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안되고 복부 팽만감… 심장병일 수 있어요”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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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심장판막증 채순분 씨
10년 전 소화불량 시작, 원인 못 찾아… 심장 판막 이상에 따른 증세였지만
일반인은 구별 어려워 방치할 수도… 2년 전 숨찬 증세 심해져 잘 못 걸어
심부전, 심장비대, 판막 질환 판정에 ‘시한폭탄’ 대형 혈전까지 발견돼

유재석 서울아산병원 심장 혈관흉부외과 교수(오른쪽)는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겼을 때 초기에는 소화기 증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채순분 씨는 10년 전에 시작된 심장질환 증세를 소화기 증세로 잘못 알고 고생하다 최근 수술을 받고 
완치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유재석 서울아산병원 심장 혈관흉부외과 교수(오른쪽)는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겼을 때 초기에는 소화기 증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채순분 씨는 10년 전에 시작된 심장질환 증세를 소화기 증세로 잘못 알고 고생하다 최근 수술을 받고 완치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채순분 씨(68)는 젊었을 때부터 체한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러다가 10년 전에는 처음으로 조금 심한 소화 불량 증세를 경험했다. 간혹 동네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심장 판막증의 초기 증세였다. 판막에 이상이 생겨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물론 채 씨는 그런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심장 질환이 있으면 흉통이나 호흡곤란을 떠올린다. 채 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채 씨의 심장 수술을 집도한 유재석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그 경우는 심장 판막증이 많이 진행돼 심부전 증세가 나타나는 상태”라고 했다. 오히려 심장 판막증 초기에는 복부 팽만감이나 소화 불량 등 얼핏 보면 소화기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채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년 전에야 심부전, 심장 판막증, 심장세동, 대형 혈전 등을 최종 진단받았다. 그러니까 최초 증세가 나타나고 8년이 지난 후에야 정확한 진단이 이뤄진 것이다.

● 8년 만에 심장 질환 판정
채 씨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심장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다. 음식만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물만 먹어도 체하는 느낌이 강해졌다. 복부 팽만감도 나타났다. 명치 부위가 꽉 막히고 살짝 숨이 차는 느낌도 생겼다. 피로감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채 씨는 이 모든 증세의 원인이 심장 판막증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심장으로 혈액이 들어가는 판막에 손상이 생기면 복부 팽만감이 나타난다. 또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액이 전신으로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8년 정도가 흘러갔다. 2021년 초, 갑자기 복통이 시작됐다. 근처 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의료진은 소화기 계통의 약을 처방해 줬다.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추가로 심장 검사를 진행했다. 심부전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료진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그해 4월, 채 씨는 A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검사 결과 심부전 진단이 떨어졌다. 추가로 X레이 검사에서 심장이 커져 있는 점이 확인됐다. 심장 비대증이었다. 심장이 붓기 시작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보통은 이때부터 몸이 붓는 증세도 생긴다. 채 씨도 그랬다. 종아리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고 눌린 자국 그대로 남기 시작했다.

● 심장에서 초대형 혈전 발견

그해 12월 전후로 증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무엇보다 숨이 차는 증세가 심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가파르지 않은 평지인데도 5분을 걷지 못했다. 도중에 꼭 쉬어야 했다. 담벼락이 있으면 손바닥으로 짚고 걸어갔다. 유 교수는 “심부전이 상당히 진행돼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말했다.

얼마 후 채 씨는 B대학병원에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심전도와 심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심부전, 판막증, 심방세동의 진단이 떨어졌다. 특히 판막의 손상 정도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좌심방에서 큰 혈전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일단 약물을 처방했다. 놀랍게도 숨찬 증세가 개선됐다. 채 씨는 “약물만으로 완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약물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유 교수는 “이뇨제 성분의 약물은 염분과 수분을 배출시켜 일시적으로 심장의 떨어진 기능을 보완할 수 있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B병원 의료진은 이미 수술 시기를 넘겼고, 따라서 판막 수술만으로는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의료진은 채 씨에게 인공심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인공심장 수술은 심장이식 전 단계에 행하는 치료법으로 여겨진다. 채 씨는 앞이 캄캄해졌다.

● 정확한 진단-1회 수술로 해결
채 씨는 혹시 대안이 있을까 해서 다른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진료를 받게 된 의사가 강도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다. 채 씨는 “교수님이 ‘인공심장 안 하고도 살릴 수 있다’라고 말했을 때 병과 싸울 용기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채 씨는 이어 “환자들에게 의사의 격려와 확신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밀검사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심부전은 예상대로 심한 상태였다. 심장 크기가 가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게 정상인데, 채 씨는 60% 정도였다. 이러니 심장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심장 안에 있는 혈전의 크기는 2㎝에 이르렀다.

수술을 집도한 유 교수는 특히 혈전에 주목했다. 혈전이 심장에서 떨어지면 혈관을 타고 전신 어디로든 흘러가 치명적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것이다. 그 혈관이 뇌를 막으면 뇌중풍(뇌졸중)이 된다. 장 혈관을 막아버리면 장이 썩기 시작한다. 이때 복통이 나타날 수 있다. 일단 혈전이 떨어져 나가면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 교수는 “혈전의 크기가 5㎜만 돼도 위험한데, 채 씨의 경우 4배에 이르는 크기였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와 유 교수가 협의한 끝에 최종 수술 범위가 결정됐다. 이어 2월 수술이 진행됐다. 병든 판막(승모판막)은 인공판막으로 교체했다. 늘어난 판막(삼첨판막)은 성형을 통해 줄였다. 심방세동(심방에 불규칙하게 잔떨림이 나타나는 병)은 냉각 소작기로 불필요한 미세혈관을 냉동함으로써 해결했다. 대형 혈전은 완전히 긁어냈다.

과거에는 이런 수술을 하려면, 가슴뼈를 절단해야 했다. 채 씨의 경우 옆구리 상단 갈비뼈 사이로 3∼4㎝만 절개했다. 3차원 내시경을 삽입해 수술을 진행했다. 이 모든 수술에 3시간 반가량 소요됐다.

가슴뼈를 절단할 경우 아무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채 씨는 뼈를 절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염증 우려도 적고, 상처가 아무는 기간도 크게 줄어들었다. 통증도 적었다. 채 씨는 회복 기간에 ‘무통 주사’라 부르는 일종의 진통제도 거의 쓰지 않았다. 게다가 수술 후 10일 만에 퇴원했다. 간병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는 바람에 1인실에 격리되지 않았다면 더 일찍 퇴원할 수 있었다.

● “숨찬 증세 완벽히 사라져”
앞으로 채 씨는 평생 ‘와파린’ 성분의 약을 먹어야 한다. 와파린은 혈액 응고를 막음으로써 혈전의 생성을 억제한다. 외부에서 균이 침투할 경우 인공판막이 감염될 위험도 남아있다. 만약 감염이 발생하면 인공판막을 교체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판막 수술을 한 환자들은 3개월마다 와파린의 양과 판막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또 혈액 응고를 돕는 비타민K의 함량이 높은 바나나, 청국장, 시금치 등의 음식은 피해야 한다. 2년 정도가 지나면 심장 초음파 검사로 전반적인 상황을 살핀다. 채 씨도 3개월마다 혈액 검사 등을 통해 몸 상태를 살피고 있다. 물론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는다.

수술 후에 어떻게 달라졌을까. 퇴원하고 1주일 동안은 기침이 많이 나왔다. 일종의 수술 후유증인데, 1주일 만에 거의 사라졌다. 그때부터는 전철을 타고 시내를 활보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숨찬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채 씨는 “약간만 걸어도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아무런 제약 없이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체한 증상도 없어졌다. 예전에는 밥 반 공기를 간신히 먹었는데 요즘에는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피로감도 사라졌다. 덕분에 요즘에는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채 씨는 집에 실내 자전거를 두고 매일 40∼50분 동안 탄다. 이제는 산에 오르고 싶단다. 가능할까. 이에 대해 유 교수는 “근력 운동이든 산행이든 상관없다. 다만 출혈이 있으면 피가 잘 안 멎을 수 있다. 상처가 나지 않게, 넘어지지 않게만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채순분 씨의 심장 질환 투병 일지
2013년
소화불량 증세 처음 발생
(심장 판막 질환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

2013∼2021년
심부전, 판막 질환 등 심장 질환 악화

2021년 초
갑작스러운 복통(심장 판막 질환이 원인)
위-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원인 못 찾음
추가 심장 검사에서 심부전 의심 소견

2021년 4월
A대학병원 진료. 심부전 진단
X레이 검사에서 심장비대증 추가로 확인

2021년 가을
숨찬 증세 급격히 악화. 걷기도 힘들어짐.

2021년 12월
B대학병원 진료
심부전, 심장판막증, 심방세동 진단 및 혈전 발견
약물 처방. 일시적 호전

2022년 1월
B대학병원 인공심장 수술 권유
서울아산병원, 인공심장 수술 대신 긴급 판막 수술 결정

2022년 2월
판막 교체 및 성형, 심방세동, 혈전 제거 수술 동시 시행

2023년 10월 현재

완치 상태. 3개월마다 건강 상태 체크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소화불량#심장병#심장 질환 투병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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