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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만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25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낸 성명을 통해 닷새 뒤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가지 가장 중요한 목표인 국경 통제와 인플레이션 완화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관세, 종전, 감세 등에 대해서는 “다음 100일에 성과를 낼 것”이라며 “더 많은 미국의 위대함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다음 날 공개된 시사 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임 첫날에 끝내겠다고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농담처럼(in jest)한 말이었다”며 “전쟁을 끝내겠다는 요점을 강조하려고 과장해서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전 분야에서 빠르고 광범위한 개혁을 호언장담한 그는 취임 후 94일 동안 행정명령 137개를 쏟아냈지만, 내실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성과를 돌아봤다. ● 지지층 결집에 공들여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유권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정책 폐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민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대표 성과로 꼽는 밀입국 시도 건수는 실제로 최근 60년 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미 관세국경보호국(CDP)에 따르면 지난달 남부 국경에서 체포된 밀입국자 수는 7181명으로 지난해 3월(13만7473명)의 5.2% 수준으로 급감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첫해와 비교해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무리한 단속을 벌이며 반발도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실수로 지난달 15일 범죄 이력이 없는 합법 체류자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엘살바도르의 교도소로 추방한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급기야 ‘대법원 불복’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10일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석방을 촉진하라”고 명령했지만 레빗 대변인은 “송환되면 재추방시킬 것”이라며 이를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 호응을 얻던 정부효율부(DOGE)의 정부 구조조정 작업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부효율부는 집권 첫해 삭감 목표치를 1500억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유세 기간에는 2조 달러 삭감을 공언했으니 90% 넘게 낮춘 것이다. 재정적자로 인한 이자는 불어나는데 지지층 반발을 우려해 사회보장 제도에 손대지 않았고, 삭감했던 각종 예산의 지급도 법원 명령에 따라 재개되며 오히려 조 바이든 행정부 때보다 연방정부 지출이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대통령 권한 확대26일 타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례없이 광범위하게 다른 기관들로부터 권한을 빼앗아 대통령직에 집중시키려는 시도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타임 인터뷰에서 “나는 권한을 확장한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원래 대통령직이 사용되도록 의도된 방식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법원, 언론, 대학, 법률회사(로펌) 등 미국의 주요 기관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정부 조치에 제동을 건 판사를 콕 집어 “탄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유대주의 시정을 이유로 대학 운영 전반을 규제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정부 계약과 보조금을 무기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법률 대신 서한을 근거로 무리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펌과 대학들 역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맞서고 있으나 장기간 결론이 나지 않아 소모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권한 확대 시도를 두고 “트럼프가 왕이 되려 한다”는 거부감도 크다. 5일 전국적으로 50만 명 이상이 참가한 ‘핸즈오프(Hands Off·손을 떼라)’ 시위가 벌어진 데 이어 부활절 전날인 19일에도 전국에서 700건 이상의 트럼프 대통령 규탄 시위가 열렸다. 다음달 2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예고되며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 관세 정책 혼선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시장 예상치(2.5%)보다 낮은 2.4%를 기록했다. 희망적인 물가 지표이나 외부 요인인 국제유가 하락이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외교적 이득을 얻고자 희망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대규모 증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닥쳐올 관세 영향에 다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파월 의장이 연준 독립성을 강조하자 그를 교체하겠다는 발언까지 내놓았으나 돌연 “교체할 뜻이 없다”고 돌아섰다. 미 증시 하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상호관세도 2일 발표 후 시장의 거센 반발에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일주일 만에 ‘90일 유예’를 발표한 데는 미 국채 가격 폭락이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채권 자경단(vigilantes)’이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를 막았다”고 진단했다. 채권 자경단은 1983년 미국 경제학자 에드 야데니가 만든 용어로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에 국채 매도로 맞서는 투자자들을 뜻한다. 중국에 부과하기로 한 145%의 관세도 향후 2, 3주 안에 낮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중 관세율을 50~65%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또 중국과 매일 직접 협상을 하고 있다고 밝히는가 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과 협상 중이라며 유화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사실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속도전을 예고한 것과 달리 준비가 부실해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책사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선임고문은 “90일간 90개국과 무역협정을 맺겠다”라고 말했으나 아직 단 한 건의 무역협정도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가 뒤늦게 표준 관세협상 양식을 만들어 앞으로 두 달간 18개국과 집중 협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WSJ가 25일 보도했다. ● Fight, fight, fight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원 팀’을 강조하며 출범했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집권 1기 때 겪은 내부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백악관에서 강경 보수 인플루언스 로라 루머(32)와 면담했다. 그리고는 루머가 해임을 요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A) 고위급 인사 6명을 해고했다. 루머는 9·11 테러가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각종 인종차별적 발언을 일삼는 인물이다. 하지만 충성심을 인정받아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 번호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대선 기간 그를 차단하려 한 와일스의 노력에도 결국 다시 접근에 성공한 것이다. 참모 간 주도권 다툼도 치열하다. 9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관세 강경론자인 나바로 고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트럼프 대통령에게 ‘90일 유예’ 발표를 얻어낸 것 또한 기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바로 고문과 만나면 “협상은 없다”는 그의 강경론에 다시 영향을 받아 관세 유예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우려해 이같은 작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밖에서는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자질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헤그세스 장관의 부비서실장과 선임 고문 등이 “근거 없는 공격에 축출됐다”며 공개 반발에 나섰다. 민간 메신저 시그널을 사용해 군기밀을 누설했다는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헤그세스 장관이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해 ‘배신자 색출’에 나서는 등 국방부 내분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 지지율 하락 압박중도층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혼란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폭스뉴스가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4%로 집권 1기(45%)는 물론 조 바이든(54%), 버락 오바마(62%), 조지 W. 부시(63%) 등 다른 역대 대통령보다 낮게 나타났다. 최대 강점이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8%로 반대(56%)하는 응답자보다 18%포인트 적었다. 인플레이션(33%), 관세(33%) 등 세부 분야에서도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보다 큰 폭으로 낮았다. WSJ의 제러드 베이커 편집위원은 21일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에 대해 “강한 의지가 돋보였지만 부족한 실력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민 분야에서의 성공을 제외하고는 트럼프 행정부가 권한을 남용하면서 점점 더 스스로 진창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메사추세츠주의 한 독자는 독자투고를 통해 “혼란 자체가 관심을 끌기 위한 트럼프식 리얼리티 쇼 특유의 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가지가 우려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허둥대지 않고 있고, 트럼프식 혼란에 지친 중도층의 눈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반트럼프 시위에 적극 나서고 있는 민주당 하원의원)의 재앙적인 강경 좌파 정책조차 질서가 있다는 점에서 유능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며 이대로 가다간 정치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21화 요약: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통제와 인플레이션 완화를 성과로 내세웠지만, 관세 정책, 정부 구조조정 등 국정 운영 전반에서 혼선과 반발에 직면했다. 내부 분열과 지지율 하락도 심화하고 있다. 중도층의 이탈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트럼프식 혼란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길 위험도 제기된다.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중국이 반도체와 의료 장비 등 일부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125% 보복관세를 철회했거나 철회를 검토 중이라고 CNN과 로이터통신 등이 25일(현지 시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어떤 관세 협상에서도 군대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방위비 분담을 관세 협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 메시지 이후 중국이 한 발짝 양보한 가운데 미국도 통상과 안보를 분리해 협상하자는 한국, 일본 등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25일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상무부의 태스크포스(TF)가 관세 면제를 위한 목록을 작성 중이며, 기업들에 필요한 (면세) 품목 제출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아직 공식 발표를 내놓지 않은 가운데 이미 일부 중국 기업들은 당국으로부터 면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CNN과 중국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메모리 칩을 제외한 8종의 미국산 반도체 집적회로 제품에 대해 보복관세가 철회된 사실을 관련 기업들이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해당 8종의 품목에 대해선 이미 납부한 관세도 환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 인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향후 2, 3주 이내에 중국에 대한 관세 수준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답하는 등 유화 메시지를 냈다. 그는 25일 공개된 미 시사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뒤 “그게 그(시 주석)의 약함을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中, 의료장비-에탄도 보복 철회 검토… “통상전쟁 최악 벗어난 듯”[한미 2+2 통상협의]中, ‘125%’ 대미관세 일부 철회 트럼프 “관세와 軍문제 연계 안해”韓-日의 ‘투 트랙’ 요청 받아들여이에 대해 이날 주미 중국대사관은 타임 인터뷰 공개 15분 후 “결코 양국 간에 진행 중인 협상이나 담판이 없고, 미국은 이목을 현혹해선 안 된다”는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 발언을 X 계정에 올렸다. 마이클 하트 주중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중국 정부가 미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중국 내 공급망이 끊기는 품목이 무엇인지를 회원사들에 물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전날 중국 상무부는 자국 내 80여 개 외국 기업, 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회의를 열어 미국산 수입 관세가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일부 품목 면세는) 미중 통상 전쟁을 진정시키기 위한 진전으로, 이제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중국이 125%의 보복 관세 철회를 검토하는 미국산 제품에는 의료 장비, 에탄 등 산업용 화학물질, 액화천연가스(LNG), 항공기 임차료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제품은 기존에 수입하던 미국산을 다른 나라 제품으로 당장 대체하기가 어려운 품목들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으로 일부 공장이 미국산 에탄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중국이 관세 면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131개 품목 목록이 올라오기도 했다. 중국 화타이증권에 따르면 이 목록에 포함된 품목들의 수입액은 지난해 기준 450억 달러(약 64조7000억 원)에 달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노르웨이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군대(military)는 우리가 다룰 또 다른 주제이나, 그 어떤 관세 협상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5일 타임 인터뷰에서도 “(비관세 장벽 등) 상대 국가가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관세를 정할 것”이라며 “군사비 문제는 별도로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한 직후 ‘원스톱 쇼핑’이란 표현을 쓰며 관세와 안보 현안을 묶어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통상 협상에서 관세와 방위비 문제를 분리하는 ‘투 트랙’ 방식을 선호해 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에서 속도를 내기 위해 한국, 일본의 ‘투 트랙’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한미 통상 협의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측에서) 방위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르면 다음 주에 (한미가) 상호 ‘양해 관련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다.”(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차분하고 질서 있는 협의를 위한 한미 간 인식을 공유했다.”(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과 미국이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통상협의를 갖고 협상 범위와 향후 절차 등에 대해 대략적인 합의를 이뤘지만, 협상 속도를 놓고는 온도 차를 보였다. 이날 베선트 장관은 한미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이라며 조속한 협의를 거듭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5일 공개된 미 시사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각국과의 무역협상과 관련해 “중국과도 회담 중이고 모든 기업 및 국가들과 잘 진행되고 있다. 3∼4주 내 무역협상 200건을 타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표 후 일부 국가들이 (협상 내용의) 조정을 요구한다면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한국은 7월 초 ‘패키지 합의’를 강조하며 사실상 6월 조기 대선 이후 포괄적 합의에 방점을 뒀다. 일각에선 협의를 서두르려는 미국과 속도 조절에 나서려는 한국 사이에 입장 차가 가시화되면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선트 “다음 주부터 ‘기술적 세부 사항’ 논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노르웨이 정상회담에 배석한 베선트 장관에게 “우린 지금 아주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진행 중인 관세 협상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베선트 장관은 “오늘 우리는 한국과 아주 성공적인 협의를 가졌다”며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한미)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기술적인 세부 사항(technical terms)’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이르면 다음 주에 ‘양해 관련 합의(agreement on understanding)’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양해 관련 합의’를 놓고 일각에서 당장 다음 주에 한미 간 잠정 합의가 나올 것임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미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협상을 시작한 일본, 인도 등과 ‘잠정 합의’ 형태의 양해각서 등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국내 언론 대상 브리핑에서 ‘잠정 합의’ 등 어떤 내용도 미국과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최 부총리는 베선트 장관의 ‘양해 관련 합의’ 표현에 대해 “앞으로 (통상) 협의의 틀이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또 협의를 어떤 체계로 할 건지 등을 (오늘) 마련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했다. 베선트 장관이 말한 ‘기술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 안 장관은 “(한미 간) 실무협의가 다음 주에 개최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 부총리는 “한국의 정치 일정과 통상 관련 법령, 국회와의 협력 필요성 등 앞으로 협의에 있어 다양한 고려 사항이 있음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미 측의 이해를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대선 일정 등을 고려해 협상에서 속도 조절 필요성을 요청한 것이다.● ‘최선의 제안’ 표현 “조선 협력 공감대 나타낸 듯”이날 베선트 장관은 “한국 대표단은 일찍 (협상하기 위해) 왔고, ‘최선의 제안(A game)’을 가져왔다”며 “이제 그들이 이 약속을 얼마나 잘 이행하는지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예상을 뛰어넘는 ‘선물 보따리’를 준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안 장관은 “우리가 판단하기론 조선 산업 협력 비전에 대해 (미국이)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관심사인 조선 협력 관련 제안 말곤 정부가 이날 추가로 미국에 약속한 특별한 제안은 없었다는 얘기다. 한편, 이날 한미 협상단은 기념 주화를 선물로 주고받았다. 한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거북선 무늬가 새겨진 ‘한국의 주력 산업과 경제발전 기념 주화’를 전달해 조선 강국 이미지를 부각했다.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중국이 반도체와 의료 장비 등 일부 미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125% 보복 관세를 철회했거나, 철회를 검토 중이라고 CNN, 로이터통신 등이 25일(현지 시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어떤 관세 협상에서도 군대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방위비 분담을 관세 협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 메시지 이후 중국이 한 발짝 양보한 가운데, 미국도 통상과 안보를 분리해 협상하자는 한국·일본 등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25일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상무부의 태스크포스(TF)가 관세 면제를 위한 목록을 작성 중이며, 기업들에 필요한 (면세) 품목 제출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를 내놓지 않는 가운데 이미 일부 중국 기업들은 당국으로부터 면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CNN과 중국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메모리 칩을 제외한 8종의 미국산 반도체 집적회로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가 철회된 사실을 관련 기업들이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해당 8종의 품목에 대해선 이미 납부한 관세도 환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밖에 의료 장비, 에탄 등 산업용 화학물질, 액화천연가스(LPG), 항공기 임차료 등도 관세 면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제품은 기존에 수입하던 미국산을 다른 나라 제품으로 당장 대체하기가 어려운 품목들이다.앞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 인하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향후 2, 3주 이내에 중국에 대한 관세 수준을 결정할 수도 있다. 중국과도 특별한 협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하는 등 유화 메시지를 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조치가 미중 관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중국 기업들을 지원하는 동시에 백악관에 가하는 압박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노르웨이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군대(military)는 우리가 다룰 또 다른 주제이나, 그 어떤 관세 협상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8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한 직후 ‘원스톱 쇼핑’이란 표현을 쓰며 관세와 안보 현안을 묶어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6일 방미한 아카자와 료세이(赤澤亮正) 일본 경제재생상과 만난 자리에서도 주일미군 주둔 경비 분담액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동안 한국과 일본은 통상 협상에서 관세와 방위비 문제를 분리하는 ‘투 트랙’ 방식을 선호해왔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에서 속도를 내기 위해 한국, 일본의 ‘투 트랙’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상전쟁 중인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율을 향후 2, 3주 안에 낮출 뜻을 23일(현지 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전 중국에 대한 관세가 “너무 높다”며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이날 구체적인 인하 시점까지 거론했다. 그는 중국과의 직접 협상 또한 “매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거듭된 관세 위협에도 중국이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고 미국 금융시장의 하락세와 산업계의 우려가 이어지자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4일 베이징에서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관세 및 무역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세계 여러 나라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중국 상무부와 외교부는 “현재 미국과 어떤 협상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부인했다. 또 허야둥(何亞東)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일방적인 관세 조치를 전면 철폐해야 한다”고 맞섰다.● 트럼프-베선트, 中에 유화 제스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향후 2, 3주 안에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라며 “(관세 조정 대상국에는) 중국도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얼마나 빨리 대(對)중국 관세율을 낮추겠느냐란 질문을 받자 “중국에 달렸다”고 답했다. 그는 ‘중국과 직접 협상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 매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협상을 관장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또한 같은 날 워싱턴의 한 포럼에서 최근 양국의 관세 공방이 “무역 금수 조치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며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과 ‘빅딜(big deal)’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적극 협상할 뜻을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관세를 50∼65%로 낮추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23일 전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런 행보는 중국에 강경 발언만 계속했던 기존과 상당히 다르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 ‘(미국을) 가장 많이 학대한 국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저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산 선박에 입항 수수료도 부과하기로 했다.이런 압박에도 중국이 꿈쩍 않는 가운데 최근 미국 주식, 채권, 달러 가치가 급락하자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달라진 것이다. 다만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관세 인하가 중국에 대한 양보로 비치는 것을 염려한 듯 “중국 수입품에 대한 일방적인 관세 인하는 없을 것”이라고 23일 밝혔다. ● 美, 車-유통업계 “관세 유예” 호소 미국 자동차와 유통업계 경영자들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로 중국이 아닌 우리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호소한 것도 대중 관세 인하 검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오토스드라이브아메리카 등 미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6개 정책 단체는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서한을 보내 다음 달 3일부터 발효되는 25%의 자동차 부품 관세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관세로 인한 차질에 대비한 자본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업체가 생산 중단, 해고, 파산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백악관 또한 수입 중국산 자동차 부품에는 일부 관세 면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CNBC가 23일 전했다. 월마트, 타깃, 홈디포 등 미국 3대 유통업체 최고경영자(CEO)들도 21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때 “급격한 관세 계획을 자제하지 않으면 2주 내에 미국 내 공급망이 얼어붙어 주요 상점의 진열대가 텅텅 빌 수 있다”고 호소했다고 CBS 등이 보도했다. 한편 뉴욕, 애리조나, 네바다, 뉴멕시코주 등 미국 내 12개 주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경제에 혼란을 초래한다”며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연방국제통상법원에 제기했다. 애리조나와 네바다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이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주요 대학 총장들과 고등교육협회장 등 총 269명이 “연방정부의 전례 없이 과도하고 정치적인 개입이 미국 교육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22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미국대학연맹(AAC&U)은 이날 오후 9시 기준 대학 총장 등 269명이 “정부의 부당한 간섭과 공공 연구자금의 강압적 사용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미국의 대학들은 구성원이 보복, 검열, 추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양한 관점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열린 탐구의 장이 돼야 한다”며 “미국 고등교육의 정의로운 자유를 폐지하는 대가는 학생들과 사회가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버드대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의 모교인 펜실베이니아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듀크대, 브라운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의 총장이 서명에 동참했다. 전날 하버드대는 연방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단이 위헌적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하버드대 측 변호인단에 합류한 이 대학 동문들도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기밀 유출 의혹 사건을 수사한 로버트 허 전 특별검사가 대표적이다. 한국계인 그는 공화당 당적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바이든 전 대통령 관련 수사 때 논란이 됐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 지상 여정’이라며 자신의 묘지로 선택한 곳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사진)이었다. 교황은 재임 동안에만 100차례 넘게 이 성당을 찾아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의 성당에 묻히는 것은 122년 만이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로마의 4대 대성당 중 하나로, 432년경 지어졌다. 고대 기독교 성당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고, 로마 내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첫 성당이다. ‘마조레(Maggiore)’는 이탈리아어로 ‘주요한’을 뜻하며,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세계 여러 성당 가운데 중심이 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당에는 성 비오 5세 등 7명의 역대 교황이 안장돼 있다. 교황이 묻히는 것은 356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식 다음 날 첫 외부 방문지로 이 성당을 택해 비공개 기도를 올렸다. 지난달 23일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선종 9일 전인 12일 부활절 주간을 시작하면서도 이곳을 찾았다. 가톨릭 전문매체 알레테이아에 따르면 교황의 묘지 자리는 이전에 촛대 보관실로 쓰던 소박한 공간이다. 보관실 양옆에는 죄를 고하는 고해소가 있다. 매체는 “겸손하게 고해하는 교황의 생전 모습과 ‘하느님은 결코 용서하는 데 지치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미국 하버드대가 최근 22억6000만 달러(약 3조2100억 원)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한 미 연방정부의 조치는 위헌적이고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버드대는 최근 이 대학과 이른바 ‘문화 전쟁’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추가로 10억 달러(약 1조4200억 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는 가운데 소송 제기를 결정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21일 성명을 내고 “지난주 연방정부는 하버드대가 불법적인 요구 수용을 거절한 이후 여러 조치를 취했다”며 “이는 정부 권한을 넘어서고 위법하기 때문에 우리는 보조금 지급 중단을 멈춰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버드대는 미국 고등교육을 세계의 등대로 만든 가치를 대변한다”며 “미 전역의 대학이 정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존재하며, 법적 의무를 존중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는 진실을 대변하고자 한다”고 했다. 하버드대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연방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교육부, 법무부, 국방부 등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8개 연방 부처를 피고로 명시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소장에서 하버드대는 “하버드대가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고 나서자 백악관이 자의적으로 위헌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하버드대는 “정부가 자금 압박을 통해 학문과 대학 운영을 통제하려고 든다”며 “정부가 제시한 거래는 (정부가) 대학을 세세하게 관리하도록 허용하든지 의학과 과학, 혁신 분야 연구를 지속할 역량을 잃든지 선택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다른 어떤 사립대학도 연방 정부에 장악당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하버드는 자율성을 포기하거나 헌법상 권리를 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간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등에 강한 반감을 보여 온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들을 진보 이념의 본산지로 여겨 왔다. 또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압박할 계획임을 강조해 왔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비과세 지위 박탈과 외국 유학생 입학 제한 등의 추가 제재도 경고한 상태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 지상 여정’이라며 자신의 묘지로 선택한 곳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이었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의 성당에 묻히는 것은 122년 만이다.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은 로마의 4대 대성당 중 하나로, 432년경 지어졌다. 고대 기독교 성당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고, 로마 내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첫 성당이다. ‘마조레(Maggiore)’는 이탈리아어로 ‘주요한’을 뜻하며,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세계 여러 성당 가운데 중심이 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당에는 성 비오 5세 등 7명의 역대 교황이 안장돼 있다. 교황이 묻히는 것은 356년 만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식 다음 날 첫 외부 방문지로 이 성당을 택해 비공개 기도를 올렸다. 지난달 23일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선종 9일 전인 12일 부활절 주간을 시작하면서도 이곳을 찾았다. 가톨릭 전문매체 알레테이아에 따르면 교황의 묘지 자리는 이전에 촛대 보관실로 쓰던 소박한 공간이다. 보관실 양옆에는 죄를 고하는 고해소가 있다. 매체는 “겸손하게 고해하는 교황의 생전 모습과 ‘하느님은 결코 용서하는 데 지치지 않으신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무덤은 땅속에 특별한 장식 없이 간소하게 마련돼야 합니다.”21일(현지 시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무덤에) 남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교황청이 이날 밝혔다. 또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바티칸 외부의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묻어달라”고도 했다. 평소 청빈한 삶을 살아온 교황이 조용하고 검소한 장례를 강조하며 마지막까지도 낮은 자세로 임한 것이다. 남기고 싶은 말이 많았을 법하지만 유언은 12개 문장으로 끝났다.교황은 2022년 6월 29일 생전 거주지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작성한 유언에서 “지상에서의 삶의 황혼이 다가옴을 느끼며 영원한 삶에 대한 확고한 희망을 갖고, 매장 장소에 대한 제 마지막 소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매장지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택한 데 대해 “평생 사제와 주교로 사목하는 동안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 제 자신을 맡겨왔다. 마지막 지상 여정이 이 고대의 마리아 성지에서 끝나길 바란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재임 동안에만 100차례 이상 이 성당을 방문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교황은 첨부된 도면을 언급하며 “바오로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의 측면 통로에 있는 틈새에 매장을 준비해 주시길 요청한다”며 세부 장소까지 지정했다. 또 “무덤 조성에 드는 비용은 한 후원자가 제공한 금액으로 충당한다”며 장례비도 직접 챙겼다. 마지막은 “제 인생 마지막을 장식한 고통을 세상의 평화와 민족 간의 형제애를 위해 주님께 바친다”는 기도로 맺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하느님께 빈 것이다. 교황청은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오후 5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 단장이 집전하는 가운데 열린다고 22일 밝혔다.“권력 멀리한 교황의 낮은 자세 그리워” 슬픔에 잠긴 바티칸“교황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옷을 입은 채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죠.”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21일(현지 시간) 늦은 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난 백발의 호주인 앤서니 보노모 씨는 생전 소탈했던 교황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듣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급히 기차를 타고 온 페르낭도 모랄레스 드라크루즈 씨는 “교황은 ‘왕처럼 사는 다른 국가 원수들’ 같지 않았다. 고급 저택에서 손님임을 자처한 어른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세계 곳곳에서 광장으로 모여든 신자와 순례자들은 “권력과 권위를 멀리한 교황의 낮은 자세가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군림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군중 속으로 들어가 소리 없이 진정성 있는 선행을 실천했다는 것. 사람들은 낮은 곳으로 임했던 교황의 뜻을 받들려는 듯 자정이 되도록 기도하고 명상하며 고요한 애도를 이어갔다. 22일 낮에도 성 베드로 광장에는 엄숙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는 신자들로 붐볐다.● “목자 없는 양처럼 멍하니 선 기분”바티칸에서 만난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인 2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서도 고인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니카 씨는 “어제 부활절 미사 때 교황을 뵙고 ‘내가 정말 운이 좋다’며 기뻐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실 줄 몰랐다”며 “너무 슬프다”고 했다.교황청에 따르면 교황은 21일 오전 7시 35분 바티칸 자택에서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으로 선종했다. 고인은 다발성 기관지 확장증, 동맥 고혈압, 제2형 당뇨병도 앓고 있었다. 교황은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사에 참여하며 가급적 많은 이들과 함께했던 것이다.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교황이 꾸준히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호주인 톰 씨는 “세계가 불안에 시달리는 와중에 교황은 안정을 주고 위안이 됐다”며 “부디 차기 교황도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이날 저녁 바티칸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에선 교황을 추모하는 미사가 열렸다. 바티칸 당국이 운영하는 매체인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미사를 주재한 로마 교구의 총대리 발도 레이나 추기경은 “오늘 저녁 우리 교구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목자 없는 양처럼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장식 없는 소박한 관에 눕다교황청은 21일 오후 8시 교황이 머물던 바티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1시간에 걸쳐 입관식을 거행했다. 교황의 사망을 확인하고, 그를 관에 안치했다. 입관식에는 교황 주변에서 활동했던 사제들과 가족들이 참석했다.이와 함께 교황의 사인과 유언을 공개했다. 교황의 비서 역할을 하는 궁내원장은 교황의 상징물 중 하나인 ‘어부의 반지’를 파기했다. 다음 교황에게는 새 반지가 주어진다.장례 절차는 생전 교황의 뜻에 따라 소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교황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간소화된 장례 규칙에 따라 교황은 전임 교황들처럼 편백나무, 납, 참나무로 된 3중관이 아닌 장식 없는 목관에서 영면에 들 예정이다.이날 교황청은 산타 마르타의 집 대문에 빨간 리본을 달아 묶고, 밀랍 도장을 찍어 봉인했다. 이는 교황 애도 기간의 시작을 상징하는 절차다. 교황청은 이르면 23일 오전 교황의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 일반인 조문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조문 풍경도 소박하게 바뀔 전망이다. 이전엔 교황의 시신이 대성당 내부에 설치된 허리 높이의 단상 ‘카타팔케’ 위에 안치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뜻에 따라 성 베드로 광장 바닥에 관이 놓여진 상태에서 조문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텅빈 이 광장을 바라보며 특별 강복으로 위로를 건넸는데, 같은 자리에서 신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장례식은 26일 열리고,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모임인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2, 3주 뒤인 다음달 중순경 열릴 것으로 보인다.바티칸=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헤그세스가 국방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방부의 ‘혼돈(chaos)’과 기능 장애가 대통령에게 방해가 되는 수준이다.” 존 엘리엇 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20일 정치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지도력을 강하게 비판하며 곧 사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해 11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부터 성비위, 인종차별, 음주 의혹 등에 직면했다. 지난달 15일 미국이 예멘의 친(親)이란 반군 ‘후티’를 공습했을 때도 그가 공습 직전 시사매체 디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이 있는 민간 메신저 ‘시그널’ 대화방에서 이를 공유한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가 터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이 와중에 그가 부인 제니퍼, 남동생 필립, 개인 변호사 팀 팔러토어 등 가족 및 지인과의 시그널 대화방에서도 이 공습 계획을 공유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20일 보도했다. 국방장관이 민감한 군사 정보를 사적 측근과 공유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가족 단톡방서도 후티 공습 유출 의혹NYT 등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후티 공습 당일인 지난달 15일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 제니퍼, 필립, 팔러토어 등 13명이 있는 대화방에서 FA-18 전투기의 출격 일정 등을 공유했다. 이 대화방은 헤그세스 장관이 올 1월 상원 인준 청문회를 준비하며 직접 만들었다. 필립과 팔러토어는 겉으로는 정부 직책이 있지만 여러 이해충돌 논란에 직면해 있다. 필립은 올 2월부터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의 선임보좌관으로 재직하며 국토안보부와 국방부의 연락책 역할을 하고 있다. 팔러토어도 지난달 초 법무부의 군법무관단 소속 해군 중령으로 임관했다. NYT는 “두 사람이 후티 공습 정보를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질타했다. 아무런 직책이 없는 제니퍼 또한 올 2월과 지난달 최소 두 차례 이상 남편이 영국 등 동맹국과의 고위급 군사 회담을 가질 때 동석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미 골드버그 편집장, J D 밴스 부통령,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가 포진한 또 다른 시그널 대화방에서도 후티 공습 계획을 공유해 비판받았다. 이번처럼 가족과 지인이 있는 대화방에서 민감한 군사 정보를 공유한 건 더 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 참모 잇따른 이탈 최근 국방부 간부들이 줄줄이 떠난 것 또한 헤그세스 장관의 각종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엘리엇 전 대변인은 17일 사표를 낸 지 3일 만에 폴리티코에 전직 상관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조 캐스퍼 전 국방장관 비서실장도 18일 사임했다. 이 외에도 댄 콜드웰 전 국방장관 수석고문, 다린 셀닉 전 국방장관 부비서실장 등은 15, 16일 헤그세스 장관으로부터 해고됐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회 차원의 ‘시그널 게이트’ 조사가 이뤄지자 헤그세스 장관이 자신에게 순종적이지 않은 두 사람이 불리한 증언을 할까 우려해 해고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장관 상원 인준, 지난달 24일 ‘시그널 게이트’가 처음 불거졌을 때 모두 헤그세스 장관을 두둔했다. 하지만 인준 당시 상원 100석 중 53석을 보유한 공화당에서도 반대표가 3표나 나와 상원의장을 겸하는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간신히 인준이 통과됐다.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감안할 때 헤그세스 장관의 추가 비위가 드러나면 트럼프 대통령도 그를 감싸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21일(현지 시간) 정오, 부활절 다음 날로 이탈리아 법정 공휴일인 ‘라 파스퀘타’를 맞아 한산해진 바티칸 시국 성베드로 광장에 종소리가 88번 울렸다. 이날 오전 7시 35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이를 의미하는 숫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는 부음이기도 했다. 전날 약 3만5000명의 신자가 모여 가톨릭 희년(25년마다 돌아오는 은총의 해) 부활절 미사를 보던 광장에는 신자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교황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기 위해서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생전 고인의 낮은 자세와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태도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 대중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부활절에도 ‘평화’ 강조 교황은 선종 전날이며 부활절이었던 20일 미사에 약 20분간 참여했다. 이날 정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신도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후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특별히 하는 축복과 강론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에)’의 첫마디를 숨찬 목소리로 열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절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이었다. 교황은 미사가 끝난 뒤에는 교황청 차량을 타고 성베드로 광장을 둘러보면서 신자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부활절 미사가 그가 대중과 만난 마지막 시간이었다. 교황은 부활절 때 마지막으로 대중을 만난 자리에서 평화와 포용을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인사말 뒤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대독한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종교와 사상,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가자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향해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을 즉시 멈추고 인질을 석방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굶주린 이들을 도와주길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또 “취약계층과 소외계층, 그리고 이민자들을 향한 경멸이 심각하다”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교황이 마지막으로 접견한 인물은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다. 교황청 등에 따르면 그는 20일 거처인 ‘카사산타마르타’에서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과 몇 분간의 짧은 면담을 가졌다. 면담은 밴스 부통령의 18∼20일 사흘간의 로마 방문 일정 막판에 깜짝 성사된 일정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은 이날 만남에서 교황이 밴스 부통령과 “이민자, 난민, 수감자 등 어려운 인도적 상황에 대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밴스 부통령에게 다시 한번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 퇴원 뒤 한동안 다양한 활동 펼쳐 교황은 올해 2월 14일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38일간 입원했다. 큰 고비도 두 차례나 있었지만,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23일 퇴원했다. 두 달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유에도 신자들과 소통을 중시하며 평화 메시지를 내던 평소 활동을 재개했다. 거처에서 일부 업무도 처리하고 미사에도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교황은 이달 6일 퇴원 2주 만에 휠체어를 타고 코에 호흡용 튜브를 낀 모습으로 미사에 깜짝 등장하면서 활동 재개를 알렸다. 교황은 이날 “모두에게 좋은 일요일이 되길 바란다”라면서 메시지를 냈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성 목요일(17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한 교도소를 방문해 “여러분 곁에 있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상을 깨고 부활절 미사에도 참여해 마지막까지 소외계층에 대한 포용과 전쟁 반대를 호소하고 세상을 떠났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21일(현지 시간) 정오, 부활절 다음 날로 이탈리아 법정 공휴일인 ‘라 파스퀘타’를 맞아 한산해진 바티칸 시국 성베드로 광장에 종소리가 88번 울렸다. 이날 오전 7시 35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이를 의미하는 숫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는 부음이기도 했다. 전날 약 3만5000명의 신자가 모여 가톨릭 희년(25년마다 돌아오는 은총의 해) 부활절 미사를 보던 광장에는 신자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교황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기 위해서다. BBC 등 주요 외신들은 교황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생전 고인의 낮은 자세와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는 태도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 대중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부활절에도 ‘평화’ 강조교황은 선종 전날이며 부활절이었던 20일 미사에 약 20분간 참여했다. 이날 정오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2층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고 신도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후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특별히 하는 축복과 강론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에)’의 첫 마디를 숨찬 목소리로 열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절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이었다.교황은 미사가 끝난 뒤에는 교황청 차량을 타고 성베드로 광장을 둘러보면서 신자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부활절 미사가 그가 대중들과 만난 마지막 시간이었다.교황은 부활절 때 마지막으로 대중들을 만난 자리에서 평화와 포용을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인사말 뒤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대독한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종교와 사상,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견해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특히 ‘가자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향해 “전쟁 당사자들이 전쟁을 즉시 멈추고 인질을 석방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굶주린 이들을 도와주길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또 “취약계층과 소외계층, 그리고 이민자들을 향한 경멸이 심각하다”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교황이 마지막으로 접견한 인물은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다. 교황청 등에 따르면 그는 20일 거처인 ‘카사산타마르타’에서 가톨릭 신자인 밴스 부통령과 몇 분간의 짧은 면담을 가졌다. 면담은 밴스 부통령의 18~20일 사흘간의 로마 방문 일정 막판에 깜짝 성사된 일정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은 이날 만남에서 교황이 밴스 부통령과 “이민자, 난민, 수감자 등 어려운 인도적 상황에 대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비판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밴스 부통령에게 다시 한번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 퇴원 뒤 한동안 다양한 활동 펼쳐교황은 올해 2월 14일 폐렴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38일간 입원했다. 큰 고비도 두 차례나 있었지만,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23일 퇴원했다. 두 달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유에도 신자들과 소통을 중시하며 평화 메시지를 내던 평소 활동을 재개했다. 거처에서 일부 업무도 처리하고 미사에도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교황은 이달 6일 퇴원 2주 만에 휠체어를 타고 코에 호흡용 튜브를 낀 모습으로 미사에 깜짝 등장하면서 활동 재개를 알렸다. 교황은 이날 “모두에게 좋은 일요일이 되길 바란다”라면서 메시지를 냈다. 부활절을 사흘 앞둔 ‘성 목요일(17일)’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한 교도소를 방문해 “여러분 곁에 있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상을 깨고 부활절 미사에도 참여해 마지막까지 소외계층에 대한 포용과 전쟁 반대를 호소하고 세상을 떠났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헤그세스가 국방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국방부의 ‘혼돈(chaos)’과 기능 장애가 대통령에게 방해가 되는 수준이다.”존 얼리엇 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20일 정치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지도력을 강하게 비판하며 곧 사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해 11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부터 성비위, 인종차별, 음주 의혹 등에 직면했다. 지난달 15일 미국이 예멘의 친(親)이란 반군 ‘후티’를 공습했을 때도 그가 공습 직전 시사매체 디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이 있는 민간 메신저 ‘시그널’ 대화방에서 이를 공유한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가 터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이 와중에 그가 부인 제니퍼, 남동생 필립, 개인 변호사 팀 파를라토어 등 가족 및 지인과의 시그널 대화방에서도 이 공습 계획을 공유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20일 보도했다. 국방장관이 민감한 군사 정보를 사적 측근과 공유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 가족 단톡방서도 후티 공습 유출 의혹NYT 등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후티 공습 당일인 지난달 15일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 제니퍼, 필립, 파를라토어 등 13명이 있는 대화방에서 FA-18 전투기의 출격 일정 등을 공유했다. 이 대화방은 헤그세스 장관이 올 1월 상원 인준 청문회를 준비하며 직접 만들었다.필립과 파틀라토어는 겉으로는 정부 직책이 있지만 여러 이해충돌 논란에 직면해 있다. 필립은 올 2월부터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의 선임보좌관으로 재직하며 국토안보부와 국방부와의 연락책 역할을 하고 있다. 파를라토어도 지난달 초 법무부의 군법무관단 소속 해군 중령으로 임관했다. NYT는 “두 사람이 후티 공습 정보를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질타했다. 아무런 직책이 없는 제니퍼 또한 올 2월과 지난달 최소 두 차례 이상 남편이 영국 등 동맹국과의 고위급 군사 회담을 가질 때 동석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헤그세스 장관은 이미 골드버그 편집장, J D 밴스 부통령,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인사가 포진한 또 다른 시그널 대화방에서도 후티 공습 계획을 공유해 비판받았다.이번처럼 가족과 지인이 있는 대화방에서 민감한 군사 정보를 공유한 건 더 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 참모 잇따른 이탈최근 국방부 간부들이 줄줄이 떠난 것 또한 헤그세스 장관의 각종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엘리엇 전 대변인은 17일 사표를 낸 지 3일 만에 폴리티코에 전직 상관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게재했다. 조 캐스퍼 전 국방장관 비서실장도 18일 사임했다.이 외 댄 콜드웰 전 국방장관 수석고문, 다린 셀닉 전 국방장관 부비서실장 등은 15, 16일 헤그세스 장관으로부터 해고됐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회 차원의 ‘시그널 게이트’ 조사가 이뤄지자 헤그세스 장관이 자신에게 순종적이지 않은 두 사람이 불리한 증언을 할까 우려해 해고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장관 상원 인준, 지난달 24일 ‘시그널 게이트’가 처음 불거졌을 때 모두 헤그세스 장관을 두둔했다. 하지만 인준 당시 상원 100석 중 53석을 보유한 공화당에서도 반대표가 3표나 나와 상원의장을 겸하는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간신히 인준이 통과됐다. 이 같은 부정적인 기류를 감안할 때 헤그세스 장관의 추가 비위가 드러나면 트럼프 대통령도 그를 감싸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지난달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부인 제니퍼, 형 필, 개인 변호사 등 지인과 만든 민간 메신저 ‘시그널’ 단체 대화방에 예멘 후티 반군 공습 계획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공습에 앞서 구체적인 공습 계획을 사적인 대화방에도 유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헤그세스 거취 논란이 불거질 전망이다.20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로이터통신, AP통신 등은 헤그세스 장관이 지난달 15일 예멘 공습 직전에 공습 작전 세부 정보를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 부인과 형, 개인 변호사, 장관실 참모 등 총 13명이 포함된 사적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 대화방을 통해 FA-18 전투기의 출격 일정 등이 공유된 것으로 전해져 기밀 유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보도는 헤그세스 장관이 이른바 ‘시그널 게이트’로 국방부 감사를 받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달 24일 월간지 ‘디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은 지난달 13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초대된 시그널 단체 대화방에서 부통령, 안보보좌관, 국방장관 등이 예멘 공습 작전을 의논했다고 공개했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 18명와 골드버그 편집장이 포함된 이 대화방에서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달 15일 폭격 2시간 전부터 공습 계획을 올렸다. NYT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공습 직전에 행정부 최고위급 대화방과 사적 대화방을 오가며 동일한 공습 계획을 거의 동시에 올렸다. ‘국방, 팀 허들’이라는 이름의 이 사적 대화방은 헤그세스 장관이 올 1월 자신의 상원 인준청문회를 준비하며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헤그세스 장관은 동맹국과의 고위급 군사 회담에 민간인인 부인 제니퍼를 최소 두 차례 동석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등 소홀한 보안의식으로 계속해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에 경질론도 거세지고 있다. 20일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헤그세스는 잘려야 한다”며 “헤그세스가 (부하 직원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다는 증거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사적 대화방 사건은 책임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미국에선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아침 생방송 시사 토크쇼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과 주요 부처 장관들은 연일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을 한 목소리로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시청 인구가 줄어든 시대에 이들이 굳이 아침 생방송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지 살펴봤다. ● 아침 시사프로 ‘본방사수’하는 트럼프트럼프 대통령은 아침마다 시사방송을 챙겨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루스소셜에 실시간 시청 후기를 남기기도 한다. 정치전문매체 액시오스는 집권 1기 때 트럼프 대통령의 3개월(2018년 11월~2019년 2월) 분량의 일간 일정을 입수해 “매일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를 ‘대통령의 시간’(Executive Time)이라고 명명하고 이 시간에 TV와 신문을 보고 참모들과 대화를 한다”고 보도했다. 늦잠을 자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업가 시절부터 수면 시간이 길지 않았고, 보통 6시 이전에 일어난다고 한다. 최근에도 이른 아침에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요한 공지를 발표하곤 했다. 일본 협상단과의 회담에 직접 참석하겠다는 발표도 오전 6시 18분에 했다. 아침 시사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TV 세대’ 정치인의 삶의 일부다. 1950년대 TV 보급과 맞물려 등장한 이래 주요한 메시지 확산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지금보다 뉴스 사이클의 속도가 느리던 과거에는 일요일 아침에만 시사방송을 했다. 이때 강조한 이슈가 다가오는 주의 헤드라인이 됐다. 일요 시사방송이 한 주의 이슈를 주도한 것이다. 1947년 NBC 방송이 ‘밋 더 프레스’를 시작하며 일요 시사방송 장르를 개척했고, 이어 1954년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이 출범했다. ABC 방송(1960년), CNN 방송(1993년), 폭스뉴스(1996년) 등도 뒤따랐다. 초창기에는 생방송과 녹화방송이 혼용되기도 했지만, 백악관 및 정부의 핵심 참모와 1:1 인터뷰, 전문가 패널 토론 같은 등의 포맷은 처음부터 쭉 이어져 왔다.그러나 2010년대 소셜미디어 등장으로 뉴스가 주말에도 쉼 없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일요 시사방송의 입지는 좁아졌다. 폴리티코는 2014년 기사에서 버락 오마바 행정부가 이를 역으로 이용해 “까다로운 질문에 즉석에서 답해야 하는 일요 시사방송 출연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아침 방송은 뉴스 사이클의 출발점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백악관에 입성하며 아침 시사방송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참모들을 TV에 대거 내보냈다. 그러나 지나친 아부 경쟁과 참모들의 발언과 백악관 공식 입장이 엇박자를 내는 일이 자주 발생하며 “전파 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기 들어서는 ‘충성파’ 내각이 철저하게 사전 조율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등장 횟수도 크게 늘렸다. 평일이든 일요일이든 요일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 방송 업계는 시청률 상승이라는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폭스뉴스는 올 1분기(1~3월) 시청률이 1996년 개국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침 시사방송은 백악관 미디어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모가 아침 생방송에 출연해 한 발언이 그날의 뉴스가 되도록 공격적인 소셜미디어 여론전까지 펼치며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위기 징조가 감지되면 더욱 자주 출연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의 충격적인 상호관세로 미 증시가 폭락하고, 전 세계가 불안에 떨던 이달 초에도 그랬다. 8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CNBC),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폭스뉴스),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블룸버그TV) 등 경제 참모들은 일제히 아침 시사방송에 출연해 “상호관세 일시 중단은 없지만, 무역 상대국들과 협상을 개시했다”고 일관된 메시지를 내놨다. 시장을 달래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깜짝 발표했다.)17일 민주당의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이 직접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의 실수로 엘살바도르의 교도소로 추방된 합법 체류자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만나자 다음날 아침 방송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은 폭스뉴스에 출연했고, 백악관 ‘국경 차르’ 톰 호먼은 CNN에 이어 MSNBC까지 이날 아침에만 두 개의 방송에 나가 강경 이민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송이 끝나면 2차전이 시작된다. 아침 방송에서 띄운 메시지를 그날의 뉴스로 확산시키는 작업이 곧바로 시작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백악관에서 운영하는 X 공식 부계정 ‘신속 대응 47’이다. 방송 직후 1~2분짜리 영상과 핵심 워딩이 여기에 올라온다. 백악관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내각을 꾸리며 후보들의 방송 출연 영상을 직접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활용을 염두에 두고 언변을 중요하게 본 것으로 풀이된다. ● 위기 국면서 발견된 뜻밖의 순기능트럼프 대통령은 매일 아침마다 TV를 통해 얼굴을 보는 폭스뉴스 앵커들과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다. 폭스뉴스의 간판 숀 해니티, 2013년 CNBC에서 폭스뉴스로 이직한 유명 경제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90일 유예 발표를 고심하던 와중에 바티로모의 방송을 본 것으로 알려지며 둘의 친분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바티로모는 평일 오전 6~9시 ‘모닝스 위드 마리아’를 진행한다. 9일 방송에는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가 출연해 “관세 정책으로 침체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했다. 바티로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날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제이미의 인터뷰를 봤다. 그가 요점을 잘 짚었다’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좌파 문화를 척결하겠다”라며 개혁을 예고한 수도 워싱턴의 문화·예술 공연장인 케네디센터의 이사로도 지명되는 등 대표적인 친트럼프 언론인으로 꼽힌다. 다만 다른 폭스뉴스 진행자들에 비해 관세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같은 날 다이먼 CEO에 앞서 가진 베선트 장관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제에 대해 모두가 굉장히 들떠 있었다. 규제 완화, 에너지 자원 개발, 감세 정책까지. 그런데 이제, 갑자기 ‘쾅’. 관세 조치로 모든 게 바뀌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다이먼 CEO의 인터뷰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강행에서 협상으로 선회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는 앵커의 방송에서, 한때 직접 재무장관으로 영입하려 했던 월가 거물이 우려를 드러내자 이를 주의 깊게 들은 것으로 보인다. 의외의 효과지만 예스맨 참모만 기용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사방송이 얼마 남지 않은 직언의 통로가 되고 있다.20화 요약: TV 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던 아침 시사방송이 다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루 종일 뉴스 주도권을 쥐기 위한 메시지 창구로 이 방송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아침 직접 방송을 챙겨보는 만큼, 이 방송들은 아부로 가득한 그의 세계에서 뜻밖의 ‘직언 통로’로도 작동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미국 정치를 들여다보는 ‘트럼피디아’가 어느덧 20화를 맞았습니다. 어떤 분들이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연재에 대한 의견이나 궁금한 점, 건의 사항을 asap@donga.com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동아일보가 아카이빙한 미니 히어로콘텐츠 ‘트럼프 2.0 폴리시 맵’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한 눈에 확인하세요.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준금리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해 “해임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17일(현지 시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임하는 방안을 유력한 후임 의장 후보인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비롯한 참모들과 수개월간 논의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날 전했다.고율 관세 부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임기가 내년 5월까지인 파월 의장을 조기에 교체해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경기 침체가 심화될 경우를 대비해 파월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백악관 회담에서 파월 의장 해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그를 내쫓고 싶다면 아주 빠르게 그렇게 될 것이다. 나를 믿으라”고 답했다.WSJ에 따르면 파월 해임에 대해 워시 전 이사는 “파월이 간섭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역시 파월 의장의 해임에 반대했다. 베선트 장관은 14일 연준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보석상자”에 비유하며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 참모들은 파월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해임을 압박하고 나선 건 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에 대한 파월의 전망이 달라진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현상이 일시적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호관세 부과 발표로 국채 투매 현상까지 벌어진 이후인 16일 시카고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선 “지금까지 발표된 관세 인상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다”며 “관세가 올해 내내 우리를 물가와 실업률 안정에서 더 멀어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고관세로 인해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뛰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기준금리 인하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는 17일 트루스소셜에 “파월은 지금이라도 유럽중앙은행(ECB)처럼 금리를 반드시 인하해야 한다”며 “유가는 하락했고 식료품 가격도 내려갔고 미국은 관세 덕분에 부자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전날 “연준은 그 어떤 정치적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 인하에 선을 그었다.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파월을 의장으로 임명했지만 두 사람은 긴장관계를 이어왔다. 당시에도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파월 의장을 해임하겠다고 압박했다. 2019년 8월엔 파월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교하며 X에 “누가 더 큰 적(enemy)인가?”라고 썼다.미 현행법상 연준 의장은 4년 임기가 보장돼 있고,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한 전례도 없다. 올 2월 파월 의장은 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할 권한이 없다면서 “이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아이비리그’ 출신 트럼프 美 명문대와 싸우는 이유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 보조금을 무기 삼아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등 미국 명문 대학들과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일 때부터 대학들이 유대계 학생을 보호하고, 학생 선발 및 학교 운영 과정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트럼프 대통령은 왜 모교를 포함한 명문대들을 압박하는 것일까.》“미국 대학들은 마르크스주의 광신자들과 미치광이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미국 대학을 뜯어고치겠다”며 주장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초 취임 뒤 각종 정부 보조금을 무기로 미 동부의 8개 명문 사립대인 ‘아이비리그’(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컬럼비아대, 브라운대, 코넬대, 다트머스대, 펜실베이니아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명문대들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3년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가자 전쟁’을 계기로 대학 캠퍼스에서 자주 벌어진 ‘반(反)유대주의 시위’에 대한 대학 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판했다. 또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각종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컬럼비아대를 시작으로 스탠퍼드대,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등을 상대로 연방정부 보조금 줄이기를 앞세워 강도 높은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많다.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처음에는 대학들이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하버드대 등이 ‘학문의 자유’를 내걸고 정부 조치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갈수록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대학과 트럼프 행정부 간의 충돌이 역시 진보 성향이 강한 언론계, 문화계, 시민단체 등과 트럼프 행정부 간 갈등을 키우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진보 문화 메카’ 명문대 공격해 보수층 규합 트럼프 대통령이 대학들과 전례 없는 ‘문화 전쟁’을 시작하게 된 불씨는 지난해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반이스라엘 시위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아이비리그를 중심으로 수십 개 대학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비난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너무 컸고, 이스라엘이 민간인 공격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들은 캠퍼스 내 텐트를 치고 농성에 나섰고, 대학 당국에 이스라엘이나 유대계와 관련된 기업의 주식을 매각하거나 기부금을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학 측이 난색을 표하자 학생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강의실을 파손했다.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컬럼비아대에선 경찰이 학내에 진입해 학생 300명 이상을 체포했다. 당시 대선 레이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트럼프 캠프는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좌파에게 지배당하는 대학의 정상화’를 내걸었다. 캠페인 영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학들이 열심히 일하는 납세자들로부터 보조금 수천억 달러를 받아 왔다”며 “이제 우리는 이 반미적 광기를 단번에 제거하고, 한때 위대했던 우리의 교육기관들을 급진 좌파로부터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의 상위권 대학들이 좌경화돼 있다는 보수층의 문제의식과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하는 ‘대학 때리기’ 전략이 득표에 도움이 될 거란 계산이 깔렸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친이스라엘 성향이 강하단 점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또 장녀 이방카의 남편으로 트럼프 집권 1기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활동했던 재러드 쿠슈너 등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 유대계가 많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 로널드 대니얼스 존스홉킨스대 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고등교육에 대해 비판적 정서를 지닌 유권자들의 분노, 불안, 취약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미국 대학들이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2012년 26%에서 지난해 45%로 급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정서에 기대 취임 직후 유대인 학생 보호 등을 명분으로 대학들을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트랜스젠더 대학 선수들의 경기 참여를 금지하는 등 트럼프 진영의 핵심 의제인 DEI 폐기도 한몫했다. 앞서 2022년 펜실베이니아대 재학생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뒤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주최 수영대회에서 우승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성전환자의 여성 스포츠 참가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일부 명문대는 정부 보조금 의존도 절반 육박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들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보조금을 앞세우는 건 대학들이 오래전부터 연방정부 보조금에 크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보조금을 ‘약한 고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가 대학들에 대규모 보조금을 본격적으로 지급하기 시작한 건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무기 개발 등 대학들과의 연구 협력 필요성이 커지자 미 행정부는 대학들에 대한 지원 규모를 크게 늘렸다. 미 교육부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당시 돈으로 3억 달러가 대학 보조금으로 투입됐다. 대부분 전쟁 수행을 위한 연구 지원 자금으로 사용됐다. 또 보조금을 받은 대학들은 군에 각종 기술과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했다. 종전 후 정부 보조금 지급이 줄었으나 냉전이 격화되면서 규모가 다시 커졌다. 특히 냉전이 한창이던 1965년 고등교육법(Higher Education Act of 1965)이 통과되면서 지급 절차가 체계화됐다. 정부가 특정한 교육 및 연구 프로그램을 지정해 연간 보조금을 지급하고, 보조금 투입 전 프로그램을 검토하며 지출 감사권을 갖게 된 것. 이와 관련해 대학들의 보조금 의존이 과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NPR뉴스는 “대학들이 정부 보조금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견이 분명히 있다”며 “일각에서는 2차대전 뒤 정부가 대학들에 보조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부풀려졌고, 지나치게 낭비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대학별로 차이가 있지만 연간 운영수익에서 정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개 15%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대학은 이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기도 한다. 대학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삭감에 민감한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을 삭감했거나 관련 계획을 갖고 있는 미국 주요 8개 대학의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존스홉킨스대의 경우 연간 운영수익(88억7000만 달러)에서 정부 보조금(42억3000만 달러)이 47.6%를 차지한다. 미국 최고의 의학연구센터를 두고 있어 미 보건부 산하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거액의 지원을 받고 있는 데 따른 것. 뉴욕타임스(NYT)는 존스홉킨스대가 “연방 지원금 삭감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기관”이라고 전했다. 반이스라엘 시위에 앞장선 컬럼비아대와 노스웨스턴대 역시 연간 운영수익의 5분의 1 이상이 정부 보조금에서 나온다. 하버드대(10.6%), 코넬대(14.3%), 프린스턴대(17.5%), 브라운대(13.6%)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재정의 상당 부분을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한 펜실베이니아대가 6.3%로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기부금 많아도 보조금 삭감 시엔 어려움 많아일각에선 대학들이 적립해 놓은 기부금으로 정부 보조금 삭감에 대응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하버드대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주요 대학들 중 최고 수준인 약 532억3500만 달러(약 77조 원)의 기부금을 적립해 놓았다. 프린스턴대는 334억200만 달러, 존스홉킨스대는 130억6300만 달러의 기부금을 각각 적립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기부금의 경우 대학들이 재량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규모에 한계가 있다. 미국 대학에서는 기부자들이 사용처에 제한을 둘 수 있어서다. 예컨대 장학금 등의 특정 용도나 특정 시기 이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특히 기부금 원금은 건드릴 수 없고, 이를 활용한 투자 수익만 특정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하버드대는 기부금의 약 82%(435억9800만 달러)가 용도가 제한돼 있다. 브라운대(86%), 코넬대(83%) 역시 용도가 제한된 기부금 비율이 전체의 80%를 넘는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용도 제한 기부금 비율은 평균 약 69%다. 물론 대학들이 재량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기부금으로 정부 보조금 삭감에 대응할 순 있다. 하지만 대학들이 이를 재정적으로 어려운 재학생들을 돕는 데 이미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미대학경영협회(NACUBO) 설문조사 결과 대학 기부금 지출의 48%가 학생 재정 지원에 사용됐다. 대학들은 정부 보조금을 대부분 학술 투자에 사용해 왔다. 단기적 성과가 없더라도 교수, 학생들이 장기간 연구에 매달릴 수 있도록 지원한 것. 이에 따라 정부 보조금 삭감이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시사매체 디애틀랜틱은 “상아탑이 침범당했다(breached)”고 평했다. 최근 정부 보조금 지급이 일부 끊긴 프린스턴대의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NYT에 “이 자금은 지난 70년간 미국의 모든 주요 대학에서 연구를 위해 사용돼 왔다”며 “미국이 다른 곳보다 노벨상을 더 많이 수상하고, 새로운 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건 이 덕분”이라고 했다. 2002∼2023년 컬럼비아대를 이끈 리 볼린저 전 총장은 CNN방송에서 “정부의 대학 보조금 삭감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가장 심각한 침해”라며 “이는 신흥 권위주의 정권에서나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저항’에 앞장서 트럼프 행정부가 타깃으로 삼은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동결했거나 취소한 보조금만 최소 127억 달러(약 18조4150억 원)에 달한다. 지난달 7일 트럼프 행정부는 가자 전쟁 반전 시위에 앞장선 컬럼비아대에 대해 4억 달러(약 5800억 원) 상당의 보조금 및 정부 계약을 철회했다. 지원 축소 이유로는 “컬럼비아대가 유대계 학생에 대한 지속적인 괴롭힘에 대응하지 않았다”며 반유대주의 방조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추가 삭감에 나설 수 있다고 압박했다. 컬럼비아대에 지급할 예정인 총 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볼모로 삼은 것. 컬럼비아대는 아이비리그에서도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대학으로 통한다. 결국 컬럼비아대는 전방위 압박에 2주 만에 백기를 들었다. 지난달 21일 정부 요구에 따라 학내 집회를 제한하고 중동학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 당시 로이터통신은 “대학본부가 교수진의 통제권을 빼앗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놀라운 항복”이라며 “수십 개 대학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직면한 가운데 컬럼비아대가 위험한 선례를 만들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컬럼비아대는 15일 뒤늦게 트럼프 행정부에 ‘저항’하기로 다시 방침을 정했다. 클레어 시프먼 컬럼비아대 총장 권한대행은 이날 성명에서 “연방정부가 우리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가 늦게나마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을 거부하기로 한 건 미국 최고 명문인 하버드대의 결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 교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글에서 “우리 대학은 독립성과 헌법상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연방정부가 하버드대를 통제하기 위해 전례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 어떤 정부도 사립대학이 무엇을 가르치고, 누구를 입학시키고 채용하며,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지적 탐구를 할지 지시해선 안 된다”며 “하버드대를 비롯한 어떤 사립대도 정부의 지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앞서 린다 맥마흔 미 교육장관은 “반유대주의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해 하버드대의 평판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며 하버드대에 대해 90억 달러의 보조금과 정부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통보했다. 백악관은 하버드대가 저항 의지를 밝히자 보조금 22억9000만 달러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고, 공공기관으로서 인정받아 온 면세 지위도 박탈하려 하고 있다. 또 외국인 유학생 유치 프로그램에 대한 인증을 취소하겠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트루스소셜에 “하버드대가 계속해서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며 테러리스트에서 영감을 받거나 이들이 지지하는 ‘병적인 행동’을 조장한다면 면세 지위를 박탈하고 정치 단체로서 과세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런 가운데 14일 가버 총장의 글이 공개된 후 24시간 동안 114만 달러(약 16억 원) 이상의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하버드대 학생신문 하버드크림슨이 17일 전했다.● 대학들 집단 소송 나서… 지속가능성은 불투명 주요 대학들의 집단 소송 움직임도 시작됐다. 코넬대, 브라운대, 프린스턴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캘리포니아공대 등 9개 대학은 미 에너지부가 중단한 4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지급 재개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존스홉킨스대와 시카고대, 조지워싱턴대, 코넬대, MIT, 캘리포니아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13개 대학도 NIH의 연구 자금 삭감 시도를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9일 NY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이는 미국 대학에 대한 위협”이라며 정부의 불법적 요구에 소송을 제기해 학문의 자유를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가 의장을 맡은 미국대학교협회(AAU) 이사회도 지난달 31일 성명을 통해 “연구와 무관한 이유로 연구 자금을 철회하는 것은 위험하고 비생산적이다. 캠퍼스 내 차별 행위는 교육부와 법무부 조사 절차를 통해 시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규탄했다. 다만, 대학들의 반발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NPR뉴스는 “대학들이 딜레마에 놓여 있다. 법적 싸움을 하면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지금 당장 재정적 타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소송을 진행해 이번 보조금은 지켜낸다고 해도 향후 정부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받아낼 수 있을지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해임하는 방안을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와 논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 시간) 전했다. 자신의 기준금리 인하 요구에도 파월 의장이 연준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금리 동결을 고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저인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워시 전 이사와 함께 파월 의장을 임기 종료 전에 퇴출시키고 그를 후임으로 임명하는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했다. 2018년부터 연준 의장을 맡았고 2022년 연임한 파월 의장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워시 전 이사는 반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월 의장을 해임하지 말 것을 주장하면서 파월이 간섭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또한 해임에 반대하고 있으나, 일부 참모가 트럼프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해임을 공개 요구했다. 고율 관세 부과로 인한 경제 혼란 가운데 파월 의장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트루스소셜에 “너무 늦은 파월은 ECB처럼 진작 금리를 인하해야 했고, 지금이라도 반드시 인하해야 한다”며 “파월의 해임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적었다. 같은 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 자리에서도 파월 의장 관련 기자단 질문에 “내가 그를 내쫓고 싶다면, 아주 빠르게 그렇게 될 것”이라며 “나를 믿어라”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앞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하려는 시도에 대해 대통령이 자신을 해임할 권한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는 법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직접 임명한 인사이나 악연이 깊다. 당시에도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파월 의장을 공격했다. 2019년 8월에는 “파월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에 누가 더 큰 적(enemy)인가?”라고 X에 적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하버드는 실패작이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폐기 등을 놓고 정면 충돌한 가운데 하버드대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 16일 미 CNBC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학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엔 “유대인 학생들의 시민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납세자의 돈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앞서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의 ‘가자전쟁’ 발발 직후인 2023년 12월 의회 청문회에서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학내 반(反)유대주의 움직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몰아붙이며 총장 낙마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미국 최고 명문대이자, 자신의 모교인 하버드대를 저격한 주인공은 트럼프의 측근으로 꼽히는 공화당 하원의원 엘리스 스터파닉(41·사진)이다. 이날 스터파닉이 출연한 방송이 끝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훌륭하다(GREAT!!!)”라는 평을 남겼다. 이어 “(하버드에) 급진 좌파 새대가리들(birdbrains)이 강의하고 있다. 하버드대는 더 이상 연방 자금 지원을 받아선 안 된다”고 썼다. 14일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대한 22억9000만 달러(약 3조3000억 원)의 국가 보조금 지급 중단을 결정하자, 다음 날 스터파닉은 X에 “나머지 보조금까지 전액 삭감하자”고 주장했다. 체코계와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반유대주의 투쟁’의 선봉에 선 이유로는 정치적 야망이 꼽힌다. 스터파닉 의원은 2006년 하버드대 졸업 후 공직에 입문해 조지 W 부시 행정부 백악관, 2012년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 캠프 등에서 활동했다. 이후 고향인 뉴욕주 올버니로 돌아가 2014년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6선 고지에 올랐다. 스터파닉 의원은 명문대 총장들이 대거 참석한 미 의회 청문회에서 대학가의 진보 정책 등을 비판하며 총장들을 몰아붙여 주목받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상대 진영에 대한 “킬러(killer)”라고 칭찬했다. 또 지난해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도 검토했고, 2기 행정부 ‘1호 인사’로 주유엔 대사에 지명했다. 이후 하원에서 공화당의 과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스터파닉 의원의 주유엔 대사 지명을 철회했고 “의회에 남아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스터파닉 의원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뉴욕주지사 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16일 미 국세청은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은 “하버드대가 30일까지 외국인 유학생의 불법 폭력 활동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박탈하겠다”고 발표했다. SEVP 인증이 박탈되면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I-20’ 비자 발급이 중단된다. 또 CNN은 16일 기준 미 전역 130개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 840명 이상의 비자가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뒤 텍사스주 휴스턴대 수학과에 임용된 한국인 전모 교수가 13일 비자 취소로 인해 한국에 급히 귀국했다고 휴스턴크로니클이 전했다.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