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단 참여 SK수펙스 9개 위원회
회의 시작 때마다 ‘선경실록’ 재생
2년 걸려 故최종현 회장 음성 복원
최종현 SK 선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1980년 유공 인수 후 처음 출근해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제공
“기업은 영원히 존속해야 한다.”
최근 SK그룹 계열사의 한 사장이 SK그룹의 최고 협의 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가 주관한 위원회에서 들었던 고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음성입니다. 위원회는 SK 각 계열사 사장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로, 전략위원회, AI위원회 등 9가지가 있습니다. 이 같은 각종 위원회가 시작할 때마다 매번 5∼10분 분량의 최 선대회장 육성이 담긴 녹음 파일이 재생됩니다.
위원회에 참석하는 한 계열사 사장은 “최 선대회장이 요즘 시대에도 적용되는 말을 30∼40년 전에 했던 게 신기하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처럼 좁은 땅덩어리에 지연, 학연, 파벌을 형성하면 안 된다”(1982년 신입 구성원과 대화), “플로피디스크(필름 소재의 데이터 저장장치)를 팔면 1달러지만, 그 안에 소프트웨어를 담으면 가치가 20배가 된다”(1992년 SKC 임원 회의) 등이 대표적인 최 선대회장 어록입니다.
이 녹음 파일은 SK가 최 선대회장이 사업 실적·계획 보고, 구성원과의 간담회, 각종 회의와 행사에서 남겼던 녹취를 차곡차곡 복원해 디지털화해왔던 자료의 일부입니다. 경기 이천 SKMS연구소의 한 창고에 먼지 쌓여 방치됐던 각종 녹음 테이프 등을 가져다 디지털화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잡음을 제거하고 음성은 또렷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4월 SK는 복원 작업을 2년 만에 완료하고 이 방대한 자료에 ‘선경실록’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복원된 최 선대회장의 음성 녹취만 오디오 테이프 3530개에 달합니다. SK그룹에 따르면 하루 8시간 연속으로 들어도 1년 넘게 걸리는 분량입니다.
이처럼 SK 내 위원회들이 최 선대회장의 육성을 들은 뒤 회의를 시작한 것은 2024년부터입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취임해 경영 전면에 나선 시기와 맞물립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의장은 최 선대회장처럼 철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며 “그가 최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에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이런 문화를 두고 SK그룹이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다짐’을 보이는 것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AI와 반도체 등 미래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기업의 기본 철학을 되짚으며 조직의 방향성을 잡는다는 것이죠. 재계 관계자는 “큰 변화의 시기일수록 기업들은 초심을 되새기며 경영의 원칙을 세우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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