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의 귀환… 유가·LNG 급등에 ‘복합 충격’ 덮친다

  • 동아일보

유가 급등기마다 반복되는 경제 충격
물가 상승→소비 둔화→경기 침체
LNG발 전기-가스료 인상 압력 확대
석화-철강 등 제조업 생산비 상승… 비축-수입선 늘리고 ‘탈석유 전략’ 짜야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인 충남 서산시 대산단지 전경. 중동발 위기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와 사업 재편 압박이 커지고 있다. 뉴스1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인 충남 서산시 대산단지 전경. 중동발 위기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으로 수익성 악화와 사업 재편 압박이 커지고 있다. 뉴스1
중동 전쟁이 한 달째 이어지며 국제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다시 한번 ‘에너지 비용발(發) 복합 충격’의 시험대에 올랐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0년 걸프전, 2008년 유가 급등기마다 반복됐던 ‘비용 급등→물가 상승→성장 둔화’의 전형적인 흐름이 이번에도 재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비축 물량 활용과 수입처 다변화 등 단기 대응과 함께 산업 전반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중장기 ‘탈석유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일쇼크 때마다 동시다발 경제 충격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1979년에는 기름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 타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 경북 구미공단 직원들은 4km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동아일보 DB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1979년에는 기름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 타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 경북 구미공단 직원들은 4km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동아일보 DB
과거 에너지 위기는 대부분 중동발 공급 부족이 원인이 됐다. 특히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은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경제 전반을 뒤흔들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 국제유가는 짧은 기간에 배럴당 3달러 수준에서 12달러 안팎으로 4배 가까이 올랐다. 한국의 원유 수입액도 단기간 급증했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곧바로 비료·농자재·운송비 인상으로 이어지며 생활물가가 크게 올랐다. 경제성장률은 7.7%로 전년(14.9%)에 비해 반 토막 났다. 한국은 중화학공업 육성에 막 나설 때라 타격이 컸다. 다만 이후 중동 건설에 적극 진출하면서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는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다.

1978년 말 시작된 2차 오일쇼크는 충격이 더 컸다. 이란 혁명으로 원유 공급이 줄어들면서 국제유가가 약 1년 만에 2배로 뛰었고,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현실화했다. 1979년 7월 17일 자 동아일보에는 오일쇼크 대책으로 종이를 아끼기 위해 시험지 없이 교사가 문제를 불러주며 시험을 보고, 전동 방앗간 기계 대신 물레방아를 돌렸다는 믿기 힘든 사례가 소개됐다.

2차 오일쇼크가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꿨다는 평가도 있다. 경기 침체, 수출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가발업체 YH무역이 직원을 대량 해고했고,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1979년 8월 신민당사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난입해 파장이 벌어진 게 ‘YH 사건’이다. 197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나 되고 경기가 침체해 민심이 흉흉해졌는데 정부는 부마 민주항쟁 등을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다 끝내 10·26사태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0년 걸프전 당시에도 충격은 작지 않았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중동 원유 공급이 불안해지자 국제유가는 약 4개월 만에 배럴당 15달러에서 40달러로 뛰었다. 수입 물가 상승과 함께 제조업 원가 부담이 빠르게 확대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국제유가 급등은 공급보다는 수요와 금융 요인이 결합한 사례였다. 중국 등 신흥국의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국제 자금이 원자재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유가는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147달러까지 치솟았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면서 기업의 생산비 부담이 급격히 커졌고, 소비자물가 상승과 실질소득 감소가 맞물리며 내수가 위축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국제유가 상승은 수입과 유통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동시에 악화하는 한편 생산재 가격 증가로 수출 역시 타격을 입으면서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전기·가스요금·산업 비용 상승 ‘복합 위기’

이번 중동 사태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이번엔 LNG까지 충격이 확대되면서 전력·난방·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6일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한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위험의 위치와 파급 정도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에서 LNG는 전력 생산과 난방, 산업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핵심 에너지원이다. LNG 화력으로 생산하는 전력 비중만 30%로 석탄화력, 원자력발전과 함께 3대 전력 생산 연료로 여겨진다. LNG 가격 상승은 일정 시차를 두고 전기요금과 도시가스 요금 인상 압력으로 전이된다는 점에서 생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이다. 날씨가 더워져 난방은 줄지만, 온수와 산업용 수요는 유지되는 만큼 에너지 절약을 통한 충격 완화 노력에도 한계가 뚜렷하다.

산업계 부담도 빠르게 확대되는 양상이다. LNG와 원유 가격 상승은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원가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나프타 가격 상승과 맞물리면서 석화 산업 전반에 압박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 등 LNG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공급 차질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첨단 산업까지 영향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중동발 에너지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기 대응을 넘어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입처 다변화를 통한 중동산 석유 의존도 낮추기와 함께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탈석유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지금 상태라면 유가 급등기마다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흔들리는 ‘에너지 리스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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