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버리고 숫자를 씹다… 단백질 강권하는 사회[이용재의 식사의 窓]

  • 동아일보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다이어트식 프랜차이즈에서 점심을 먹었다. 1만2900원에 퍽퍽하고 누린내가 제법 나는 쇠고기, 브로콜리 한두 점과 케일 이파리 두어 쪼가리, 다진 양파와 파프리카, 통조림 옥수수로 구성된 샐러드를 받았다. 디저트보다 더 달콤한 드레싱은 빼고, 나머지를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이 가게는 닭가슴살과 돼지 안심은 30g, 쇠고기는 40g 이상 등 ‘단백질 함유량’을 내세운 점이 궁금해 들른 곳이었다. 예상대로 음식의 맛은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이런 브랜드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43개 매장을 낸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회가 단백질 섭취를 강권한다고 할까. 미국에 살 당시 충분히 경험한 터라 분위기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 당시엔 나도 이틀에 한 번꼴로 2시간 넘게 운동을 하고 보충제와 칠면조 가슴살 샌드위치를 주식으로 먹는 등 이른바 ‘갓생’을 살았다. 맛보다 단백질 섭취를 포함한 숫자놀이에 치우친, 지극히 미국적인 삶이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단백질을 강권하는 경향은 한층 더 강화됐다. 예전엔 일반식품과 보충제 사이의 경계선이 확실히 나뉘어 있었다. 일반식품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먹고 필요에 따라 보충제로 단백질을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경계선이 상당히 흐려져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강화한 식품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초가공식품’이 속속 등장해 산업적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유업계는 편의점을 거점 삼아 식사 대용 음료를 부지런히 판촉하고 있다. 치즈 등 유제품의 부산물인 유청이나 대두단백으로 단백질을 확보하고, 수크랄로스 등의 대체 감미료로 저칼로리를 실현한다. 너무나도 괴기한 맛의 초가공식품이 단백질 함유량을 내세워 ‘이거 하나면 끝!’이라며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다. 아무리 봐도 꾸준히 감소세인 우유 소비를 벌충하려는 업계의 궁여지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품업계도 전력을 다해 단백질을 강권하고 있다. 완두단백, 심지어 닭가슴살로 단백질을 강화한 국수가 지분을 야금야금 넓히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식품기업은 ‘흙맛’으로 유명한 ‘틸라피아’의 즉석구이 제품을 출시했다. 더러운 물과 같은 나쁜 환경에서도 잘 살아 맛보다 산업성으로 각광받는 어종이다. 이미 ‘역돔’이라는 명칭으로 뷔페 등에 널리 퍼졌다. 분명 민물고기이건만 ‘단백질 14g’을 내세워 ‘바다의 닭가슴살’로 열렬히 홍보되고 있다.

단백질도 과도하게 섭취하면 통풍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음식평론가로서 최대 하루 세 끼인 식사의 권리가 기능주의에 전도돼 전방위 및 무차별적으로 침해받고 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는 말이 있듯, 우리가 먹는 음식은 식재료나 수치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맛과 즐거움이란 ‘플러스알파’가 확보돼야 정녕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그야말로 먹고살기 위해 바쁘고 정신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과연 어디까지 식사, 더 나아가 삶의 주도권을 내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과연 우리는 초가공식품이라 할 각종 단백질 강화 제품을 먹으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일까. 상상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대량 생산 식품이 우리의 삶을 더 잠식하기 전에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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