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진술 속 진실 찾는 프로파일러의 능력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20일 01시 40분


20년 넘게 프로파일링한 저자
실제 사건 9건 바탕으로 분석
◇인터뷰 룸/최규환 지음/280쪽·1만8500원·돌베개

내 판단 때문에 여러 사람의 운명이 갈린다면 이는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충남경찰청 형사과 소속 프로파일러로 20년 넘게 일해 온 저자는 그 부담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다. 폐쇄회로(CC)TV가 일상화되며 ‘증거 없는 사건’은 줄어든 듯 보인다. 하지만 성범죄나 아동학대처럼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여전히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에 의존해 사건의 향방을 가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 룸’은 그런 현장의 고뇌와 치열함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피의자와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 1000여 명을 인터뷰하며 쌓은 진술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파일러가 어떻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지를 보여준다. 흔히 성범죄 사건을 두고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무죄를 판단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이 책을 보면 실제 현장에선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을 다각도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이뤄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은 항거 불능 상태의 성폭력 사건 등 프로파일링이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는 성범죄 사건은 물론이고, 신혼여행 니코틴 사건 등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강력범죄까지 모두 아홉 가지 사건을 서술한다.

저자가 고안한 한국형 진술 신빙성 평가 모델 ‘K-SCAM’은 진술의 일관성, 객관성, 통일성, 개연성, 구체성을 입체적으로 따져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은 사건의 장면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는 어느 한쪽의 말을 쉽게 믿거나 배척하는 일이 아니다. “어둠 속 깊은 곳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찾듯, 조심스럽고 지난한 과정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표면에 드러난 말만으로 진실을 단정하지 않는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행동이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대목도 당시의 심리 상태와 관계의 맥락, 사건 전후의 정황을 함께 살피며 들여다본다. 겉으로는 자발적 선택처럼 보였던 행동이 실제로는 온전히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게 아니었음을 밝혀내는 장면은 특히 긴장감 있게 읽힌다.

진술이 일관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신뢰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일관성이란 표면 아래 숨은 진실을 찾기 위해 감정의 흐름과 묘사의 밀도, 객관적 정황과의 일치 여부를 몇 번이고 따져 묻는다.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거짓을 말하거나, 반대로 모두 진실의 일부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이를 어느 면을 뒤집어도 똑같은 모양이 나오는 ‘더블 페이스 코인(Double face Coin)’에 비유한다.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 모두 기억의 공백과 왜곡의 위험을 안은 불완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나락에 빠뜨릴 수도 있단 부담을 지고 걷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엇갈리는 진술을 고르고 헤쳐 진실의 조각을 맞춰 가는 일이 피해자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진실은 말하는 이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지만, 그 목소리는 때로 흔들리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작아지기도 한다. (…) 만약 실제 피해를 입고도 여전히 용기 내기를 주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기록들이 혼자 견디며 망설이는 그 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프로파일러#진술분석#아동학대#K-SCAM#피해자 보호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