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들이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냐고 묻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3일 09시 30분


코멘트

6년 만에 방한한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이 ‘책 먹는 여우’ 인형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뒤로 여우 그림자가 비친다. 왼쪽 그림은 여우가 책을 훔치러 도서관에 간 장면, 오른쪽 그림은 여우가 섬으로 휴가를 떠나는 모습이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초등학생 때 동화 ‘책 먹는 여우’(2001년·주니어김영사)를 읽고 독서에 빠졌습니다. 감사합니다!”

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54)에게 사인을 받던 남자 고등학생이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엄마와 함께 온 한 초등학생은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며 윷놀이 세트를 선물했다. 한 중학생은 “‘책 먹는 여우’ 주인공 같아 준비했다”며 여우 모양의 초콜릿을 비어만에게 줬다. 비어만이 이날 연 사인회를 찾은 독자만 300명이다. 2시간으로 예정된 행사가 4시간이나 진행될 정도로 비어만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프란치스카 비어만이 독자에게 줄 사인을 하고 있다. 주니어김영사 제공

12일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비어만은 어느 질문에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답하는 친절한 ‘독일 아줌마’였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방한한 소감을 묻자 그는 “벌써 3번째 한국에 와서 친숙하다. 경복궁과 광화문 인근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며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한국 아이들과 직접 만나 동화 이야기를 하면 행복해져요. 한국 아이들이 제 책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하.”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이 ‘책 먹는 여우’ 인형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독일 함부르크 디자인전문예술대를 졸업한 비어만은 2000년 발표한 ‘책 먹는 여우’로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 작품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한국에서 2001년 출간된 뒤 22년 동안 국내에서 90만 부가 팔리고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2015년·주니어김영사) 등 국내에 소개된 비어만 작품 15편은 총 150만 부 팔렸다. 당신 작품이 왜 한국에서 인기를 끄냐’고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책 읽는 여우’는 주인공 여우가 책을 너무 좋아해 소금과 후추를 뿌려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는 이야기에요. ‘책을 먹는다’는 신선한 접근법이 한국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턱을 낮춘 것 아닐까요.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했고요.”

12일 서울 은평구 상신초에서 프란치스카 비어만이 초등학생을 보고 웃고 있다. 이날 비어만은 220명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니어김영사 제공

그는 지난달 28일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주니어김영사)를 펴냈다. 2017년 시작한 ‘잭키 마론’ 시리즈 4편으로 여우 탐정 잭키 마론이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국 군주가 대관식에서 드는 십자가 왕홀에 박힌, 세계에서 가장 큰 투명 다이아몬드 ‘컬리넌’에 얽힌 논란을 은유적으로 다뤘다. 그는 “컬리넌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불법 반출된 것이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동화에는 교육적 성격이 담겨있는 만큼 사회적 문제를 쉬우면서도 조심스레 다루려고 했다”고 했다.

신간에서 독특한 건 저자 목록에 비어만과 함께 ‘책 먹는 여우’가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책 먹는 여우’의 주인공이 책 먹는 일을 넘어 책을 쓰는 일에도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는 가정으로 쓴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겐 동화 속 세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 재밌는 도전을 해봤다”며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한 한국 아이가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냐’고 묻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웃었다.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 주니어김영사 제공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 주니어김영사 제공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잭키 마론 인형을 매만지며 답했다.

“잭키 마론 시리즈로 어린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잭키 마론도 ‘책 먹는 여우’처럼 동화책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다음에 한국에 올 땐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싶네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