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살인 물가에도 저금리 ‘선심’… 30년 종신집권 길 열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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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 에르도안 승리]
‘21세기 술탄’ 튀르키예 대선 승리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승리 연설… 환호하는 지지자들 28일(현지 시간)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집권을 
확정지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당선 확정 후 행정수도 앙카라의 대통령궁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는 그의 지지자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앙카라·이스탄불=AP 뉴시스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승리 연설… 환호하는 지지자들 28일(현지 시간)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집권을 확정지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당선 확정 후 행정수도 앙카라의 대통령궁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는 그의 지지자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앙카라·이스탄불=AP 뉴시스
‘21세기 술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69)이 28일(현지 시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튀르키예 선거관리기구는 29일 개표율 99.85% 기준 에르도안 대통령이 득표율 52.16%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6개 야당 연합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는 47.84% 득표에 그쳤다.

이번 승리로 2003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으로 20년간 집권한 그에게 사실상 ‘종신 집권’ 길이 열렸다. 새 임기는 2028년까지다. 그러나 앞서 개헌을 통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치러 이기면 추가 5년을 더 재임할 수 있게 해 이론상 2033년까지도 집권할 수 있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터 ‘신(新)권위주의’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셈이다.

● 위기 조장하며 민족주의에 호소

14일 대선 1차 투표 전까지 에르도안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에게 지지율이 열세였다. 인플레이션이 심한데도 저금리를 고수하며 경제난이 상당했던 데다 5만 명 넘게 숨진 대지진이 겹쳐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결선 투표 기간 민족주의 노선을 앞세워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튀르키예 국민의 약 20%를 차지하며 지속적으로 분리 독립을 추진해온 쿠르드족 문제를 쟁점화했다. 튀르키예 민족과 애국심에 호소한 것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한 이후 이스탄불 성소피아 성당을 찾아 기도하는 모습을 연출한 것도 이런 전략의 하나다. 성소피아 성당은 오스만 제국 7대 술탄 술탄 메메트 2세가 1453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 감사 기도를 올린 곳이다.

또 친(親)쿠르드 성향 인민민주당(HDP)이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지지한 점을 거론하며 자신이 패배한다면 테러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위기론을 조장한 것이다. 그는 29일 승리 연설에서도 “테러리스트 편을 들었다”고 패배한 후보를 몰아세웠다.

국익을 앞세워 주변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한 튀르키예’를 호소한 것도 승리에 한몫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러시아가 대립하는 가운데 ‘중재 지도자’를 자처하며 세계에서 튀르키예 입지를 높인 것도 승인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 ‘마이웨이’ 정책에 경제 타격 우려

에르도안 대통령이 빈약한 정부 재정에도 선심성 공약을 쏟아낸 것 또한 재집권에 성공한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년 요건을 폐지해 연금 조기 수령이 가능하도록 하고, 가스와 인터넷 데이터를 한시적으로 무상 제공한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선 기간 동안 공무원 임금 45% 인상 및 최저임금 인상도 전격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 재집권으로 터키 경제가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황당한 논리로,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 금리를 5차례나 인하했다. 19%이던 기준금리는 8.5%까지 낮아졌다.

자신의 입장에 반대하는 중앙은행 총재를 최근 몇 해 동안 3차례나 경질하고, 사위를 재무장관에 앉히기도 했다. 이렇게 펼친 역주행 통화정책은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80%나 치솟았으며 최근에도 매달 물가상승률은 40%대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리라화 가치는 달러 대비 77% 폭락했다. 2021년 11.4%인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5.6%로 급락했고 올해는 2.8%까지 반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의 승리 소식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29일 미 달러에 대해 리라화는 20리라 선을 기록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그의 승리로 초인플레이션, 초저금리, 외환보유액 부족 같은 매우 고통스러운 위기가 튀르키예에 닥칠 수 있다”고 전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에르도안#살인 물가#저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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