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民本 사상이 동서양 넘어 근대화 이끌었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송평인 논설위원 입력 2020-09-30 03:00수정 2020-09-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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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상 西遷’ 주장한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3일 서울 동국대 연구실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하루 17시간씩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치명적인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황태연 교수.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송평인 논설위원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3)는 공자 사상의 서천(西遷)을 다룬 대작을 완성했다. 서구 근대화의 요체인 관용과 민주주의가 서양 내부에서 싹튼 것이 아니라 공자 사상에서 유래했다는 논증을 위해 약 3500쪽을 채울 원고를 썼다. 이 방대한 원고를 2015년 서론격인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와 올해 ‘근대 프랑스의 공자 열광과 계몽철학’ ‘17∼18세기 영국의 공자 숭배와 모럴리스트들 상·하’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 ‘공자와 미국의 건국 상·하’ 등 모두 7권으로 나눠 출간했다. 최근 중국 런민일보 출판부에서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孔夫子與歐洲思想啓蒙(공자와 유럽사상 계몽)”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했다.》

황태연 교수가 연구실에 공부하기 위해 붙여 놓은 희랍어 알파벳.
―한 학자가 단일 주제로 쓴, 이렇게 큰 스케일의 책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서양인은 흔히 고대 그리스·로마문화와 기독교문화가 결합해 서양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여긴다. 민주주의도 거기서 나왔다고 여긴다.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가 전형적으로 그런 학자다. 마르크스는 좌익의 모든 근대 이론을 지배하고, 베버는 우익의 모든 근대 이론을 지배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서양 중심주의가 자리 잡았다. 이런 사고가 날조임을 밝히고 싶었다.”

―유교가 어떻게 서양의 관용과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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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존 밀턴이나 존 로크, 프랑스의 볼테르보다 훨씬 이전인 서양 계몽주의 초기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피에르 벨이나 영국의 조지 뷰캐넌 같은 학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위그노 교도였던 벨은 중국 사정을 전하는 예수회 신부의 책을 읽고 중국의 종교적 관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프랑스 궁정이 무신론에 지배됐다면 차라리 위그노 학살 같은 잔혹한 행위는 없었을 것으로 여겨 일찍이 관용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영국에서는 뷰캐넌이 밀턴에 앞서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 때 군주를 몰아내는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을 전개했다. 뷰캐넌은 스코틀랜드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대학을 다니고 가르치면서 역시 예수회 선교사들의 글에 영향을 받았다.”

서양중심주의에 날린 강펀치

―유교가 무신론적이었지만 관용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나.

“공자가 한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해롭다(攻乎異端 斯害也已)’는 말은 조선 정조와 고종도 종종 인용한 말이다. 정조는 천주교 박해를 요구하는 상소에 이 말을 인용해 “성현의 뜻이 이렇거늘 왜 나보고 진시황이 되라 하느냐”라며 버텼다. 고종도 위정척사파가 독립협회 윤치호를 효수하라는 빗발치는 상소문을 올릴 때 “나보고 이단을 공격하란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제대로 된 유교는 관용적이다.”

―관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만큼은 서양에서 싹튼 게 아닌가.

“고대 그리스 아네테에 2만 명의 성인 남성이 있었다면 30만 명이 노예였다. 그리스 민주주의는 노예를 거느린 자들의 민주주의다. 서양은 유교의 민본(民本)사상이 전해지기 전까지 백성의 자유와 평등을 논한 적이 없다. 언제나 노예주의 자유와 노예주끼리의 평등, 귀족의 자유와 귀족끼리의 평등이었을 뿐이다.”

―유교에 민본사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민주적 제도로 발전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나.

“우리나라를 예로 들겠다. 조선시대 모든 지방은 사실상 향약질서로 다스려지는 자치였다.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은 사실상 고문에 불과했다. 향약질서에는 처음에 양반만 포함됐으나 가짜 양반도 끼어들고 나중에는 평민 부자도 참여하고 결국에는 일반 평민도 들어가면서 민회(民會)로 발전했다. 영정조 이래로는 국왕은 민국(民國)의 이념을 추구했다. 대한민국의 민국이 멀리 거기서 나왔다. 상층에서는 민국을 추구하고, 하층에서는 향촌자치를 민회로 발전시키면서 호응해 가는 가운데 불행히도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당했다.”

―유교 정치사상의 무엇이 민주주의의 모태가 됐나.

“유교만이 통치자의 덕성을 강조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지혜를 강조했다. 그러나 유교에서 지혜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의 말석을 차지할 뿐이다. 플라톤의 사덕(四德)은 지혜 용기 절제 정의다. 이 안에 사랑, 즉 인의가 없다. 기독교의 십계명에도 인의가 없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만 있다. 예수에 와서 사랑이란 개념이 도입됐지만 개신교의 실제는 중세 십자군전쟁에서 17,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까지 불관용적이었다.”

仁民 넘어 愛物로 나아간 유교

―유교는 앞으로도 민주주의적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나.

“개신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있지만 동식물에 대한 사랑은 없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로 귀결되고 말았다. 힌두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은 있으나 식물에 대한 사랑은 없다. 공자에게는 다 있었다. 그는 ‘자라나는 새싹을 밟지 않았다’ ‘한창 자라는 나무는 베지 않았다’고 말했다. 맹자는 동물과 식물을 아끼는 것을 애물(愛物)이라고 해서 부모나 친척을 사랑하는 친애(親愛), 백성을 사랑하는 인민(仁民)과 더불어 똑같이 중시했다.”

―유교가 서구 계몽주의를 이끌었다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서양 학자들과의 논전(論戰)을 통해 검증되고 확립될 필요가 있지 않나.

“서양 학자들과의 논전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더 다가올 필요가 있다. 그들이 한문을 더 잘 읽고 공맹사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나로서는 중국에 공자를 제대로 알리는 데 더 관심을 쏟을 생각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유교적인 문화를 쓸어버린 뒤 최근에 와서야 공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수교 이후 대체로 겸손했으나 얼마 전부터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오만하고 위협적인 중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공자사상의 핵심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유교와 근대화’를 다룬 책도 곧 낸다고 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유교의 영향을 받아들인 만큼 근대화했다. 서유럽의 극서(極西)국가 11개국과 아시아의 극동(極東)국가 3개국만 높은 수준의 근대화에 도달했다. 중국은 이미 송나라 때 낮은 수준의 근대화에 돌입했고 청나라와 조선은 낮은 수준의 근대화의 최고 단계에 있었다. 다만 높은 수준의 근대화에는 서양이 먼저 진입했다. 그래서 동아시아가 서양에 잠시 뒤지게 됐지만 20세기에 서양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슬람 국가는 극동국가보다 먼저 서유럽과 접했지만 근대화하지 못했다. 태국 등 불교국가는 오랫동안 서유럽과 접했지만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하다.”

황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독일 괴테대에서 헤겔과 마르크스를 다룬 ‘지배와 노동’이란 제목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썼다. 이후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양사상의 한계를 동양사상으로 극복하고자 말 그대로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책을 섭렵했다. 그 결과 한편으로 중국과 조선의 유교적 근대화에 대한 재평가에, 다른 한편으로 공자철학의 서천(西遷)이라는 웅대한 주장에 이르렀다.

“학문에는 치명적 성실성 필요”

―이런 방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비결은….

“하루 17시간씩 안 자고 앉아 있으면 된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천재는 ‘치명적인 성실성’이 필요하다. 얼추 성실해서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할 수 없다. 아직 사회과학자나 철학자 중에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흔히 그것을 물리학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 중요한 철학적 경험들이 같은 시대 로크의 것보다 더 평이하고 간략하게 정리돼 있다.”

―그 정도로 읽으려면 언어 장벽이 많을 듯하다.

“그래서 치명적인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자연과학은 천재적인 사람들이 20대에 다 업적을 이룬다. 아인슈타인만 봐도 30대 들어가서는 아무런 테제를 내지 못한다. 인문사회과학은 계속 남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즉, 남의 책을 봐야 한다.”

황 교수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문 희랍어 라틴어 등 6개 언어로 책을 읽는다. 그의 대학 연구실에는 한구석에 그리스어 알파벳을 쓴 종이가 붙어있길래 뭐냐고 물었다.

“55세부터 희랍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5년 공부하니까 희랍어가 읽히더라. 플라톤의 글은 영어 번역이나 독일어 번역을 보면 대충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대한 대목에서 차이 나는 번역이 많아 결국 원본을 찾아봐야 한다.”

―서양사상을 공부하다가 왜 공자로 돌아섰나.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서양을 이상화하는 책을 읽고 배웠다. 독일 가서 마르크스의 책을 안 읽은 것 없이 다 읽었는데 마르크스 자신도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나는 폭력과 관련한 이론이다. 그는 폭력을 공리주의적으로 사용한다. 폭력을 써서 권력을 얻기에 유효하다면 폭력을 쓰고 폭력을 써서 지탄을 받고 표를 잃을 것 같으면 폭력을 안 쓴다. 폭력을 정당방위 외에는 절대로 써서 안 된다는 법학의 규범적 이론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니까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또 하나는 계급투쟁의 역사와 관련돼 있다. 계급투쟁은 본래 기술적인(descriptive) 설명이지 주장이 아니었는데 나중에는 주장이 돼버렸다. 그럼으로써 수단이나 방법이 부도덕한 정치사상이 됐다. 공자에 있어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돼 있다. 공자는 현실적인 평화주의자다. 그러나 ‘군자는 싸우지 않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君子有不戰 戰則必勝)’ ‘준비를 하면 걱정이 없다(有備無患)’고 말했다. 공격적인 전쟁은 하지 않지만 방어적인 전쟁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교사상#황태연 교수#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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