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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만의 평양 원정…무중계·무관중 사상초유의 ‘이상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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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만의 평양 원정…무중계·무관중 사상초유의 ‘이상한’ 경기

정윤철기자 , 황인찬기자 입력 2019-10-15 20:31수정 2019-10-1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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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북한 축구의 성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는 뜻밖의 정적이 흘렀다. 북한이 안방경기를 치르면 귀가 먹먹할 정도의 짝짜기 소리와 “본때를 보여라”는 팬들의 함성, 거대한 파도타기 응원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15일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3차전에서는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심판의 휘슬 소리만 가득했다.


2년 전 한국 여자대표팀이 북한과의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1-1 무)을 위해 김일성경기장을 찾았을 때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북과 장구를 든 응원단이 끊임없이 경기장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날 킥오프 30분전인 오후 5시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감독관이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한 경기장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경기장에 관중이 없다. 외신 기자도 보이지 않는다.”

단체 응원단 동원에 익숙한 북한이 짧은 시간에 일사분란하게 관중을 입장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14년째 ‘원정 팀의 무덤’으로 불린 김일성경기장에서 남자 축구 무패 행진(10승 2무)을 이어온 동력인 자국 관중의 응원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 전날 저녁 양 팀 매니저 미팅 때만 해도 관중 4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일사분란하고 고압적인 북한의 응원을 처음 본 상대 선수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도 관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킥오프와 동시에 AFC 감독관은 “무관중으로 경기를 시작 한다”고 알려왔다.



당초 한국 응원단 및 중계·취재진의 방북이 무산된 탓에 북한 관중의 일방적 응원 속에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고액의 중계권료 문제로 국내 생중계까지 불발됐다. ‘깜깜이 경기’를 자초한 북한은 한 술 더 떠 자국 응원단까지 관람을 막는 ‘셀프 무관중 경기’까지 선택했다. 안방 팀이 징계가 아닌 사유로 무관중 경기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은 2005년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발생한 관중 소요 사태로 일본과의 경기를 제3국(태국)에서 무관중으로 치르는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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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결정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인 관광을 장려하고 있는 북한은 여행사들이 미리 예약을 받았던 외국인 관광객의 경기 관람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2년 전 여자 축구는 북한(FIFA 랭킹 9위)이 한국(20위)보다 우위에 있다보니 승리를 예상해 관중을 동원했다. 하지만 남자는 한국(37위)이 북한(113위)보다 전력이 월등히 높아 자국 관중에게 패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무관중을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복합적 메시지를 보냈다는 분석도 있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이날 이례적으로 경기장을 찾은 만큼 무관중 경기를 통해 “일방적 응원 없이 경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는 것. 또한 한국을 향한 불만 메시지를 쏟아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전문가는 “한국 대표단이 평양까지 왔지만 관중을 아예 빼버리면서 당장 남북 교류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요한 관중석과 달리 양 팀 선수들 간에 충돌이 있어 경기감독관이 안전 요원을 대기시킬 정도로 그라운드는 격렬했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1-2 패) 이후 29년 만에 평양 원정에 나선 남자대표팀은 공방전 끝에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29년 전에는 북한 관중 15만 명이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았다.


이번 무관중 경기 사태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AFC와 북한 측이 사전 조율된 사항은 아니다. 입장권 판매 등 홈경기 마케팅 권리는 주최국 축구협회가 가지고 있으므로 AFC에서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무관중 경기가 징계 사유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
황인찬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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