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만에 공공미술 완성? 950억짜리 ‘공공흉물 프로젝트’ 될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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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졸속 공공미술 사업’ 논란… 지난달 공모 시작, 6개월내 끝내야
미술계 “구상은 물론 제작도 빠듯 창작 이해 없어… 흉물 양산 우려”
‘팀 인원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 “고용수치 높이려는 꼼수” 지적도

2017년 공중보행로인 서울로7017에 9일간 설치된 조형물 ‘슈즈 트리(Shoes Tree)‘. 헌 신발 3만 개로 만든 이 작품은 일각에서 흉측해 보인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공공미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동아일보DB
2017년 공중보행로인 서울로7017에 9일간 설치된 조형물 ‘슈즈 트리(Shoes Tree)‘. 헌 신발 3만 개로 만든 이 작품은 일각에서 흉측해 보인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등 공공미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동아일보DB
“우리 동네에 비보이 조형물이 생긴다고요? 그게 왜 공공미술인가요?”

경기 부천시에 사는 직장인 조모 씨(32)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내용을 전해 듣고 이렇게 반문했다. 3차 추경 예산 통과로 생긴 이 프로젝트는 문체부(759억)와 지방자치단체 예산(179억)을 합해 총 948억 원 규모로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부 공개된 공모 결과에 따르면 비보이 조형물뿐 아니라 가두 전시장, 철도 모형 조각, 트릭 아트 벽화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역 심사에 참여한 미술계 인사 A 씨는 “연말까지 예산을 집행해야 해 급조된 프로그램을 울며 겨자 먹기로 선정하고 있다”며 “채택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심사위원도 있다”고 말했다.

●“퇴행적 환경미술 양산 우려”
전국 228개 지자체별로 시행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이다. 7월 3일 사업 안내서가 배포되고 8월 말부터 공모가 시작됐다. 대부분 사업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흉물 양산을 우려하고 있다. 턱없이 짧은 진행 기간 때문이다.

공공미술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주민들의 수요 등 오랜 시간을 들여 다양한 맥락을 고려해 의미와 가치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설치미술가 부부인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대표적 공공미술로, 프랑스 파리의 퐁뇌프 다리를 황금빛 천으로 둘러싼 ‘퐁뇌프 포장’은 10여 년이 걸렸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내년 2월까지 마무리 지어야한다. 준비 기간은 길어야 6개월, 아이디어 구상은 물론 제작에도 벅찬 시간이다. 전남 지역 한 도시의 담당자 B씨는 “통상 마을 미술 프로젝트는 연초부터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준비해 예산을 신청한다. 이번엔 연중에 문체부에서 돈부터 내려준다며 정하라니 졸속은 맞다”고 했다.

프로젝트 결과물의 ‘3년 유지’ 조항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경남 지역 한 도시의 담당자 C씨는 “사후 관리 예산이 편성이 쉽지 않아 내년 추경을 기대해야 해 흉물로 전락할까 걱정”이라고 털어 놓았다.

문체부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짧은 기간을 보완할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일부 공개된 지자체의 심사위원 평가에서 ‘구상 기간이 짧아 보완이 필요하다’거나 ‘조건부 통과’가 결정되고 있다. 김찬동 전 수원시립미술관장은 “충분한 기간과 소통, 협업이 없다면 일방적 제작 설치로 ‘퇴행적 환경미술’ 양산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시적 고용 수치 높이기?
이러한 우려는 추경 예산안 발표 때부터 제기됐다. “90년 전 미국에서 실패한 뉴딜정책을 왜 답습하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럼에도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강행된 것은 ‘일자리 창출’ 목적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최근 서울시 공공미술프로젝트는 ‘대학교수, 직장인, 대학생은 참여가 제한되며 최종 사업자로 선정될 시 반드시 고용보험 미가입 상태여야 한다’고 긴급 공지했다. 또 ‘사업비 4억 기준 총 37명 팀 구성’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돼 복수의 예술가 참가를 조건으로 했다. 이 때문에 “고용 수치를 높이기 위한 꼼수”라거나 “공공미술이 아닌 공공근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정은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작업 기회가 없는 예술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작가 D씨는 “창작에 대한 이해 없이 노동 행위만 지원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미술계 위한다면 생태계 지원을”
코로나19에 해외 정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취소된 행사 비용을 일부 지원하거나, 예술 기관과 사업체, 프리랜서 예술가 지원에 집중한다. 프랑스는 3월 문화계의 연대 기금이나 예술가를 위한 실업 급여 등 기존 제도에 예산을 지원했다. 가시적 결과물이나 통계적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예술계 생태계를 유지에 방점을 둔 것이다.

황무현 창원조각비엔날레 추진위원장은 “예산이 전무한 지역 예술인 복지센터 등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한 간접지원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며 “지금 정책은 추진 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아 지역 미술계 갈등을 조장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의 20년치 소장품 구입 예산과 맞먹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산은 예술기금 조성이나 창작 준비금, 생활 금융 지원으로도 쓰일 수 있다”며 “지금처럼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없으면 1000억 원 가까운 세금이 휘발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관을 통한 간접지원이나 미술품 구입 지원이 예술인을 존중하는 태도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공공미술#흉물#문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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