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무차별 폭행 장면 올린뒤 “도파민 채워드려요”… ‘학폭 영상’ 활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28일 01시 40분


채널 수십개에 영상 수만개 쏟아져… 유포 하루만에 조회 100만 넘기도
도박사이트 홍보하며 기업형 진화
피해 학생 이름-신상 여과없이 공유… 기절한 학생 얼굴 올려 2차 피해도

“회원님의 도파민을 채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7일 텔레그램의 한 채널에 입장하자 곧바로 이런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 채널에는 약 200건의 학교폭력(학폭) 영상이 전시돼 있었다. 태어난 연도를 따서 붙여 이제 15세인 ‘11년생 vs 11년생’ 같은 제목 아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하 주차장 등에서 서로 주먹을 휘두르는 잔혹한 영상은 여과 없이 공유됐다. 심지어 학생의 이름과 신상, 폭행 경위까지 상세히 ‘박제’된 영상 끝에는 “먹튀 없는 베팅 플랫폼”이라는 문구와 함께 불법 도박 사이트 홍보 메시지가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 온라인 ‘학폭 영상’ 뒷배는 불법 도박 사이트

최근 이처럼 학폭 영상을 집중적으로 올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 등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질되며 활개를 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학폭’ ‘맞짱’(맞싸움) ‘현피’(현실에서 만나 싸우는 행위) 등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수십 개의 관련 채널과 수만 개의 게시물이 쏟아진다. 이들 채널은 자극적인 영상으로 접속자를 끌어모은 뒤 채널을 높은 가격에 판매하거나 불법 도박 사이트 광고를 실어 나르는 수익 구조로 운영된다.

이런 영상은 SNS의 특성상 한번 게재되면 폭발적으로 확산한다. 이날 인천연수경찰서는 동급생을 교실에서 폭행한 혐의로 고교 1학년 남학생을 17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학생은 커피 쿠폰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을 휘둘렀는데,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다른 학생이 촬영해 유포했다. 해당 영상은 유포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 회를 넘겼다. 가해 학생 측은 오히려 ‘영상이 퍼져 명예가 훼손됐다’며 진정서를 접수시켰고, 경찰은 다음 달 초 영상을 유포한 학생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이런 채널은 기업형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구독자 1만 명부터 많게는 5만 명까지 거느린 계정들은 ‘XX년생 vs XX년생’ 등 제목을 단 영상 아래 링크로 불법 도박 사이트를 광고하며 수익을 올린다. 폭행을 당해 기절한 학생의 얼굴을 확대하며 ‘죽은 것 아니냐’는 자막을 붙이고 주변에서 환호하는 학생들의 모습까지 담는 등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편집에도 열을 올린다.

● “플랫폼 방치에 확산돼 ‘낙인’”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SNS 채널이 인기를 얻고, 학폭 피해 학생을 조롱하거나 가해 학생의 폭력성을 과시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 송파구의 중학생 이모 군(15)은 “(또래 사이에선)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문화가 있어 사소한 다툼이 벌어져도 촬영부터 한다”며 “당사자가 모르는 사이 SNS에 영상이 공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런 구조에서 피해 학생은 신상이 그대로 노출돼 2차 피해를 보게 된다. 한번 확산한 영상은 플랫폼의 방치하에 퍼져 나가고, 설령 한 곳에서 삭제해도 다른 SNS 채널이나 플랫폼으로 다시 퍼져 지우기 힘든 ‘디지털 낙인’으로 남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백선희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엔 고교 자퇴생 3명과 재학생 2명이 중학생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자르고 쇠 파이프로 폭행하는 영상이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송출되기도 했다.

교육 당국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와 핫라인을 구축하고 있지만 피해 학생이 직접 유포를 인지하고 삭제를 요청해야 하는 구조여서 선제적 예방은 어려운 상황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교육 당국과 수사기관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피해 인지 이전 단계에서 유해 영상을 선제적으로 걸러낼 수 있도록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 의원은 “플랫폼 삭제 협조 의무를 강화하고 관계기관 간 통합 대응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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