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으니 잘 때 안 무서워요”… 피서지 찾아간 ‘책읽는 버스’[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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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해변캠핑장 찾은 이동도서관
45인승 버스 개조해 8월 6일까지… 책대여-구연동화-보물찾기 등 운영
아이들 “폰게임보다 더 재밌어요”
어른들에겐 뜻깊은 독서여행 선물

“우리 보물 찾아볼까요?”

29일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 45인승 버스를 개조해 만든 노란색 이동식 도서관 ‘책 읽는 버스’ 앞에서 최혜경 마음놀이터 심리상담연구소장이 외치자 아이들 20여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은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땅을 파고, 나무 아래를 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찾았다”는 외침이 들렸고, 아이들의 손엔 간식 상품이 쓰여 있는 포스트잇이 들려 있었다. 서울에서 아빠, 엄마와 온 박지환 군(12)은 “책 읽는 것도 재밌고 다른 활동이 많아 신기하다”며 “스마트폰 게임보다 ‘책 읽는 버스’에서 노는 게 좋다”며 웃었다.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을 29일 찾은 ‘책 읽는 버스’ 앞에서 아이들이 최혜경 마음놀이터 심리상담연구소장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있다. 구연동화가 끝난 뒤 최 소장이 “혹시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자”고 말하자 아이들은 “학원에 가기 싫다”,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고 외쳤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제공
강원 강릉시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을 29일 찾은 ‘책 읽는 버스’ 앞에서 아이들이 최혜경 마음놀이터 심리상담연구소장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있다. 구연동화가 끝난 뒤 최 소장이 “혹시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자”고 말하자 아이들은 “학원에 가기 싫다”, “친구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고 외쳤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제공
‘책 읽는 버스’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고, KB국민은행이 후원한다. 1987년 설립된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전국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이동식 도서관으로 농어촌이나 지역 축제 현장을 찾아 책 읽기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책 대여는 물론이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책 읽는 버스’는 8월 6일까진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에 머문다.

29일 방문한 ‘책 읽는 버스’엔 책 1000여 권이 비치돼 있었다. 긴 의자에 에어컨도 있어 시원하고 편안하게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잠든 밤 악몽을 꾸는 아이에게 달님이 찾아와 위로하는 내용의 그림책 ‘달님이랑 꿈이랑’(2022년·사계절)을 읽던 박이서 양(12)은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놀다가 책 읽으러 왔다”며 “그림책을 읽으니 밤에 잘 때 안 무서울 것 같다”고 했다.

소나무가 가득한 캠핑장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날 야외에서 진행된 행사에도 아이들이 적극 참여했다. 아이들은 동화책 ‘임플란트 대작전’(2021년·좋은책어린이)의 지문 그림 작가가 그린 ‘책 읽는 버스’ 캐릭터를 활용해 배지를 만들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재해석한 그림책 ‘슈퍼 거북’(2014년·책읽는곰) 구연동화도 들었다. 서울에서 온 이준석(12), 준혁(9) 형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아서 더 신났다”며 “내년에도 ‘책 읽는 버스’에 오고 싶다”고 했다.

어른들도 책 읽는 버스를 반겼다. 한 방문자는 양육서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2017년·예담)를 읽고 “아이를 키우며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는데 책을 읽고 위로받았다”고 책 읽는 버스에 소감을 남겼다. 에세이 ‘아무튼, 여름’(2020년·제철소)을 읽은 다른 독자는 “예쁜 하늘 아래 바다에서 수영하고 독서한 이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소감을 썼다. 경기 성남시에서 여덟 살 딸과 함께 온 김지연 씨(40)는 “아이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는데 어른이 읽을 책도 많아 뜻깊은 독서 여행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기자도 ‘책 읽는 버스’에서 에세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2023년·열린책들)를 빌린 뒤 소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었다. 한 번 읽은 책이지만, 휴가지에서 여유롭게 다시 읽으니 새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수연 목사는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피서지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며 “내 나이가 77세고 최근 다리를 다쳐 몸이 힘들지만 죽을 때까지 ‘책 읽는 버스’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릉=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책읽는 버스#이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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