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느려도 괜찮아” 경계선 지능인과 함께 살기
경계선 지능인 대안교육 현장 가보니
화폐 교육 통해 보이스피싱 예방
상황극으로 감정 조절 능력 키워
25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대안학교 ‘별의친구들’에서 경계선 지능 청년들이 직접 만든 피낭시에를 맛보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제과제빵 등 다양한 직업 훈련을 제공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소정아, 보조배터리를 꼭 사야 하는 걸까?”
24일 경기 고양시 ‘이루다학교’ 성인반에서는 ‘화폐 자산 관리’ 수업이 열렸다. 이날 수업 주제는 ‘2만 원으로 지출 계획 세우기’. 학생들은 도시락, 커피, 교통비 등 지출 항목 예시를 보며 지출 계획을 써 내려갔다. 김보영 교사는 지출 항목들이 꼭 필요한 소비인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졌다. 김소정 씨(가명·20)는 “예산이 부족하지만 집에 갈 때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아서 불안하다”며 보조배터리를 고른 이유를 설명했다.
김 씨와 같은 경계선 지능인은 금전 감각과 사회성 등이 일반인에 비해 부족하다. 구체적인 물건이 아닌 숫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기 어려워하고, 지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학령기부터 금융, 사회적 소통 등 실생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소비 습관 기르고, 보이스피싱도 예방
이루다학교에서는 경계선 지능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자립 훈련, 화폐 자산 관리 수업 등을 제공한다. 화폐 자산 관리 수업에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뱅킹을 써가며 일주일간 자신의 지출 내역을 점검했다. 지출 내역을 살펴본 김 씨는 “며칠 전 인터넷으로 산 키링이 지금 생각해 보니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물건이었다”고 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돈을 계획적으로 관리하고 소비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해 마련됐다. 취업 후 돈을 합리적으로 쓸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소비 습관 훈련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자산 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수업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수업에 참가한 윤지영 씨(가명·20)는 “이제 성인이니 사고가 발생하거나 큰돈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며 “먹는 데 돈을 많이 쓰고 있어서 이를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도전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대안학교 ‘별의친구들’에서는 17세 이상 학생을 대상으로 목표와 기간을 정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수업을 한다. 최시환 군(가명·18)은 3개월 뒤 제과제빵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정했다. 김학준 교사는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범위로 목표를 정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고, 이 과정에서 삶을 주도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 “상황극 등 연습으로 소통 능력 향상”
경계선 지능인이 어려움을 겪는 또 다른 분야는 타인과의 소통이다. 경계선 지능인은 추론 능력이 부족해 상대의 말과 몸짓에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한다. 이 때문에 맥락과 관련 없는 엉뚱한 말을 하거나 ‘눈치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경계선 지능인도 연습을 통해 충분히 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루다학교는 11∼19세 학생을 대상으로 스피치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은 나이가 아닌 영역별 발달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눠 진행한다. 학생들은 상황극 등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고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운다.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상대에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이채영 양(가명·13)은 “원래는 엄마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다”며 “이제는 자신감도 생기고 엄마에게도 설명을 잘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이 학교에 다닐 때부터 실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경은 중부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도 어린 시절부터 개인별 맞춤 교육을 통해 생활 기술과 사회성을 익혀야 한다”며 “학령기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면 성인이 돼서도 취업과 자립이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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