 내버려뒀겠냐는 의문이 든다. 두 사건 다 윤석열과 무관하게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최강욱의 고발로 결국 수사가 이뤄졌다. ‘검언유착’은 1심에서 무죄가 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은 검찰이 새로 수사 중이지만 과거 금융감독원과 경찰 조사에서 혐의 없음으로 내사 종결된 바 있다. 추미애가 법무부 장관일 때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을 징계하며 나라를 흔들어 놓았으나 징계 관련 행정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로 징계가 있었는지 기억하려 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 사안도 그런 사안이다. 민주당에서 어제 이해찬까지 나서 ‘국기 문란’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총선 전에 제보받은 내용 중 하나라고 넌지시 언급했다. 당시 민주당이 받은 제보와 뉴스버스가 받은 제보가 같은 것이라면 제보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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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보치아 9회 연속 금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종목이 있다. ‘골볼’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경기다. 방울이 든 공을 청각과 촉각만을 사용해 상대편 골대에 굴려 넣는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경기로 고안됐다. 보치아 경기 중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든 BC3등급 장애인의 경기는 얼굴 앞에 홈통(램프)을 설치해 입에 문 막대기(포인터)나 머리를 이용해 민 공이 그 낙하하는 힘으로 표적구에 가까이 가는 걸 겨룬다. ▷보치아에서 한 팀은 적색구, 다른 팀은 청색구 6개씩을 사용하며 그 밖에 흰색 표적구(標的球)가 하나 있다. 공은 가죽 재질로 테니스공보다 약간 크다. 한 팀의 선수가 표적구를 던지는 것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이어 그 표적구를 던진 선수와 상대팀의 선수가 하나씩 공을 던져 표적구에 접근시킨다. 그 다음에는 표적구에서 멀리 떨어진 공의 팀이 새로 공을 던져 표적구에 더 가까이 접근시키거나 상대편 공을 밀어낸다. 최종적으로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공을 놓은 팀이 그 경기의 점수를 얻는다. ▷우리나라는 도쿄 패럴림픽 폐막 하루 전인 4일 보치아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따 9회 연속 금메달 획득의 기록을 달성했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BC3등급에서 2인씩 겨루는 페어전에 출전한 정호원(35) 최예진(30) 김한수(29) 선수다. 결승전 연장 경기에서 최 선수가 머리로 밀어 홈통에서 떨어뜨린 다섯 번째 공이 우리 편 공을 밀어 표적구에 붙였고 일본이 네 차례 이 공을 쳐내려고 했지만 실패하면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BC3등급은 사지(四肢)의 기능성이 가장 떨어지는 뇌성마비 장애 등급이다. 손발로 직접 공을 던지는 BC1, BC2등급과 달리 홈통 같은 보조장치를 필요로 하는 것 외에 BC1등급에서처럼 보조자까지 필요로 한다. 보조자는 선수의 요구에 따라 홈통의 높이나 방향을 조절하는 등의 역할을 맡는다.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보조자가 함께하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메달도 선수와 보조자가 함께 받는다. ▷우리나라가 패럴림픽 보치아 종목에서 9회 연속 금메달을 딴 것은 올림픽에서 양궁이 이룬 9회 연속 금메달 획득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은 성취다. 홈통의 높이와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보치아는 양궁처럼 정밀성을 필요로 한다. 그에 더해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보조자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한국에는 최 선수와 김 선수처럼 어머니가 보조자를 맡는 선수가 많다. 한국 어머니들의 지극한 모성과 한국인 특유의 정밀성이 어우러져 이룬 감동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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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볼셰비키 홍범도에게 바친 최고 예우

    동아일보는 한소(韓蘇) 수교 직후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소련 측 정부 문건을 발굴해 소개한 적이 있다. 문건 중에는 홍범도의 신상명세를 밝혀주는 1930년대의 각종 증빙서류도 있었다. 그가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 등은 홍범도 연구의 필수 자료가 됐다. 홍범도는 1921년 11월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났다. 그의 이력서에는 단순히 원동(遠東)민족혁명단체 대표회의 참석차 가서 레닌을 만난 것이 아니라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 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로 돼 있다. 유혈사태는 같은 해 6월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장갑차 대포를 동원해 공격한 소련군 문서에 따르더라도 ‘사망 36명, 행방불명 59명’이다. 코민테른 전권위원 오홀라는 익사자 60명을 포함해 전체 사망자를 160명으로 추산했다. 독립군 측은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사망자 외에 포로로 잡힌 독립군만도 864명이다. 죄질이 무겁다고 인정된 500명은 재판에 회부됐다. 이 중 428명은 강제노동에 처해졌고 나머지 72명은 중대범죄자로 분류돼 이르쿠츠크로 이송돼 재판을 받았다. 이때 재판을 담당한 3인 위원 중 1명이 홍범도였다. 홍범도는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 그가 같은 독립군을 공격하는 데까지 가담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자유시 참변 보고로 레닌을 만났을 때 레닌의 서명이 새겨진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상으로 받은 사실, 자유시 참변에서 당한 김창수와 김오남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중립적이었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홍범도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 기간이 1919∼1922년으로 나온다. 그는 이력서에 “1913년 일본인들의 수배를 당해 소련의 극동지역으로 건너와 1919년까지 머물렀다”고 적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 무렵부터 그는 볼셰비키 이념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는 1920년의 일이니 그는 빨치산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다. 그는 1927년 볼셰비키 당원이 됐으며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 이주를 겪었으면서도 말년에 파시스트와 싸우는 데 나가겠다고 나서는 등 소련 정부에 충성했다. 스스로를 독립군보다는 빨치산으로 여겼기에 청산리 전투 후 일본의 대대적 반격에 쫓겨 다시 소련 영내로 들어갔을 때 소련군의 명령에 순순히 응해 무장해제를 했다.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운 김좌진 이범석 등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서 외교노선보다 무장투쟁노선을 치켜세운다. 그러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새로운 무장투쟁 시대를 여는 여명이 아니라 황혼의 장엄한 피날레였다. 황혼 뒤의 어둠은 자유시 참변으로 찾아왔다.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군은 사실상 궤멸됐다. 무장해제에 순응한 한인 빨치산 부대도 교육·훈련 부대가 돼 더 이상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다. 그렇게 홍범도의 빨치산 이력도 1922년으로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줬다. 홍범도는 은퇴한 뒤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도 받고 전직 빨치산으로서의 특혜도 누리며 말년까지 비교적 안락하게 살았다. 그는 소련 사회에 동화된 고려인의 영웅 혹은 북한이 모시고 싶은 영웅일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의 영웅은 아니다. 그가 자유시 참변 이전까지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독립운동을 한 업적은 그것대로 기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시에서의 배신은 이전의 공(功)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홍범도의 유해를 싣고 오는 비행기가 한국 영공에 들어서자 공군 전투기가 6대나 호위했다. 이승만 등 해외에서 숨진 건국의 아버지들도 받지 못한 대우다. 오늘날 대한민국장을 받아야 할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인 백선엽 장군이 별세했을 때는 문상도 하지 않은 대통령이 유해를 맞기 위해 한밤에 공항까지 나왔다.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의 대통령 연설 속에 자유시 참변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기괴하고 기만적인 서훈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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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두 번의 장마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강수량에는 아직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비가 오는 패턴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열흘간 길게 많은 비가 이어지는 장마가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한동안 해를 볼 수 없어 빨래를 말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장마는 드물어졌다. 2014∼2019년만 해도 제대로 된 장마를 찾아볼 수 없었다. 2020년에는 장마가 무려 54일간 느슨하게 길게 이어졌다. 올해는 장마가 5일 정도로 유독 짧게 끝나는가 했는데 무더위 후 또 한 번의 장마가 찾아왔다. ▷장마는 남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몬순’ 기후의 특징적인 현상이다. 장마를 중국과 일본에서는 매우(梅雨)라고 한다. 중국말로는 메이위이고 일본말로는 쓰유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자를 쓰던 과거에는 매우라고 많이 썼다. 매실이 익어가는 계절에 내리는 비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보통 6, 7월을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보통 6월 말이나 7월 초에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가 끝나면 얼마 뒤 무더위가 시작되고 열흘이나 보름가량 열대야와 싸우다 보면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져 여름도 가는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 여름철의 기후 패턴이다. 여름이 끝날 때쯤 한여름 태평양을 달군 뜨거운 열기가 태풍을 만들어 올라오기 시작해 추석 무렵까지 이어진다. 태풍이 뿌리는 비는 하루 이틀이면 끝나지만 장마전선이 만드는 비는 일주일 이상 이어지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다. ▷무더위 속에 치른 도쿄 올림픽이 끝날 무렵인 8월 12일 이후 한반도보다 위도가 낮은 중국 대륙 지역에서 일본 열도까지 장마전선이 길게 형성됐다. 중국 후베이성, 일본 규슈와 히로시마 등지에서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지난주까지도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미친 이 장마전선이 지난 주말 북상해 한반도에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무더위 이후의 장마는 태풍과 겹치면 더 많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일본은 태풍 ‘크로사’가 겹쳐 피해가 더 컸다. 우리나라도 이번 주 태풍 ‘오마이스’가 동시에 찾아온다.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몬순 기후 지역에 두 번 정도 나뉘어 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최근 30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장마는 보통 가을장마인데 올해는 그 시기가 빨라져 여름에 두 번의 장마다. 장마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거나 혹은 한 번 오거나 두 번 오거나 혹은 그 시기가 빨라지거나 늦어지거나 하는 현상은 어쩌면 우리가 장마라고 불러온 규칙적인 기후현상이 사라지고 있는 조짐일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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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정권 교체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 전에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리더라는 자의식 자체가 부족한 듯하다. 그는 그제 또 “내가 당 대표가 돼 보니 지금 대통령 선거를 하면 여당에 5%포인트로 진다”고 말했다. 4·7 재·보선 직후 국민의힘만으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게 됐다더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는 여당 후보를 18%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그로부터 넉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5%포인트 차이로 지고 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윤석열이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이니까 국민의힘 밖에 있다면 그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준석 자신이 갑질하듯 압력을 넣어 윤석열을 국민의힘에 입당시켰다. 그렇다면 야권의 열세는 정말 책임이 있든 없든 국민의힘 당 대표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평론가가 남 얘기 하듯 하고 있다. 4·7 재·보선 당시 야권의 좋았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김종인이 안철수에게 감사는커녕 반감을 쏟아내면서부터다. 국민의힘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지지부진할 때 안철수가 도전장을 내 판세를 뒤집었고 윤석열이 정치권 밖에서 지원해 승기를 굳혔다. 거의 다 된 승리를 막판에 국민의힘 것으로 가로채 가서는 오히려 성낸 사람이 김종인이다. 그때부터 좋았던 분위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됐어야 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에게는 안철수든 오세훈이든 대동소이(大同小異)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되든 유승민이 되든 또 다른 누가 되든 대동소이다. 이번 대선은 큰 차이가 중요하지, 작은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정권 교체가 되려면 야권이 화합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준석은 김종인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안철수와 갈등을 빚고 윤석열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윤석열이 당 밖에 있을 때라도 갈등은 바람직하지 않았는데 당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본래의 당내 후보들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이런 싸움닭을 당 대표로 뽑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의 희망보다 절망을 말하고 있다. 이준석은 서울 노원병에서 3번 출마해 3번 다 떨어졌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 얘기로는 그는 지역구를 관리하는 조직다운 조직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는 일이라곤 TV에 패널로 출연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지역 주민과의 정서적 유대는 거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커온 데 익숙한 탓인지 늘 ‘내가 이기냐, 네가 이기냐’의 자세다. 봉사자의 마음(servant mind)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세로 중앙당의 조직인들 잘 끌고 나가겠는가. 물론 정권 교체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는 책임을 이준석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윤석열의 책임도 크다. 본인과 가족 검증 과정에서의 팩트 왜곡이나 정치적 화법을 익히는 과정에서의 말꼬리 잡기로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보다는 대장부처럼 큰 품으로 야권 전체를 아우르는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혼자만 국민의힘에 쏙 들어가버림으로써 나머지 야권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버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윤석열과 이준석은 둘 다 그 자리에 있을 만해서 있는 게 아니다. 윤석열은 박근혜와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다. 두 사람을 감옥에 보냈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고도 그들이 속했던 정당의 후보로 나선다는 사실이 염치없어 보이고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최고위원을 지내고 허구한 날 TV에 나오는데도 선거 때마다 떨어진 36세 젊은이가 당 대표가 된 것도 이변이다. 이 모든 것이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못 할 게 없다’는 절치부심(切齒腐心)이 아니라면 이해 불가능하다. 윤석열이 중도층과 탈(脫)진보세력의 지지까지 끌어모으는 후보가 아니었다면 보수 유권자들이 그를 원했을까. 2030세대의 마음을 잡는 데 매진하라고 뽑아준 당 대표가 기존 대표들이 누렸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투정이나 부리고 있으면 뽑아준 사람들이 좋아할까. 자신을 향한 유권자의 기대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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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김종인 유승민에게 잘못 배운 이준석

    공론(公論)은 크고 높은 것이어서 무엇이 공론이고 아닌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드러난다. MBC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보도해 나라를 뒤집어 놓았으나 지금 한국인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미국산 소고기를 아무런 걱정 없이 잘만 먹고 있다. 유승민은 2015년 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에게 국회가 대통령령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위헌적인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해줬다. 이 뜬금없는 합의로 그는 반발을 사 원내대표에서 쫓겨났다. 그의 주장이 공론에 어긋났음은 시간이 지나 저절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여당이 된 지 오래됐지만 그런 개정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2012년 대선 당시 시대정신은 ‘안철수 현상’으로 표현된 중도였다. 김종인의 중도는 대의(大義)를 위해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중도가 아니라 좌(左)든 우(右)든 돈과 조직을 가진 정당에 자신을 파는 중도팔이의 중도였기에 실패했다. 한 번은 박근혜 정당에, 한 번은 문재인 정당에 중도를 팔아 나라를 탄핵의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그 결과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승민과 이준석은 박근혜 탄핵을 지지해 탈당했다가 제3지대의 광야 생활을 1년도 견디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들과 김종인의 공통점은 돈과 조직이 없는 걸 견디지 못하는 웰빙 체질이다. 제3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정치인을 향한 가학적 발언은 자신들의 부모 때로부터 이어받아 벗어나지 못하는 웰빙 체질에 대한 무의식적 콤플렉스의 표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 쪽에서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이명박을 수감한 윤석열은 도저히 지지할 수 없다’며 최재형을 대안으로 삼는 일부 세력을 제외하고는 윤석열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이런 선택은 윤석열이 정권교체의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인식하에 ‘정권 연장을 막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리로만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 윤석열 지지 세력의 본류는 아니다. 과거 새누리당의 탄핵찬성파, 국민의힘에도 민주당에도 속하지 않은 제3지대 세력, 민주당 쪽에서 넘어온 진보세력이 본류다. 하지만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듯이 결이 다른 두 물이 윤석열 대망(大望)론으로 합류하고 있다. 이 기이한 결합은 문재인 정권이 만들었다. 두 물이 충돌을 피하면서 합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 불만 없는 정권교체의 대(大)전제다. 윤석열의 국민의힘 입당은 그 전제를 파괴하는 자살행위다. 그저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데서 배워야 한다. 이준석은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에서 배워 디지털과 말싸움에는 능하다. 하지만 정치는 잘못 배웠다. 정작 김종인은 지금까지의 ‘제3지대 불가론’으로부터 돌아서 또 될 만한 쪽에 붙을 요량으로 딴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준석은 과거 김종인에게 잘못 배운 그대로 애늙은이처럼 돈 조직 운운하면서 윤석열의 입당을 압박하고 있다. ‘찐’ 보수들이 나라는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장할 것도 주장하지 못하고 참는 사이, 독자적으로는 중도를 추구하지도 못하는 겁쟁이들이 남(보수)의 둥지를 차지하고 설치고 있다. 이준석은 사실상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깎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늘려준 뒤 ‘나쁘지 않은 스탠스’ 운운했다. 대의는 없고 술수(術數)만 있는 것이 김종인이 해온 것과 똑같다. 김종인류는 탁류(濁流)다. 탁류는 서로 다른 두 물이 합류 지점에서 선명한 선을 그으며 ‘따로 그러나 같이’ 흐르는 장엄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 모습은 새의 시선으로 보이지, 지렁이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걸 흐린다. 그렇게 보수의 정체성을 흐리고 남로당식 진보의 정책에 중도의 베일을 씌워줬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진중권류든 법치와 안보의 최저선(bottom line)에 대해 보수 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공유한, 이 희귀한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보수와 중도 모두 각자의 외연(外延)이 확장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때 그 외연을 축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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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

    역사가 늘 명확하지는 않다. 역사에는 거짓으로 포장된 숨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갑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1948년 여순반란사건이 그랬다. “여수 시민들은 10월 20일 새벽 1시부터 들려오는 난데없는 요란한 총소리에 잠에서 깨었지만 설마 군인들이 일으킨 봉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하에서 숨죽여 지내던 남로당 조직원들도 여수 14연대의 시가전 연습이려니 생각했다. 순천의 남로당원들은 14연대가 여수를 거쳐 왔기 때문에 대응책을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여수 남로당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여수 도심에는 인민대회를 알리는 벽보가 붙고 ‘미군 철수’ 등 구호도 나붙었다. 오후 3시 여수 중앙동 로터리에서 인민대회가 열렸다. 여수 좌익계의 이름 있는 거두들이 모두 나왔다. ‘우리는 유일하며 통일된 민족적 정부인 조선인민공화국을 보위하고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의한 민주적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등 혁명과업 6개항이 채택됐다.” 여순사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승만 반공체제 확립에 비판적인 김득중 국사편찬위 연구사의 ‘빨갱이의 탄생’에서 인용한 글이니 과장은 없을 듯하다. 인민위원회는 여수에서 8일간, 순천에서 3일간 통치했다. 반란군과 좌익세력은 여수에서 72명, 순천에서 48명의 경찰관을 죽였다. 민간인도 386명을 죽였다.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이 기독교 우익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좌익 학생에 의해 당한 잔혹한 죽음이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오늘날 개신교인들마저 그게 어느 때 일인지 잘 모른다는 게 흐리멍덩해진 역사 인식의 현주소다. 반란이 평정된 뒤 반란군과 그 협조자들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거나 수감됐다. 원한 감정이 들끓었던 반란 현장의 군사재판에서 작성된 기록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을 것이며 그마저도 6·25전쟁을 거쳐 7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온전히 보존됐으리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서류상 체포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시공을 초월한 듯 태연해 보인다. 국회에서는 ‘여수 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명예회복을 요구할 쪽은 반란군과 그 협조자의 후손밖에 없다.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 속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대법원이 길을 터준 기록 소실이나 기록 부실만으로 억울함을 판정하는 건 역사의 복잡한 실상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남조선노동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제주에서 4·3사건을 일으켰다. 4·3사건 진압 거부를 핑계 삼았지만 실제로는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한 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일으킨 것이 여순반란사건이다. 남로당 지도부마저 6·25 남침에 맞춰 전 군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하고 아쉬워한 성급한 반란이었다. 여순사건은 반란군이 인민위원회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학살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반란 관련자의 처벌은 대체로 군사재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제주4·3사건과는 구별된다. 여순반란사건의 단죄마저 흐려지면 대한민국 군대와 사법체제를 넘어 대한민국 자체의 정당성이 도전받게 된다. 여순 반란군의 잔당이 산으로 도망쳐 지리산 빨치산이 됐다. 그 대장이 이현상이다. 이현상의 자살로 남로당의 맥은 남한에서 끊겼다. 남로당의 계보를 이으려고 한 것이 민혁당이고 통혁당이고 통진당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해구 교수를 정책기획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 자신이 통진당 해산을 격렬히 비난했고 통진당 해산에 유일하게 반대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하려 했다. 부모가 김원봉의 수하였음이 자랑거리인지도 모르겠으나 부모가 정말 김원봉의 수하였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김원웅 광복회장은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했다. 점령이라는 행정적 용어와 해방이라는 프로파간다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 감히 역사를 거론한다. 선조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주역을 인용해 ‘야윈 돼지가 날뛰어 난장판을 만드는 꼴’이라고 했다. 누가 야윈 돼지들이 날뛰게 했는가.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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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자영업자에겐 나라도 아닌 나라

    문재인 정부가 자랑하는 K방역은 철저히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희생 위에서 이뤄졌음에도 끝까지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제 국회 상임위에서 소급적용이 빠진 손실보상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손실보상을 법으로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선진국들은 법 없이도 행정절차로 잘만 보상하고 있다. 앞서는 법이 없어 보상할 수 없다고 하더니 결국 법으로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방역을 위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휴업이나 영업제한을 강제해 놓고는 어떨 때는 100만 원, 어떨 때는 200만 원, 어떨 때는 300만 원씩 찔끔찔끔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다. 서울 이태원에서 주점을 경영하는 가수 출신 강원래 씨는 올 1월 한 인터뷰에서 “지난해 4월 이후 2억5000만 원 손실을 입었는데 자영업자를 위한 재난지원금으로 17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독일은 올 초부터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30∼50%가 줄면 고정비의 40%, 50∼70%가 줄면 60%, 70% 이상 줄면 90%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산수에 불과하다. 국가에 충분한 돈이 없으면 독일보다 보상 비율을 줄이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 단순한 셈도 관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 손실을 보상하면 몇억 원씩 될 텐데 국민들이 그런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부분의 성인이 유흥업소에 가서 돈을 쓴다. 김 총리도 요즘은 안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랬을 것이다. 경제는 유흥이냐 아니냐로 선악을 따지면 안 된다. 유흥업소라도 매출액을 신고하고 세금을 냈으면 보상받아야 한다. 명동에 가보면 코로나 방역으로 포장마차가 다 사라졌다. 이들 포장마차의 월수입이 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포장마차의 주인들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재난지원금이 억대 수입에 비하면 몇 푼 되지도 않는 데다 괜히 신청해서 세금 추적을 당하면 골치 아프다고 본 것이다. 매출액이 잡히지 않아 세금 한 푼 안 내는 포장마차 주인보다는 세금 내는 나이트클럽 주인에게 더 많이 보상해야 한다. 돈 못 버는 놈이 돈 쓸 줄도 모른다. 코로나 직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사실상 1%대로 떨어뜨린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로 2년 동안 국가채무비율을 40% 미만에서 50%로 늘렸다. 어디에다 돈을 다 쓰고는 정작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 손실 보상할 돈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불하지 못해 안달이다.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돈을 번 기업들도 많다. 정보기술(IT)이나 반도체 산업 등의 언택트(untact) 기업은 코로나 와중에 큰 이익을 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연봉 절반 수준의 성과급을 사원들에게 지급했다. 같은 반도체 업체인 SK하이닉스는 연봉의 20% 정도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려다가 사원들이 반발해 결국 비슷한 수준의 보상을 했다. 올 초 넥슨이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인상하자 넷마블 등 다른 게임업체도 줄줄이 인상했다. 언택트 기업이 아니라도 대부분 기업이 월급을 깎지 않거나 조금 깎았을 뿐이다. 코로나로 소비가 줄어 돈을 아낀 측면도 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난해 한 차례로도 모자라 또 주겠다고 한다. 속셈이 뻔히 보이는 뻔뻔한 정치를 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로 직장에서 쫓겨난 실업자들, 취업하지 못한 취업준비생들, 일자리가 줄어든 일용직 근로자 등 국가가 도와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전 국민에게 나눠줄 돈이 있으면 이들에게 더 줘야 한다. 그러나 무상급식 논란 때부터 개인의 소득을 파악할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보편적 지급의 핑계가 됐다. 실제로는 아예 자료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다. 방역 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같은 희생을 치른 게 아니다.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유독 큰 희생을 치렀다. 그렇다면 그 손실의 분량을 가능한 한 정확히 계산해서 전액을 다 보상하지는 못하더라도 비례를 따져 객관적으로 보상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코로나로 오히려 수입이 늘어난 사람들에게까지 돈을 퍼주지 못해 안달이니 과연 이 나라가 공화(共和)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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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마지막 신문 앞의 긴 줄

    레닌이 1917년 10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전복한 이튿날 내린 첫 번째 조치는 당시 1위 신문인 사회혁명당(SR) 계열 ‘볼랴 나로다’의 폐쇄였다. 이 신문은 다음 날 ‘볼랴’로 이름을 바꿔서 나왔고 편집진이 체포된 이후에는 ‘나로드’로 이름을 바꿔 나왔다. 레닌은 작가 막심 고리키의 신문까지 폐쇄하는 건 주저했으나 그마저도 이듬해 여름 폐쇄하고 말았다. 비판 언론이 사라진 곳에 관영 ‘프라우다’의 세상이 펼쳐졌다. ▷북한 노동신문이 1997년 5월 26일자에 3개면에 걸쳐 ‘대남공작 영웅1호 성시백’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해방 정국에 신사복에 중절모 차림으로 명동 일대를 휘젓고 다녀 ‘명동백작’으로 불린 성시백은 공작자금으로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 등 10여 개 신문을 만들어 선전활동을 했다.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전에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이용한다. 레닌도 그랬다. 그러나 혁명에 성공하자 돌변해서 언론의 자유를 짓밟았다. ▷중국 ‘런민(人民)일보’도 관영이다. 이때 관영은 정부에 속한다는 의미의 관영이 아니라 당에 속한다는 의미의 관영이다. 공산 국가에서 정부와 구별된 당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가 선전이다. 런민일보와 그 계열인 ‘환추(環球)시보’ 등의 기자는 다 공산당원이다. 지방 신문도 마찬가지다. 공산당원이 아니면 기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통치자를 비판하는 언론(press)이란 개념은 없고 통치자를 선전하는 매체(media)란 개념만 있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反中) 신문인 타블로이드판 핑궈(蘋果)일보가 폐간됐다. 핑궈는 사과란 뜻이다. 창립 당시 금지된 과일인 선악과를 생각하며 사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성역 없는 비판이 이 신문의 사시(社是)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많은 홍콩 언론이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며 중국 비판을 외면했지만 핑궈일보만은 비판의 각을 세웠다. 하지만 중국이 지난해 10월 통과시킨 홍콩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사주와 편집국장을 체포하고 은행 계좌를 동결하는 상황에 이르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핑궈일보의 일일 발행 부수는 통상 7만 부였다. 그러나 홍콩 당국이 12일 사주를 연행하고 신문사 압수수색을 실시하자 이후 구독 수요가 치솟아 55만 부까지 팔렸다. 24일 폐간호는 100만 부가 발행됐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가판대에서 마지막 신문을 샀다. 가늘게 오는 빗속에서 누구는 비를 맞으며, 누구는 우산을 쓰고 한 부의 신문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모습이 마치 소리 없는 자유의 아우성처럼 들려 가슴이 먹먹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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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특이한 ‘知의 巨人’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형의 언론인이자 지식인이다. 한편으로는 ‘일본 공산당’ ‘종합상사’ ‘농업협동조합’ 등 문과적 주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뇌사’ ‘원자력’ ‘우주’ 등 이과적 주제로 종횡무진 글을 썼다. 문과적 주제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해 신문 기자가 파고들기에는 부담스럽고, 이과적 주제는 한참 발전하고 있어 대학교수가 다루기에 조심스러운 주제다. 그는 신문 저널리즘과 대학 아카데미즘 사이에 놓인 방대한 틈을 파고들어 특이한 지(知)의 거인(巨人)으로 인정받았다. 도쿄대 교양학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다치바나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다치바나는 1964년 도쿄대 불문학과 졸업 후 잡지사 문예춘추에 입사해 주간춘추에 배치됐으나 관심이 전무했던 프로야구 취재를 맡게 되면서 2년여 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다만 이때 한 선배의 영향으로 논픽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는 1967년 다시 도쿄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대학이 전공투 사태로 휴교에 들어가자 잡지 ‘제군(諸君)’에 ‘생물학혁명’ ‘석유’ 등의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잡지 저널리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다나카 가쿠에이, 그 금맥(金脈)과 인맥(人脈)’이란 글은 1974년 월간 문예춘추에 실은 글이다. 이 글은 일본 국민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돈으로 정계를 주물러온 다나카 총리 퇴진의 계기가 됐다. 검찰은 다나카가 퇴진하자 총리 재임 시 미국 항공기 제작사 록히드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자민당 내 다나카파는 반발해 다른 파벌까지 규합해 검찰 수사를 막지 않는 후임 미키 다케오 총리를 해임하기로 합의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검찰총장이 된 요시나가 유스케를 주임검사로 한 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를 전격 체포하고 결국 기소하기에 이른다. 일본 현대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사건이다. ▷다치바나가 올 4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뒤늦게 사망 사실이 알려졌다. 그는 한 주제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취재에 나섰다고 한다. 생전에 읽은 수많은 책을 도쿄에 있는 지상 3층, 지하 2층짜리 빌딩에 보관했다. 그는 국내에도 번역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란 책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학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는 곳이 아니다. 대학은 스스로 배우는 곳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바보 같은 대학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자신이 알고 싶은 모든 주제에 관해 스스로 배워 글을 쓴 사람의 말이니 귀 기울여볼 만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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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30대는 어떻게 50대를 따라잡고 있는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17년 낸 ‘Thank You for Being Late(늦게 와줘서 고마워)’란 책에는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이 직관이 뛰어난 30년 된 숙련 기술자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대목이 나온다. 30대가 50대보다 20년이나 어린데도 어떻게 50대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기계에는 인간의 지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약한 징후가 있다. 과거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직관을 갖게 된 사람만이 이 징후를 포착해 대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센서를 통해 수집한 빅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기만 하면 베테랑에게나 가능했던 ‘건초 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가 신입사원에게도 가능해졌다. 4차 산업혁명을 영어권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아날로그적인 것을 디지털로 바꾸는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 같은 반발이 없어서 그렇지 1차 산업혁명 시기 수공업을 기계공업으로 바꾸는 것 못지않은 작업 방식의 근본적 변혁이다. 아날로그에 익숙한 구세대 사원은 결국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 사원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60대의 프리드먼은 ‘늦게 와줘서 고맙다’고 한 것이다. 36세의 국민의힘 정치인 이준석이 586세대인 나경원을 제치고 당 대표가 됐다. 그가 디지털 접속을 정치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해주는 최근 주간조선 기고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34세의 국민의힘 정치인 김재섭은 당 대표 후보 여론조사에서 이준석이 1위라는 소문이 처음 돌았을 때 함께 저녁을 먹다 접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준석은 여론조사 소식을 접하자 즉각 태블릿을 꺼내 구체적 수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각종 커뮤니티 인기 글의 현황을 알려주는 ‘이슈링크’에 접속했다. ‘이준석’이란 키워드가 1위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짧은 논평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논평을 인용한 글이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재생산됐다. 주요 언론사에서도 이준석의 논평을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선순환을 일으켜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는 더욱 확산됐다.” 586세대와 40대가 젊었을 때 일어나기 시작한 정보기술(IT) 혁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서막에 불과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출현할 무렵 도약이 일어났다. 페이스북이 개방되고 트위터가 시작됐으며 구글이 유튜브를 매입했다. 하둡(Hadoop)의 분산병렬식 처리로 인해 컴퓨터의 저장 연산능력이 폭발했고 깃허브(Github)라는 소프트웨어 오픈 플랫폼이 등장해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용이해졌다. 30대는 그 무렵 16∼25세였다. 그렇게 첫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30대 이하를 눈여겨볼 또 다른 이유가 있다. 586세대가 고등학교에 갈 때는 이미 명문고가 다 없어지고 평준화가 시행됐다. 40대들도 대부분 평준화 교육을 받았다. 1996년 민족사관고등학교가 평준화 이후 처음으로 수월성 교육을 표방하고 나왔다. 2002년 민사고를 시작으로 자립형 사립고가 생겼다. 30대는 새로 수월성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다. 수월성 교육의 결과 국내를 넘어 외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 도전장을 내는 학생이 늘었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말하고 듣는 이들이 지금 30대의 선두주자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 공부한 학생도 이른바 ‘인서울(in Seoul) 대학’에 가는 학생의 실력은 586세대 때 서울대와 연고대에 가는 학생의 실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기초 실력은 586세대나 40대보다 높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이준석 현상’과 관련해 곧 발표할 원고를 하나 보내줬다. 그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20, 30대는 이념적으로는 보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념 대신 정부 중심이냐, 시민 중심이냐는 구별을 대입해 비교해 보면 50, 60대는 정부 중심, 20, 30대는 시민 중심으로 큰 차이가 난다. 30대 이하가 이전보다 보수화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거 정부 중심의 보수와는 다른 시민 중심의 새로운 보수다. 아날로그 시대의 중민(中民)과는 다른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중민이 나올지도 모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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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일대일로 맞불 놓기

    역사에는 늘 맞수가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고대 로마 시대에는 로마와 카르타고가 맞수였다.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 시대에는 프랑스가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맞붙었다. 프랑스의 세력이 약화되자 독일이 유럽 대륙의 새 강자로 부상해 두 차례 세계대전의 불씨로 자라는 가운데 중동과 아시아에서는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미국과 소련이 맞수였다. 오늘날은 미국과 중국이 맞붙고 있다. ▷중국은 동쪽과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해 있고 북쪽과 서쪽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이어져 있다. 청나라 때는 바다 쪽 방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해방파(海防派)와 대륙 쪽 방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새방파(塞防派)로 나눠 다퉜다. 수세적이었던 청나라와는 달리 오늘날의 굴기하는 중국은 바다 쪽으로는 군사력을 앞세워, 대륙 쪽으로는 경제력을 앞세워 진출하고 있다. 후자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중국 자금을 대고 인프라 건설 등을 지원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중국의 서진(西進)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적 동진과 남진은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충돌,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난사군도 충돌로 나타났다. 홍콩 접수와 대만 위협은 중국의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적 진출을 막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와 인도태평양 동맹을 강화했다. 미국은 그동안 자국과 관련되지 않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일대일로 정책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일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중국에 대한 높은 수준의 대체재(代替財)를 제공할 것”이라며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주요 7개국(G7)을 말한다. 11∼13일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 일대일로에 대한 대체재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G7의 협조융자 시스템이 논의될 것이라고 외신들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에 소련과 동유럽 국가를 향해 봉쇄 정책을 폈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은 것으로 궁극적으로 공산권의 몰락을 초래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동맹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서진에도 맞불을 놓기로 한 것은 중국을 동쪽 남쪽 서쪽에서 유연하게 봉쇄하는 신(新)봉쇄 정책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는 점점 더 깊이 신냉전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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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586세대 넘어 진격하는 30대

    김슬아 마켓컬리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38세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약간 체격이 있다. 자신이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먹고 싶어 신선식품에 특화된 e커머스 업체 마켓컬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민족사관고에 1년간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웰즐리대에 입학해 정치학을 전공한 후 골드만삭스 등에서 일하다 창업했다. 한국에서는 과거 유학을 가도 주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갔다. 그렇게 공부하고 와서 교수가 된 친구들이 하는 말인즉 같은 한국인이라도 고등학교나 대학 학부 과정부터 다닌 학생과 대학원 과정부터 다닌 학생은 쓰는 영어부터 다르다고 한다. 그 사회에 스며들어 교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넥슨의 김정주,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등 50대인 정보기술(IT) 분야 선두 기업의 창업자들은 대부분 유학을 가지 않았다. 서울대나 KAIST를 다녔다. 미국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한 적도 없다. 다음의 이재웅이 특이하게 프랑스의 이공계 그랑제콜을 다녔다. 정치인이 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정도가 뒤늦게 미국에서 MBA를 했다. 한화 3세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도 올해 38세다.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다. 그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영어 소통에 불편이 없으니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 모임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 그가 주도한 차세대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외국 CEO들과의 개인적 교류를 통해 얻은 정보에 기초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등 50대인 재벌가 자제들은 대개 국내에서 대학을 마친 뒤 ‘황제교육’ 차원에서 유학을 갔다. 김 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반 외국 학생들과 섞여 지내서인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면이 거의 없다. 공군 통역장교로 3년 근무해 일반인 이상으로 병역 의무를 충실히 마쳤고 결혼도 회사 동료와 해서 화제가 됐다. 이들은 내가 올 들어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서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두 30대 기업가다. 괄목상대(刮目相對)할 30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올해 36세다. 40세가 안 돼 아직 대통령 피선거권도 없지만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정치권, 특히 여권은 586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586 정치인들은 대부분 국산(國産)이고 그것도 ‘운동’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한 세대인 반면 이 전 위원은 서울과학고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이런 경력이면 대개 금융계나 IT 업계에서 활동하는데 그는 26세에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따지고 보면 26세에 전업 정치인이 돼 보겠다고 한 것 역시 창업 못지않은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586세대는 평준화 체제에서 교육받고 기껏해야 읽는 영어로 세계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세대인 반면 30대는 수월성 교육을 받고 말하고 듣는 영어로 세계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 세대다. 50대는 30대보다 경험치가 20년가량 많다. 그 경험치의 한계효율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의 축적이 30대들에게 이뤄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도 40대는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존재감이 희미하다. 586세대 정치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인 반면 40대 정치인은 많지도 않은 데다 있는 정치인들도 586세대 정치인의 아류 같은 느낌이다. 586세대 IT 기업가들은 개발시대의 재벌에 필적할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거대기업군을 만들었다. 그들이 대학생이던 시절 IT 시대가 시작돼 그 업계를 선점해버린 탓도 있겠지만 40대에는 그만한 기업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30대가 40대와는 달리 586세대가 드리운 긴 그늘을 헤치고 나와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젊다고 무조건 박수칠 일은 아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젊음은 미숙함일 뿐이다. 배우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그만큼 사회에 유해한 것도 없다. 전(前) 세대의 고루한 통념에 도전하되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도 함께 가졌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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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윤석열 안철수 국민의힘의 이기는 연대

    국민의힘 30대 최고위원인 이준석과 초선 의원인 김웅은 당 대표에 도전하면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윤석열의 영입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은 주호영 같은 중진들도 윤석열 영입을 거론하고 있다. 주장하는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탄핵의 강은 유승민이 바란 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건너기는 어렵다. 금태섭과 권성동이 만든 국회 탄핵소추안은 엉터리였다.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은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뇌물로 규정한 소추 내용을 헌법상의 영업 자유 침해로 슬쩍 바꿨다. 검사의 공소장을 판사가 멋대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후에 윤석열은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뇌물로 기소했으나 법원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탄핵은 사법 절차처럼 상소나 재심이 가능한 제도가 아니다. 잘못이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바로잡을 수 없다. 그래서 탄핵은 정치에 가깝다고 말한다. 탄핵을 비이성적으로 몰고 간 당시의 힘의 관계는 그 자체가 받아들여야 할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탄핵에 이성적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관행의 범죄화’ 등으로 가속기를 밟고 박근혜 탄핵을 넘어 이명박까지 사실상 탄핵한 윤석열을 국민의힘으로 영입하는 건 탄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윤석열에게도 국민의힘의 영입 제안에 응하는 것이 좋을지는 고민일 것이다. 국민의힘이 가진 조직과 자금을 이용할 수 있지만 자신을 향한 지지의 일부를 잃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는 정반대의 고민이 있다. 윤석열을 영입한다고 정체성을 과도하게 흔들어버리면 전통적 지지자들이 떠날 수 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각자의 정체성을 허물고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하는 것이다. 엄연한 차이를 얼버무리면서 억지로 하나로 묶기보다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분명히 한 뒤 더 높은 목표를 위해 가능한 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함께 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박근혜 탄핵 당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소수파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홍준표가 복당에 어려움을 겪는 사실이 그런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홍준표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제 손으로 뽑은 후보다. 홍준표의 품격 없는 언행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홍준표를 배제함으로써는 국민의힘이 전진할 수 없다. 유승민과 원희룡은 홍준표를 넘어서야 진정한 대선 주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윤석열의 정치적 출발점은 제3지대가 더 적절해 보인다. 제3지대에는 이미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있으니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낫고 국민의당이 소규모 정당에 불과하니 상대하는 부담도 작다. 윤석열과 안철수의 입장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차이가 작은 편끼리 먼저 힘을 합치는 것이 순서다. 제3지대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의미 있는 협상력을 가지려면 세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윤석열이 개인적으로 국민의힘에 영입되는 것이나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는 것은 둘 다 국민의힘에 흡수되는 것처럼 보여 표의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4·7 재·보선을 자기 힘으로 이긴 줄 알고 윤석열과 안철수에게 기차 떠나기 전에 타라는 식으로 압박한다면 착각이다. 국민의힘이 조직과 자금을 바탕으로 윤석열과 안철수를 국민의힘의 일부로 만들려는 순간 정권교체의 목표는 멀어진다. 국민의힘 윤석열 안철수는 각각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고 하나의 그릇에 들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인재 스카우트나 M&A가 아닌, 함께하는 다른 방식을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연대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통합은 단선율(單旋律)이고 연대는 다선율(多旋律)이다. 하나의 주선율(主旋律)이 있고 다른 음들은 주선율에 화음을 이루기 위해 종속되는 음악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선율이 독자적으로 울리면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각기 다른 선율 간에 음이 부딪쳐 불협화음이 나오는 순간들이 없을 수 없지만 불가피한 곳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화음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4·7 재·보선은 친문(親文)의 단선율 집단에 맞서 반문(反文)의 다선율 연대가 압도적 승리를 거둔 선거다. 넓고 큰 것이 좁고 작은 것을 이기는 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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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의식 없는 살인도구

    북한 김정남 암살에 관여한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은 4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을 한국 유튜버라고 소개한 미스터 와이라는 사람을 만나 암살 두 달 전부터 오렌지주스나 베이비오일 같은 액체를 손에 바르고 사람 얼굴을 만지는 방식의 몰래카메라 촬영을 7, 8차례 했다고 한다. 그는 “암살 당일에도 몰래카메라 촬영을 하는 줄 알고 미스터 와이가 발라준 액체를 그가 지목한 남자에게 묻혔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북한이 영문도 모르는 사람을 살인도구로 이용한 기상천외한 수법에 놀랄 수밖에 없다.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신경계 작용 독성 물질인 VX에 의해 독살됐다. 손에 독성 물질을 묻히고 김정남에게 몰래 접근해 그의 얼굴을 문지른 도안티흐엉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는 재빨리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고 중독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남은 2시간 만에 서서히(혹은 급속히) 죽어갔다. 당시 그의 사망 사실 못지않게 그를 죽이는 데 사용된 VX의 강력한 독성에 모두 놀랐다. ▷현실은 종종 상상을 뛰어넘는다. ‘공각기동대’나 ‘인셉션’ 같은 SF 영화를 보면 사람의 기억을 조작해 의식 없는 살인도구로 이용한다. 그런 건 아직 공상일 뿐이다. 북한은 유튜브가 전 세계적 인기 매체라는 점, 유튜브에 몰래카메라 상황극 영상이 흔하다는 점, 보통 한번 설정한 상황극 형식에 다양한 장소와 사람을 시리즈로 담는다는 점을 이용해 누구라도 쉽게 속아 넘어갈 방식으로 의식 없는 살인도구를 만들어냈다. ▷도안티흐엉이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 살인은 살인의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독극물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극물을 전달받아 바른 사람은 단지 살인의 도구일 뿐이다. 총을 쏘거나 칼로 찔러 살인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어도 총이나 칼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도안티흐엉은 맨손으로 VX를 만졌다. 독극물인 줄 알았다면 맨손으로 만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해독제를 맞은 증거도 없다. 해독제를 맞아야 했다면 유튜브를 위한 몰래카메라 촬영인지 의심하게 됐을 것이다. 김정남은 평범한 젊은 베트남 여성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독극물 노비초크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와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한동안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지만 죽이지는 못했다. 김정남 암살은 북한이 러시아를 뛰어넘는 암살 기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서운 집단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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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개인이 대통령과 싸워 이긴다는 것

    현대사 전공 학자로 클래식 음악 평론에도 조예가 깊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최근 광화문 근처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4년 전 KBS 이사 해직 사태에 휘말리기 전의 활기와 열정이 넘치던 얼굴은 사라졌다. 보기 좋은 체형이었는데 몸은 마르고 배만 불룩 나와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했다. 지친 표정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감사원 정기 감사를 마친 KBS 이사들을 다시 표적 감사해 업무추진비를 잘못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사 전원을 문제 삼으면서 정기 감사 결과를 뒤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처럼 한 놈만 팬다는 식으로 강 교수를 찍어 이사직 해임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해임을 재가했다.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을 상대로 해직 취소 소송을 냈고 1, 2심 모두 강 교수 손을 들어줬다. 강 교수만이 아니라 KBS 이사 11명 전원에게서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사실이 드러났고 강 교수의 소위 부당 사용 액수가 다른 이사들에 비해 오히려 적은 편이며 KBS에서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을 이유로 이사를 징계한 사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는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있을 때 360만 원을 부당 사용했다가 국무조정실 감사에 적발된 사실이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드러났는데도 법무장관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에게 공정한 잣대는 없었으며 주의를 줄 것, 징계를 할 것, 파면을 할 것 사이의 구별도 없었다. 문 대통령과 싸운다는 것은 단지 대통령과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홍위병 같은 지지자들과도 싸우는 걸 의미한다. 강 교수가 한번은 모 씨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언론노조와 미디어오늘은 강 교수가 오히려 물의를 일으켰다고 주장했고 방통위는 이를 또 다른 해임 사유로 삼았다. 강 교수는 이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민형사재판을 했다. 대법원은 물론 민사 재판부도 상대편의 폭행만 인정했다. 강 교수에게 한 사건이 끝나면 또 다른 사건으로 소장이 날아왔다. 이런 소송이 20여 건에 이른다. 상대편은 소송비를 부담하지 않는다. 노조나 특정 변호사 집단이 도와준다. 이런 경우 일단 ‘소송 괴롭힘’ 때문에 손을 들어버리기 쉽다. 상대편도 그걸 노린다. 소송비로 억대의 돈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소송 대응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도 겪는다. 개인에게는 이것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강 교수가 다른 이사들처럼 정권이 원하는 대로 사퇴해 줬으면 별일 없었을 것이다. KBS 이사는 KBS 사장과 달리 봉급이 있는 자리도 아니다. 활동비가 조금 나올 뿐이다. 해직 취소 소송 승소를 바탕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들 받아낼 돈도 별로 없다. 다만 그는 한 사람의 역사학자로 현 정권의 언론 탄압에 대한 분명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강 교수가 겪은 일은 이 정권에서는 특이한 것도 아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닷새가 지나 수상한 기사가 하나 한겨레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과 밥을 먹고 각자 상대편 후배들에게 100만 원씩 돈 봉투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관행대로 특수활동비를 쓴 것인데도 문 대통령은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두 사람은 쫓겨나고 그 틈을 타 윤석열 검사가 등용됐다. 두 사람에 대한 면직 처분은 나중에 법원에서 취소됐다. 기가 막힌 것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까지 앉힌 그를 등용할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쫓아낸다는 점이다. 법무장관은 검찰 인사를 전횡하고 수사지휘권까지 남발해도 뜻대로 되지 않자 검찰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재판부 분석을 사찰이라고 트집 잡아 윤 총장을 징계했다. 징계가 청구되자 문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결재했다. 하지만 이 처분도 법원에서 퇴짜를 맞았다. 대통령의 처분이 사자처럼 당당하지는 못할망정 벌레처럼 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처분과 싸우는 개인에게 그 싸움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검찰총장조차도 법무부라는 조직이 동원돼 씌운 징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일반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강 교수의 경우 연금통장 2개를 털었고 몸은 엉망이 됐으며 무엇보다 학자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할 50대 중후반의 수년을 부질없는 송사(訟事)에 빼앗겼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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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가짜 진보 몰아낼 3년의 시작일 뿐인데…

    앞으로 3년간 우리 정치의 과제는 보수와 중도의 연합으로 가짜 진보를 몰아내는 일이다. 문재인 세력, 즉 가짜 진보가 차지하고 있는 우리 정치의 왼쪽 자리는 반문(反文)이면서 보수가 아닌 중도와 진짜 진보에 주어져야 한다. 문재인 세력은 단순히 야권으로가 아니라 야권에서도 가능한 한 주변부로 밀어내야 할 세력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전직 대법원장을 별것도 아닌 죄목으로 구속까지 하고 정치적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전전(前前) 대통령을 수감했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들이 내세웠던 검찰총장이 똑같은 칼을 살아있는 권력에 들이대자 그마저 사실상 쫓아냈다. 외국에서도 이 정권의 독재적 본색(本色)을 서서히 알아채고 있다. 독재라도 박정희 독재와 문재인 독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박정희 독재가 유능했던 반면 문재인 독재는 무능하다. 이 정권 들어 외교 국방 경제를 막론하고 국정의 전 분야가 망가졌다. 우리나라는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동맹에서 서서히 배제되고 있으며 군은 북한의 핵위협에 무력한 채 실전훈련도 못하는 오합지졸이 됐고 경제는 집 없는 국민을 벼락거지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역 하나 영업의 자유이고 보상이고 무시하고 마구 틀어막는 방식으로 성공하나 싶더니 그마저도 전문성이 필요한 백신 접종 단계에 와서는 파탄에 직면했다. 4·7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는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른 긴 여정의 출발에 불과하다. 가짜 진보를 몰아내려면 내년 3월 대선에서 정부 권력을 바꾸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2024년 4월 총선에서까지 승리해 국회 권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 승리가 보수 단독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정치의 한 당사자가 아니라 정치 전반에 의미를 가지려면 보수·중도 연합으로서의 승리여야 한다. 내년 3월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어느 후보가 오세훈처럼 갑자기 떠서 집권하느냐, 안철수가 집권하느냐, 윤석열이 집권하느냐는 국민에게는 부차적일 뿐이다. 서울시장이 오세훈이 되든 안철수가 되든 국민에게는 부차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는 세력의 단합된 힘으로 가짜 진보를 몰아내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자기 쪽이 권력을 쥐는 것 못지않게 자기 쪽이 권력을 내줄 때 신뢰할 수 있는 상대편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 상대편이 중도와 진짜 진보가 되도록 정치판을 재편하지 않으면 보수와 가짜 진보가 소모적으로 싸우는 과거 정치로 돌아간다. 눈앞의 자기 이익에 급급한 정치기술자에게는 이런 큰 정치적 소명(召命)은 아예 생각할 거리도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오세훈은 김종인이 선택한 후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상급식 반대를 트집 잡아 구박하던 후보였다. 그가 지금 와서는 오세훈이 당선된 것이 자기 덕분인데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그가 국민의힘에서 쫓겨난 홍준표와 비주류로 밀려난 김무성파가 당을 흔드는데도 중심을 잡고 서 있었으니 그의 덕분이라는 게 작은 사실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큰 진실은 오세훈이 아니라 안철수가, 아니 다른 누가 야권의 단일화 후보로 나왔어도 서울시장이 됐으리라는 것이다. 4·7 재·보선은 국민의힘과 안철수가 가진 힘의 벡터가 합세해 작용하고 장(場) 밖에서는 윤석열이 지원함으로써 승리한 선거다. 국민의힘, 안철수, 윤석열 다 일정한 한계가 있다. 윤석열이 ‘별의 시간’을 맞은 듯하지만 막상 정치판에 나와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3자는 서로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있음이 4·7 재·보선에서 드러났다. 이런 가능성을 더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고마워해야 할 사람에게 건방지다는 망발을 늘어놓는 게 딱 정치기술자 수준의 인간적 품성이다. 반문 연합이 꼭 합당이란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짜 진보가 쫓겨난 후에는 보수, 중도, 진짜 진보가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철수류의 중도와 진중권류의 진짜 진보는 문재인 정권과의 싸움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줬다. 이들과 정화(淨化)된 보수 세력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토론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좌우(左右)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그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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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ENA 없애는 프랑스

    미국 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으로 유명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도 좋은 책을 남겼다. 그는 ‘미국의 고등교육’이란 책에서 대학(university)에서 학부대학(undergraduate college)과 직업학교(professional school)를 구분하고 인문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학부대학보다 로스쿨이나 MBA 같은 직업학교가 중시되는 경향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오늘날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명문 로스쿨이나 명문 MBA를 나오는 게 중요하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고등교육 과정에서의 직업학교다. 프랑스 대학은 평준화돼 있다. 똑똑한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가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명문 고등학교에 설치된 그랑제콜 준비반에 들어가 2, 3년을 더 공부한 뒤 그랑제콜로 직행한다.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되고 싶으면 국립행정학교(ENA)로 가고, 이공계에서 리더가 되고 싶으면 에콜폴리테크니크로 간다. 고등상업학교(HEC) 같은 일종의 경영대학원들도 그랑제콜이다. ▷ENA는 1945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새로운 프랑스 건설에 필요한 최고의 공무원을 키워내기 위해 설립했다. 드골 이후 프랑스 대통령은 7명이 나왔는데 그중 4명이 ENA 출신이다. 역대 총리와 장관 중에서도 ENA 출신이 수두룩하다. ENA 출신, 즉 에나르크(enarques)가 되는 것은 정관계에서 성공의 지름길이며 정관계와 인맥을 갖고 있어야 하는 재계에서도 성공의 지름길이다. ▷프랑스 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 자본’이란 개념을 만들어 현대 사회에서의 새로운 신분화를 우려했다. 문화 자본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문화적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재산 못지않게 문화적 능력을 자녀 세대에 전수하는 것이 부모 세대의 특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인 학생이 빈곤층 학생에 비해 ENA에 입학할 가능성이 10배 이상으로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ENA 폐지론이 제기돼 왔다. 그 자신 ENA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8일 ‘사회적 이동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내년 ENA 폐교를 발표했다. ▷ENA 폐교는 프랑스 특유의 소수정예주의의 종말로도 이해될 수 있다. ENA는 한 해 고작 80∼9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프랑스는 대체로 관공서건 회사건 소수의 간부들은 밤늦도록 일하고 대다수의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해 여가를 즐기는 사회다. 간부가 될 자질을 가진 소수를 택해 나랏돈으로 특별대우를 해주는 대신 그들에게 대중을 끌고 갈 책임을 부여하는 프랑스 시스템에 한계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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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박원순 9년의 심판 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번은 잠수교에, 한 번은 광화문광장에 모래를 퍼날라 프랑스 파리처럼 서울 플라주(plage·해변)를 시도했다. 비가 와 두 번 다 망쳤다. 유럽의 여름은 가물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잊었다.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가보면 좀스러운 원순 씨를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철거된 카페와 맛집이 그리울 뿐이다. 서울역 인근의 고가인도(高架人道)인 ‘서울로’ 정도가 인정해줄 만한데 그마저도 최선의 개조였는지는 의문이다. 그의 어버니즘(urbanism)이 이런 수준이다. 광화문 일대는 단지 서울의 메인 스트리트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메인 스트리트이다. 그곳 광장이 한쪽으로 찌그러져 개조되고 있다. 박 시장과 친한 몇몇 문화인들이 광화문 앞에 월대(月臺)를 복원해야 한다며 도로를 없애고 광화문 일대 전체를 광장화한다는 망상을 박 시장에게 불어넣었다. 그것이 현실성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면 포기했어야 하는데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인 반쪽짜리가 편측광장이다. 이해찬 씨는 서울을 천박한 도시라고 했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서울을 천박하지 않게 하려면 멀쩡한 광화문광장을 파헤칠 게 아니라 세종문화회관부터 뜯어고칠 생각을 했어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유신 말기 정부 행사장으로 만든 곳으로 부분적 개조를 했음에도 음향이 좋지 않다. 서울 도심에 제대로 된 공연장 하나 없음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게 천박하다면 진짜 천박한 것이다. 박 시장의 성곽 복원 사업은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면서 완고한 집착으로 흘렀다. 옛 한양 성곽은 군사적 성벽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막는 담 같은 것이었다. 유럽의 도시들에는 해자까지 갖추고 감시탑만 수십 개에 이르는 진짜 성벽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를 굳이 복원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한적한 곳에 성곽을 복원해 서울만의 독특한 둘레길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사람 사는 주거지에서 성곽을 복원한답시고 개발을 막는 것이다. 복원한 성곽이 무슨 문화재적 가치가 있겠는가. 유네스코가 그런 걸 등재해줄 리도 없지만 외국 관광객들의 관심도 끌지 못할 걸 등재해서 박 시장 실적이 되는 외에 무엇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옛 굴레방다리 인근의 아현동 일대와 모래내시장 뒤쪽의 남가좌동은 작부들의 맥양집(맥주양주집)이 즐비한 곳이었다. 그곳이 뉴타운 사업으로 상전벽해해 아파트촌이 됐다. 뉴타운 사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때 시작됐다. 2005년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활력을 얻었으니 노무현 정부와 당도 그 사업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런 뉴타운 사업이 박 시장 재임 9년 동안 줄줄이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창신동과 숭인동은 광화문에서 아현동과 남가좌동의 반대 방향으로 딱 그 정도의 좋은 위치에 있지만 낙후돼 있다. 박 시장이 동대문 의류시장 수선집 주인들을 부추겨 뉴타운 개발을 막았다. 박 시장 밑에서 서울주택공사(SH) 사장을 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뉴타운 대신 도시 재생이란 걸 했는데 900억 원을 들여 했다는 게 고작 계단 손잡이 수리하고 벽에 페인트칠하는 정도였다. 현재 노후화가 심각해 주민들이 점점 더 떠나면서 폐가가 속출하고 있다. 박 시장은 2019년 서울시 산하 교통방송에서 공정성이라곤 ‘일(一)도 없는’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만 해당한다”고 말했다. 말짱히 이런 말을 하고 듣는 자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물론 시정(市政)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히 했으면 한다. 이번 보궐선거는 윤석열 씨가 간명히 정리한 대로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에 막대한 국민 세금을 낭비하게 된 선거’다. 오늘은 ‘공소권 없음’으로 인해 못 한 박 시장의 성범죄에 대한 응징을 선거로 하는 날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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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안철수의 길, 료마의 길

    내 사무실에는 안철수 씨의 미니어처 조각상이 하나 있다. 방송용으로 제작해 쓰던 것을 하나 구해 갖고 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씨를 지지했다. 당시 보수정당의 대선주자는 박근혜 씨였다. 하지만 박 씨를 지지할 수는 없었다. 그가 박정희 딸이라는 사실 말고는 대선후보가 될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박정희 시대의 유산과도 같은 최순실과의 관계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권력을 주고받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평소 지지하는 정당 못지않게 권력을 넘겨받을 수 있는 상대편 정당이 신뢰할 만하냐가 중요하다. 당시 진보 진영에는 안 씨와 문재인 씨가 단일화를 두고 맞붙었다. 문 씨는 1980년대 운동권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고 안 씨는 1980년대 학생 대중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안 씨라면 진보 진영의 후보가 되더라도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안 씨는 단일화에서 져 진보 진영의 재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 씨는 단일화에서는 이겼으나 박근혜에게 패해 거의 몰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박근혜 탄핵을 기회로 집권까지 했다. 운 좋게 집권한 것을 실력으로 집권한 것으로 착각한 문재인 정권은 곧 본색(本色)과 무능(無能)을 드러냈다. 문재인파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고 반문(反文)진영이 형성됐다. 안 씨가 이번에는 반문진영의 단일화 주자로 등장했다. 10년 만의 반전이다. 안 씨는 어제 다시 결정적으로 패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서울시장으로 다시 시작해 그 성과로 2027년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안 씨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반문진영 전체로 보면 안 씨가 꼭 이겨야 할 이유는 없다. 안 씨가 되든 오세훈 씨가 되든 양쪽 다 최선을 다하면 야당 후보에 승산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안 씨의 목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서울시장이 아니지 않은가. 안 씨의 패배는 어쩌면 다시 대선에 도전해 볼 기회가 될 수 있다.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면 이번에는 아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안 씨에게 다시 대선에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2011년 박원순 씨와의 서울시장 단일화에서 양보하고 대선에 도전했다가 10년간의 긴 우회 끝에 다시 서울시장 후보로 도전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 사람이 어떻게 다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는가. 그의 한계인 면도 있고 한국 정치의 한계인 면도 있다. 이쯤에서 차라리 깨끗이 포기하는 게 낫겠다. 그 대신 료마의 길을 권하고 싶다. 일본 메이지유신 때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사쓰마번 출신도 조슈번 출신도 아니면서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통합을 이끌어 일본의 근대화를 이뤘다. 안 씨가 단일화에서 이긴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도록 성심성의껏 돕고 이후에는 반문진영에서 국민의힘과 강력한 대선 주자로 부각된 윤석열 씨를 결합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한국 정치에 무엇보다 기여하는 길이다. 안 씨는 의사로서 또 벤처기업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이지만 기존의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소명을 발견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안 씨는 권력을 잡아 휘두르는 데서 희열을 느끼거나 권력의 전리품을 측근들에게 나눠주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다. 권력지향적인 정치인과 다른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앞에 놓여 있다. 반문진영의 유력한 후보가 드문 상황에서 안 씨가 2선에 위치한다면 반문진영에는 든든한 느낌을 주고 정치 전반에는 활력을 준다. 보수 정당 출신의 문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뒤져보면 구린 데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오 씨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서울 내곡동 셀프특혜 의혹을 얼마나 잘 해소할지 의문이다. 윤 씨는 지지율이 높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 검찰주의자는 여전히 많은 불안한 점을 갖고 있다. 안 씨가 희생적 자세로 자기 소명을 다하다 보면 지나가버린 별의 시간이 혜성처럼 다시 올지 누가 알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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