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자녀들이 부모 빚 상속 포기하면 손주는 다음 상속자 아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3일 15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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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가 사망한 뒤 남긴 빚에 대해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한다면, 손자·손녀는 빚을 갚아야할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자녀들이 전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와 손자·손녀가 공동 상속인이 된다는 2015년 5월 판결을 약 8년 만에 변경한 것으로 앞으로 상속채무 관련 법리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3일 사망한 A 씨 손자녀들이 낸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에서 이의신청을 기각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원에 따르면 2015년 4월 A 씨가 사망하자 A 씨의 배우자는 한정승인을 하고 자녀들은 전부 상속을 포기했다. 한정승인은 재산과 빚을 모두 상속받되 물려받은 재산 범위 안에서만 빚을 갚는 것이고 상속포기는 재산과 빚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다.

2011년 채권자 B 씨는 A 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뒤 A 씨 배우자와 손자녀들을 상대로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다. 승계집행문은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승계인에 대한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문서로 B 씨가 A 씨의 배우자나 손자녀를 상대로 빚상환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문서다.

이에 A 씨의 손자녀들은 본인들은 상속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의신청했다. 원심은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도 망인의 손자녀들은 망인의 배우자와 공동상속인이라고 판단해 이들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A 씨의 손자녀들은 1심 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특별항고했다.

대법원은 자녀들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상속인이 된다고 봤다. 민법 제1043조에 따르면 공동상속인 중 어느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 그 사람의 상속분이 ‘다른 상속인’에게 귀속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 경우 ‘다른 상속인’에는 배우자도 포함되는만큼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가 전부 상속을 포기하면 그들의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다만 배우자와 자녀 모두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때는 후순위 상속인으로서 피상속인의 손자녀가 상속인이 된다.

대법원 측은 “상속을 포기한 피상속인 자녀들은 피상속인의 채무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에게도 승계되는 효과를 원천적으로 막을 목적으로 상속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그럼에도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손자·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대와 의사에 반하고 사회 일반 법감정에도 반한다”며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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