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편안한 자를 방해해야 한다”… 한국에 온 ‘뱅크시즘’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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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서울서 英예술가 뱅크시展
경매 순간 파쇄 ‘풍선을 든 소녀’… ‘꽃 던지는 소년’ 등 대표작 전시
팔레스타인에 세운 ‘월드 오프 호텔’… 디즈니 풍자 ‘디즈멀랜드’ 영상도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리는 ‘리얼 뱅크시’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 ‘꽃 던지는 소년’(2003년·위 사진)과 ‘나는 경찰(Flying Copper·2003년)’. 아튠즈 제공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에서 열리는 ‘리얼 뱅크시’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 ‘꽃 던지는 소년’(2003년·위 사진)과 ‘나는 경찰(Flying Copper·2003년)’. 아튠즈 제공
1998년 8월 영국 브리스틀. 주말 이틀간 유럽의 그라피티(상가나 담벼락에 몰래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빨리 완성하는 그림) 예술가들이 모여 365m 길이의 벽면에 마음껏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라피티는 통상 불법인 경우가 많지만 이날 행사는 시청 승인을 받아 치러진 공식 행사였다.

이 행사를 주최한 예술가는 바로 뱅크시. 영국 최대 규모의 합법 그라피티 행사였던 ‘월스 온 파이어’를 연 1998년부터 최근까지 20여 년간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가 10일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옛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파쇄되면서 유명해진 뱅크시의 판화 작품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를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당시 파쇄된 작품과 다른 쇄(刷)의 판화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2019년 소더비 경매에서 파쇄되면서 유명해진 뱅크시의 판화 작품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를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당시 파쇄된 작품과 다른 쇄(刷)의 판화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이번 전시에선 2019년 소더비 경매로 유명해진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의 파쇄되지 않은 버전은 물론 ‘꽃 던지는 소년’(Love is in the air·2003년), ‘몽키 퀸’(2003년) 등 대표작을 선보인다. ‘디즈멀랜드’(2015년), ‘월드 오프 호텔’(2017년)처럼 뱅크시가 주도한 대규모 프로젝트도 영상과 기록으로 만날 수 있다. 또 브리스틀 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포스터, 1995년과 2000년대 초에 진행된 뱅크시 인터뷰 영상도 전시됐다.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지하 4층에서 뱅크시의 작품 활동을 다룬 연표로 시작한다. ‘월스 온 파이어’부터 브리스틀 수상 레스토랑에서의 첫 개인전(1999년), 소더비 첫 경매(2007년),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개봉(2010년), 영국 글래스고 미술관 개인전 ‘컷 앤드 런’(2023년)까지 뱅크시의 주요 작품 활동을 짚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뱅크시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벽에 가로막힌 호텔)’ 영상과 영국에 만든 ‘디즈멀랜드’ 영상을 볼 수 있다. ‘월드 오프 호텔’은 가자지구의 분리 장벽 바로 옆에 뱅크시가 세운 숙박시설로 ‘세상 최악의 뷰를 자랑하는 호텔’이라고 홍보하며 지난해까지 운영됐다.

‘디즈멀랜드’는 뱅크시가 만든 놀이공원으로 파파라치에게 둘러싸인 신데렐라, 아름다운 호수 위 난민 보트 등을 설치해 디즈니랜드를 풍자했다. 두 작품은 세계적 분쟁에 뛰어들어 폭력과 권위, 차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4섹션에서도 사진과 판화, 영상을 중심으로 뱅크시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전시는 202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뱅크시, 하늘에 성을 쌓다(Banksy, Building Castles in the Sky)’전을 한국 관객에게 맞게 변형한 것도 특징이다. 기존 전시가 뱅크시의 활동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작품을 모은 것이라면, 한국 전시는 그라운드서울의 거대한 공간에 맞게 각종 조형물이나 포토존을 추가했다.

지하 4층의 개방된 공간에 14m 높이로 디즈멀랜드 드로잉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 회전목마가 설치됐다. 회전목마는 뱅크시의 작품이 아닌 디즈멀랜드의 분위기에 맞춰 전시팀이 특별 제작한 조형물이다. 이 밖에 전시장을 오가는 계단에도 뱅크시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벽화와 그라피티가 장식돼 있다. 윤재갑 그라운드서울 관장은 “예술이 불안한 이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방해해야 한다는 뱅크시즘과 늘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1만5000∼2만 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라운드서울서#뱅크시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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