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경보 완화에 올해 이집트 찾은 한국인 벌써 3000명[글로벌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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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 시간) 이집트 타바시 국경 검문 초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단체 관광객과 배낭여행객들이 검문에 앞서 짐을 
정리하고 있다. 2014년 한국인 성지 순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자살 폭탄 테러 이후 검문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보안 인력이 대폭
 늘었다. 타바=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18일(현지 시간) 이집트 타바시 국경 검문 초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단체 관광객과 배낭여행객들이 검문에 앞서 짐을 정리하고 있다. 2014년 한국인 성지 순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자살 폭탄 테러 이후 검문 절차가 까다로워지고 보안 인력이 대폭 늘었다. 타바=강성휘 특파원 yolo@donga.com
강성휘 타바·샤름엘셰이크·다합 특파원
강성휘 타바·샤름엘셰이크·다합 특파원
18일 오후 이스라엘과 맞닿은 이집트 시나이반도 타바시(市). 기자가 탄 승합차가 국경지대로 들어서자 500m 간격으로 있는 두 검문 초소에서 군인들이 탑승객 신분을 확인했다. 같이 타고 있는 무함마드 하산 타바 시장도 신분증을 꺼내 보여야 했다. 그 사이 폭발물 감지견이 승합차를 한 바퀴 돌며 훑었다.》





타바 국경지대에서는 2014년 한국인 성지순례객들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건너가기 위해 대기하던 관광버스에서 자폭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한국인 3명 등 4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시나이반도 일대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의 추가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정세가 불안정했다.

하지만 이날은 여느 평화로운 국경 도시나 다름없었다. 캐리어를 끌거나 배낭을 멘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초소 사이를 다녔고 단체 관광객을 태운 대형 버스도 쉼 없이 오갔다. 하산 시장은 “8년 전 테러 이후 검문 초소를 추가 설치하는 등 보안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며 “이집트 내무부도 주요 시설 상황을 폐쇄회로(CC)TV 화면으로 지켜보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당국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인 대상 테러 이후 타바에서 테러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타바를 찾는 관광객 상당수는 이스라엘인이다.

남시나이 여행경보 낮춰

남시나이반도는 지난해 8월까지 외교부 여행경보 중 적색경보에 해당하는 ‘출국 권고’ 지역이었다. 대표 도시 샤름엘셰이크만 황색경보인 ‘여행 자제’ 지역이었다. 하지만 출국 권고 지역임에도 이곳 정세가 안정되자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다. 샤름엘셰이크 인근 다합 같은 다이빙으로 유명한 관광 도시에는 배낭여행객이 이어졌고 성지 순례객도 점차 늘었다. 그러자 이집트 한인 사회 및 관광업계는 출국 권고가 지역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8년 만인 지난해 8월 남시나이반도 여행경보를 여행 자제로 완화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샤름엘셰이크, 다합은 ‘여행 유의’ 지역으로 더 낮췄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측은 여행경보 조정 전 이집트 당국 고위 관계자들과 수차례 만나 지역 보안 실태 등 경보를 완화해도 되는지 점검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시나이반도 북부와는 달리 남시나이주(州)는 크게 안정됐으며 다른 국가들도 별다른 여행 제한을 두지 않는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이집트 당국은 남시나이반도 안전에 큰 자신감을 보인다. 샤름엘셰이크에서 지난해 11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성공적으로 열린 점을 강조한다. 칼리드 파우다 남시나이 주지사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COP27 기간 남시나이에 세계 각국에서 6만5000명 넘게 찾았고 무사히 돌아갔다. 세계 어디보다 안전하다는 증거”라며 “한국인 관광객 안전을 100%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파우다 주지사는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사돈 관계로 이집트 정계 유력 인사다.

한인사회 기대감 무럭무럭
이집트 한인사회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끊긴 단체 관광객이 슬슬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수입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말 카이로 국제공항 입국장 밖에서는 최근 몇 년간 보기 힘들던 한국인 단체 관광객용 대형 버스 10여 대가 대기 중이었다. 현지 관광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모두 매진된 이집트 직항 전세기 13편으로 한국인 3000여 명이 찾았다. 이들은 대부분 700만 원을 내고 길게는 8박 9일 일정으로 방문한 단체 관광객이었다.

현지 여행사 에어버스투어 이종희 전무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쇠퇴하던 이집트 관광이 반등하려던 찰나 코로나19가 터져 관광업 비중이 큰 한인사회에 타격이 컸다”며 “여행경보 완화 이후 관광업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1만5598명 수준이던 이집트 방문 한국인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3만1946명까지 늘었지만 2020년 1만3358명으로 줄었고, 2021년 4354명으로 급감했다. 이집트에 살던 많은 한인은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튀르키예(터키) 등지로 옮겨 관광 가이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집트 주요 관광지에서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보이고 있다. 17일 기독교 성지인 남시나이반도 성카트리나 수도원에서 10명 이상으로 꾸려진 한국인 단체 관광객 두 팀을 볼 수 있었다. ‘배낭여행 천국’으로도 불리는 다합에서 만난 한인 다이빙 강사는 “확실히 단체뿐 아니라 개별 관광객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여행경보가 완화돼 여행자보험 가입이 가능해지자 이집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고민이 한층 줄어들었다”고 했다.

기대 속 ‘안전 불안’ 우려도
관광 수입이 국내총생산(GDP) 10% 안팎을 차지하는 이집트는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맞고 있어 관광 활성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이집트를 찾은 해외 방문객은 2019년 1302만6000명에서 2020년 367만7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2021년 760만 명대로 회복하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관광 수입도 급감했다. 2019년 126억 달러(약 16조3600억 원)로 역대 최고였던 관광 수입은 이듬해 40억 달러(약 5조1950억 원)로 70%나 줄었다.

최근 아르헨티나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 2대 채무국이 된 이집트로서는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집트 정부는 올해 관광 부문에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3억 달러(약 3896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광 활성화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집트 관광 활성화 추진에 여행경보 완화로 ‘호응한’ 한국이 다른 분야에서도 이집트와의 교류를 강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집트 정부가 최근 투자를 늘리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군수 산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은 3조 원 규모 엘다바 원전 건설 사업을 따냈다. 한화디펜스는 이집트와 2조 원 규모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K9 자주포 해외 수출 계약 중 가장 큰 규모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집트 정부와 전투기 최다 100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집트 정부가 관광업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한국 정부가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선다면 다른 사업 수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급변하는 중동 정세 특성상 한국인 관광객의 안전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도하는 극우 연립정부가 이스라엘에 들어선 이후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 관계가 악화되고 있어 불안을 키우고 있다. 무장단체들이 여전히 암약하는 시나이반도 북쪽은 이집트 공권력이 쉽게 닿지 않는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홍진욱 주이집트 한국대사는 “안전에는 100%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주요 관광지 안전 실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이집트 당국과 긴밀히 협조해 국민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강성휘 타바·샤름엘셰이크·다합 특파원 yolo@donga.com


#여행경보 완화#이집트#한인사회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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