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장동 게이트’ 예견한 이재명의 석사논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일 1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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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지금은 수습과 위로에 총력을 다할 때라고 했다. 공당(公黨)의 대표다운, 책임질 줄 아는 자세다. 그처럼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과 학위 반납을 강조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가천대(2005년 당시 경원대) 행정대학원 논문에 대해 작년 말 대선 과정 때는 “인용 표시를 다 안 해서 표절을 인정하고 (2014년) 학교에 반납했는데 안 받아주더라”고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서…일 것 같지는 않다. 대선 뒤 가천대가 그의 논문을 재조사한 결론은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였다. 도입부와 배경 설명에 일부 인용 부실이 확인됐지만, 연구 결과 등 핵심 영역은 베끼지 않았다는 거다.

어쩌면 이재명은 바로 그 ‘핵심’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 비비고 다시 본 논문 제목이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심지어 2쪽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지방정치과정에서의 부패는 중앙정치와는 달리 극복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 지자체장 부패는 견제수단 없다
중앙정부의 부패는 공직자 탄핵이나 해임 등 제도적 견제장치가 있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감시도 활발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견제수단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재명은 논문에서 지적했다.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솟는 것 같았다. 그때 벌써 이재명은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지자체에선 ‘대장동 게이트’ 뺨치는 부정부패가 벌어져도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을. 논문 쓸 당시 그는 ‘성남시민모임’ 활동도 하고 있었다(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 나온다. 성남시는 경기 동부지역 운동권이 집결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이 석사 논문은 그래서 신기하다. 2005년 논문인데 어째서 대장동 냄새가 날까(어떤 것은 성남FC 냄새까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본문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독자가 판단하시기 바란다.
● 민선단체장 선거자금 받되 합법적으로
지방정치의 부패문제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중략) 민선단체장과 의원들의 선출과정 및 업무수행과 관련된 것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중략) 주로 당선이나 재선을 목표로 선거자금을 조성하거나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정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이익이나 혜택 편의를 제공하거나 권한이나 예산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경우일 것이다.(14쪽)

부패의 수단을 중심으로 볼 때, 각종 인허가권 및 규제건과 관련된 부패, 조직 및 인사와 관련된 부패, 평가심사•통제•감독 권한을 직접 이용하거나 그 권한을 가진 하위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권 개입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15쪽)

실제로 지방정치가가 업무와 관련되어 돈을 받는 경우에도 대개 합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고, 잘못된 정책 결정이나 집행을 하는 경우에도 절차나 형식을 위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27쪽)

-이재명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경원대학교, 2005년)
● 토지개발 용도변경 과정에서 특혜
석사논문을 쓰면서 이재명은 지자체장이 어떻게 필요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영업비밀’을 알아낸 듯하다.
(지방)단체장이 축재 또는 차기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주로 이용하는 통로도 건설 분야다. 지자체마다 쉴새 없이 대형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공사를 벌여야 ‘떡고물’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1쪽)
특히 시선을 잡아끄는 대목은 요기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자체별로 특색있는 개발이 가능해지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재정확충을 위해 개발사업을 많이 시행하게 되는데, 토지개발•용도변경•계획설계 과정에서 정보유출•특혜 등이 발생한다.’(33쪽)
이재명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 33페이지
이재명 ‘지방정치 부정부패의 극복방안에 관한 연구’ 33페이지

그러면서 이재명은 지적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2005년 논문에서다.
‘우리의 지방자치, 이 중에서도 선출직 공직자는 권한은 크되 통제감시장치는 미흡해 독선과 전횡이 가능한 상태에 있다.’(46쪽)
● 성남시에서 인허가권 사유화됐다고?

신상진 경기 성남시장직인수위원회 정상화특별위원회가 지난 7월 인수위 사무실에서 활동보고 기자회견을 갖고 분과별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신상진 경기 성남시장직인수위원회 정상화특별위원회가 지난 7월 인수위 사무실에서 활동보고 기자회견을 갖고 분과별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성남시는 민선 8기 성남시장의 공약에 따라 6~7월 정상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10~2022년의 시정을 평가했다. 이재명의 논문 핵심과 비슷하다는 건 신기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그 논문을 제발 취소해달라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게 해달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은 거다).

‘지난 12년 성남시정의 특징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행정을 통해 인•허가권이 출자수단으로 바뀌어 사유화되고, 인사권은 이러한 편법과 불법을 기획 내지 묵인하는 공직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남용되었다는 것임. 이 과정에서 시 내부감사 기능은 전무하였고, 시 의회의 견제 기능도 충분하였다고 보기 어려움’

성남시 정상화특별위는 보고서 맨 첫머리에 대장동 사건 특별보고를 올리고 다음의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재명에 대한 수사 의뢰, 위법한 인허가권 행사에 관한 특별감사 권고, 범죄수익 환수방안 마련.’

보고서 맨 마지막에 이재명의 친형 고 이재선 회계사 사건이 ‘인권 침해 문제’로 거론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인은 이재명 성남시장과 측근들의 비정상적 행정을 지적했던 ‘내부 고발자’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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