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작가 마르타 미누힌의 작품 ‘뒹굴고 살아라’ 앞에 선 ‘다른 공간 안으로’전 큐레이터 안드레아 리소니(왼쪽)와 마리나 풀리에세. 나무 틀에 작가가 손수 꿰매고 칠한 매트리스 조각을 붙여 만들었고, 관객이 안으로 들어가 앉거나 누울 수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민 문화부 기자이제는 미술관에서 그림이 아닌 무언가를 감상하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작가가 사인하고 ‘샘’이라 이름 붙인 변기부터 포르말린 수조에 담긴 죽은 상어, 혹은 텅 빈 공간에 춤을 추는 무용수나 소리만 가득한 풍경도 마주할 수 있죠.
지금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선 반세기 전 이런 형태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부활해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독일 뮌헨의 현대미술관인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처음 선보이고 이탈리아 로마와 홍콩을 거쳐 온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5월 5일∼11월 29일) 이야기입니다.
‘다른 공간 안으로’전은 1956년 야마자키 쓰루코의 설치 작품 ‘빨강’부터 197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환경/예술’전까지 약 20년 동안 여성 작가 11명이 남긴 실험적인 작품을 조명합니다. 4년이 넘는 준비 과정을 거쳐 잊혀진 작품들을 연구하고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서울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데요. 이 전시의 두 큐레이터, 안드레아 리소니 하우스 데어 쿤스트 예술감독과 마리나 풀리에세 밀라노 무데크(MUDEC) 관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객이 작동하는 예술
‘다른 공간 안으로’전을 보려면 먼저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많은 작품이 직접 들어가 만지고 부딪치며 몸으로 체험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관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내딛는 발걸음에 따라 풍경이 달라집니다. 사우나에 들어간 듯 높은 열로 숨이 턱턱 막히거나(타니아 무로 ‘한때 우리는 알았다’), 관객을 향해 강풍을 뿜어내는 작품(라우라 그리시 ‘남동풍(풍속 40노트)’)도 있습니다.
이 전시는 두 큐레이터의 다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우선 풀리에세는 이탈리아 작가 루초 폰타나를 연구하며 공간을 활용한 미술 작품을 깊이 보게 됐다고 합니다.
“이런 작품에서는 관객이 그 속으로 들어가면서, 의미가 작동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마법과 같은 과정에 매료됐습니다.”
리소니는 밀라노 외곽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꺼냈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에 1970년대 환경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저택인 ‘판차 컬렉션’이 있었어요. 제임스 터렐, 로버트 어윈, 댄 플래빈, 브루스 나우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고, 특히 마리아 노드먼의 ‘암흑의 방’에서 노을이 질 때까지 기다리며 빛이 변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리소니가 하우스 데어 쿤스트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환경 미술(Environmental Art)’ 전시의 기획을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탐정이 된 큐레이터들
풀리에세는 전시를 논의하던 첫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했습니다.
“큰 테이블에 100여 장의 작품 사진을 올려놓고, 어떤 것이 흥미로운지 이야기를 나눴죠. 첫눈에 강렬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꼽아 보니 모두 여성 작가였습니다.”
전시는 ‘환경 미술’의 잊힌 작가들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유럽이나 남미, 아시아의 여성 작가들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문제는 이 작품들이 50∼70년 전 것이고, 보존이 돼 있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두 큐레이터는 마치 단서를 찾아 나가는 탐정처럼 작품의 흔적을 추적했다고 회고합니다.
“이탈리아 작가 난다 비고의 작품을 복원할 때는 남아 있는 도면이 없어서 1960년대 유명 잡지에 실린 사진 몇 장을 가지고 원작의 크기와 높이를 역으로 계산했습니다.”(풀리에세)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타 미누힌의 전시 영상을 구하기 위해 팬데믹 시기 어렵게 허가를 받아 스페인 마드리드의 현대미술관으로 날아가서 겨우 공식 대여 절차를 밟았어요. 나중에 아르헨티나로 가서 미누힌을 만나 이 이야길 했더니 ‘그 필름 내 창고에 있을 텐데, 이메일로 보내줄까?’라고 해 허탈했던 기억도 있습니다.”(리소니)
50년 만에 제대로 작품을 보다
두 사람은 “전시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 얘기하려면 며칠이 걸릴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이렇게 사연이 많은 건 이 작품들이 당대에는 혹평받거나, 무관심과 재정난 속에서 어렵게 만든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규모 작품인 알렉산드라 카수바의 ‘스펙트럼 통로’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과 로마, 홍콩 전시까지 보러 왔던 이 관객은 50년 전 작가와 함께 전시를 준비했던 큐레이터였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다 하차했고, 이후 완성된 작품을 보지 못했다고 해요. 전시 개막 뒤에는 반응이 좋지 않아 동료 큐레이터는 해고당했다고 하니까요.”
한국 전시에는 특별히 정강자의 설치 작품 ‘무체전’(1970년)도 56년 만에 복원됐습니다. 검은 장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들어가면, “여러분은 지금 나의 작품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들리고 사이렌이 울리며 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전위 예술을 ‘선동적’이라고 여긴 정부의 지시로 중도에 철거된 비운의 작품입니다. 작품 복원을 맡았던 리움미술관 조은정 큐레이터는 “전시를 제작하는 과정이 예술가들의 못다 한 이야기를 다시 제대로 소환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공간 안으로’전은 맨발로 뛰어다니고 부딪치며 즐겁게 체험해 보기 좋은 전시입니다. 그렇게 느껴 본 다음 이 전시를 한층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제작 연도를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내 목소리’를 막지 말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던 1950∼1970년대 분위기 속에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작품을 만든 예술가들의 뜨거움을 느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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