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 보행자들이 자전거도로 위를 걷고 있다. 김윤정 기자 graphy@donga.com
“자전거도로에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경적 소리도 못 듣는다. 분명히 금이 그어져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어온다.”(한강공원 자전거 운전자)
“어차피 겸용도로로 알고 있는데 사람이 우선 아닌가. 자전거가 알아서 피해 가야 한다.”(한강공원 보행자)
자전거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한강공원 자전거도로는 많은 시민으로 붐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한강변을 달리는 것은 서울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하지만 여유로움도 잠시. 한강변 자전거도로에 올라서는 순간 사고 위험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 간 신경전도 발생한다. 보행자는 시속 20㎞ 넘는 속도로 지나가는 자전거에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반면 자전거 운전자는 “단체로 길을 막는 러닝 크루, 이어폰을 끼고 있어 경적도 듣지 못하는 보행자가 침범해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20㎞/h 권장 속도 6월 3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는 서로 불만을 표출하는 자전거 운전자와 보행자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한 자전거 운전자가 자전거도로 위를 걷는 사람들을 향해 불만을 나타내자, 간이의자에 앉아 있던 한 중년의 시민은 “사람이 우선 아니냐. 조용히 다녔으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기자는 자전거도로에서 이어폰을 낀 채 걸어가던 한 보행자와 자전거가 충돌할 뻔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휴일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찾은 최모 씨는 “아이들은 언제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데 인도를 걷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를 미처 보지 못해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용산구 이촌한강공원에서는 곡예 운전을 하듯 헤드셋, 이어폰 등을 낀 보행자 사이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전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천천히’라고 적힌 표지판이 군데군데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몇 자전거 운전자는 “나오세요!”라며 보행자들을 향해 크게 소리치기도 했다.
자전거도로 위 위험천만한 동행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뚝섬한강공원 자전거도로 위 횡단보도를 지나던 80대 남성이 자전거에 치여 숨졌다. 자전거와 자전거가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60대 이모 씨는 지난해 9월 잠원한강공원에서 급정거하는 앞 자전거를 따라 멈춰 서다가 자전거에서 굴러떨어져 갈비뼈 골절상을 입었다. 이 씨는 “그 후로 안전거리 확보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안전사고는 대부분 자전거 과속으로 벌어진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한강공원에서 발생한 자전거 안전사고 총 471건 가운데 과속에 의한 사고는 48.2%였다. 규정 속도는 시속 20㎞지만 자전거 특성상 속도계가 달려 있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어 이를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 여의도한강공원을 순찰하는 공공안전관 김모 씨는 “속도 제한을 어기는 자전거 운전자가 많지만 과속 운전자를 제재하려 해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아 현장 단속이 어렵다”고 전했다. 뚝섬한강공원을 순찰하는 공공안전관 역시 “권장 속도에 불과해 제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겸용도로? 도로 분리된 경우엔 침범 말아야
자전거 운전자가 사고 발생에 대비해 자전거 앞뒤에 설치한 블랙박스. 김윤정 기자 graphy@donga.com자전거 운전자 입장에서도 억울한 점이 있다. 시시때때로 자전거 영역을 침범하는 보행자들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해서다. 자전거 운전자 강창현 씨(67)는 “보행자가 많아 항상 조심하긴 하지만, 요즘에는 이어폰을 낀 채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사람이 꽤 돼 경적을 울려도 듣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전거도로를 걷던 보행자 권모 씨는 “보행자도로가 좁고, 자전거도로는 보행자 겸용도로로 알고 있어 잘 피해 다니면 문제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울시 스마트서울맵에 따르면 한강공원의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다. 하지만 자전거와 보행자의 이용 구간이 분리돼 있는 경우 자전거는 자전거 영역에서, 보행자는 보행자 영역에서 다니는 것이 원칙이다. 수원지법은 2022년 분리형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에서 발생한 자전거와 보행자 간 사고에 대해 “해당 도로가 분리형 겸용도로인 만큼 피해자는 보행자도로로 통행해야 했고, 굳이 자전거도로로 통행하려 했다면 주변에 자전거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 사고를 예방할 주의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 같은 보행자 과실과 나이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자전거 운전자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그렇다 해도 자전거 역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전방 주시 의무가 있어 사고가 나면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에 자전거 운전자들은 사비를 들여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뚝섬한강공원에서 만난 20년 차 라이더 강모 씨(48)는 최근 50만 원을 들여 자전거 앞뒤로 블랙박스를 달았다. 강 씨는 “비용은 부담스럽지만, 방어운전을 한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자전거 블랙박스 설치나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 가입을 권하는 게시 글과 댓글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회원이 한강변 자전거도로에서의 사고 경험을 공유한 글에 “블박(블랙박스), 보험은 필수입니다. 나중은 늦어요” “한강 자도(자전거도로)를 이용한다면 블랙박스 필수죠” 같은 댓글이 달렸다.
전문가들은 한강변 자전거도로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줄이려면 과속 방지 시스템을 확립하고, 서울시가 공원 이용객들에게 분리형 도로에서는 자전거와 보행자가 서로 각자의 지정된 영역으로만 통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좀 더 정확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통사고를 전문으로 하는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는 “공원 자체 안전 규칙을 만들면 공원관리법에 따라 속도 위반 시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며 “사고가 반복된다면 이런 식으로라도 대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전거 속도를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국회에 수차례 요청했으나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어 “도로가 분리된 경우 겸용도로라는 표현을 사람이 자전거도로 위를 걸어도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며 “다만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 특성상 자전거도로에 언제든 보행자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규정 속도를 지켜 안전 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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