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없는 존재” 유전적 취약성-유년기 고통이 만든 사이코패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4일 01시 40분


[위클리 리포트] 계속되는 사이코패스 범죄
21세 약물 살인범 김소영 파문… 챗GPT 활용하며 수법 고도화
유영철-이은해 잇는 냉혹함… 취약성 누적에 위험성 커져
인생 기록 해부하는 진단검사… 법정선 ‘재범 위험’ 중형 근거

서울 강북구 모텔에서 2명의 남성을 약물로 연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소영(21)이 두 번째 희생자와 모텔에 들어서기 직전 모습. 폐쇄회로(CC)TV 캡처
서울 강북구 모텔에서 2명의 남성을 약물로 연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소영(21)이 두 번째 희생자와 모텔에 들어서기 직전 모습. 폐쇄회로(CC)TV 캡처
21세.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나이다. 검찰이 10일 재판에 넘긴 ‘모텔 약물 연쇄살인범’ 김소영의 범행 방식은 한국 사회가 익숙하게 접해 온 살인범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흉기 대신 치명적인 약물을 택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인 척 연기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은 뒤, 이를 숙취해소제에 타 먹이는 방식으로 상대의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의식을 잃은 피해자에게 “잠들어서 먼저 갈게. 택시비 고마워”라는 알리바이용 메시지를 보내는 냉담함도 보였다. 인공지능(AI) 챗GPT를 활용해 범행 수법을 정교화한 점도 새로운 방식이다.

검찰이 밝힌 김소영의 성향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 검찰은 그가 자신의 소비 욕구와 경제적 만족을 위해 남성을 이용했고, 남성과 갈등 상황을 회피하고 제압하기 위해 약물을 이용했으며, 죄책감과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정서 조절이 어렵고 충동성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단 평가 도구인 PCL-R에서 25점을 받아 사이코패스로 판정됐다.

지금까지 공개된 주요 국내 사례만 놓고 보면 김소영은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연쇄살인범 가운데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동시에 AI 같은 디지털 도구를 범행 준비에 활용한 첫 세대의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수법과 도구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 밑에 놓인 심리까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범죄심리학자들의 조언을 얻어 사이코패스의 실체와 그들을 감별하는 과학적 잣대를 들여다봤다.

● 유영철부터 김소영까지… 한국의 사이코패스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의학적으로 처음 등장한 건 1801년 프랑스 의사 필리프 피넬에 의해서였다. 그는 인지적 결함은 없는데도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상태를 ‘망상 없는 광기’로 이름 지었다. 이후 1941년 미국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허비 클레클리가 저서 ‘정상성의 가면’을 통해 현대적인 사이코패스의 정의를 확립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이코패스의 존재가 대중에 각인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유영철(56)과 정남규(사망 당시 40세), 강호순(57) 같은 연쇄살인범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공감 능력과 죄책감이 모자라고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알려졌다. 로버트 헤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사이코패스를 “매혹과 조종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죄책감이나 후회를 보이지 않는 사회적 포식자”라고 묘사했다.

영화 ‘추격자’(2008년)의 모티브가 된 유영철이 전형적이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부유층 노인과 여성 안마사 등 20명을 살해했다. 그는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지문을 훼손하고 시신을 토막 내 암매장하거나 불태우는 등 극단적으로 냉담한 모습을 보였다. 검찰 조사에서는 “붙잡히지 않았다면 100명도 더 죽였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정남규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서울 서남부 일대 등에서 여성과 어린이 등 13명을 살해했다. 범행을 위해 체력을 단련하고 수사 기법까지 학습했다. 재판에서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고 말했고, 수감 중에도 ‘사람을 죽이지 못해 답답하다’는 취지의 편지까지 남겼다고 한다. 아내와 장모를 포함해 여성 8명을 살해한 강호순은 개 농장을 운영하며 가축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방식으로 살인을 연습했고, 경찰 조사에서 “개를 많이 죽이다 보니 사람 죽이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성 사이코패스 범죄자도 예외는 아니다. 2023년 정유정(27)은 온라인 과외 애플리케이션에서 살해 대상을 물색한 뒤 또래 20대 여성의 집을 찾아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시신을 유기하면서도 시신을 담았던 여행용 가방은 챙기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선 “평소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2019년 ‘계곡 살인 사건’ 이은해(36)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익사시키기 전에도 복어 독을 먹이거나 낚시터에 빠뜨리는 등 살해 시도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해 대전에서 초등학생 제자를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교사 명재완(50)은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지 않았다. 1차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기준치를 충족하지 않았는데, 경찰은 명재완의 범행 이유를 누적된 스트레스의 폭발과 분노가 전이된 것으로 결론 내렸다.

●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지,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오래된 문제다. 최근 학계는 이 둘을 대립적으로 보기보다 여러 취약성이 일정 수준 이상 겹칠 때 위험성이 커진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뇌 과학자였던 제임스 팰런 교수가 제시한 ‘세 다리 의자’ 이론이 대표적인데 이 이론은 유전적 취약성, 뇌 기능의 저하, 유년 시절의 경험까지 세 가지 문제가 겹칠 때 사이코패스가 탄생한다고 본다.

첫 번째는 유전적 취약성이다. 모노아민 산화효소(MAOA)가 결핍된 유전자 변이는 충동 조절의 취약성과 관련한 요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뇌 안에 신경전달 물질이 쌓여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뇌 기능의 차이다. 충동을 누르고 판단을 내리는 전전두피질, 공포와 감정 신호를 처리하는 편도체의 기능 저하다. 세 번째는 유년기의 학대와 방임 경험이다. 잠재한 취약성을 더 강한 공격성과 반사회성으로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유영철과 정남규, 강호순은 ‘불우한 유년 시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유영철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신체적 학대와 방임을 겪었고, 정남규는 어린 시절과 군 복무 시절 반복된 성폭력 피해를 겪었다. 강호순 역시 부친의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목격하며 자랐다. 김소영도 잦은 음주를 한 부친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고, 가정불화 속에서 정서적으로 고립돼 있었다고 검찰이 밝혔다.

물론 이런 설명이 불우한 성장 환경을 사이코패스 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이코패스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로만 바라볼 경우, 사회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지는 더 복잡한 경로를 놓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 사이코패스 판정, 조작 어렵고 법정선 불리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다 구체적인 평가 도구를 통해 들여다본다. 김소영이 25점을 기록한 PCL-R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반사회적 성향과 재범 위험성을 평가할 때 참고하는 대표적 도구다.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개발한 이 평가지표는 전문가가 심층 면담과 수사 기록 분석을 토대로 20개 항목에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만점은 40점인데 국내에서는 25점 이상인 경우 고위험군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역대 주요 범죄자들의 점수를 보면 유영철(38점), 이은해(31점), 정유정(28점), 강호순(27점) 등이 기준치를 웃돌았다.

PCL-R을 수행하는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은 피의자의 말뿐 아니라 표정과 태도, 주변인 진술, 생활기록부, 전과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함께 검토한다. 검사자를 속이려 하는지까지도 검토 대상이다. 즉 한 번의 설문으로 ‘사이코패스’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행적과 면담을 통해 반사회적 성향과 재범 위험성을 가늠하는 것이다. 함혜현 부경대 경찰범죄심리학전공 교수는 “PCL-R은 총점만 보는 검사가 아니라 대인관계, 정서, 생활방식, 반사회적 행동 등 어떤 요인에서 점수가 높게 나타났는지를 함께 해석하는 진단 도구”라고 설명했다.

흔히 법정에 가면 사이코패스 판정을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고 처벌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오해하지만, 실제 판단은 다르다. 오히려 높은 PCL-R 점수는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의 근거가 되지 않는 분위기다. 정유정은 경찰의 PCL-R 평가에서 28점을 받았지만, 1심 재판부는 그가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점 등을 들어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3년 ‘신림동 흉기 난동 사건’을 일으킨 조선(36)에 대해서도 법원은 사이코패스 판정 결과 등을 토대로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내렸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사이코패스 성향은 현재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보다, 오히려 잔인성과 공감 결여가 부각되면서 불리한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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