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면담이 바꾼 30년”…‘보험맨’에서 ‘생명 지키미’로 [함께미래 리더스]

  • 동아닷컴
  • 입력 2026년 4월 9일 08시 30분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정우철 상임이사 이터뷰
“진심어린 상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



1990년대 중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청년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100개의 계단을 올랐다. 숨이 차오르는 것을 견디며 회사에서의 좋은 기억과 힘든 기억을 사진처럼 떠올렸다. 그때 품었던 다짐들은 30년 직장 생활의 길잡이가 됐다.

조직의 리더가 된 지금, 그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렇게 묻는다. “내 자녀가 직원 이어도 떳떳한 결정인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을 이끌고 있는 정우철 상임이사의 이야기다.

정 이사는 올해 초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키를 잡았다. 경희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정 이사는 30년간 교보생명에서 영업 및 마케팅 조직을 이끌어왔다. 재단은 그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조직 운영 역량을 높이 평가해 상임이사로 선임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19개 생명보험 회사가 힘을 모아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2007년 설립했다. 자살예방 지원사업, 생명존중문화 지원사업, 시니어라이프 지원사업 등의 복지서비스를 무상으로 지속 지원하고 있다.

정 이사가 재단에 부임하며 되뇐 것은 ‘생명 존중’이라는 재단의 본질적 가치와 ‘서번트 리더’(Servant Leader)였다. 명령과 지시보다는 구성원의 성장과 잠재력 발휘를 돕는 리더다.

“결과가 아쉬울 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이걸 다르게 말하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리더가 책임을 져야 조직원들이 주눅들지 않고 실패에 자유로워지고 비로소 창의적인 성과가 나옵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정우철 상임이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xunnio410@donga.com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정우철 상임이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xunnio410@donga.com


‘팀장의 세심한 면담’ 지금도 잊지 못해
정 이사는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의 위로와 상담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있다.

정 이사가 입사 후 처음 다른 부서에 발령 났을 때의 일이다. 그때 팀원 한 명 한 명을 개별 상담하며 로드맵을 그려줬던 팀장을 정 이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의 평생 직장 생활에 가장 영향을 준 인물로 꼽는다.

“그분은 1시간이 넘도록 저에게 시간을 할애 하면서 나의 장점은 뭐고, 어떤 커리어를 쌓아야 할지 이런 것들을 세심하게 알려줬어요.”

그 팀장은 훗날 교보생명의 대표이사까지 지냈다.

“리더는 조직원의 재능(Talent)을 발견하고, 그들이 적재적소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사적 기회를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그의 가치관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본질적 가치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1만 번의 울림”… 생명의전화가 붙잡은 순간들
정 이사는 재단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선제적 예방’을 꼽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위험 징후를 미리 파악해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한강 교량에 설치한 ‘SOS생명의전화’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생명의전화 콜센터에 힘없는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강 다리에서 수화기를 든 50대 남성의 전화였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삶이 궁핍해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그런데 내가 죽으면 어머니는 누가 모시나 싶어서 저 세상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어요.”

상담원은 차분하게 남성의 하소연을 경청했다. 마음을 다해 공감해 주면서 힘을 내도록 다독였다. 그사이 격한 감정이 가라앉은 남성은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위험해 보이는 여성이 있어서 도움이 필요 할 것 같다”는 목격자의 전화도 있었다. 학생으로 추정되는 해당 여성은 다리 난간에 손을 올리고 강을 바라보면서 크게 울고 있었다. 상담원은 즉각 119에 연락해 출동 시켰고 학생은 무사히 구조됐다.


SOS 생명의전화는 한강 다리 20곳에 총 75대 설치돼 있다. 수신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면 전문상담원과 연결된다. 상담원은 위기 판단 여부에 따라 119에 즉각 출동을 요청하거나 대화를 통해 가족에게 인계한다.

2011년 7월 처음 개설한 이래 13년간 마포대교 5743건을 비롯해 총 1만건이 넘는 상담이 이루어졌다. 상담 내용은 ‘대인관계 적응’과 ‘진로 학업 문제’가 가장 많고 가족문제, 인생문제, 건강문제, 경제문제가 뒤를 잇는다.

재단은 SOS 생명의전화 외에도 △자살예방 SNS상담시스템 ‘마들랜’ △청소년 고민나눔 플랫폼 ‘힐링톡톡’ △청소년 정신건강 디지털 캠페인 ‘감정가게’ △청소년 자살예방 캠페인 ‘다 들어줄 개’ 등 다양한 심리 치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힐링톡톡의 대학생 멘토가 자해를 시도하던 청소년과 대화로 공감을 이어간 끝에 청소년이 들고 있던 흉기를 내려놓은 사례도 있었다.

정 이사는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잠재적으로 위기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됐고 부장’에서 ‘사과 부장’으로
정 이사도 ‘흑역사’는 있다. 부장 시절 별명이 ‘됐고 부장’이었다. 성격이 급해 팀원들 말을 듣다가 ‘됐고’라며 잘 끊었다고 한다. “좋은 리더는 경청을 해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말을 끊으니까 어느새 뒤에서 저를 그런 별명으로 부르고 있더라고요.”

이런 교훈을 통해 만들어진 그의 장점은 빠른 ‘사과’였다. “회사에서 제일 사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사과를 되게 어려워하는데, 잘못했으면 부하직원이라도 ‘그건 내가 잘못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편이에요.”

조직을 이끌다 보면 직원에게 불합리한 지시를 내리고 책임에서 모면하려는 유혹도 생길 때가 있다. 이럴 때 결정의 ‘기준’은 “내 아들과 딸이 직원이어도 부끄럽지 않은 결정인가?”스스로 묻는 것이었다.

“남들이 괜찮다고 해도,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시킬 수 있는 일인지 물어 보면 답이 얼른 나와요. 그런 고민이 되는 사안들은 대개 이 질문에 부합하지 않아요.”




“후배 성공에 박수 쳐준 리더로 기억되길”
정 이사는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후배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했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회사 생활을 ‘계주’에 빗댔다. 그는 “돌아보면 누구나 다 리즈 시절이 있다”며 “반짝반짝 하던 그 시절이 좀더 오래갔으면 좋겠지만, 혼자서 욕심 내고 달리다 보면 결국엔 힘이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승점 테이프만 보고 혼자 뛰는 선수가 아니라 후배에게 바통을 넘겨 주고 응원해주는 그런 리더가 되고 싶어요.”


‘함께미래 리더스’는 공익 현장의 리더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그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통해 미래를 묻는 인터뷰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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