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조종사 출신 ‘콜린 채프먼’… 스포츠카 회사 ‘로터스’ 설립하고
F1팀 만들어 레이스카 성능 키워… 혁신 설계로 F1 챔피언 다수 배출
페라리, 엔진 개조에 회의적 입장… 경쟁팀 로터스에 뒤처지자 쇄신
◇F1 더 포뮬러/조슈아 로빈슨, 조너선 클레그 지음·김동규 옮김/432쪽·2만2000원·알에이치코리아
책은 F1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트랙 너머의 내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사진은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F1 경기에서 팀 페라리 소속의 세계적인 선수 루이스 해밀턴이 경주 중인 장면. 상하이=신화 뉴시스
1952년 영국 런던의 한 허름한 술집. 공군 조종사였던 한 남성이 술집 뒤편 마구간에서 ‘0.01초의 세계’에 뛰어들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으로 입은 피해가 남아있는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F1 레이스카는 “항공기 날개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형태”나 다름없어 보였다.
설계를 시작한 그는 0.01초 차이가 승패를 가르는 F1에 덤비고자 기상천외한 방법을 시도했다. 하루는 차체 표면에 온통 작은 핀을 꽂았다. 자신이 설계한 차체가 항력을 얼마나 줄였을지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동료 엔지니어는 핀이 얼마나 휘어지는지 자세히 관찰하고자 자동차 보닛 위에 몸을 묶었다. “자신이 도로 위의 잔해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이 남성이 바로 세계적인 스포츠카 회사인 ‘로터스’의 설립자이자 숱한 F1 챔피언을 배출한 팀 로터스의 감독, 콜린 채프먼(1928∼1982)이다. 채프먼은 F1 역사상 레이스카 설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 그에게 “트랙 위에서의 속도는 혁신의 속도”였고, F1은 매년 바뀌는 포뮬러(formula·규정)의 허점을 이용하는 공학 경쟁이었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F1의 세계에 얽힌 70년 역사를 한 권에 담은 책이다. ‘속도 미치광이’들이 벌인 천재적 전략과 ‘꼼수’ 사이의 아슬아슬한 소동들을 박진감 있게 풀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스포츠부 기자 출신인 두 저자가 치밀한 취재력과 이야기꾼의 필력으로 재미와 깊이를 준다.
대중이 F1에 열광하는 이유가 경기 마지막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드라마’에 있듯, 책 역시 F1 역사를 일군 이들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췄다. 규정 준수와 위반을 넘나드는 외줄타기, 간발의 차이로 인한 희비 교차 등을 핍진하게 담았다.
1950, 60년대 팀 페라리가 변화를 거부하다가 경쟁팀 로터스에 뒤처지던 상황은 마치 근접 촬영하는 듯 묘사됐다. 당시 팀 로터스가 레이스카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동안, 팀 페라리는 엔진 개조를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범죄”로 여겼다. 경기 중 인명 사고까지 잇따라 터지면서 팀 페라리를 향한 세간의 비난이 쏟아졌다. 쇄신이 필요했건만, 창업주 엔초 페라리는 직원들에게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을 강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출 앞니를 가진 까칠한 외국인’이 등장해 일침을 가하며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 “재앙이네요.” 훗날 F1 챔피언이 된 니키 라우다다.
F1은 매년 20조 원에 이르는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화려한 스포츠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책은 그 위상을 지키려 펼친 전략을 담은 경영서로 읽기에도 좋다. F1 산업은 1970년대 접어들면서 TV 중계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중계 방식에도 변화를 꾀했다. 일례로 중계 화면은 선수의 얼굴을 오래 담도록 재구성됐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끌리지, 1000마력의 기계나 차량 색상에 반응하지는 않는다. 관객들을 불러 모으는 힘은 드라이버들과 느끼는 유대감에서 나온다”는 까닭에서였다.
21세기 뉴미디어 시대에 F1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와 과감히 손잡았다. 넷플릭스는 경기장에 전례 없는 접근 권한을 얻고서 경기와 선수들의 뒷이야기까지 콘텐츠로 만들었다. 읽다 보면, “이 쇼의 클라이맥스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과 실제 그대로의 논란, 숨 막히는 긴장감 같은 장치가 있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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