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 출범식·결의대회에서 참석 의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일보DB
눈만 뜨면 이란전쟁에 유가폭등으로 뒤숭숭하고 불안하다. 이 와중에 집권당 의원 141명이 이재명 대통령 대북 송금 등 7개 사건의 조작기소를 밝힌다며 ‘공소취소 국정조사’ 를 요구해 또 한번 나라를 뒤집을 태세다.
혈세로 연봉을 1억6100만 원이나 받는 그들이다. 국민은 안팎으로 심란한데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10월이면 문 닫을 검찰청을 탈탈 털어, 안 그래도 중단된 대통령 재판을 아예 없는 일로 만들겠다니,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어이가 없다.
한 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87명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공취모)을 만들 때부터 내 혈세가 아깝다 싶었다. 집권세력이 그렇게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에 골몰하니 ‘공소취소 거래설’까지 나오는 것이다.
● 공소취소-보완수사권 거래설까지
방송인 김어준 씨의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10일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검찰 개혁안을 둘러싼 거래설을 다뤘다. 뉴시스기록을 위해 ‘거래설’을 소개하면, 이 대통령의 최측근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사들에게 공소취소를 요구했고, 검사들은 보완수사권과 거래를 시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게 유튜버 장인수의 ‘단독보도’다(10일 김어준의 유튜브 ‘뉴스공장 겸손은 힘들다’).
당연히 집권세력은 펄쩍 뛰었다. 12일 민주당은 장인수를 고발하면서도 공소취소 국정조사 역시 계속 직진할 분위기다. 이제 검찰로선 공소취소를 하고 싶어도 못 할 판이다. 거래 누명을 쓸까봐서다. 정부도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거래 누명을 쓸 수 있다.
공소취소가 친명(친이재명)의 숙원사업이라면, 검사의 보완수사권 박탈은 민주당 법사위 등 강경파의 숙원사업이다. 법사위 간사 김용민은 2013년 ‘나는 꼼수다’의 선거법 위반사건 변호를 하며 친문(친문재인) 바람을 타고 여의도에 입성했다. “노무현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민주당 탈레반은 김용민, 추미애 같은 친문(친노와도 겹침) , 친청(친정청래) 아니면 친털(친김어준과 개딸) 등 원리주의파로 공교롭게도 친명과 차이가 있다. 어쩌면 이들에겐 이 대통령도 ‘검찰개혁의 도구’로 보일지 모른다.
● 한물간 친문, 탈레반으로 돌아왔다
2004년 12월 6일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시도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동아일보DB탈레반에게 다수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열린우리당도 그랬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 개정을 ‘4대 개혁입법’이라며 밀어붙이다 실패했고, 결국 정권을 잃었다.
보수 기득권 저항 때문이었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국민이 과반 정당으로 만들어 주면서 요구한 민생 문제에 주력하지 못하고 개혁이니 실용이니 하는 공리공담(空理空談)에 빠졌던 것이 통탄스럽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꼭 20년 전, 그러니까 2006년 11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지금 민주당 탈레반이 딱 그 짝이다. 김어준은 “이 대통령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거래설(또는 음모론)에서 발을 빼고 있지만, 그는 사실상 성공했고 정부는 이미 수렁에 빠져버렸다(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김어준은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다스 의혹을 제기했고 결국 성공했다).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주면, 어디선가 또 거래설을 들먹일지 모른다. 박탈하면, “경찰이 사건을 덮어도 모르게 된다”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우려했다. 흘러간 물이어야 마땅한 친문,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반명세력이 이 대통령과 다수 국민을 볼모로 잡은 꼴이다.
● ‘국가원수’의 국정수행을 옥죈다고?
지난해 4월 22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1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공취모도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긴 마찬가지다. 공취모 출범 선언문에 “재판은 중지됐지만 없는 죄를 만들어 국가 원수의 국정수행을 옥죄는 비정상이 지속되는 것”이란 대목이 있다. 잠깐 상상력을 발휘해 ‘왕과 사는 남자들’로 만든다면, 금배지들이 “전하! 죽여주시옵소서!!” 하며 일제히 엎드리는 장면이 딱 맞을 것 같다.
헌법 66조 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으뜸 권력자(원수·元首)일 뿐, 국민에 대해선 행정부 수반이고 공복(公僕)일 뿐이다. 원수라는 말도 내각제를 도입한 1960년 제2공화국 때 국가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적용된 것이었고 5·16쿠데타 이후 사라졌다.
그랬던 원수가 1972년 박정희 유신헌법 때 다시 등장했다. 1980년 전두환의 5공화국 헌법에도 당연한 듯 붙어있더니 87년 민주화 이후까지 은근슬쩍 살아남아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드는 형국이다. 이젠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옥죄고 있다니, 만일 개헌을 한다면 이 놈의 원수라는 용어부터 없애야 할 판이다.
● ‘김건희 리스크’ 골몰했던 윤석열 잊었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 출석해 변호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공취모든, 비몽사몽이든 암만 곱게 보려 해도 대통령부터 줄 세워 공소취소에 매달리는 것은 정말이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김건희 리스크’에만 골몰해 무리를 거듭하던 전임 대통령 윤석열이 자꾸 떠오른다.
일단 김어준에게 걸린 이상, 이 대통령 앞의 선택지는 네 가지다. ①보완수사권 주고/공소취소 하고 ②보완수사권 안 주고/공소취소 하고 ③보완수사권 안 주고/공소취소 안 하고 ④보완수사권 주고/공소취소 안 하고.
이 대통령은 ①을 가장 원할 것이다. 그러나 보완수사권도 주고 공소취소도 할 경우, 국민은 당장 거래설을 떠올릴 게 틀림없다. 친문청털은 표면적으론 ②를 환영하겠지만 ③도 상관없을 듯하다(대장동 수사는 2021년 문재인 정권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법무장관 말이 맞는다면 국민은 완전 손해다. 보완수사권 안 주면서 공소취소만 할 경우,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 “공소취소 연연치 않겠다” 말할 순 없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상생을 실천하는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뉴스1상식적 해피엔딩은 ④다. 만일 이 대통령 스스로 “공소취소에 연연하지 않겠다” 밝힌다면, 지지율은 단박에 80%를 뚫고 지방선거 완승도 문제없을 것같다. 작년 11월 이 대통령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브리핑에 세워 민주당의 ‘대통령 재판중지법’ 입법 추진을 공개적으로 중지시켰다. 공취모와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그래줬으면 좋겠다.
더구나 재판도 중지됐고, ‘사법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도 공포된 상태다. 대체 왜 죄 없는 이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하며 옥죔을 느낀다는 건지, 죽어도 이해 못 하겠다. 공취모 주장대로 조작기소라면, 현명한 재판관은 분명 무죄판결 내릴 게 아닌가.
이 대통령이 선정(善政)을 펼치고 물러나면 혹시 정권이 바뀐다 해도, 설령 유죄를 받는다 해도, 국민의 집단지성이 가만있지 않는다. 또 다시 불행한 전직 대통령을 볼 수 없다며 집단보호에 나설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추경 편성 결정하면 밤새워서 하라”는 이 대통령 발언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으려면, 공소취소 국정조사 같은 일 벌이지 말라는 지시부터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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