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장부터 도심까지 도보 32분… 서울시 수상버스, 성공할 수 있을까?[메트로 돋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9일 11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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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1년에 몇 번 홍수 날 때를 제외하면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수상버스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럽 순방 중이던 13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운행하는 리버 버스를 탑승한 뒤 서울에도 수상버스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잠실과 상암을 약 20분 안에 주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오 시장의 구상이었습니다.

● 대중교통 자리 잡은 런던 리버 버스


2007년 도입된 한강 수상 콜택시. 탑승 인원은 8~11명 정도다. 당시 새로운 출퇴근 수단으로 도입됐지만, 이용률이 저조해 현재는 사실상 관광용 택시로만 이용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7년 도입된 한강 수상 콜택시. 탑승 인원은 8~11명 정도다. 당시 새로운 출퇴근 수단으로 도입됐지만, 이용률이 저조해 현재는 사실상 관광용 택시로만 이용되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강을 다니는 수상버스. 뭔가 기시감 들지 않나요? 한강에는 이미 2007년 오 시장이 도입한 한강 수상 콜택시가 다니고 있습니다. 당시 서울시가 새로운 출퇴근 수단으로 도입하면서 서초구 반포동에 나루터를 두고 잠실, 여의도, 상암 등에 선착장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용률이 저조해지자 출퇴근 노선은 사실상 폐지하고 관광용 택시로만 운행되고 있습니다.

런던의 리버 버스는 어떨까요. 기자가 현지에서 타본 수상 버스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출장 기자단을 제외하고도 스무 명 남짓 탑승했습니다. 평일 낮 시간대임을 생각하면 꽤 많은 숫자였습니다.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우버 보트’가 운영하는 리버 버스(오른쪽)가 운행하고 있다. 템스강에는 우버 보트 외에도 ‘혼블로어’라는 크루즈 회사가 운영하는 관광용 선박(왼쪽)도 다니고 있다. 런던=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우버 보트’가 운영하는 리버 버스(오른쪽)가 운행하고 있다. 템스강에는 우버 보트 외에도 ‘혼블로어’라는 크루즈 회사가 운영하는 관광용 선박(왼쪽)도 다니고 있다. 런던=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리버 버스의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고 소음은 적었습니다. 배를 탈 때 나는 특유의 기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운영사 측인 ‘우버 보트’가 204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지난해 가을부터 하이브리드 방식의 리버 버스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1999년부터 운행 중인 리버 버스는 쾌속 여객선으로 연간 1040만 명(2018년 기준)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00∼150명이 탑승해 시속 약 50km로 템스강 변 런던탑부터 그리니치 마켓까지 18분 만에 주파합니다. 주말과 공휴일엔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고 평일엔 주로 시민들이 이용합니다.

리버 버스는 현재 4개 노선으로 운영됩니다. 여기에 평일 아침·저녁, 평일 비수기 연장 등의 노선까지 포함하면 총 6개입니다. 통근자들을 위한 할인 티켓도 판매합니다. 요금은 5.7~16.2파운드(약 9000원~2만 5000원)인데, 우버보트 홈페이지에서 통근자용 티켓을 구매할 경우 연간 최대 73%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버보트가 운영하고 있는 템스강 리버버스의 노선도. 런던 서쪽 퍼트니서부터 동쪽의 바킹리버사이드까지 운행한다. 우버보트 홈페이지 캡처
우버보트가 운영하고 있는 템스강 리버버스의 노선도. 런던 서쪽 퍼트니서부터 동쪽의 바킹리버사이드까지 운행한다. 우버보트 홈페이지 캡처


● 강변-도심 거리 멀수록 불편


하지만 리버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런던 시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리 홈우드 씨(45)는 “집에서 강변까지 가는 데 시간이 꽤 걸려서 출퇴근을 위해 수상버스를 이용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에서 나와 선착장까지 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그는 “지인들 중에서도 이동 수단으로 리버 버스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구글 지도를 이용해 런던 버스·지하철·자차·리버버스 등의 이동 예상 시간을 비교해봤습니다. 템스강변에 위치한 런던아이, 빅벤, 테이트모던 등 리버 버스 선착장과 가까운 곳이 아니면 버스나 지하철이 빠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구글 지도를 통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버로우 마켓까지 이동 경로를 검색한 결과, 리버버스를 이용하는 경우 도보 시간이 5분가량 늘어났다. 총 소요시간도 30분으로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보다 17분가량 더 걸렸다. 리버 버스의 소요시간은 선착장까지의 거리에 따라 도보 시간이 10분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구글 지도 화면 캡처
구글 지도를 통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버로우 마켓까지 이동 경로를 검색한 결과, 리버버스를 이용하는 경우 도보 시간이 5분가량 늘어났다. 총 소요시간도 30분으로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보다 17분가량 더 걸렸다. 리버 버스의 소요시간은 선착장까지의 거리에 따라 도보 시간이 10분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구글 지도 화면 캡처


소요 시간은 비슷하지만 리버 버스를 이용하면 환승하거나 도보로 이동해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선착장에 내려 시내로 이동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오히려 번거로워진 셈입니다.

한국은 런던보다 훨씬 더 불편할 것으로 보입니다. 카카오맵 검색 결과 잠실한강공원에서 인근 대로변(한가람로)까지 나오려면 도보로 최대 10분이 소요됩니다. 상암은 조건이 더 안 좋습니다. 난지한강공원에서 업무 단지가 밀집해있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사거리까지는 약 2.3㎞나 됩니다. 최대 37분을 걸어야 하는 거립니다.

난지한강공원에서 DMC사거리까지 경로검색 결과 도보 37분, 버스 25분이 소요된다. 공원 중심부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도보로 7분을 걸어야 한다. 카카오맵 캡처
난지한강공원에서 DMC사거리까지 경로검색 결과 도보 37분, 버스 25분이 소요된다. 공원 중심부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도보로 7분을 걸어야 한다. 카카오맵 캡처


난지한강공원 인근에서 버스를 타고 DMC사거리까지 이동하는 상황을 가정해봤습니다. 도보와 버스를 포함해 약 24분이 걸린다고 나왔습니다. 심지어 난지한강공원 인근에 서는 버스의 배차간격은 20~40분 정도입니다. 수상버스를 타고 잠실에서 상암까지 20분 만에 도착했더라도 한강공원을 벗어나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을 더 써야 하는 것입니다.

● “접근성 높이고 관광 명소 많아야 성공”


전문가들은 한강에서 수상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선 승강장까지의 접근성을 높이고 한강변에 관광 명소를 많이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싱가포르처럼 수변공간을 따라 시민들이 머무르고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들이 조성돼야 수상버스를 이용할 유인이 생긴다는 겁니다. 싱가포르 강가에는 강변 식당가인 클라크키와 세계 최대 대관람차인 싱가포르 플라이어 등 다양한 문화 시설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수상 버스를 운영하려면 선착장까지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 선착장만 하나 달랑 있으면 대중교통 라인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한강은 레스토랑 등의 액티비티들이 구성돼 있는 것들이 적으니 이런 것들을 조성해 한정적인 곳에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방법이 일반적인 해법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반면 서울시는 수상버스가 한강 콜택시와 달리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수송 인원이 많아 단가를 낮출 수 있는 데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통해 강변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전에는 따릉이, 전동 킥보드 같은 개인형 이동수단(PM)이 없었지만, 앞으로 이를 이용하면 도보보다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레이트 한강 사업을 통해 접근성이 개선되고 선착장도 늘어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오 시장은 9박 11일간 유럽 순방에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잇달아 내놨습니다. 대관람차 ‘서울링’부터 한강 곤돌라, 부유식 수영장까지…. 서울시가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들입니다. 이름만 듣고 보면 그럴싸 하지만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상버스가 한강 콜택시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화려한 시설물보다 ‘시민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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