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규모 4년만에 3배 넘게 성장… 상장 종목도 1년새 125개 늘어
운용사간 출혈경쟁 이어지면서
혁신적 상품 대신 ‘미투 상품’ 범람
판도 바꿀 가상화폐 ETF 지지부진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177조 원(순자산총액 기준) 규모로 성장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20년(52조 원)과 비교했을 때 4년 만에 세 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양적인 성장을 통해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확대됐지만, 마케팅 경쟁 등 출혈경쟁이 나타난 데다 혁신적인 상품은 정작 눈에 띄지 않는다는 그늘도 존재한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거래 중인 ETF 937개의 순자산총액은 176조8955억 원에 달한다. 2023년 말(121조657억 원)과 비교했을 때 1년여 만에 46.1% 성장했다. 같은 기간 상장된 ETF 종목 수도 812개에서 937개로 125개(15.3%)나 늘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2경 원에 달하는 글로벌 ETF 시장을 고려하면 규모 면에선 아직 크지 않지만, 성장 속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2002년 ETF가 처음 상장된 뒤 20여 년이 흐르며 ETF 시장의 구조도 바뀌었다. 자산의 10% 이상을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파생형 ETF, 코스피·S&P500 등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액티브 ETF 등의 비중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미국 등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ETF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ETF의 순자산총액은 2018년 37조593억 원에서 지난해 말 106조6502억 원으로 2.9배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ETF는 같은 기간 2조6642억 원에서 64조8375억 원으로 24.3배나 커졌다. 국내 증시가 부진한 반면 미국 증시가 고성장을 이어간 2023년(27조4724억 원)과 지난해(64조8375억 원) 해외 자산에 투자한 ETF가 큰 폭으로 늘었다.
자산운용사들의 경쟁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 국내 최초 ETF를 선보인 뒤 점유율 1위를 지켜온 삼성자산운용의 지난해 말 기준 점유율은 38.17%로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36.09%)과의 격차가 줄었다. 3위 자리를 두고 KB자산운용(7.82%)과 한국투자신탁운용(7.56%)의 경쟁도 치열하다.
자산운용사 간 경쟁은 보수 인하로도 이어지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재칠 선임연구위원과 권민경 연구위원이 ETF 운용보수율을 분석한 결과 2011년 31.6bp(100bp=1%포인트)였던 시장 전체의 자산가 중 평균 운용보수율이 지난해 6월 말 16.3bp까지 하락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두드러진 양적 성장에 비해 ‘새로운 게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시장의 관심을 받는 ETF가 출시되면 다른 자산운용사에서도 유사한 ETF를 뒤따라 내놓는 등 ‘미투(Me too) 상품’이 범람한 영향이다.
ETF 시장의 판도를 바꿀 가상화폐 현물 ETF도 국내에서는 먼 미래다. 지난해 뉴욕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는 불과 출시 1년 만에 금 ETF와 맞먹는 규모로 성장했지만 아직까지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ETF에 보수적인 데다 비트코인 수탁이나 리스크 컴플라이언스(준법관리) 등의 기준도 미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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