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1일 평양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 파병 군인 국가 표창 수여식에서 유가족들이 전사자 영정 사진 앞에서 통곡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평양에서 지난해 8월 러시아 파병 군인들에 대한 국가 표창 수여식이 열린 직후 평안북도 도당과 교육 부문에 김정은의 구두 감사가 전달됐다고 한다. 내용은 러시아에 파병돼 공을 세운 군인의 90%가 평북 출신이라는 것, 도내 학교들이 평상시 학생 사상 교양 사업을 잘했다는 것이었다.
얼핏 각 지역 출신이 골고루 섞인 부대에서 평북 출신들만 특출하게 용맹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파병 군인 중 평북 출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해 9월 2일 자 본보 칼럼 ‘하층민 자식만 골라 파병한 북한’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러시아 파병군에 지원한 북한군 고참 병사의 증언을 인용해 “군인 선발 순서는 군수공장 지역 자녀들이 최우선이었고 그 밖에는 탄광 농촌 지역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군수공장 지역 자녀들이 선발 최우선 순위가 된 이유는 첫째로 군수공장 지역은 엄격한 군율이 적용되고 외부 이동도 통제되기 때문에 소위 ‘반동사상’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둘째 역시 환경 때문인데, 전사자 소문이 바깥으로 퍼지기 어렵고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반발을 군율로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군수공장은 평북과 자강도에 밀집돼 있는데, 평북 인구가 자강도보다 2배 이상 많다.
북한이 정한 파병 선발 기준은 나름 일리는 있다. 솔직히 어려서부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자란 평양이나 함경도, 양강도 출신 군인들이라면 그리 쉽게 전장에서 자폭했을까 싶다.
평북이나 자강도는 북한에서도 가장 ‘깨지 못한 지역’으로 꼽힌다. 깨지 못했다는 의미는 세뇌가 잘 먹혀 당국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탈북민 중에서도 두 지역 출신은 다 합쳐서 3% 정도에 그친다. 물론 평북에서도 신의주처럼 중국을 마주 보는 곳은 바깥세상을 잘 알지만, 같은 도라고 해도 산악 지역은 교통이 불편한 데다 그곳에 갈 이유도 거의 없어 전혀 다른 세상처럼 살고 있다.
올해 4월 평양에서 준공된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추모벽에는 2300여 명의 전사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사자가 이 정도면 부상자는 6000명 정도 나왔을 것이다.
북한이 평양시 화성구역에 만든 러시아 파병군 유족 거주 단지 ‘새별거리’에는 전사자 가족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부상자 가족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알려지진 않았다. 분명한 것은 새별거리에선 평북 사투리를 압도적으로 많이 듣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평북 출신 중에서도 아마 구성(龜城)시 출신이 제일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평북에서 군수공장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고 인구도 많은 지역이 구성이기 때문이다.
구성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올해 3월 ‘제3의 북한 우라늄 농축시설 소재지’로 지목하면서 벌어진 ‘정보 유출 파문’ 때문에 한국 언론 기사에도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그런데 핵 시설뿐만 아니라 최근 한국 안보에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는 무인기 생산 공장도 구성에 크게 건설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구성 방현비행장은 북한이 무인기를 제일 먼저 운영한 곳이다.
핵과 무인기만도 위협적인데, 구성에는 그 외에도 북한 군수공업의 핵심인 구성공작기계공장과 유일한 탄약공장인 95호공장, 전자전연구소, 군복 생산의 중추인 구성방직공장 등이 있다. 전쟁이 나면 맨 먼저 공격을 받게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구성이 중요해서인지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현대적 지방 병원의 본보기라며 강동군병원과 함께 구성시병원을 준공했다. 얼마 전엔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도 구성시병원을 방문했는데, 아마도 최신 의료기기들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것 같다.
기자는 ‘고난의 행군’이란 단어를 접하면 구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1994년 12월 말 원산 기차역에서 만난 구성 출신 여인은 “군수공장 로동자구(區)에선 여름부터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시작했고 가을부터 대량 아사가 시작됐다”고 했다. 평양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곳에서 그런 참사가 벌어지는 줄 몰랐던 나는 경악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덕’에 살수대첩으로 외적을 전멸시킨 자랑스러운 땅의 후손들이 1990년대에 무리로 굶어 죽고, 30년 뒤 그들의 아들들은 타국에서 ‘외적’이 돼 피를 뿌리며 죽어 갔으니 참으로 슬픈 구성(構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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