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란 때렸다… 美 반대에도 보복 강행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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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공격당한지 6일만에 반격
이란 “최대수준 대응” 사전경고
전면전 충돌-보복 악순환 우려
아시아 증시 급락… 유가 급등

X 캡쳐
이스라엘이 이란으로부터 사상 처음 본토를 공격당한 지 엿새 만에 이란의 군사기지에 대한 재보복을 강행했다. 이번 공격은 이란이 1일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에 대응해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것에 대한 재보복 성격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는 ‘보복의 악순환’을 지속하며 긴장을 높여가는 모양새라 자칫 중동 지역 양대 군사강국 간 본격적인 전면전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ABC방송 등은 이스라엘이 19일(현지 시간) 이란 내 목표물을 미사일로 타격했다고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 국영TV는 이날 오전 4시경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350km 떨어진 이스파한 상공에서 무인기(드론) 3기가 목격됐고, 방공체계가 가동돼 모두 격추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당국자는 익명으로 외신에 “군이 이란 본토를 타격했다”고 밝혔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이번 공격과 관련된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스파한에는 이란 육군항공대 기지 등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 등 이란의 ‘핵 인프라’가 밀집돼 있다. 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 핵시설에 피해가 없음을 확인했다”면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을 두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란은 앞서 이스라엘의 재보복 시 “즉각적이고 최대 수준으로 갚아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킴 도저 CNN방송 글로벌 이슈 분석가는 “양국 간 이러한 ‘확전 사다리(escalation ladder)’가 정말 끔찍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스라엘의 이란 보복 공격에 국내외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코스피는 19일 장중 한때 3% 이상 급락했다가 오후 들어서는 낙폭을 줄여 42.84포인트(1.63%) 내린 2,591.86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도 장중 20원 가까이 오르며 달러당 1390원 선을 돌파했다가 결국엔 9.3원 오른 달러당 1382.2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본 증시도 2.7% 급락하는 등 아시아 증시가 모두 약세를 보였다. 중동의 긴장 고조에 국제 유가도 이날 한때 4% 이상 급등했다.

이스라엘, 핵시설 인접 軍기지 공습… 이란, 재보복땐 전면전 위험


[이스라엘, 이란에 보복 공습]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생일
이스라엘, 6일前 ‘공격원점’ 타격
이란 “드론 3대” 미사일 피격 부인… 외신 “이란 반격땐 5차 중동전 우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약 340km 거리에 위치한 도시 이스파한 상공에서 불꽃이 터지는 모습. 이란혁명수비대는 이 영상을 공개하며 군사작전과 연관된 불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파한에는 전투기와 무인기(드론) 등을 만드는 이란항공기제조산업공사의 생산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혁명수비대 텔레그램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약 340km 거리에 위치한 도시 이스파한 상공에서 불꽃이 터지는 모습. 이란혁명수비대는 이 영상을 공개하며 군사작전과 연관된 불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파한에는 전투기와 무인기(드론) 등을 만드는 이란항공기제조산업공사의 생산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혁명수비대 텔레그램
13일(현지 시간) 이란으로부터 본토에 대한 사상 첫 공격을 받은 뒤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겠다고 벼르던 이스라엘이 19일 새벽 이란을 타격했다. 이날은 이란 최고지도자이자 1989년부터 재임한 중동의 ‘최장 통치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85세 생일이다. 이스라엘이 이란 권력의 핵심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려 이란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은 언론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습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두 나라가 전면 충돌을 피하려는 수순이란 분석이 제기됐지만 공격과 반격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높이다가 자칫 파국을 부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 美 “이스라엘 미사일, 이란 목표물 타격”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 등은 이날 이란 이스파한 북서쪽의 군공항 주변에서 세 건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란 IRNA통신에 따르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F-14 톰캣 전투기가 배치된 주요 공군기지에서 방공 포격이 이뤄졌다.

이번 공습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르스통신은 “군 레이더가 표적 가능한 물체였다”며 “이 지역 여러 사무실 건물의 창문이 깨졌다”고만 전했다.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CNN방송에 “이스라엘이 민간인과 핵시설을 피하고 군사시설을 표적으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이 1일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한 데 이어 이란이 13일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으로 보복 공격한 뒤에 발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이 13일 공습 당시 미사일 발사처로 이용한 곳 중 하나가 이스파한이라고 짚었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공격 원점을 타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스라엘이 이스파한 공격의 배후인지를 묻는 말에 답변을 거부했다고 현지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다만 미 NBC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당국이 이란에 어느 정도 피해를 줬는지를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당국은 공격 사실을 축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란 항공우주국 대변인 호세인 달리리안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현재로선 이스파한을 비롯한 국내에 미사일 공격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인기(드론) 세 대가 날아왔지만, 방공망이 성공적으로 격추했다”며 “적의 작전은 굴욕적 실패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란 국영방송 IRIB도 이스파한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방송기자가 “도시는 안전하고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말하는 뉴스 영상을 공개했다. 이란 국영TV 등은 이란이 국경 밖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란이 외부의 공격을 받았다는 점을 축소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란 방공군이 이스라엘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 뉴시스
이란 방공군이 이스라엘 공격에 대응하는 모습. 뉴시스

● “이란의 다음 반응 예측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눈은 양국의 보복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지, 아니면 여기에서 마무리될지에 쏠린다. 일단 이란과 이스라엘의 주요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신들도 이번 공격을 ‘제한적 보복’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공격에 대한 조용한 초기 대응은 이란과 이스라엘이 확대를 피하고 싶어 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마크 매컬리 미 육군 퇴역 소장은 CNN에 “이스라엘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고 이란에 ‘계산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이 CNN에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추가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면 “즉각적이고 최대 수준”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또 공격 이후 이스라엘에선 ‘보복 강도가 약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극우 성향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이날 X에 “(보복이) 약했다”는 한마디를 올렸다. 이번 공격이 양국 보복전의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구체적인 피해 규모와 배경이 드러나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갈등 확대를 억제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하나의 잘못된 계산이나 오해, 실수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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