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끝이라는 산업계 목소리[오늘과 내일/하임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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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국산화 막는 주52시간제… 유연한 유연근로제 도입이 필수

하임숙 산업1부장
하임숙 산업1부장
“지금 이대로라면 연구개발(R&D)은 끝났다고 봐야죠.”

대기업에 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가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큰일이라며 한 말이다. “연구라는 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밤을 새울 수도 있는데 딱 정해진 시간에만 연구하라니요.”

요새 어느 식사 자리를 가도 비슷한 대화가 오간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한참 이어지다 소재산업의 국산화 대목에 이르러서는 “주 52시간 때문에 20∼30년은커녕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본격화되면서 산업현장의 위기의식은 어마어마하다. 업종이나 개인 업무에 차등을 두지 않고 일괄적으로 법이 시행되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를 들어 건설사를 한번 보자. 건설사의 공사기한은 그 자체로 돈이다. 공기가 한 번 늘어지면 인건비 같은 추가 비용에다 해당 시설이 가동됐을 때 벌어들일 수익을 놓치는 기회비용까지 모두 발주업체와 건설사 간 분쟁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든 공기를 맞춰야 하는데 이 무슨 수에는 근로자의 작업시간 연장이 필수다. 한 건설사 사장은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해외사업장이 특히 큰일이다. 관리감독관을 한국인으로 써야 하는데 시차가 맞지 않는 데다 밤에 일이 터지면 가동할 수 없다. 오죽하면 현지에 별도 회사를 차려서 한국의 법을 피할까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시스템 통합 업체는 어떨까. 이 업종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가 은행이다. 은행 차세대 시스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2년 정도 걸린다. 기획→설계→개발→시스템 적용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단계에서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종종 발생해 야근이 잦다. 은행은 새 시스템을 깔려면 설, 추석 연휴처럼 최소 3, 4일 연달아 쉬는 기간이 필요하다. 실제 은행 업무에 적용하고 돌려봐야 고객 혼선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감을 한번 놓치면 적어도 서너 달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마감기한이 있는 업종이나 R&D가 필수적인 업종에선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같은 유연근무제 도입이 필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전혀 유연하지 않은 유연근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은 탄력근로제가 필순데, 현행 3개월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건설사의 공사가 3개월 만에 끝날 리는 없지 않겠는가. 이를 6개월로 늘리기로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합의했지만 입법은 요원하다. 게다가 적어도 1년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R&D 업종에선 사전에 업무량 예측이 힘들고 개인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근로자 개인이나 팀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근로제가 필수다. 현재는 한 달 기한인데, 시스템 통합 업체만 해도 적어도 3개월은 필요하다.

수출 규제로 우리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일본을 보자. 연 1075만 엔(약 1억1700만 원) 수입을 올리는 근로자나 금융딜러, 애널리스트, 의약품 개발자, 시스템 엔지니어 등은 근무시간에 따른 임금 규정 대상이 아니다.

미국은 주 40시간 근로제지만 연장근로에 대해선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돌려놨다. 계절적 수요가 큰 직업군, 철도, 항공, 택시 종사자 등은 아예 예외다. 채용·해고 권한이나 업무 재량권을 가진 관리자급은 주급 913달러(약 107만 원·연봉으론 약 5000만∼6000만 원)만 돼도 제외다.

근로자 휴식권 보장의 전제는 회사가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이어야 한다. 숨 쉬고 나면 세상이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의 미래를 보장하기는커녕 현재까지 법이 막아서야 되겠는가. “쉬지 않을 권리를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소재 국산화#주52시간제#유연근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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