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단위로 허락되는 삶… 이제야 달콤한 오늘을 삽니다”[데스크가 만난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2일 23시 12분


최지은 메타 전무가 말하는 ‘말기 암 4년 차로 살아보니
’커리어 정점에서 불쑥 찾아온 자궁암… 반년 만에 폐까지 번져 ‘시한부 9개월’
‘늘 최선 다했는데’ 믿었던 이치 무너져… 이 닦을 힘도 없던 날 찾아온 ‘현타’
‘잘 될거야’보단 ‘버텨보자’는 말이 큰 힘… “일하며 배운 걸로 항암 버텨” 복직 선택
3개월마다 의사 만나는 날 두렵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 많으면 발길 가벼워져

기억할 만한 하루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지낸다는 최지은 메타 아시아태평양본부 전무. 아프기 전보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훨씬 생생히 느낀다고 한다. 최지은 전무 제공
기억할 만한 하루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지낸다는 최지은 메타 아시아태평양본부 전무. 아프기 전보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훨씬 생생히 느낀다고 한다. 최지은 전무 제공
《자궁암 3기 판정을 받던 때 나이가 38세. 그전까진 크게 배신당한 적 없는 삶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졸업 후 JP모건을 거쳐 글로벌 빅테크 메타에서 커리어의 정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메타에서 실적 꼴찌 부서를 맡아 1년 만에 1등으로 끌어올렸고, 임원 승진이 눈앞에 보였다. 당시 일하던 싱가포르 본부에서 미국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로 옮길까도 계획하던 때였다. 바쁜 와중에 주 3회 필라테스, 건강식도 꾸준히 챙겼다. 그런 그에게 3기 암이라니. 죽음은 노크하고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벽을 부수고 들어와 멱살을 틀어잡았다.》

최지은 메타 아시아태평양본부 전무(42)는 2022년 2월 ‘생존율 50%’란 말과 함께 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6개월간 독한 항암 치료를 견뎠건만 암은 오히려 폐까지 번져 있었다. 자궁암 4기, 9개월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다행히 그는 살아남아 말기 암 4년 차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최 씨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고 증언한다. 생사의 경계에서 목격한 것들을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란 책으로 냈다. 현재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최 씨를 11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삶의 전성기로 가던 때에 암이 찾아왔다.

“세상에 사기당했다는 분노, ‘뭐 하러 열심히 살았나’ 하는 허무함이 정말 컸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보답이 온다는 게 세상 이치라고 믿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나를 지탱해 온 세계관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내가 잘못한 게 뭐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쥐 잡듯이 원인을 찾으려 했다. 직장에서 내게 스트레스를 줬던 누군가 때문에 암에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항암 치료는 어떤 마음으로 견뎠나.

“치료를 잘 받아서 내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겠다는 회귀 본능이 강했다. 조금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별별 노력을 다했다. 6시간 동안 독한 주사를 맞는 와중에도 10개 넘는 국내외 신문을 구독해 읽었고, 업계 소식도 계속 업데이트했다. 한국의 젊은 암 환자들과 얘기해 보면 다들 비슷하다. 치료받는 동안에도 자신을 몰아붙인다.”

―6개월간 독한 항암치료를 견뎌냈지만 결국 시한부 9개월 선고를 받았다.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 걷을 힘도, 이 닦을 힘도 없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이가 몇 개 썩는 게 대수인가. 밥 먹어서 뭐 하나, 씻어서 뭐 하나 이런 생각뿐이었다. 그런 무기력한 마음으론 1분 1초가 너무 고통스럽다. 암은 저를 한 번 죽이지만 이런 고통이 저를 수천 번 죽이는 것 같았다.”

극한의 절망에서도 선택지는 있었다
최 씨는 지인들로부터 암 환자들 투병 수기 등 100권이 넘는 책 선물을 받았다. 그중 가장 큰 위로를 받은 게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책이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나치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기록한 책이다. 극한의 절망에서도 어떤 태도로 대응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게 책의 핵심 내용이다.

―책의 어떤 점에 위로를 받았나.

“종일 우울해하며 침대에 누워만 있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제 선택이란 걸 알게 됐다. 통화 한 번 하자는 친구, 바람 쐬러 가자는 가족들을 다 거부하고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는 선택을 나도 모르게 했던 거다. 책을 읽고 나서 선택지가 항상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됐다. 사소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나씩 해나갔다.”

―그럼에도 ‘현타’가 올 때도 있었을 거 같다.


“물론 그렇다. 싱가포르 병원의 제 주치의는 막연한 희망을 품게 만드는 의사가 아니었다. 절대 상황을 포장해서 좋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땐 쓰고 있는 마스크를 내리고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마스크 뒤에 숨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는 것에 따뜻함을 느꼈다. 주치의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결말로 가기까진 다양한 이야기와 서사들이 있다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도 암과 죽음 사이에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

―암 환자에게 힘이 되는 말이란 어떤 걸까.

“다 잘될 거야” “암과 잘 싸워보자” 같은 말들은 고맙지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저 역시 항암 치료란 걸 받기 전까진 열심히 ‘투병’을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6시간 동안 앉아서 몸에 독이 들어가는 걸 바라보면서 암은 싸우고 자시고 할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제가 가장 크게 위로를 받은 건 ‘버텨보자’는 말이었다. ‘어렵겠지만 우리 버텨보자. 끝까지 네 옆에 있을게’라고 했던 친구의 말이 큰 힘이 됐다.”

오른쪽 두 번째가 최지은 씨.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짧다.
오른쪽 두 번째가 최지은 씨.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짧다.
최 씨는 항암 치료로 체중이 10kg이나 늘었고, 얼굴은 여드름투성이에 조기 폐경까지 왔다. 차마 거울을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암 말기가 되자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미래를 빼앗기고 나서야 현재를 살게 되는 아이러니였다.

―3기보다 4기 치료가 더 즐겁다고 책에 썼다.

“3기 때만 해도 빨리 나아서 살도 빼고 예전 모습이 돌아오면 거울을 다시 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4기가 되면서 그때로 돌아갈 여지가 없어지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거울 보는 것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폐 부위 수술을 하면서 옆구리에 큰 흉터가 생겼는데 그 흉터도 비로소 만질 수 있게 됐다. 병원 갈 때도 예전엔 추리닝만 입다가 좋아하는 옷과 모자를 여러 벌 사놓고 매번 바꿔 입었다. 그런 뒤부턴 병원 가는 게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어차피 죽을 텐데 뭐 하러 하나’가 아니고 ‘어차피 죽을 테니 마음대로 해보자’라고 생각하니 삶의 주도권을 조금씩 되찾게 됐다.”

―삶의 우선순위도 달라지게 되나.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우리가 중시하는 정답, 경쟁, 결과 같은 것들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얼마나 빨리 승진했고,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대신 시행착오로 헤매던 순간, 사람들이랑 티격태격하고 ‘으쌰으쌰’ 하던 과정들이 생각난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톱 10’의 순간들을 필름처럼 떠올린 적이 있다. 남편하고 여행 갔다가 기차를 놓쳐서 함께 벙쪘던 장면, 회사에서 사고 수습하느라 팀원들하고 밤새우고 배달 음식 시켜 먹으면서 떠들던 장면 같은 것들이다. 그 10개의 공통점이 있다면 현재에 온전히 머물렀던 순간들이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이 참 어렵다.

“사회에서 가르쳐주지 않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현재를 살 수 있는 능력인 거 같다. 특히나 성취 지향적인 한국에선 극소수만, 그것도 엄청난 일을 겪지 않고선 갖기 어려운 초능력이다. 미국 투자회사나 빅테크에서 일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을 자주 봐왔다. 그런 사람일수록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 같고, 불행한 모습도 많이 본다.”

최지은 전무가 10여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MBA 학위수여식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
최지은 전무가 10여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MBA 학위수여식에서 환하게 웃던 모습.


모두가 만류했던 복직… 원래의 나를 찾고 싶었다
1년간 치료를 받아온 최 씨는 2022년 말, 폐에 전이됐던 암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사의 고비에서 삶 쪽으로 무게 추가 일단 기운 것이다. 물론 항암 치료는 계속해야 하고 3개월마다 암 검사를 받은 뒤 의사를 만나 다음 3개월이 허락되는지 통보받는 삶이긴 하다. 그렇게 주어진 ‘인생 2회차’에 그는 메타로의 복직을 선택했다.

―주변에서 많이들 복직을 만류했을 텐데….

“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그 몸으로 미친 거 아니냐’, ‘세계여행이라도 가지 그러냐’는 의견이 많았다. 게다가 회사에 구조조정도 있었고 제가 일했던 부서까지 없어진 상태였다. 복직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도 싶었다. 하지만 생존만을 목표로 1년을 살다 보니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찾고 싶었다.”

―삶에서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

“일을 하면서 키웠던 근육이 암 치료에 큰 힘이 됐다. 일하면서 배운 게 딱 하나 있다면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이다. 암이야말로 그것만큼 불안정한 게 없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최선의 의사결정을 할 것이란 자신감을 일에서 배웠다고 생각하니 다시 일해보고 싶었다. 또 휴직하는 동안 큰 힘이 돼준 게 회사 동료들이어서 다시 돌아온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일을 대하는 마음이 예전과 다른가.

“예전엔 평가, 승진, 연봉 이런 것들이 중요했다면 이젠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내일 당장 그만둬도 상관없다. 또 이력서에 넣을 만한 커리어보다 내 부고에 쓸 만한 커리어를 쌓으려고 한다.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한다. 예전 팀원 중에 대중 앞에서 말하는 걸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기회를 주고 북돋아 줬더니 나중에 큰 무대에서도 잘하게 됐다. 그 친구가 ‘제 인생의 전환점을 함께해 줘 고맙다’고 했는데 그런 교감이 죽기 전에 생각나는 소중한 기억이다.”




3개월마다 새로 얻는 삶… 하루하루가 생생하다
최 씨는 복직 1년 반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일하다 보니 성과가 자연스레 따라왔다고 한다. 예전엔 한 달이, 1년이 훌쩍 흘러갔지만 지금은 기억할 만한 하루를 만들자는 마음으로 지낸다. 하루하루가 생생하고 삶의 감각이 훨씬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그렇게 3개월 단위로 연장되는 삶을 3년 넘게 살고 있다.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은 기분이 어떤가.

“여전히 불안하고 무섭다. 전날에는 잠도 잘 못 잔다. 하지만 3개월을 공포 속에 허비하면 너무 허망할 것 같아서 불안감과도 친하게 지내려 한다. 의사를 만나기 전날엔 지난 3개월을 복기해본다. 후회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조금은 쉬워진다. 3개월마다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3개월을 부여받는 삶…. 저주받은 삶인 것 같지만 좋은 것도 많다. 가끔 아쉬운 3개월을 보냈다면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엔 재밌게 살아보자’라며 게임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사람과의 교감만큼 기억될 만한 순간이 있을까. 가족이든, 친구든,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든 함께하고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려고 한다. 아마 다음 달에 의사를 만나러 갈 땐 인터뷰로 했던 오늘 대화가 생각날 것 같다. ‘맞아, 그때 그런 얘기를 나눴지’ 하면서. 제 이야기로 누군가가 용기를 얻는다면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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