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오토바이를 타고 전쟁이 벌어지는 시가지를 달린다. 전쟁통에 포탄이 쏟아지고, 건물들은 무너지기 직전. 급기야 강혁은 미사일을 맞고 내동댕이쳐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병원에 도착해 수혈용 혈액과 항생제를 꺼내놓곤 거친 숨을 토해놓을 뿐이다. 지금껏 보기 어려웠던 ‘슈퍼 히어로 의사’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강혁이 영웅처럼 전장을 누비는 액션 장면을 앞세운다. 강혁이 한국의 중증외상팀에 부임하는 장면부터 시작한 원작 웹소설·웹툰 ‘중증외상센터 : 골든 아워’와 달리 강혁의 비상함을 더 강렬하게 드러내기 위해 호쾌한 액션 장면을 내세운 것이다.
‘중증외상센터’는 해외에 체류했던 강혁이 한국에 돌아와 중증외상팀을 ‘심폐 소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TV쇼 부문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강혁의 ‘영웅적 면모’가 두드러진 연출이다. 원작 웹소설이 강혁이 수술에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줘 천재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드라마는 이를 더 극적으로 구성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만화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강혁의 모습 덕에 쫄깃한 긴장감이 넘친다.
헬기에서 하강하는 드라마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예를 들어 강혁이 환자를 구하기 위해 헬기에서 하강하는 장면은 웹소설에도 있다. 웹소설에서 강혁은 천천히 하강 기구를 착용하고 섬세하게 조작해 구급대원에게 “로프 타고 내려가는 건 완전 정석”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해 드라마에서 강혁은 씩 웃은 뒤 “먼저 갑니다!”라면서 펄쩍 뛰어내린다. 구두를 신은 채 북한산의 절벽 위를 날아다니며 환자를 구할 정도로 판타지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드라마를 연출한 이도윤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중증외상센터에선 눈앞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어가고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이들이 울부짖는다”며 “‘영웅’이 나타나 뚝딱뚝딱 환자를 살려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넷플릭스 제공 코미디를 강조한 것도 드라마의 특징. 외과 펠로우 ‘양재원’(추영우)은 위험한 의료 현장에 파견될 때마다 강혁에게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고, 당황할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시청자에게 폭소를 선사한다.
강혁의 유쾌함도 과장했다. 시종일관 까칠하던 강혁이 나르시시즘에 빠져 잘난 척하는 모습은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아이언맨 같다. 실수하고도 시치미를 떼는 등 강혁의 ‘허당’ 같은 면모도 시청자를 사로잡은 비결이다.
이 감독은 “실제 주지훈 배우는 ‘말빨’ 좋고 엄청나게 웃겨서 오히려 드라마 속 강혁보다도 더 ‘아이언맨’ 같은 인물”이라며 “잘난 체하는 모습과 유쾌함을 더해 (현실과) 괴리감이 적은 인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웹소설 ‘중증외상센터’. 네이버웹툰 제공 외상외과의 현실을 비추되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으려 하는 드라마에 비해 원작 웹소설엔 의료계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의사 출신인 이낙준 작가는 웹소설에서 “대한민국의 중증외상센터에 발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굳이 떠들고 말고 할 문제도 아니었다”, “사명감을 가진 의사들이 외상외과에 가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등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웹소설은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모티브로 삼아 쓰였다. 이 작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이 병원장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책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세계 최고라 해도 좋을 만큼 의료 강국임에도 외상외과는 여전히 지원이 미비하다. 개인의 사명감에 지나치게 기댈 뿐 시스템적인 개선이 덜 돼 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강혁’의 모습. 넷플릭스 제공
웹툰 속 ‘강혁’의 모습. 네이버웹툰 제공 ● 감독 “생명 가치 강조하고 싶어…수술 장면은 ‘당의정’”
웹소설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전 웹툰으로도 제작됐다. 웹툰에선 주로 블러 처리가 됐던 수술 장면을 드라마에선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대해 이도윤 감독은 “수술 장면이 불쾌감을 드릴 수도 있다는 것은 정말 공개 전까지 고민했던 지점”이라며 “연출자로서 이 부분을 상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첫 내부 장기 장면인 ‘카디악 탐폰’ 장면에서 혈액을 배제해 마치 인체 모형 교보재처럼 보이게 했다. 마치 카메라가 몸통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따로 더미를 여러 개 만들 만큼 노력을 기울였었습니다. 수술 장면들은 그래픽으로 마치 수술 도감 같은 이미지가 공중에 떠다니면서 시선을 빼앗게 했거든요. 이 모든 것들이 입에 쓴 약을 당의정으로 감싸 먹기 편한 알약으로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이도윤 감독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2025.1.21/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이 감독은 “수술 장면을 표현한 건 단순히 잔인한 수술 장면으로 나열해서 시선을 잡아끌기보단 강혁이 무슨 수술을 하고 있고 어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며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장기의 노출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가장 애착 가는 장면으로 등장인물들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꼽았다. 이 감독은 “식당에서 재원에게 너만의 이유를 찾으라고 하는 강혁의 모습이나 원장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과거 이야기를 하는 강혁의 진중한 모습들이 사실 더 당기는 맛이 있는 지점”이라고 했다.
“외국 로케이션 장면들을 찍으면서 연출자로서 굉장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수백 명의 엑스트라와 드론과 바디 캠을 포함해 7, 8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운용하고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보던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장비들을 사용하면서 마치 제가 유명한 감독이라도 된 듯한 우쭐함을 느꼈었죠. 하하.”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배우 추영우(왼쪽부터), 하영, 주지훈, 이도윤 감독, 윤경호, 정재광이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넷플릭스 새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증외상센터’는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백강혁(주지훈)이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심폐 소생하기 위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통쾌한 이야기다. 오는 24일 공개. 2025.01.21. jini@newsis.com ‘중증외상센터’는 의학 드라마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감동과 서사가 중요한 작품. 드라마를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묻자 이 감독은 ‘생명’을 꼽았다.
“근래 ‘생명’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인간의 생명보다는 돈의 가치가 높아 보이는 이때, 그로 인해 희생될 생명이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두 그 무엇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들이에요. 내가 아닌 남도 나처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드라마 ‘재원’ 모습. 넷플릭스 제공
웹툰 ‘재원’ 모습. 네이버웹툰 제공 ● 작가 “판타지 활극 만족…과거 이야기 쓰고 있어”
원작을 쓴 이낙준 작가는 드라마화 과정에서 직접 개입하진 않았다. 다만 드라마화되는 과정에서 원작의 톤을 잘 살린 것 같다고 했다.
이 작가는 “의사가 헬기를 몰고, 레펠(현수 하강)을 하고, 심지어 사람을 어깨에 얹고 레펠을 하는 장면도 비현실적”이라며 “드라마 톤 자체를 원작에 맞게 메디컬을 곁들이기만 한 판타지 활극으로 가져감으로써 너무나 다 잘 살려주신 거 같다”고 했다.
웹소설 쓴 의사 작가 이낙준. 작가컴퍼니 제공 향후 ‘중증외상센터’ 세계관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갈 계획이 있냐는 질문엔 “지금 백강혁의 과거, 즉 프리퀄에 해당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A.I. 닥터’를 연재하는 등 꾸준히 의학 웹소설을 선보이는 이유에 대해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많이 부족해 다른 장르보다 의학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한 이유”라며 “의학이라는 장르를 파다 보니 ‘어? 이런 소재도 있었어? 이것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한가지 이유다. 언젠가는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드라마로 접하신 분들은 원작에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설정이나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니 혹 관심이 가신다면 원작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제 소설보다 훨씬 재밌는 소설들이 웹소설의 세계에는 널려있습니다. 이 기회에 꼭 제 소설이 아니더라도 다른 소설들로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보시면 어떠실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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