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동체 살리기]<1>교육기금 모으는 경북 군위 주민들

  • 입력 2003년 4월 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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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군위여고 교정에 모인 군위교육발전위원회 관계자들과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근수 교장,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박영언 군수(이사장). -군위=이권효기자
지난달 29일 군위여고 교정에 모인 군위교육발전위원회 관계자들과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근수 교장,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박영언 군수(이사장). -군위=이권효기자
《사회 경제 문화적 기능들이 도시로 집중되면서 지방에 대한 소외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향을 살리려는 지역의 움직임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물론 고향을 떠나있는 출향민들까지 합심하면서 눈에 띄는 성과들도 나타나고 있다. 주민참여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삶’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키고 있는 ‘지방살리기’ 성공 사례를 주 1회 집중 소개한다.》

“황무지에 숲을 가꾸려면 수십년간 공들일 각오를 해야지요.”

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김명우(金明佑·54) 이장은 지난달 28일 군위군 청사 안에 있는 군교육발전위원회를 찾아가 흰 봉투를 하나 내놓았다. ‘군(郡)교육 발전기금’이라고 쓰인 봉투 속에는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 돈은 상곡리 주민들이 지난달 중순 마을에서 초상을 치를 때 상여를 둘러메고 받은 ‘상여돈’ 100만원 중 절반을 뗀 것. 이장 김씨는 주민들의 ‘성의’를 전달하면서 “교육 때문에 학생들을 도시에 빼앗기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현재 군위군에는 군민들이 마을 잔치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발전기금을 모으면서 ‘교육 황무지’로 변해버린 시골학교에 ‘꿈나무’가 하나둘 심어지고 있다.

고로면 화수1리 주민 100여명은 마을회관 준공기념 잔치를 준비할 때도 비용에서 먼저 30만원을 떼어놓았다. 교육발전기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사과농사를 짓는 홍성일(洪性一·48·군위읍 내량리)씨도 올 2월 ‘경북농업명장’으로 선정될 때 받은 상금 100만원 전액을 기금으로 내놓았다. “교육을 살리는 게 고향을 살리는 길이라는 데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게 홍씨의 말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 3년간 쌓인 교육발전기금은 14억원을 넘어섰다. 주민들뿐 아니라 고향을 떠난 사람들까지도 참여했다. 담뱃값을 아껴 2만원을 낸 50대 주민부터 1억원을 쾌척한 출향인까지 자발적인 관심이 줄을 잇고 있다. 월급에서 매월 2만원씩을 내는 주민도 꽤 많아졌다.

군위군은 대구시와 안동시로부터 각각 50㎞가량 떨어져있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고려 태조 왕건 때 군사적 위세가 넘쳤다는 뜻에서 군위(軍威)라는 지명이 붙었다. 60∼70년대만 해도 인구가 8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이농(離農)현상은 예외 없이 몰아쳐 지금은 인구가 3만2000여명에 불과하다. “대대로 물려받은 지명(地名)을 지킬 수가 있겠느냐”는 좌절감이 팽배했다.

5년 전부터 군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내린 결론이 ‘교육’이었다.‘부실한 교육환경’은 고향을 등지게 하는 주요 원인이었다. 남아있는 주민들의 70%도 ‘교육이 인구감소의 원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교육은 숲을 가꾸는 것과 같으며 숲(교육기반)이 무성해야 새(학생과 학부모)가 날아든다’는 결론에 주민 모두가 동의했다.

“자녀를 대구나 안동 등 도시로 보내는 주민들이 많으니 당연히 인구감소로 이어졌지요. 심지어 일부 학부모들은 농업자금을 대출 받아 농사를 짓지는 않고 자녀교육에 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농가부채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지요. 적어도 고등학교까지는 ‘고향에서 공부해도 충분하다’는 믿음을 주지 않는 한 지역발전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박영언(朴永彦·64) 군위군수의 말이다. 군위군은 이에 따라 99년 8월 ‘군위군 교육발전위원회’를 설립했다. 교육발전위가 첫 사업으로 기금모집에 나서자 주민들의 호응은 예상 밖이었다. 기금은 3년 사이 14억원으로 ‘홍수’처럼 불어났다.

이 기금을 바탕으로 현재 군내 4개 고교는 매년 총 1억원을 지원 받고 있다. 기금의 이자에 군위군이 내놓는 예산을 합쳐 장학금을 받는 학생수도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고교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우수학생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군내 고교졸업생 200여명의 대학진학률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주민들은 “교육투자는 짧은 기간에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먼저 말을 꺼낸다. ‘작은 주춧돌’을 쌓는 심정으로 교육발전을 이루자는 각오다.

71년 개교 당시 400여명에 이르던 군위여고 학생 수는 현재 114명. 이 학교에는 지난해 기금에서 3500만원이 지원돼 장학금과 기숙사 운영보조금, 교사수당 보조금 등으로 쓰였다. 이근수(李根秀) 교장은 “군민들이 지역교육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도 덩달아 좋아진 것이 큰 성과”라며 “장기적으로 학교시설을 개선하고 우수한 교사를 확보하면 도시 부럽지 않은 이상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군위교육살리기 운동은 인구감소로 침체되었던 지역분위기를 다시 꿈틀거리게 만들고 주민들을 똘똘 뭉치게 하고 있다. 축산업을 하는 학부모 김연우(金演雨·47·군위군 학교운영위원회협의회장)씨는 “이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시골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했으나 지금은 교육살리기 운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군위郡은▼

군위군(軍威郡)은 대구와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거대한 팔공산에 가로막혀 그동안 발전이 늦었다. 경북 전체 면적의 3%인 614㎢ 넓이(1읍 7면)에 3만2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출향인을 포함하면 군위군에서 태어나 전국에 살고 있는 군위인은 30만명가량.

주민들의 숙원은 대구와 군위군을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군위석굴암터널’ 개설. 팔공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뚫리면 군위군을 포함, 경북 북부지방의 발전도 가속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년 농협과 군위군이 공동 출자해 개장한 군위농산물종합유통센터는 산지 매장으로서는 전국 최대 규모. 인근 도시에서도 싱싱한 농축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몰려드는 등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출 작목인 오이와 황금배는 경북도내 생산 1위이며 사과는 밭 면적 대비 재배면적이 전국 1위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소장(전 재무부장관)이 효령면 출신이며 우보면 출신인 이윤기씨는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전 KBS앵커 신은경씨는 고향인 고로면의 명예면장을 맡고 있다. 소보면 출신인 가수 이자연씨는 매년 10월 열리는 군위군민 축제 등에 참가해 고향주민들에게 노래를 선사하고 있으며, 가수 신해철씨도 효령면에서 태어났다.

일연스님이 머물며 ‘삼국유사’를 저술했다는 인각사(사적 374호), 경주 석굴암의 선행 양식으로 알려진 군위삼존석굴(국보 109호) 등 유서 깊은 문화재가 가득하다.

▼군위 교육발전위 회의록▼

군위교육발전위원회는 올해 첫 회의를 지난달 29일 오전 군위여고 교장실에서 개최했다. 회의에는 위원회 이사장인 박영언(朴永彦) 군위군수, 군위여고 이근수(李根秀) 교장, 소보중 최덕수(崔德洙) 교사, 학부모 김연우(金演雨·학교운영위원회 협의회장) 정혜란(鄭惠蘭)씨 등 7명이 참석했다.

“그래도 98년과 비교하면 교육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때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군위에서는 어차피 좋은 교육을 하기 어려우니까 웬만하면 자녀를 도시로 보내는 게 ‘정답’이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요. 이제 군위의 교육이 살아야 고향이 발전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박 군수)

부계중학교 학부모인 정씨가 말을 받았다.

“학부모 입장에선 장학금이나 시설보다 교사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습니다. 열성적이고 실력있는 교사들을 원해요. 부계중에서는 올 3월 처음으로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방과후에 90분씩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데 새로 부임한 몇몇 교사들의 의욕으로 시작된 일입니다. 교사들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줍니다. 열심히 하는 교사에겐 대우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회의가 열기를 더하면서 요구사항도 잇따랐다. 최 교사는 “결국 재원이 문제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군위 교육에 대한 신뢰감을 쌓아야 한다”며 “올해는 고교뿐 아니라 초중학교에도 발전기금을 지원하고 주민 참여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교육’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인식차도 나타났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고 물었다. 반면 학부모 김씨는 “앞으로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이 더 강해질 텐데, 교육 담당자들이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장학금도 중요하지만 학교에 퍼져 있는 무사안일한 분위기를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장도 동의했다. “솔직히 모든 교사들이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며 교직에도 경쟁과 평가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발전위원회는 이날 “앞으로 3년이 고비가 될 것”이라며 “외지에서 군위로 발령 받는 공무원과 회사원들도 자녀를 군위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군위=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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