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젠더 개념 수면 위로… ‘시대의 아이콘’ 된 판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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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소수자 권익 위해 헌신한
두 번째 美 여성 연방대법관
법과 자유, 사랑에 대한 통찰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제프리 로즌 지음·용석남 옮김/304쪽·1만8000원·이온서가

1991년 미국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던 저자는 역대 두 번째 미국 여성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처음 만났다. 엘리베이터에서였다. 고요한 분위기를 참지 못했던 저자는 “최근에 오페라를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며 말문을 텄다. 우연히 시작된 이 인연은 수십 년간 이어졌다.

긴즈버그와 가까이 지냈던 법률 저널리스트가 ‘판사들의 판사’로 불렸던 긴즈버그와의 대화를 엮었다. 긴즈버그의 입을 통해 법과 자유, 사랑, 결혼, 승리와 패배 등에 대한 통찰을 살핀다.

긴즈버그는 평생 흔들림 없이 여성과 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했고, 그의 행보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영감을 줬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결혼을 앞둔 저자는 긴즈버그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긴즈버그는 주례사 초안을 쓰며 “제프리, 이제 신부에게 키스해도 좋습니다”라는 전통적인 축복으로 글을 마쳤다. 몇 시간 뒤 이 문구는 바뀌었다. “제프리, 로런, 이제 이 결혼의 첫 키스를 위해 서로 안아주실 시간입니다.” 신랑 신부가 평등한 관계라는 의미를 담아 문구를 수정한 것이다.

긴즈버그는 2013년 미국 워싱턴의 케네디 예술센터에서 열린 동성 결혼식에서도 주례를 섰다. 그는 “미국의 헌법이 탄생한 지 2세기 이상이 지났다. ‘우리 국민’에 대한 개념은 이제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한때 소외되었던 사람들, 노예였던 이들, 여성들, 원주민들은 애초에는 그 ‘우리 국민’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평등이란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했다.

긴즈버그는 ‘젠더’라는 단어를 최초로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임신중단권을 위해 노력했다. 때로 그의 판결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체 어떤 내면의 힘이 그를 이끈 것일까. 긴즈버그는 “나는 상대방에게 ‘이런 의견은 심히 잘못’이라거나 ‘이런 견해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생각이 다른 사람도 친구로 만드는 자세가 그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게 아닐까.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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