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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의 자식’ 낙인 최인국, 10번 넘게 직장 옮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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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자의 자식’ 낙인 최인국, 10번 넘게 직장 옮겼지만…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7-07 19:36수정 2019-07-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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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범두 천도교 교령 인터뷰

‘월북자의 자식.’

6일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의 보도로 밝혀진 최인국 씨의 불법 월북에는 1986년 부모가 월북한 뒤 최 씨에게 찍힌 낙인과 한국에서의 신산스러운 삶 역시 한 가지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의 아버지인 최덕신(1914~1989)은 6·25전쟁 때 사단장으로 참전했고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 서독 주재 대사를 지냈다. 1967년부터 제7대 천도교 교령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 끝에 아내 류미영(1921~2016)과 1976년 미국에 이주한 뒤 여러 차례 평양을 드나들며 김일성을 만났고,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역시 천도교인인 최인국 씨는 월북 전 송범두 현 천도교 교령을 만나 “내가 여기(한국)서 살기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본보는 송 교령을 최근 만나 최 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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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령은 “최인국 씨가 현행법을 어기고 북한에 넘어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최 씨가 남북간 종교 교류가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 교령은 최 씨가 어머니 류미영 씨가 2016년 세상을 뜬 뒤 비워놓았던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부모가 북한으로 간 뒤 최 씨의 생활은 어땠나.

“최 씨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가졌는데, 그것도 얼마 안돼서 그리됐으니까(부모가 입북했으니까). 자기가 벌어놓은 돈도 없고, 움직이면 정보망(대공 수사팀)이 따라붙고…. 누가 최 씨를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줬을 거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자기 어머니(류미영)가 용돈이라도 좀 보내주고 했던 거 같은데, 돌아가신 뒤에는 그것도 없어졌고. 한국에서 뭐를 해서 자기가 밥을 먹고 살아. 그러니까 고뇌를 많이 했겠지.”

최 씨는 부모의 월북 이후 직장을 10번 넘게 옮겨야 했고, 사실상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 교령은 올 3월 경 최 씨가 자신을 찾아와 마지막으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만나면 최 씨가 어떤 얘기를 하든가.

“이런 얘기지. ‘지금 자기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저히 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할 게 없고 삶이 핍박하다’고 하더라. 언젠가 한번은 ‘내가 저쪽(북)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한번씩 (북한에) 갔다 올 때마다 자꾸 마음이 흔들리는 거 같았어. 봐서는 (북한 측에서 미리) 언질이 있지 않았겠느냐 싶고.”

최 씨는 2016년 11월 어머니인 류 씨가 사망했을 때 방북했고, 이후에도 1, 2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일이 있다.

―교령은 뭐라고 했나?

“지금 거기 가서, 그 쪽 활동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고 했지. 그런데 ‘그건 순전히 청우당 일이고, 천도교 일이기 때문에…크게 내가 이 나이에 그쪽을 뭐 찬양하거나 그럴 수는 없지만…내가 가서 남쪽하고 통일의 통로가 되는, 그런 단초는 안 만들겠느냐’고 하더라고.”

천도교 신자는 1945년 해방 당시에도 북한 지역에 더 많았고, 지금까지도 천도교청우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북 천도교는 뿌리는 같지만 교류는 별 진척이 없다. 최 씨의 월북에는 자신이 남북 천도교 교류의 고리가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 씨가 북한에서 어떤 일을 할 것으로 예상하나?

“류미영 위원장 사후에 지금까지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비워놨지. 들리는 얘기로는 그쪽(북한)에서는 가문을 중요시하잖아. 혈통을. 그 자리는 아무나 앉힐 수가 없다는 그런 얘기가 북한에서 있었어.”

―최 씨와 가까웠나?

“어쩌다 소식 왕래하는 정도지. 최 씨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찾아왔고, 우리가 먼저 연락하거나 그러질 않았어. 노출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어. 자기 부모 넘어간 뒤부터 체질화 된 거지. (개인 신상에 대해) 뭐 물으면 딴전 피운다고. 먼 산보고. 다른 얘기하고. 가족에 대해서도 안 밝혀.”

―최 씨가 동학민족통일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천도교로서는 최 씨의 월북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 같다.

“얽히고설킨 선대부터의 인연 아니요. 할아버지 대부터 얽힌 것이지. 최 씨에게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얘기할 수도 없고.”

최 씨의 할아버지이자 최덕신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장군(1892~1963)은 김일성이 잠시 다녔던 화성의숙의 교장 선생님이었다. 최동오 장군은 6·25전쟁 때 납북됐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최 씨의 외할아버지(류미영의 수양 아버지)이자 임시정부의 참모총장 등을 지낸 유동열 장군(1879~1950) 역시 6·25전쟁 중 납북돼 마찬가지로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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