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갑 차는 ‘방탈출카페’… 불나면 탈출구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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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놀이업소 화재 무방비


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방탈출카페’. 게임이 시작되자 카페 직원은 밖에서 방문을 잠갔다. 방 내부는 다시 3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본보 기자를 포함한 일행 3명 가운데 1명은 손목에 수갑을 차고 방 안에 있는 철창 감옥에 갇혔다. 나머지 2명은 불이 꺼진 방에서 손전등을 비춰 가며 퀴즈를 찾았다. 퀴즈의 답을 풀어야 감옥 열쇠를 찾을 수 있고, 다른 작은 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직원이 폐쇄회로(CC)TV로 방 안을 보고 있다가 퀴즈를 모두 푼 것이 확인되면 밖에서 문을 열어주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 불이 났다고 가정하고 탈출을 시도했다. 일행이 스스로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감옥 안에 갇힌 사람은 철창을 뛰어넘기 어려웠다. 방 안에 놓인 컴퓨터로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재 발생 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5분. 하지만 직원이 방 안으로 들어와 철창문을 여는 데 7분가량 걸렸다. 더욱이 이 방에는 스프링클러도 없이 소화기만 한 대 놓여 있었다.

이 업소를 포함해 서울 중구와 종로구, 마포구 일대 방탈출카페 6곳 등 신종 놀이시설 10곳을 살펴봤다. 대부분 불이 났을 때 이용객들이 스스로 대피하기 어려워 화재 대비에 취약한 상태였다.

○ 스프링클러도, 탈출구도 없는 신종 업소들

이날 살펴본 방탈출카페들 가운데 각 방에 비상탈출구가 마련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울 중구의 한 방탈출카페에는 이용객이 비상시 스스로 방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 방마다 스프링클러나 소화기도 없었다. 직원은 “불이 나면 밖에서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연기가 들어차면 직원이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비상시 방문을 열 수 있더라도 이용객들이 대피하기는 쉽지 않다. 방 여러 개가 미로처럼 이어진 방탈출카페의 구조 탓이다. 한 업소는 이용객들이 3m 높이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퀴즈를 풀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게 돼 있다. 불이 나지 않았는데도 각 방을 거쳐 계단을 내려오는 데 5분가량 걸렸다.

마포구의 한 방탈출카페 건물에는 화재가 날 때 비상벨이 울리지 않도록 소화전의 전선이 모두 뽑혀 있었다. 서울 명동의 방탈출카페 방 안에는 전기난로가 놓여 있었다. 더구나 불에 타기 쉬운 목재 가구가 여러 개 있었다.

방탈출카페 이용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에는 적어도 144개의 방탈출카페가 있다. 5개 업소 이상 가입한 프랜차이즈 소속 업소만 조사한 것이라 실제론 이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 밀폐된 방 안에서 비비탄 총을 쏘는 서울의 한 ‘비비탄 사격장’에는 가게 정문 외에 별도의 비상구가 없었다. 건물 1, 2층에 음식점이 있어 화재 위험성이 있었지만 이 업소 내부에 스프링클러나 소화기는 없었다. 방 안에 들어가 폐가전제품을 부수는 서울의 ‘스트레스 해소방’ 등 다른 업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 다중이용업소에서 빠져 소방점검 안 받아

현행 다중이용업소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은 ‘노래방’ ‘골프연습장’ 등 총 23개 업종을 다중이용업소로 정하고 있다. 이들 업종의 업주들은 비상구나 스프링클러 등을 갖추고 안전점검을 받을 의무가 있다.

하지만 방탈출카페 등 신종 업소들은 다중이용업소로 지정돼 있지 않다. ‘소방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신종 업소를 운영하는 업주들은 ‘자유업’으로 신고하면 되기 때문에 소화기나 스프링클러 등의 설비를 갖추지 않고도 영업할 수 있다. 소방당국 역시 소방설비를 갖추라고 권고할 뿐 과태료를 부과할 순 없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재 사고 등 위험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종 업소들을 다중이용업소로 지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내년까지 진행되는 화재안전특별조사에서 신종 업소에 대해서도 화재 안전을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화재 위험이 있는 업종을 즉각 다중이용업소로 지정해 화재를 예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청은 지하에 위치하거나 밀폐돼 있는 등 화재 위험이 있는 공간에 대해 명확한 위험성 판단 기준을 만들어 선제적으로 다중이용업소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방탈출카페#탈출구#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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