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尹정부 ‘이권 카르텔’ 전선 이상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2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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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넓어지는 카르텔의 범위
文정부 때 ‘적폐’ 닮아선 안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이란 말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쓴 건 재작년 6월 29일이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는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후 표현 강도는 점점 세졌다. 같은 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선 “적폐, 부패의 카르텔을 혁파하고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내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카르텔’이란 말은 작년 12월에 다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민노총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사태에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강경 대응해 화물연대 측이 백기를 든 직후다. 대통령은 “일자리 세습, 기득권의 일자리 지키기를 위한 이권 카르텔”이란 말로 노동계를 비판하면서 이권 카르텔과의 전선에 복귀했다.

이후 현 정부 개혁과제 중 최우선 순위로 떠오른 노동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정부여당은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회계 투명성 강화 요구는 필요성이 너무 자명해서 ‘노조 탄압’이란 노동계의 반발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다. 경찰 수사로 드러난 건설 현장 노조의 폭력적 행태들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노동계 이권 카르텔의 실체를 확인시켜 줬다.

지지율까지 끌어올린 승전고에 고무됐던 것일까. 지난달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5대 은행, 3개 이동통신사였다.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 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이들이 고금리, 고물가로 고통받는 국민을 상대로 높은 대출금리, 비싼 통신요금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걸 비판하면서 대통령은 ‘카르텔’을 거론했다.

역대 정부에서 비슷한 일을 경험한 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리를 낮췄고, 통신사들은 중간요금제 출시 계획을 내놨다. 그런데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었다. 과도한 상여금 등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경범죄라면, 카르텔은 조직범죄다. 해법의 스케일도 달라져야 했다. 금융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경쟁을 촉진해 과점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 진출할 새로운 사업자를 찾기 시작했다. 경제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은행, 통신사 조사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규제 강도가 세계 최고인 한국 은행업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급기야 최근엔 새로 허가할 특화은행 모델로 금융당국이 검토해온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 일까지 생겼다. 글로벌 금융권이 요동치는 지금은 건전성에 큰 탈이 없는 국내 은행에 당국이 오히려 고마워할 상황이다. 통신 부문도 수조 원을 투자하면서 선진국보다 크게 낮은 수익률에 만족할 제4 이동통신사업자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음식점 소주, 맥주 가격이 6000원, 7000원으로 오른다는 말이 나온 뒤에는 주류업체들도 고물가를 틈타 독점적 이득을 챙기는 집단으로 지목됐다. 카르텔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 정부가 대하는 태도는 은행, 통신사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공장 출고가가 100원 오를 때 식당 술값이 1000원 단위로 오른다는 사실이 확인돼 정부만 머쓱해졌다. 술값을 올려 전기·가스요금 상승을 벌충하려는 식당 주인들까지 이권 카르텔로 매도할 순 없었을 것이다.

1년 8개월 전 대통령이 지목한 카르텔은 정치권력을 장악한 좌파 운동권 세력과 이들과 연계해 이권을 챙기는 집단이었다. 지금은 정부가 원하는 방향에 어긋나게 움직이는 기업, 세력에 카르텔이란 이름이 붙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적폐’란 말이 비슷한 식으로 쓰였다. 넓어져 가는 이권 카르텔 전선에서 나오는 이상 신호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권 카르텔#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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