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는 반려동물의 주인 아닌 동거인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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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이원영 지음/196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반려묘 ‘여백이’와의 만남과 이별을 담은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그림. 애틋한 온기를 전하는 그림이 글과 호응하며 책장 넘기는 리듬을 살린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반려묘 ‘여백이’와의 만남과 이별을 담은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그림. 애틋한 온기를 전하는 그림이 글과 호응하며 책장 넘기는 리듬을 살린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강아지를 길러 볼까 봐요.”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 11년 전 어느 저녁. 출입처 구내식당에 마주앉은 선배에게 그렇게 말했다. 잠깐 고개를 든 선배가 깍두기 한 조각을 밥공기로 옮기며 답했다.

 “네 외로움 때문에 강아지를 불행하게 만들지 마라.”

 아렸던 그 조언에 그 후 여러 번 감사했다. 9년 전부터 함께 지낸 고무나무 분갈이를 지난해 처음 해준 나에겐 여전히 이종(異種)의 동물에게 공생을 빙자한 고독을 강요할 자격이 없다. 11년 전엔 그런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반려견 복돌이와의 만남과 이별을 계기로 수의사가 된 인물이다. 13년간 함께 지낸 복돌이를 병으로 떠나보낸 그는 서문에 “정보 제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논의를 쓰려 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은 사람 마음속의 애틋함을 자극해 책임을 도외시하지 않도록 만든다. 근원적 차원까지 고민하면서도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자세를 ‘철학적’이라고 한다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철학적 사고를 위한 최선의 환경이다.”

 행간에 일관된 흐름은 공존하는 타자(他者)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이다. 인스타그램 과시용이 아닌 오롯한 동거자로서 반려동물의 존재를 돌아보도록 제안한다. 동물병원 진료에 얽힌 사연은 행복에도 슬픔에도 치우치지 않는다.

 “학대하거나 소홀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잘해 주려 안달하거나 조급하게 서둘러도 탈이 난다. 새로 입양된 동물의 가장 큰 적은 동물을 장난감으로 대하는 아이, 호들갑 떨며 부추기는 어른이다. 그런 행동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도 벅찬 동물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10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반려동물 ‘시장’이 커졌을 뿐 생명을 대하는 사회 전반의 가치관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 앞 강아지 가게 우리에 웅크려 앉은 강아지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부끄럽게 확인한다. 동네 꼬마들에게 맞아 다리가 부러진 생후 두 달 된 길고양이를 구해낸 지은이는 “강한 존재에게 굽실거리고 약한 존재에게 잔인해지는 인간의 저열함”에 대해 일갈한다.

 “인간은 반려동물을 이용하려는 걸까, 아니면 그들과 공존하려는 걸까. 상대를 이용할 힘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걸 합당하다 할 수 있을까. 그건 폭력과 다름없다. 반려동물에게 인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메워줄 역할만 강요하는 집착도 같은 맥락에 있다.”

 책 후반부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어떻게 맞을지에 대한 논의, 이익과 효용을 넘어선 신뢰와 애정을 주고받는 모든 관계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저자는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말한들 그게 더 중요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반려동물 입양을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했거나 이미 시작한 이에게 짧은 반성의 계기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책에도 썼듯 이런 이야기에는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판에 동물 일에 수선 떤다’는 반응이 따라온다. 간디(1869∼1948)는 “한 나라의 위대함은 그 나라 동물들이 받는 처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무관할까. 그 답의 파장이 동물에게만 돌아가진 않을 거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이원영#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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